성지 순례기(聖地 巡禮記) / 박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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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기행)
성지 순례기(聖地 巡禮記)
-‘꿈’만 같았던 성지 순례
박연웅 목사
( # 옮겨온 홈 주인의 註 : 아래의 글을 여기 홈페이지로 옮겨오는 과정에서 히브리어가 변환되지 않음으로 히브리어 자리에 '( )'로만 표기하여둠. -http://www.poet.or.kr/hdj/ 홈 주인 )
성지(Holy land)에 다녀 온 사람 들이 많이 있다. 그들의 순례기(巡禮記)를 읽을 때 마다 내가 보고 느끼지 못한 것까지 포함하고 있다. 또 앞으로 성지에 갈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또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의견(意見)이 있으리라!
그러므로 나는 성지 순례에서 보고 느낀 점도 각 사람(各人)에 따라 그 차이점(差異点)이 있으리라 생각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意味)에서 필자(筆者)도 일년 반(半)이 넘도록 살았던 성지에서 보고 느꼈던 점을 내 나름대로 적어 보려고 한다.
사람은 누구 에게나 꿈이 있다. ‘꿈’이라는 말이 영어로는 비전(vision)이 다. (사전(辭典)에는 이 ‘비전’이라는 뜻이 마음속에 그리는 ‘환상’(幻像), ‘환영’(幻影)으로 나와 있다.) 꿈(夢)은 희망(希望)이다. 꿈이 있는 사람은 희망이 있고, 꿈이 없는 사람은 희망이 없다.
크리스천(christian)들은 믿음의 조상을 아브람()이라고 하는데, 구약성경(舊約聖經)을 읽어보면 아브람(Abram)은 나중에 아브라함(Abraham)이라는 이름을 하나님으로부터 받는다.(창 17:5)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비’( a father of many nations)라는 뜻이다. 아브라함에게는 사래(Sarai)라는 아내가 있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브라함의의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 )”로 개명(改名)하라고 하셨다.
사라(Sarah)는 장차 “열국의 어미”(a mother of nations)가 된다는 것이다.
(창 17:15-16) 아브라함이 백세(百歲)되고 그의 부인 사라가 구십세(九十歲)가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웃음’(laugh)이라는 이름의 뜻을 가진 아들 이삭 ( )을 주신다.(창 17:19)
이삭(Issac)이 60세가 되었을 때에 쌍둥이 두 아들이 태어나는데 그 둘째가 야곱(Jaccb)이다. 나중 나온 아우(弟)가 먼저 나온 형(兄)의 발꿈치를 잡고 나왔다. 그래서 야곱( )이라는 이름의 뜻은 ‘발꿈치를 잡았다.’(follow at the heel)는 뜻이다.(창 25:26) 쌍둥이 사이에는 불목(不睦)이 있었다. 형 에서는 동생 야곱을 죽이려고 까지 하였다.
야곱은 형의 살인계획(殺人計劃)을 피(避)하여 하란에 있는 외삼촌(外三寸) 라반의 집에 가서 20년간 머슴살이를 하다가 돌아온다. 야곱은 얍복 강변에서 천사(天使)와 씨름하여 또 하나의 이름을 얻는데, 그 이름이 이스라엘(Israel)이다. 이스라엘( )이라는 이름은 야곱의 두 번째 이름이다.
(second name of Jaccb)(창 32:29).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의 뜻이 무엇인가? 이 말은 ‘싸라’( )와 ‘엘로힘’ ( )의 합성어(合成語)로서 ‘엘’( )은 ‘하나님’(God)이라고 하는 ‘엘로힘’( )의 약자(略字)이며, 그리고 ‘싸라’라는 말은 현대(現代) 히브리어 사전( The New Bantam-Megiddo Hebrew and English Dictionary. 1975,4.)을 보면 ‘씨름하다’(wrestle) 혹은 ‘투쟁하다’(struggle)는 뜻으로 나와 있다.
그리고 세 사람(Brown. Driver. Briggs)에 의해서 저술된 사전( A Hebrew and English Lexicon of the Old Testament.)에는 ‘싸라’라는 말이 ‘참다’ ‘견디다’ ‘버티다’( persevere with) 라는 뜻으로 말하고 있다.
호세아서를 읽어보면 “야곱은 태(胎)에서 그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고, 또 장년에 하나님과 힘을 겨루되, 천사와 힘을 겨루어 이기”였다고 하였다. ( he persevered with God.)(호 12:3-4)
성경을 보면 아브라함이 ‘히브리 사람’( )으로 나오고 있다.(창 14:13) 선민(選民)의 혈통(血統)을 보면 ‘셈→ 에벨 → 아브라함’으로 이어지는데, (창 11:10-32) 에벨( )이라는 이름의 뜻은 ‘건너다’(pass over)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히브리라는 호칭(呼稱)의 의미는 강(江)을 ‘건너왔다’는 뜻의 월강자(越江者)라는 뜻이다. 유태인(猶太人)들은 아브라함을 그들의 민족조상(民族祖上)으로 생각한다.
아브라함은 이락크(Iraq)의 옛 이름인 갈대아 우르에서 태어나,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의 티그리스(Tigris)와 유우프라테스(Euphrates)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신앙의 이주(移住)를 하여왔다.
유대인(Judea)인의 명칭이 과거에는 ‘히브리인’이라고 불리어졌지만 현대에는 ‘이스라엘 인’으로 바뀌어졌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구약성경을 3부(部)로 나눈다. 즉 율법서(律法書), 예언서(豫言書), 성문서(聖文書)이다.
히브리 음으로는 ‘토라’, ‘느비임’, ‘크투빔’이다. 토라( )는 율법서(the Law)요, 느비임( )은 예언서(the Prophets)요, 크투빔( )은 성문서(the Hagiographa)이다.
그리고 머리글자를 따서 구약성경을 ‘타낰흐’( )라고 부른다. 율법서 중의 첫째 권이 창세기(創世記)이다. 창세기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브레쉬트’( )라고 읽는데, 그 뜻은 “태초(太初)에”(in the beginning)라는 뜻이다.(창 1:1)
창세기를 읽어보면 요셉을 “꿈꾸는 자”라고 부르고 있다.(창 37:19)
요셉은 해와 달과 열 한 별에게 절 받는 꿈(창 37;9)을 꾸고서, 그대로 믿어, 이루(成就)었다. 여기에 나와 있는 히브리어는 ㅋ할롬( )이라는 말이며, 영어로는 드림(dream)으로 번역되고 있다. 요셉은 족장(族長)가운데서 가장 성결(聖潔)하게 살았다. 그러나 요셉의 형들은 그렇게 살지를 못했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은(銀) 스무양(20)을 받고 애굽 상인(商人)에게 매매하는 구약판 인신매매범(人身賣買犯)노릇을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 하셨다. 요셉이라는 이름의 뜻은 ‘더하다’( ; Add)라는 뜻이다. 그 이름이 의미하는 것처럼 요셉은 형(兄)들 보다 하나님으로부터 더 복(福)을 받았다. 애급의 총리대신이 되어 형들이 요셉에게 무릎을 꿇게 되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꿈으로 대답하시는 것이다.(삼상 28:6)
느부갓네살 왕은 꿈( ; dream)을 꾸고서 마음이 번민(煩悶)하여 잠을 이루지 못 하였다. 이러한 느부갓네살 왕의 꿈을 풀어준 다니엘은 바벨론 도(道)를 다스리게 되었고, 그의 벗(親友)들도 혜택(惠澤)을 받게 된다.(단 2 : 1, 48, 49)
꿈은 모래사막(沙漠) 같은 광야(曠野)길에 시원한 오아시스 같은 희망(希望)이다. 꿈은 절망하는 인생길에 소망(所望)을 주는 것이다. 성문서(聖文書 : the Sacred writings)가운데 시서(詩書)중의 한권인 잠언(箴言 : : the Pruverbs)은 지혜서이다.
잠언 29;18 절을 히브리어 성경으로 읽어 보면,
( )(베 애인 ㅋ하죤 이파라- 암 ) 이라 하였다. 즉「꿈이 없는 백성은 긴장(緊張)이 풀어진다.」(나의 私譯).
내가 신학을 공부할 때 어떤 교수님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독일의 어떤 신학생이 말하기를 “내가 원어를 배울 수만 있다면, 배우는 과정에서 내 육체에 손가락이 하나 잘리어져 나가는 아픔과 불편함이 있더라도, 원어가 내 신앙생활에 영적으로 도움이 된다면 그 아픔과 불편함을 감수하고라도 원어 공부를 하겠다.”는 게르만 민족의 강한 종교성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무엇보다 원어 성경을 배우게 된 것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내가 시골에서 목회(牧會)를 할 때 우리집 어항에 넣으려고 어떤 집사님으로부터 잉어를 너 댓 마리 선물 받은 적이 있다. 그런데 ‘잉어’ 외에 ‘메기’가 두 마리 있었다. 나는 ‘잉어’와 함께 ‘메기’를 가져온 사유(事由)를 물었더니 ‘고기는 다른 종류와 함께 있어야 긴장을 하므로 오래 산다’는 것이다.
잠언 29;18 절의 한글 번역은 묵시(黙示)가 없으면 백성(百姓)이 방자(放恣)히 행(行)하거니와라고 했지만, 영어 번역은
Where there is no vision, the people perish.라 하였다.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성경이 묵시로 번역한 히브리어가 ㅋ하죤( )인데 영어번역에는 비젼(vision)으로 되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신약성경(新約聖經)을 히브리어로 ‘베리트 ㅋ하다샤’라고 읽는다.
‘베리트’( )는 언약(言約 :covenant )이라는 뜻이고 ‘ㅋ하다샤’( )는 ‘새로운’(new)이라는 뜻이다 신약성경을 읽어보면 유대인 베드로는 이방인을 ‘속(俗)되다’고 하여 교제(交際)를 멀리하며 살아왔다. 그러던 베드로가 환상(幻像)을 보고 나서 속되다고 생각했던 이방인(異邦人)도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깨닫게 된다.(행 10:17-28)
베드로의 설교(說敎)를 읽어 보면 선지자(先知者) 요엘의 말씀을 인용하여너희 젊은이들은 환상( ορασεις; vision )을 보고 너희 늙은이들은 꿈(ενυπνια ; dream)을 꾸리라.(행 2;17)고 하였다.
사람이 반드시 하고 싶었던 일을 하지 못하고, 꼭 만나고 싶었던 사람을 만나 보지 못했을 때, 꿈에서라도 한 번하여 보고, 또 환상 속에서라도 만나보고 싶은 것이 사람의 욕망(慾望)이리라. 이런 의미에서 사람의 욕망은 꿈으로 표현되기도 하는 것이다.
진실한 그리스도인들 에게는 평생에 한번 가 보았으면 하는 곳이 바로 예수( : Jesus)님이 사셨던 성지(聖地)일 것이다.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무엇인가? 마태복음 1:21절을 헬라 성경으로 보면
τεξεται- δε υιον, και καλεσεις το- ουομα- αυτου ιησουν αυτος- γαρ
σωσει τον λαον αυτου απο των- αμαρτιων- αυτων
한글 번역 성경을 읽어 보면,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自己) 백성(百姓)을 저희 죄(罪에)서 구원(救援)할 자(者)이심이라 하니라.”
히브리 번역 성경을 보면
( )
21 ( )
여기에서 ‘예수’( )라는 이름의 뜻은 ‘구원’(salvation)이란 뜻이다.
영어 성경도 분명하게 번역하고 있다.
She will give birth to a son and you are to call Him Jesus : for He will save his people from their sins. Mattew 1;21
나는 어릴 때부터 꾸는 꿈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하늘을 한번 나는 꿈이었다. 더욱이 성지에 간다는 것은 나의 가장 큰 꿈이었다. 내가 이스라엘에 갔을 때나, 한국에 돌아온 후에도, 그 곳은 전쟁(戰爭)의 위험(危險) 속에 있었다. 그래서 그 때 이스라엘의 유학(留學)을 목적으로 집을 떠날 때, 내 마음 한 편으로 전쟁을 생각하니 근심이 되었다.
히브리 미족의 위대한 지도자(the great Hebrew leader)요, 선지자(prophet )요, 입법자( 立法者 ; lawgiver )는 모세라는 사람이다.
모세( )라는 이름의 뜻은 ‘물에서 건져 내었다.’(draw out of the water)라는 뜻이다.
애급의 시나이 반도(the Sinai Peninsula) 남쪽에는 애급 명으로 ‘제벨 무사’( )라는 산(山)이 있다. 히브리 음으로 ‘할 씨나이’( )라고 부르는 이 산은 높이 2285m에 해당하는 산이다. <한글 번역 성경에서는 시내산( : mount Sinai)으로 나오고 있다.(출 19:23)>
이 산에서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十誡命)을 받았다
나는 십계라는 영화를 본적이 있다. 거기에는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십계명을 받기 전에 모세가 받을 두 개의 석판에 글이 새겨지는 장면이 나온다. 그것은 사람의 손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불이 나타나서 돌을 태워서 글을 쓰는 것이다. 나에게는 그 장면이 큰 감동적이었다.
그 십계명( : 10....... : comendments)은 출애굽기(出애굽記) 20장과 신명기(申命記) 5장에 기록되어 있다.
“너는 나 외(外)에는 다른 신(神)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 )
You shall have no other gods before my face.
“너를 위(爲)하여 새긴 우상(偶像)을 만들지 말라.”
( )
You shall make for yourself no idol in the likeness of anything.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妄靈)되이 일컫지 말라.”
( )
Do not use the name of the Lord your God profanely.
“안식일(安息日)을 기억(記憶)하여 거룩히 지키라.”
( )
Remember the Sabbath Day to keep it holy.
“네 부모(父母)를 공경(恭敬)하라.”
( )
Honour your father and your mother.
“살인(殺人)하지 말지니라.”
( )
You shall not murder.
“간음(姦淫)하지 말지니라.”
( )
You shall commit no adultery
“도적(盜賊)질하지 말지니라.”
( )
You shall not steal.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證據)하지 말지니라.”
( )
You shall not witness falsely aganist your neighbour.
“네 이웃의 집을 탐(貪내)지 말지니라.”
( )
You shall not covet your neighbour's household.
이 십계명 외에도 구약성경을 기록한 글인 히브리어를 공부하러 이스라엘에 간다고 생각하니 하나님께 한없이 감사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전쟁터를 생각하니 근심도 되었다. 그래서 떠나기 전 내 마음은 기쁨과 근심이 교차되었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용기(勇氣)와 결단(決斷)이 요구되었다. 그리고 신앙에는 모험(冒險)이 필요하다.
신앙은 어떤 의미에서 생명을 걸고 행하는 모험일 것이다.
성경을 읽어보면 기생 라합은 정탐군들에게 “우리 생명을 죽는데서 건져내기로 여호와께 맹세하고 내게 진실한 표를 내라.”고 한다. 그 때 정탐군들도 똑같은 요구를 한다. “이 일을 누설치 아니 하면 우리의 생명으로 너희를 대신(代身)이라도 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이 땅을 우리에게 주실 때에는 인자하고 진실하게 너희를 대우하리라.”(수 2:13-14)
또한 믿음은 재산을 걸고 행하는 ‘선의의 투자’라 할 것이다. 기원전 약 1446년경 모세가 장정만 60만으로 추산되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라암셋에서 출발하여 가나안 복지를 향해 떠날 때, 그것은 분명 전 이스라엘 백성의 생명을 건 모험이었을 것이다.(출 12:37)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본토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명령한다.(창 12:1) 이러한 하나님이 명령 앞에 아브라함은 생명을 건 모험과 재산을 건 투자가 있었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기원전 약 2166년경 갈대아 우르에서 출생하여 바벨을 거치고 하란까지 신앙이민을 와서, 하란에서 부친 데라는 205세를 향수하고 세상을 떠난다.(창 11:32)
죽고 사는 것을 하나님께 내어 맡기는 모험이 없고, 또 전 재산을 주(主)께 건 투자가 없을 때, 신앙의 성숙은 없을 것이다.
빌립보서를 읽어 보면, 바울은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한다고 하였다.(빌 1:20) 바울에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고 하였다.(빌 1:21)
예수께서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나는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나의 생명을 맡기고 전쟁이 종식되지 않은 이스라엘 유학의 길을 떠나기로 결단을 내렸다.
약 일억 오천만의 아랍인의 총 뿌리와 포구가 겨냥하고 있는 전쟁의 화염 속에 쌓여있는 팔레스타인 땅을 밟은 것은 1975년 8월 19일이었다.
비행기 안에서 좌석을 찾고 있을 때, 남자 승무원(乘務員)이 나를 보고 하는 말이「모닝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카’는 카드(card)로 들려 왔으나, 모닝(?)이란 이해가 잘되지 않는다. 모닝(morning)이란 ‘아침이란 뜻이기 때문이다. 이해가 잘되지 않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표를 내어 주었더니 좌석을 잡아준다. 나중에 표를 자세히 보니 기내임검카드( Boarding Card)가 아닌가? 이 발음이 이렇게 들려온 것이다. <참조 or Boarding Pass(탑승권)〉
한국에서 중학 시절부터 대학까지 영어를 배우고 대학원 과정을 거칠 때도 배웠으며, 그도 부족하여 학원(Korea Herald)에 다녀가며 배운 영어였건만 나의 청취력은 어둡기만 하다. 사실 내가 또 기내임검카드 라는 말을 영어로 듣기도 비행기 안에서 처음이었으므로 당연히 그럴 만도 하였다. 내가 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나의 실수(失手)를 적느냐? 하면 이 글을 읽는 사람은 나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실수가 있고, 또 사람이기에 실수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
비행기 속에서 창밖을 내다보니, 구름 위에 내가 떠 있는 것이다. 뭉게뭉게 솜처럼 펼쳐있는 구름은 내 평생에 처음 보는 정말 아름다운 장관(壯觀)이었다.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찾았으나 필림이 준비 되어 있지 않았다. 기내승무원(機內乘務員)이무었을 마시겠느냐?(What will you have) 하고 묻길래 언뜻 대답을 못하고 있었더니, 그가 “ Beer ?” 하고 말 하길래 고개를 끄덕였더니 맥주를 한 컵을 건네주고 지나갔다.
눈은 봄으로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다.
비행기를 타고 가는 동안 기내안내방송(機內案內放送)이 나왔다. 안내방송을 ‘어나운스먼트’(Announcement)라 한다.(사전에는 이 ‘어나운스먼트’가 ‘알림’으로 나와 있다). 방송용어는 3개국어(영어, 일어, 한국어)로 나왔다. 내가 타고 갔던 비행기는 영국 승무원이 일하는 씨.액스(C.X)기 였다. 그러나 그 ‘어나운스먼트’도 서울을 지나서는 한국어는 나오지 않고 영어, 일어, 중국어로 바뀌었다. 한 두어 시간이 지났을까? 모두 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기내안내방송은 착륙을 알리고 있었다. 안내방송은 분명 있었는데, 처음 듣는 내 귀에는 정거하는 곳이 정확하게 들어오지 않아 놓치고 말았다. 내가 한국 여행사에서 설명 듣기로는 처음 착륙지가 홍콩으로 들었으나, 두어 번 말하여 주는 ‘어나운스먼트’도 홍콩이라는 단어가 내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기내(機內)에 있는 모든 승객들은 일어서서 내리느라고 웅성대기 시작했고, 어떤 손님은 큰 짐을 둔 체, 손가방만 들고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나가는 손님을 보아서는 여기가 정착역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어찌되었던 방송을 놓쳤으니 나는 확신이 없었다.
드디어 내 마음은 당황하기 시작했고, 기내(機內) 복도는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로 복잡하여 졌다. 여자 승무원(Stewardess)은 색동 치마저고리를 입고 있었고 또 조금 전 한국어로 나온 어나운스먼트도 들었기에 나는 사람을 비집으면서 그녀에게 가까이 걸어가서 한국어로여기가 어디냐?고 물었으나 대답이 없다.
한국어는 한국에서만 사용되는 말(言語)이지 한국이라는 땅을 한 발자국 만 떠나서도 사용할 수 없었다. 한국말이 외국에서는 무용지물(無用之物)이 되는 것이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영어를 알면서도 왜 영어로(Where I am here?)묻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 당시에는 그것이 몸에 배어 있지를 않았었다. 만약에 색동 치마저고리를 입었던 그 때 그 여승무원이 한국말로 기내 안내광고를 하였다면 기록된 한 글만 읽었으리라!
비행기 안에 있던 모든 손님은 복도로 내 옆을 스치며 내리고 있었다. 내 마음은 더욱 더 당황하기 시작 했다. 여기가 어디냐? 고 물어야 했지만, 당황하면 할수록 말은 내 입에서 나오지 않는 것이다. 나는 너무나도 당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지(四肢)가 멀쩡해서 몸End이는 외국까지 나왔지만 내가 해야 할 말(言語)은 혀가 움직이지 않아 입안에서 맴돌면서 밖에 출입(出入)을 못하고 있었다. 참으로 귀(耳)가 막히는 일이었다. 지금 와서 내가 그 때 일을 생각해도 입이 있어도 말 못하는 ‘벙어리 아닌 벙어리’가 되어 있었다.
내가 평생에 해외 출입이 처음이듯이 혀도 바깥출입을 못하고 있었다.
침착(沈着)을 되찾고 냉정(冷靜)을 되찾아야 당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데, 나는 그러지를 못하였다. 더욱이 나에게는 짐이 많았다. 트렁크가 하나요 여행가방이 하나인데 다가, 거기다가, 카세트 라디오(cassette radio)를 하나 들고, 그 외에 가서 보거나, 가면서 읽을 책이나, 세면도구를 든 가방을 겹쳐 들었으니, 짐을 옮기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큰 트렁크는 화물(Baggage)로 실었지만, 카셋트 라디오와 가방들은 내 손으로 직접 운반해야 했다.
나중에 이스라엘에 가서 보니 다른 사람들은 간단하게 그저 손가방 하나만 달랑 들고 들어왔는데 말이다. 그러므로 모든 일에는 경험이 있어야한다. 나는 여행경험이 없어서 그 고생을 한 것이다. 여행하는 데도 경험이 제일이다.
그러나 믿는 자를 하나님께서 인도 하시고 계셨다. 나는 할 바를 알지 못하고 여객 손님을 따라 기내(機內)에서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통로(通路)는 꽤 길었다. 그 통로 속에서 나는 하나님의 손길을 만났다. 어리둥절해 걷고 있는 나를 보고, 뒤에서 걷고 있던 어떤 한국 사람이 이렇게 나에게 귀띰을 하여 주는 것이 아닌가!여기서 표(待機票)를 받아 기다렸다가 이 비행기를 놓치지 말고 타야한다.는 것이다. 이는 분명 하나님께서 그분의 마음을 움직여 주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었다. 그때 나는 하나님께 이렇게 감사하고 있었다. 그것은 시편 말씀이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 서로다.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失足)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 하시리로다.」(시121:1-3)
He will not allow your foot to slip;
( )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그 곳은 대북(臺北)이 었다. 나는 여객 대합실 입구에서 통과 여객증(Transit Passenger)을 받아 들고 등기대(登機臺)에서 기다려야만 했다. 등기대에는 거의가 장사나, 관광차 여행하는 일본 사람들이 동양인을 대다수(大多數) 차지하고 있었으며 그 외에 태국인이 아니면 중국인이었다. 한국인은 별로 찾아 볼 수가 없었다. 한국인의 세계진출이 아쉬웠다. 그런데 등기대에서 만났던 반가운 일은 인도네시아어로 파견(派遣)가는 한국인 기술자(技術者)들이었다. 그들 일행은 세 사람이었다. 그 중 한사람이 내 옆에 와서 “서울에서 오셨지요?라고 묻는다. “어떻게 나를 알아보느냐?”고 물었더니, 내가 서울에서 짐을 부칠 때 나를 보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다 영어에 서툴고 그 중 한 사람이 리더(Leader)노릇을 하고 있었다. 나머지 두 사람은 한 사람과 같이 행동을 취하고 있었다. 고국에 처자식(妻 子息)을 두고 온 몸들이라 얼굴 표정들이 밝을 수가 없었다.
대북의 등기대, 등기대는 나의 마음을 서늘하게 했던 곳이다.
나의 마음을 서늘하게 했던 등기대에서의 한(限) 반 시간가량 기다렸다가 기내로 다시 들어오니, 비행기 안은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었다. 스튜어디스들은 웃는 얼굴로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타이페이(Taipei)에서 우리는 세 사람이 동행이 되었으나, 좌석 번호에 앉아서 가야하기 때문에, 파견되는 한국 기술자들은 그들대로 앉았으며, 나는 중국인과 함께 앉게 되었다. 인사를 주고받은 후 우리는 대화를 하게 되었다. 그도 한국어를 모르고 나도 중국어를 모르므로 우리는 영어로 말하였다. 영어도 각자가 모국어가 아닌 타국어이므로 영어에 서툰 사람들끼리는 오히려 말하기가 좋았다. 그도 영어가 서툴고, 나도 영어가 서툴기는 매 일반이었다.
우리들이 사용하는 영어는 그야말로 ‘어글리 잉글리쉬’였다. 말이 서툴다 보니 글로 쓰게 되었다.
그의 이름은 축인(Cheuk Yin)이라고 하였다. 중국인과 나는 서툰 영어로 한 시간이 넘도록 이런 말 저런 말을 주고받았다. 대화 가운데서 재미있었던 일은 맞는지 안 맞는지 알 수 없지만, 내 이름이 중국 발음으로 Buk Kwan Hom 이라는 것이다. ( 22년이 지나서 개고(改稿)를 하여 보니 기록하는 일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다. 나는 비행기 안에서 만난 중국인이 기억에서 영 영 사라지고 없어졌는데 그 때 기록했던 글을 읽으니 기억이 되 살아나고 있다.)
나는 기내(機內)에서 일본인도 만났다. 얼마 후에 내 가까이에 한국인처럼 생긴 사람이 한 분 앉아 있었다. 나는 그가 한국사람 인줄 알고 반가워서 한국말로 “한국인입니까? ” 하고 물었더니 그는 한국말을 못 알아듣지 않은가, 다시 영어로 물었더니(Are you Korean?)하였더니, 그는“나는 일본인입니다.”
(I am Japaness)라고 영어로 대답한다. 어쩌면 이렇게도 일본인이 한국인처럼 똑 같이 생겼을까! 나는 감탄을 했다. 나는 일본인을 비행기 안에서 처음으로 만났다. “어디까지 가십니까?”(Where are you going?)하고 나도 영어로 물었더니 홍콩까지 간다고 서슴없이 대답을 한다. 그와는 더 대화가 없었다. 일본인이라 하니 물어보고 싶지도 않고, 알아보고 싶은 것도 없었다. 나는 아직까지 일본인에 대해서는 마음 문이 닫혀있었다. 그는 영어신문을 보며 나에게 호의를 베푸는 태도로 나왔으나, 나는 관심 밖의 일이었다. 그는 여행에 익숙하여 있었고 나는 미숙하여 있었다.
얼마 후에 시츄어디스가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라고 한다. 기내에서 마시는 것도 처음 있는 일이라 엉겁결에 생각지도 않았던 맥주(Beer)를 청해 그것을 마시기도 하였다. 기내에서는 먼저 땅콩(Peanuts)과 휴지가 나온다. 그러고 나서 음료수와 술이 나왔으며 이어서 양식이 나왔는데 별로 먹어 본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모든 것이 서툴고 어색하기만 했다. 가까이 앉아서 식사하는 일본인의 하는 것을 슬슬 곁눈질 해 보면서 하여 보지만, 왠지 습관이 되어 있지 않은 나로서는 미숙하기만 하다. 양식 차림(Menu)에는 빈틈이 없었다. 소금(Salt)과 고춧가루와 이쑤시게까지 나왔다. 술을 못하는 사람에게는 거피(Coffee)가 나왔으며, 비행기가 머물렀다가 떠날 때마다 스튜어디스들도 교대했다. 새로운 얼굴들이 나타났다. 공항이 바뀔 때마다 손님들도 내리고 새로 탔다. 장거리를 가는 손님에게는 식사가 두 번 씩이나 겹쳐 나오는 수도 있었다. 기내에서 나오는 식사는 모두가 한결같이 특식이었다.
타이페이(taipei)에서 함께 올랐던 한국인 기술자들은 홍콩(Hong Kong)공항 대합실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홍콩에서는 한국 사람을 많이 볼 수가 있었다. 그들과 함께 짐을 들고서 대합실 문을 나서는데 대합실에는 각 호텔에서 종업원들이 나와 있었다. “어느 호텔로 가느냐?”고 묻는 그들에게 “그랜드 호텔”(Grand Hotel)이라 대답했더니, 각 호텔별로 사람을 모았으며, 호텔에서 차가 나와 있었다. 여행을 할 때 짐이 많은 것은 큰 고역이다. 나는 그 고역을 홍콩에서 치루어야 했다. 다른 사람들은 짐을 직접 목적지까지 부칠 수 있었는데, 나는 경험이 없어서 그 큰 짐을 운반하느라 고생을 했다. 어떤 여행객은 방콕까지 간다면서 직접 부친 표까지 나에게 보여 주지 않는가.
호텔에서 나온 차를 타고 우리는 홍콩시내로 들어갔다. 홍콩시가지는 깨끗하지 못하였다. 함께 차를 타고 가는 동승자도 깨끗하지 못하다고 말한다. 다닥다닥 붙은 간판들과 낡은 건물과 비좁은 거리에 많은 차량과 사람들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차를 타고 가면서 우리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을 지나갔다. 노천극장에서 ‘써커스’를 구경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을 보며 동승자들은 함께 웃었다. 그 웃음은 무었을 말하는지 나도 모르지만 나도 따라 웃었다. ‘아직도 여기는 광대놀이를 즐기고 있구나!’ 그것이 우리에게는 어딘지 모르게 좀 지나간 놀이가 아닌가? 하는 뜻이었는지 모르겠다.
내 눈에 처음으로 들어오는 홍콩 거리는 완전히 서구화한 거리였다. 반 벌거숭이의 미인들이 활보하고 있었고, 8월이라 날씨는 굉장히 더웠다. 찌는 듯한 무더위였다.
호텔에서 여장을 풀었다. 숙박계에 이름을 기록하고 방 배당을 받았다. 나는 625호실이었다. 나는 한국에서 올 때 필름을 사가지고 와야 했는데 준비를 못해서, 홍콩 상점에 가서 36판 짜리 2개와 20판 짜리 8개합해서 10개를 샀는데 계산기에서 나온 계산서는 $15.20 불이었다. 방은 특실이었다. 방마다 화장실과 샤워시설이 되어 있었다. 나는 샤워를 했다. 방안에는 음료수까지 준비하여 냉장고안에 넣어두고 있었다. 나는 콜라를 마시고 땅콩을 먹고 보니 표지판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지 않은가?
at Hong Kong Grad Hotel Service Yourself. For your enjoymemt the refrigerator is stored with Bottled Cocktails, Beer, soft drink and Peanuts.
Please list what your have taken. Sign your name on the check or Pay cash to the room service. Thank you.
Bottle Cocktail..............................................................................................HK$ 7.00
Beer......................................................................................................................... 3.50
Coca cola, 7up ................................................................................................. 1.80
Tonik water, Soda water................................................................................ 1.50
Peanuts.................................................................................................................. 1.80
Plus 10% Service charge.
외국에 첫 발을 딛는 사람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그 나라 말과 글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 다음이 돈을 계산 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말을 못하면 벙어리 취급을 받을 것이며, 돈 계산을 못하면 물건을 살 수 없을 것이다. 홍콩 돈과 U.S$와는 몇 대 몇으로 환산되는지 나는 모르고 있었다.
나는 호텔 방에서 콜라와 땅콩을 먹었다. 콜라와 땅콩 값으로 1$을 지불하였더니 고맙다고 호텔 종업원은 말한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U.S1$=홍콩$5이다. 화폐는 십진법으로 계산되었다.
내가 머쓱하고 어색하게 대했던 외국인과의 대화가 점차 완화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은행에 들려서 돈을 바꾸기도 하였다. 인생은 죽을 때까지 배우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은 환경에 따라 적응을 하게 되어있다.
나는 외국에 나가서 호텔에서 잠을 자는 일도 처음이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방안 온도가 좀 더운 것 같아 냉방 스위치(Air-Conditioner)를 틀어 놓았다. 자다가 보니 너무 추웠다. 내가 든 방은 6층 높은 방이요, 홍콩은 낮 기온과 밤 기온의 차이가 심한 것을 느끼며, 가방에서 내의(內衣)를 꺼내 입고야 잠이 들었다. 미국인들이 우편엽서(Post-Card)를 들고 다니기에, ‘카운터’ (Counter)에서 나도 두장을 사서 한 장은 집 사람에게 보내고, 또 한 장은 내가 고국을 나올 때 도움을 주었던 총장 사모님에게 한 장을 보냈다. (이제는 고인이 되신 민 사모님이시다. 참으로 세월은 무상한 것이다.) 그림엽서에는 홍콩사람들이 바다에서 배를 젓고 있었으며, 또 하나의 그림은 홍콩 시가지이다. 우선 홍콩까지 무사히 도착한 것을 전하였다.
나는 홍콩에서 하룻밤을 지나고 다시 공항으로 나가서 이스라엘 가는 비행기를 타야 했다. 호텔에서는 비행기로 떠나는 손님을 호텔 차로 공항까지 태워다 주었다.
‘나는 한국을 대표하고 있다.’라는 책자를 보면, 외국에 나가면 10%의 ‘팁’(Tip: 사례금)을 지불하라고 되어 있다. 나는 ‘팁’주는 일에도 익숙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팁’주는 것을 달갑게도 생각하지 않았다. 홍콩 그랜드 호텔에서 이 ‘팁’ 문제에 걸리게 되었다. 호텔마다 심부름 하는 사람이 있어 손님의 가방을 들어다 준다. 내가 잠을 잤던 방이 6층이었으므로 6층에서 승강기(Elevator)로 내릴 때 종업원(Boy)은 내 가방을 들어서 승강기 안에 넣어주고 내리는 데에도 도와주었다. 호텔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은 상당히 많았다. 방에서 짐을 운반할 때 도와주는 종업원과 카운터에서 차(車)를 타는데 까지 짐을 운반하는 종업원이 따로 있었다. 계속해서 하는 말이지만 나는 가방이 너무 많았다. 혼자서 큰 가방을 포함한 4개의 가방을 옮기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짐을 옮길 때마다 종업원들은 “도와 드릴까요?(May I help you?)하면서 가까이 와서 가방을 옮기려 한다. 그들의 하는 일이란 단지 짐을 엘리베이터 안에 들여 놓고 엘리베이터가 서면 내어 가는 일이다. 그리고 승강기 밖에서는 또 다른 보이(Boy)가 받아서 잠깐 대합실에 두었다가 차(車)가 떠나기 전에 차에 싣는 일이였다.
차에 짐을 싣고서는 수고비(fare:운임)를 요구 하는 것이 아닌가?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수고비는 얼마면 되겠습니까?”(사실 이런 말은 묻는 게 아니고 알아서 해야 하는 건데 말이다.) 하는 말이, 물건을 살 때 묻는 말이 튀어 나왔다.(How mach is it?) 그래도 그 사람은 무슨 말인지 알아듣고 “당신에게 달렸다.”“좋으실 대로 하시지요” “처분만 기다리겠습니다.”라는 뜻의 “ Up to you! ”라고 하지 않는가.
호텔에서 공항(空港)으로 가는 차(車)안 에는 미국인 내외분과 아이가 타고 있었다. 한 가족인 모양이다. 그들의 가방도 일하는 종업원들이 실었는데 홍콩 달러인지, 아니면 미국 돈 25quarter인지 거리가 멀어서 확실히 볼 수는 없었지만 서너 개씩 집어준다.
나도 팁을 주어야 하는데, 나는 얼마를 주어야 할지 내 마음은 결정을 못하고 있었다. 아직도 내 머리 속에는 미화(美貨), 한화(韓貨), 홍콩 돈으로 재빠른 환산이 서 있지 않았다. 이러할 때가 나에게는 큰 고역이었다.
종업원은 짐을 싣고 나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고, 미국인들은 나를 보고 앉아서 웃고 있지 않은가? 나의 마음속에는 ‘나는 한국인을 대표하고 있다.’ 라는 생각과 더불어, 만약 내가 그냥 있다면, ‘팁을 줄줄 모르는 무례한 한국인’이라고 할 것이다. 나는 미국 돈 3dime을 종업원에게 건네주었더니, 종업원은 “고맙다. 고맙다.”(Thank!,Thank.)를 연발하면서 내 앞에서 사라져 갔다.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짐 나르는 팁은 완 다임(1dime: 50원)만 주어도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150원을 주었으니, 분명히 무례한 한국인이 아닌, 예의를 갖춘 한국인을 대표하고 있었다. 그래서 종업원이 감사하다는 말을 연발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진정한 면에서는 세상물정(世上物情)을 모르는 한국인 노릇을 한 것이다. 나는 한국에 살면서도 물정에 어두웠던 사람인데, 더욱이 외국에 나갔으니 그 나라 물정에는 더욱 캄캄할 뿐이었다.
공항에 우리를 내려놓고서, 호텔 차는 호텔로 돌아갔다. 공항 대합실에서 나는 맡겨 두었던 짐을 찾았더니, 홍콩 달러 3달러(1.500원)를 보관세로 받는다.
홍콩은 내가 실수투성이로 지냈던 곳으로 나의 외국 여행 경험 속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냉방(冷房)의 스위치를 너무 올려서 한 여름에 겨울 내의(內衣)를 꺼내 입고 잠을 잤던 일, 그래도 감기 걸리지 않은 것을 하나님께 감사한다. 양식(洋食)을 처음 하는 나의 위(stomack)가 그것을 잘 소화하지 못하여 큰 고역을 치루었던 일, 그래도 설사 하지 않은 것을 하나님께 감사한다. 호텔 식당에서 주문을 하는데 무었을 해야 할지 몰라서 맛도 모르는 음식을 주문(注文)해서 먹었던 일, 그래도 소화가 잘 되었으니 하나님께 감사 한다. 호텔 예약권(hotel reservation)에는 두 끼의 식사가 무료로 제공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나중에야 알아서 타먹지 못했던 일, 그래도 끼니를 굶지 않고 건강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지나놓고 보니 외국 나들이 초행인 나에게는 좋은 경험이었고 감사의 제목이 되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홍콩에서 어쩌다가 비행기를 놓쳐서 공항에서 꼬박 하룻밤을 지새운 이도 있다고 하니 거기에 비하면 나의 실수는 너무나도 적은 실수가 아닌가? 하고 자위(自慰)를 하여본다.
홍콩 호텔 식당에서 내가 느낀 것은 지금까지 내가 한국에서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즉 그것은 내가 누런 키 작은 황인종(黃人種)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한국에서 살 때는 그런 것을 전연 몰랐는데 외국에 나와 보니 그런 것을 느끼게 된다.
홍콩 공항에 들어서니 짐 군들이 모여 들었지만 한번 경험을 한 나로서는 그 팁 문제가 걸려서, 좀 힘들지만 내 손으로 그것을 들어 운반했다. 곳곳마다 그 나라 돈을 조금씩 바꿔야 한다. 공항마다 환전소(exchang money)가 있어서 내릴 때 바꿔주고 떠날 때 바꿔주는 서비스를 하고 있었다.
나는 홍콩에서 하루를 지나고 다시 불란서 비행기(Air France)로 홍콩을 떠나게 되었다. 한국을 떠날 때는 사랑하는 아내를 비롯하여, 귀여운 자녀들과 도움을 준 학장 사모님, 전송하러 나왔던 친구들, 기도하여 주었던 목사님들이 있었지만, 홍콩 비행장 대합실에서는 쓸쓸히 혼자서 떠나게 되었다. 가족이란 있어야 하고 친구란 필요한 것이며, 하나님의 사람들의 기도란 힘이 되며, 고국이란 내가 밟고 서야 할 터(基)가 되는 것이다.
다시 타랍을 밟고 비행기 안으로 들어왔다. 300명을 태운다는 대형(大型)여객기 안은 넓기도 하였다. 특등실, 일등실, 이등실을 커튼과 의자 카바 빛깔로 구분(區分)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여행을 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스튜어디스들도 음료수니 식사를 운반하느라 바쁘기만 하다. 어느 비행기 안에서도 마찬 가지지만 구급대착용법을 설명(說明)하는 일을 빠뜨리지 않았다. 몇 번이고 그 설명은 되풀이 되었다.
태국의 수도 방콕(Bang Kok.)에서는 한국에서 같이 가기로 했던 김형(金兄)을 만났다. 이역만리 외국에서 한국인을 만난다는 것 이상의 기쁨은 없으리라! 그와 나는 방콕 대합실에서 즐거운 대화를 주고받았다.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지나가던 한국인도 반기며 “한국에서 왔느냐?”고 인사를 한다. 방콕에만 가도 벌써 한국인은 만나기 힘 드는 일이다.
불란서 비행기 안에서는 영화도 상영 되었다. 봄베이를 지나고 또 카라치(Karachi)를 지나고 테헤란(Theran)를 지나서 목적지(目的地)를 향해서 비행기는 나르고 있었다.
이스라엘의 수도는 예루살렘(Jerusalem)이다. 예루살렘( )이라는 말은 두 단어가 하나로 된 합성어이다. ‘도시’(都市)와 ‘평화’라는 말이 합친 것이다. ‘이얼’( )은 도시(city)를 말하며, ‘샬라임’( )은 평화(peace)를 말한다. 그들은 그냥 ‘샬라임’( )이라고 부른다.
안내 책자(Guide Book)를 보면 서울(Seoul)에서 예루살렘까지 직행으로 15시간 10분이 소요 된다지만, 나는 하룻밤을 홍콩에서 자고 또 비행기 안에서 하룻밤을 지났다.
한국에서 이스라엘까지는 길고도 지루한 여행이었다. 장시간(長時間) 의자에 앉아 있어서 피곤하다. 여행은 사람을 피곤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애급에서 나올 때 40년의 광야 길을 걷지 않았는가?
사하라 사막(沙漠)위를 나르고 있는 비행기 밖의 경치는 풀 한 포기 없는 사막이었다. 보고 또 보아도, 넓고 넓은 사막이었다. 비행기 안에서 밖을 내려다보기만 하여도 열기(熱氣)가 온 몸을 엄습(掩襲) 하여 오는 것 같았다.
드디어 나를 태운 비행기는 이스라엘의 탤아비브 욥바 (Tel-Aviv Yafo: )항(港)을 눈앞에 놓고 있었다. 이스라엘 제일의 항구 도시 탤아비브 욥바( )는 ‘언덕’( )과 ‘봄’( : spring)과 그리고 ‘미’(美)( : beautiful)라는 말이 합친 것이다.
우리는 착륙 준비를 하고 있었다. 비행기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욥바 항에는 황금 빛깔의 곡식이 밭에 서 있었다. 그것이 ‘밀’ 인지 ‘보리’ 인지 멀리서는 분간 할 수 없었다. 나중에 이스라엘에 살면서 알게 된 것은 ‘보리’가 아니라 ‘밀’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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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礎稿), 1978.6.11-9.1. 아가페지(紙)에 게재(揭載)(6호-8호)
개고(改稿), 2001.6.17.
※이 글은 초고를 쓰고 나서 22년이란 세월이 지나서 개고(改稿)를 하고 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강산이 변해도 두 번씩이나 변한 것이다.
내가 이스라엘에서 한국으로 돌아올 때, 김포 비행장에 마중 나왔던 우리의 자녀들이 그 때 당시 10대들이었는데 벌써 30대가 되었으며, 이제는 모두 다 결혼해서 10대의 자녀들을 기르고 있다. 우리의 후손이 3대째 이어 가고 있다.
초고를 쓸 당시에는 컴퓨터(computer)가 없었지만 지금은 컴퓨터를 사용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나도 손수 컴퓨터를 사용해서 개고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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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은 여기 홈페이지로 옮겨오는 과정에서 히브리어가 변환되지지 않음으로 히브리어 자리에 '()'로만 표기하여둠. -홈주인 함동진
* 날짜 : 2006년 3월 11일 토요일, 오후 20시 30분 33초 +0900
보낸이 : "박연웅"
받는이 : "함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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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연웅 목사는
서울기독대학교(서울성서신학교 -> 대한기독교신학교)졸업(그리스도의교회)
이스라엘 유학 히브리대학교(구약전공)졸업
서울신학대학교졸업(성결교회)
현재 강원도 원주시에서 목회활동.
*박연웅 목사는 함동진과 서울성서신학교(현서울기독대학교)에서 함께 공부한 바 있습니다.
성지 순례기(聖地 巡禮記)
-‘꿈’만 같았던 성지 순례
박연웅 목사
( # 옮겨온 홈 주인의 註 : 아래의 글을 여기 홈페이지로 옮겨오는 과정에서 히브리어가 변환되지 않음으로 히브리어 자리에 '( )'로만 표기하여둠. -http://www.poet.or.kr/hdj/ 홈 주인 )
성지(Holy land)에 다녀 온 사람 들이 많이 있다. 그들의 순례기(巡禮記)를 읽을 때 마다 내가 보고 느끼지 못한 것까지 포함하고 있다. 또 앞으로 성지에 갈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또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의견(意見)이 있으리라!
그러므로 나는 성지 순례에서 보고 느낀 점도 각 사람(各人)에 따라 그 차이점(差異点)이 있으리라 생각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意味)에서 필자(筆者)도 일년 반(半)이 넘도록 살았던 성지에서 보고 느꼈던 점을 내 나름대로 적어 보려고 한다.
사람은 누구 에게나 꿈이 있다. ‘꿈’이라는 말이 영어로는 비전(vision)이 다. (사전(辭典)에는 이 ‘비전’이라는 뜻이 마음속에 그리는 ‘환상’(幻像), ‘환영’(幻影)으로 나와 있다.) 꿈(夢)은 희망(希望)이다. 꿈이 있는 사람은 희망이 있고, 꿈이 없는 사람은 희망이 없다.
크리스천(christian)들은 믿음의 조상을 아브람()이라고 하는데, 구약성경(舊約聖經)을 읽어보면 아브람(Abram)은 나중에 아브라함(Abraham)이라는 이름을 하나님으로부터 받는다.(창 17:5)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비’( a father of many nations)라는 뜻이다. 아브라함에게는 사래(Sarai)라는 아내가 있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브라함의의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 )”로 개명(改名)하라고 하셨다.
사라(Sarah)는 장차 “열국의 어미”(a mother of nations)가 된다는 것이다.
(창 17:15-16) 아브라함이 백세(百歲)되고 그의 부인 사라가 구십세(九十歲)가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웃음’(laugh)이라는 이름의 뜻을 가진 아들 이삭 ( )을 주신다.(창 17:19)
이삭(Issac)이 60세가 되었을 때에 쌍둥이 두 아들이 태어나는데 그 둘째가 야곱(Jaccb)이다. 나중 나온 아우(弟)가 먼저 나온 형(兄)의 발꿈치를 잡고 나왔다. 그래서 야곱( )이라는 이름의 뜻은 ‘발꿈치를 잡았다.’(follow at the heel)는 뜻이다.(창 25:26) 쌍둥이 사이에는 불목(不睦)이 있었다. 형 에서는 동생 야곱을 죽이려고 까지 하였다.
야곱은 형의 살인계획(殺人計劃)을 피(避)하여 하란에 있는 외삼촌(外三寸) 라반의 집에 가서 20년간 머슴살이를 하다가 돌아온다. 야곱은 얍복 강변에서 천사(天使)와 씨름하여 또 하나의 이름을 얻는데, 그 이름이 이스라엘(Israel)이다. 이스라엘( )이라는 이름은 야곱의 두 번째 이름이다.
(second name of Jaccb)(창 32:29).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의 뜻이 무엇인가? 이 말은 ‘싸라’( )와 ‘엘로힘’ ( )의 합성어(合成語)로서 ‘엘’( )은 ‘하나님’(God)이라고 하는 ‘엘로힘’( )의 약자(略字)이며, 그리고 ‘싸라’라는 말은 현대(現代) 히브리어 사전( The New Bantam-Megiddo Hebrew and English Dictionary. 1975,4.)을 보면 ‘씨름하다’(wrestle) 혹은 ‘투쟁하다’(struggle)는 뜻으로 나와 있다.
그리고 세 사람(Brown. Driver. Briggs)에 의해서 저술된 사전( A Hebrew and English Lexicon of the Old Testament.)에는 ‘싸라’라는 말이 ‘참다’ ‘견디다’ ‘버티다’( persevere with) 라는 뜻으로 말하고 있다.
호세아서를 읽어보면 “야곱은 태(胎)에서 그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고, 또 장년에 하나님과 힘을 겨루되, 천사와 힘을 겨루어 이기”였다고 하였다. ( he persevered with God.)(호 12:3-4)
성경을 보면 아브라함이 ‘히브리 사람’( )으로 나오고 있다.(창 14:13) 선민(選民)의 혈통(血統)을 보면 ‘셈→ 에벨 → 아브라함’으로 이어지는데, (창 11:10-32) 에벨( )이라는 이름의 뜻은 ‘건너다’(pass over)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히브리라는 호칭(呼稱)의 의미는 강(江)을 ‘건너왔다’는 뜻의 월강자(越江者)라는 뜻이다. 유태인(猶太人)들은 아브라함을 그들의 민족조상(民族祖上)으로 생각한다.
아브라함은 이락크(Iraq)의 옛 이름인 갈대아 우르에서 태어나,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의 티그리스(Tigris)와 유우프라테스(Euphrates)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신앙의 이주(移住)를 하여왔다.
유대인(Judea)인의 명칭이 과거에는 ‘히브리인’이라고 불리어졌지만 현대에는 ‘이스라엘 인’으로 바뀌어졌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구약성경을 3부(部)로 나눈다. 즉 율법서(律法書), 예언서(豫言書), 성문서(聖文書)이다.
히브리 음으로는 ‘토라’, ‘느비임’, ‘크투빔’이다. 토라( )는 율법서(the Law)요, 느비임( )은 예언서(the Prophets)요, 크투빔( )은 성문서(the Hagiographa)이다.
그리고 머리글자를 따서 구약성경을 ‘타낰흐’( )라고 부른다. 율법서 중의 첫째 권이 창세기(創世記)이다. 창세기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브레쉬트’( )라고 읽는데, 그 뜻은 “태초(太初)에”(in the beginning)라는 뜻이다.(창 1:1)
창세기를 읽어보면 요셉을 “꿈꾸는 자”라고 부르고 있다.(창 37:19)
요셉은 해와 달과 열 한 별에게 절 받는 꿈(창 37;9)을 꾸고서, 그대로 믿어, 이루(成就)었다. 여기에 나와 있는 히브리어는 ㅋ할롬( )이라는 말이며, 영어로는 드림(dream)으로 번역되고 있다. 요셉은 족장(族長)가운데서 가장 성결(聖潔)하게 살았다. 그러나 요셉의 형들은 그렇게 살지를 못했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은(銀) 스무양(20)을 받고 애굽 상인(商人)에게 매매하는 구약판 인신매매범(人身賣買犯)노릇을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 하셨다. 요셉이라는 이름의 뜻은 ‘더하다’( ; Add)라는 뜻이다. 그 이름이 의미하는 것처럼 요셉은 형(兄)들 보다 하나님으로부터 더 복(福)을 받았다. 애급의 총리대신이 되어 형들이 요셉에게 무릎을 꿇게 되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꿈으로 대답하시는 것이다.(삼상 28:6)
느부갓네살 왕은 꿈( ; dream)을 꾸고서 마음이 번민(煩悶)하여 잠을 이루지 못 하였다. 이러한 느부갓네살 왕의 꿈을 풀어준 다니엘은 바벨론 도(道)를 다스리게 되었고, 그의 벗(親友)들도 혜택(惠澤)을 받게 된다.(단 2 : 1, 48, 49)
꿈은 모래사막(沙漠) 같은 광야(曠野)길에 시원한 오아시스 같은 희망(希望)이다. 꿈은 절망하는 인생길에 소망(所望)을 주는 것이다. 성문서(聖文書 : the Sacred writings)가운데 시서(詩書)중의 한권인 잠언(箴言 : : the Pruverbs)은 지혜서이다.
잠언 29;18 절을 히브리어 성경으로 읽어 보면,
( )(베 애인 ㅋ하죤 이파라- 암 ) 이라 하였다. 즉「꿈이 없는 백성은 긴장(緊張)이 풀어진다.」(나의 私譯).
내가 신학을 공부할 때 어떤 교수님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독일의 어떤 신학생이 말하기를 “내가 원어를 배울 수만 있다면, 배우는 과정에서 내 육체에 손가락이 하나 잘리어져 나가는 아픔과 불편함이 있더라도, 원어가 내 신앙생활에 영적으로 도움이 된다면 그 아픔과 불편함을 감수하고라도 원어 공부를 하겠다.”는 게르만 민족의 강한 종교성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무엇보다 원어 성경을 배우게 된 것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내가 시골에서 목회(牧會)를 할 때 우리집 어항에 넣으려고 어떤 집사님으로부터 잉어를 너 댓 마리 선물 받은 적이 있다. 그런데 ‘잉어’ 외에 ‘메기’가 두 마리 있었다. 나는 ‘잉어’와 함께 ‘메기’를 가져온 사유(事由)를 물었더니 ‘고기는 다른 종류와 함께 있어야 긴장을 하므로 오래 산다’는 것이다.
잠언 29;18 절의 한글 번역은 묵시(黙示)가 없으면 백성(百姓)이 방자(放恣)히 행(行)하거니와라고 했지만, 영어 번역은
Where there is no vision, the people perish.라 하였다.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성경이 묵시로 번역한 히브리어가 ㅋ하죤( )인데 영어번역에는 비젼(vision)으로 되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신약성경(新約聖經)을 히브리어로 ‘베리트 ㅋ하다샤’라고 읽는다.
‘베리트’( )는 언약(言約 :covenant )이라는 뜻이고 ‘ㅋ하다샤’( )는 ‘새로운’(new)이라는 뜻이다 신약성경을 읽어보면 유대인 베드로는 이방인을 ‘속(俗)되다’고 하여 교제(交際)를 멀리하며 살아왔다. 그러던 베드로가 환상(幻像)을 보고 나서 속되다고 생각했던 이방인(異邦人)도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깨닫게 된다.(행 10:17-28)
베드로의 설교(說敎)를 읽어 보면 선지자(先知者) 요엘의 말씀을 인용하여너희 젊은이들은 환상( ορασεις; vision )을 보고 너희 늙은이들은 꿈(ενυπνια ; dream)을 꾸리라.(행 2;17)고 하였다.
사람이 반드시 하고 싶었던 일을 하지 못하고, 꼭 만나고 싶었던 사람을 만나 보지 못했을 때, 꿈에서라도 한 번하여 보고, 또 환상 속에서라도 만나보고 싶은 것이 사람의 욕망(慾望)이리라. 이런 의미에서 사람의 욕망은 꿈으로 표현되기도 하는 것이다.
진실한 그리스도인들 에게는 평생에 한번 가 보았으면 하는 곳이 바로 예수( : Jesus)님이 사셨던 성지(聖地)일 것이다.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무엇인가? 마태복음 1:21절을 헬라 성경으로 보면
τεξεται- δε υιον, και καλεσεις το- ουομα- αυτου ιησουν αυτος- γαρ
σωσει τον λαον αυτου απο των- αμαρτιων- αυτων
한글 번역 성경을 읽어 보면,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自己) 백성(百姓)을 저희 죄(罪에)서 구원(救援)할 자(者)이심이라 하니라.”
히브리 번역 성경을 보면
( )
21 ( )
여기에서 ‘예수’( )라는 이름의 뜻은 ‘구원’(salvation)이란 뜻이다.
영어 성경도 분명하게 번역하고 있다.
She will give birth to a son and you are to call Him Jesus : for He will save his people from their sins. Mattew 1;21
나는 어릴 때부터 꾸는 꿈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하늘을 한번 나는 꿈이었다. 더욱이 성지에 간다는 것은 나의 가장 큰 꿈이었다. 내가 이스라엘에 갔을 때나, 한국에 돌아온 후에도, 그 곳은 전쟁(戰爭)의 위험(危險) 속에 있었다. 그래서 그 때 이스라엘의 유학(留學)을 목적으로 집을 떠날 때, 내 마음 한 편으로 전쟁을 생각하니 근심이 되었다.
히브리 미족의 위대한 지도자(the great Hebrew leader)요, 선지자(prophet )요, 입법자( 立法者 ; lawgiver )는 모세라는 사람이다.
모세( )라는 이름의 뜻은 ‘물에서 건져 내었다.’(draw out of the water)라는 뜻이다.
애급의 시나이 반도(the Sinai Peninsula) 남쪽에는 애급 명으로 ‘제벨 무사’( )라는 산(山)이 있다. 히브리 음으로 ‘할 씨나이’( )라고 부르는 이 산은 높이 2285m에 해당하는 산이다. <한글 번역 성경에서는 시내산( : mount Sinai)으로 나오고 있다.(출 19:23)>
이 산에서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十誡命)을 받았다
나는 십계라는 영화를 본적이 있다. 거기에는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십계명을 받기 전에 모세가 받을 두 개의 석판에 글이 새겨지는 장면이 나온다. 그것은 사람의 손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불이 나타나서 돌을 태워서 글을 쓰는 것이다. 나에게는 그 장면이 큰 감동적이었다.
그 십계명( : 10....... : comendments)은 출애굽기(出애굽記) 20장과 신명기(申命記) 5장에 기록되어 있다.
“너는 나 외(外)에는 다른 신(神)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 )
You shall have no other gods before my face.
“너를 위(爲)하여 새긴 우상(偶像)을 만들지 말라.”
( )
You shall make for yourself no idol in the likeness of anything.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妄靈)되이 일컫지 말라.”
( )
Do not use the name of the Lord your God profanely.
“안식일(安息日)을 기억(記憶)하여 거룩히 지키라.”
( )
Remember the Sabbath Day to keep it holy.
“네 부모(父母)를 공경(恭敬)하라.”
( )
Honour your father and your mother.
“살인(殺人)하지 말지니라.”
( )
You shall not murder.
“간음(姦淫)하지 말지니라.”
( )
You shall commit no adultery
“도적(盜賊)질하지 말지니라.”
( )
You shall not steal.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證據)하지 말지니라.”
( )
You shall not witness falsely aganist your neighbour.
“네 이웃의 집을 탐(貪내)지 말지니라.”
( )
You shall not covet your neighbour's household.
이 십계명 외에도 구약성경을 기록한 글인 히브리어를 공부하러 이스라엘에 간다고 생각하니 하나님께 한없이 감사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전쟁터를 생각하니 근심도 되었다. 그래서 떠나기 전 내 마음은 기쁨과 근심이 교차되었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용기(勇氣)와 결단(決斷)이 요구되었다. 그리고 신앙에는 모험(冒險)이 필요하다.
신앙은 어떤 의미에서 생명을 걸고 행하는 모험일 것이다.
성경을 읽어보면 기생 라합은 정탐군들에게 “우리 생명을 죽는데서 건져내기로 여호와께 맹세하고 내게 진실한 표를 내라.”고 한다. 그 때 정탐군들도 똑같은 요구를 한다. “이 일을 누설치 아니 하면 우리의 생명으로 너희를 대신(代身)이라도 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이 땅을 우리에게 주실 때에는 인자하고 진실하게 너희를 대우하리라.”(수 2:13-14)
또한 믿음은 재산을 걸고 행하는 ‘선의의 투자’라 할 것이다. 기원전 약 1446년경 모세가 장정만 60만으로 추산되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라암셋에서 출발하여 가나안 복지를 향해 떠날 때, 그것은 분명 전 이스라엘 백성의 생명을 건 모험이었을 것이다.(출 12:37)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본토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명령한다.(창 12:1) 이러한 하나님이 명령 앞에 아브라함은 생명을 건 모험과 재산을 건 투자가 있었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기원전 약 2166년경 갈대아 우르에서 출생하여 바벨을 거치고 하란까지 신앙이민을 와서, 하란에서 부친 데라는 205세를 향수하고 세상을 떠난다.(창 11:32)
죽고 사는 것을 하나님께 내어 맡기는 모험이 없고, 또 전 재산을 주(主)께 건 투자가 없을 때, 신앙의 성숙은 없을 것이다.
빌립보서를 읽어 보면, 바울은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한다고 하였다.(빌 1:20) 바울에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고 하였다.(빌 1:21)
예수께서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나는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나의 생명을 맡기고 전쟁이 종식되지 않은 이스라엘 유학의 길을 떠나기로 결단을 내렸다.
약 일억 오천만의 아랍인의 총 뿌리와 포구가 겨냥하고 있는 전쟁의 화염 속에 쌓여있는 팔레스타인 땅을 밟은 것은 1975년 8월 19일이었다.
비행기 안에서 좌석을 찾고 있을 때, 남자 승무원(乘務員)이 나를 보고 하는 말이「모닝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카’는 카드(card)로 들려 왔으나, 모닝(?)이란 이해가 잘되지 않는다. 모닝(morning)이란 ‘아침이란 뜻이기 때문이다. 이해가 잘되지 않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표를 내어 주었더니 좌석을 잡아준다. 나중에 표를 자세히 보니 기내임검카드( Boarding Card)가 아닌가? 이 발음이 이렇게 들려온 것이다. <참조 or Boarding Pass(탑승권)〉
한국에서 중학 시절부터 대학까지 영어를 배우고 대학원 과정을 거칠 때도 배웠으며, 그도 부족하여 학원(Korea Herald)에 다녀가며 배운 영어였건만 나의 청취력은 어둡기만 하다. 사실 내가 또 기내임검카드 라는 말을 영어로 듣기도 비행기 안에서 처음이었으므로 당연히 그럴 만도 하였다. 내가 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나의 실수(失手)를 적느냐? 하면 이 글을 읽는 사람은 나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실수가 있고, 또 사람이기에 실수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
비행기 속에서 창밖을 내다보니, 구름 위에 내가 떠 있는 것이다. 뭉게뭉게 솜처럼 펼쳐있는 구름은 내 평생에 처음 보는 정말 아름다운 장관(壯觀)이었다.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찾았으나 필림이 준비 되어 있지 않았다. 기내승무원(機內乘務員)이무었을 마시겠느냐?(What will you have) 하고 묻길래 언뜻 대답을 못하고 있었더니, 그가 “ Beer ?” 하고 말 하길래 고개를 끄덕였더니 맥주를 한 컵을 건네주고 지나갔다.
눈은 봄으로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다.
비행기를 타고 가는 동안 기내안내방송(機內案內放送)이 나왔다. 안내방송을 ‘어나운스먼트’(Announcement)라 한다.(사전에는 이 ‘어나운스먼트’가 ‘알림’으로 나와 있다). 방송용어는 3개국어(영어, 일어, 한국어)로 나왔다. 내가 타고 갔던 비행기는 영국 승무원이 일하는 씨.액스(C.X)기 였다. 그러나 그 ‘어나운스먼트’도 서울을 지나서는 한국어는 나오지 않고 영어, 일어, 중국어로 바뀌었다. 한 두어 시간이 지났을까? 모두 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기내안내방송은 착륙을 알리고 있었다. 안내방송은 분명 있었는데, 처음 듣는 내 귀에는 정거하는 곳이 정확하게 들어오지 않아 놓치고 말았다. 내가 한국 여행사에서 설명 듣기로는 처음 착륙지가 홍콩으로 들었으나, 두어 번 말하여 주는 ‘어나운스먼트’도 홍콩이라는 단어가 내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기내(機內)에 있는 모든 승객들은 일어서서 내리느라고 웅성대기 시작했고, 어떤 손님은 큰 짐을 둔 체, 손가방만 들고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나가는 손님을 보아서는 여기가 정착역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어찌되었던 방송을 놓쳤으니 나는 확신이 없었다.
드디어 내 마음은 당황하기 시작했고, 기내(機內) 복도는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로 복잡하여 졌다. 여자 승무원(Stewardess)은 색동 치마저고리를 입고 있었고 또 조금 전 한국어로 나온 어나운스먼트도 들었기에 나는 사람을 비집으면서 그녀에게 가까이 걸어가서 한국어로여기가 어디냐?고 물었으나 대답이 없다.
한국어는 한국에서만 사용되는 말(言語)이지 한국이라는 땅을 한 발자국 만 떠나서도 사용할 수 없었다. 한국말이 외국에서는 무용지물(無用之物)이 되는 것이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영어를 알면서도 왜 영어로(Where I am here?)묻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 당시에는 그것이 몸에 배어 있지를 않았었다. 만약에 색동 치마저고리를 입었던 그 때 그 여승무원이 한국말로 기내 안내광고를 하였다면 기록된 한 글만 읽었으리라!
비행기 안에 있던 모든 손님은 복도로 내 옆을 스치며 내리고 있었다. 내 마음은 더욱 더 당황하기 시작 했다. 여기가 어디냐? 고 물어야 했지만, 당황하면 할수록 말은 내 입에서 나오지 않는 것이다. 나는 너무나도 당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지(四肢)가 멀쩡해서 몸End이는 외국까지 나왔지만 내가 해야 할 말(言語)은 혀가 움직이지 않아 입안에서 맴돌면서 밖에 출입(出入)을 못하고 있었다. 참으로 귀(耳)가 막히는 일이었다. 지금 와서 내가 그 때 일을 생각해도 입이 있어도 말 못하는 ‘벙어리 아닌 벙어리’가 되어 있었다.
내가 평생에 해외 출입이 처음이듯이 혀도 바깥출입을 못하고 있었다.
침착(沈着)을 되찾고 냉정(冷靜)을 되찾아야 당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데, 나는 그러지를 못하였다. 더욱이 나에게는 짐이 많았다. 트렁크가 하나요 여행가방이 하나인데 다가, 거기다가, 카세트 라디오(cassette radio)를 하나 들고, 그 외에 가서 보거나, 가면서 읽을 책이나, 세면도구를 든 가방을 겹쳐 들었으니, 짐을 옮기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큰 트렁크는 화물(Baggage)로 실었지만, 카셋트 라디오와 가방들은 내 손으로 직접 운반해야 했다.
나중에 이스라엘에 가서 보니 다른 사람들은 간단하게 그저 손가방 하나만 달랑 들고 들어왔는데 말이다. 그러므로 모든 일에는 경험이 있어야한다. 나는 여행경험이 없어서 그 고생을 한 것이다. 여행하는 데도 경험이 제일이다.
그러나 믿는 자를 하나님께서 인도 하시고 계셨다. 나는 할 바를 알지 못하고 여객 손님을 따라 기내(機內)에서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통로(通路)는 꽤 길었다. 그 통로 속에서 나는 하나님의 손길을 만났다. 어리둥절해 걷고 있는 나를 보고, 뒤에서 걷고 있던 어떤 한국 사람이 이렇게 나에게 귀띰을 하여 주는 것이 아닌가!여기서 표(待機票)를 받아 기다렸다가 이 비행기를 놓치지 말고 타야한다.는 것이다. 이는 분명 하나님께서 그분의 마음을 움직여 주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었다. 그때 나는 하나님께 이렇게 감사하고 있었다. 그것은 시편 말씀이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 서로다.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失足)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 하시리로다.」(시121:1-3)
He will not allow your foot to slip;
( )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그 곳은 대북(臺北)이 었다. 나는 여객 대합실 입구에서 통과 여객증(Transit Passenger)을 받아 들고 등기대(登機臺)에서 기다려야만 했다. 등기대에는 거의가 장사나, 관광차 여행하는 일본 사람들이 동양인을 대다수(大多數) 차지하고 있었으며 그 외에 태국인이 아니면 중국인이었다. 한국인은 별로 찾아 볼 수가 없었다. 한국인의 세계진출이 아쉬웠다. 그런데 등기대에서 만났던 반가운 일은 인도네시아어로 파견(派遣)가는 한국인 기술자(技術者)들이었다. 그들 일행은 세 사람이었다. 그 중 한사람이 내 옆에 와서 “서울에서 오셨지요?라고 묻는다. “어떻게 나를 알아보느냐?”고 물었더니, 내가 서울에서 짐을 부칠 때 나를 보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다 영어에 서툴고 그 중 한 사람이 리더(Leader)노릇을 하고 있었다. 나머지 두 사람은 한 사람과 같이 행동을 취하고 있었다. 고국에 처자식(妻 子息)을 두고 온 몸들이라 얼굴 표정들이 밝을 수가 없었다.
대북의 등기대, 등기대는 나의 마음을 서늘하게 했던 곳이다.
나의 마음을 서늘하게 했던 등기대에서의 한(限) 반 시간가량 기다렸다가 기내로 다시 들어오니, 비행기 안은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었다. 스튜어디스들은 웃는 얼굴로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타이페이(Taipei)에서 우리는 세 사람이 동행이 되었으나, 좌석 번호에 앉아서 가야하기 때문에, 파견되는 한국 기술자들은 그들대로 앉았으며, 나는 중국인과 함께 앉게 되었다. 인사를 주고받은 후 우리는 대화를 하게 되었다. 그도 한국어를 모르고 나도 중국어를 모르므로 우리는 영어로 말하였다. 영어도 각자가 모국어가 아닌 타국어이므로 영어에 서툰 사람들끼리는 오히려 말하기가 좋았다. 그도 영어가 서툴고, 나도 영어가 서툴기는 매 일반이었다.
우리들이 사용하는 영어는 그야말로 ‘어글리 잉글리쉬’였다. 말이 서툴다 보니 글로 쓰게 되었다.
그의 이름은 축인(Cheuk Yin)이라고 하였다. 중국인과 나는 서툰 영어로 한 시간이 넘도록 이런 말 저런 말을 주고받았다. 대화 가운데서 재미있었던 일은 맞는지 안 맞는지 알 수 없지만, 내 이름이 중국 발음으로 Buk Kwan Hom 이라는 것이다. ( 22년이 지나서 개고(改稿)를 하여 보니 기록하는 일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다. 나는 비행기 안에서 만난 중국인이 기억에서 영 영 사라지고 없어졌는데 그 때 기록했던 글을 읽으니 기억이 되 살아나고 있다.)
나는 기내(機內)에서 일본인도 만났다. 얼마 후에 내 가까이에 한국인처럼 생긴 사람이 한 분 앉아 있었다. 나는 그가 한국사람 인줄 알고 반가워서 한국말로 “한국인입니까? ” 하고 물었더니 그는 한국말을 못 알아듣지 않은가, 다시 영어로 물었더니(Are you Korean?)하였더니, 그는“나는 일본인입니다.”
(I am Japaness)라고 영어로 대답한다. 어쩌면 이렇게도 일본인이 한국인처럼 똑 같이 생겼을까! 나는 감탄을 했다. 나는 일본인을 비행기 안에서 처음으로 만났다. “어디까지 가십니까?”(Where are you going?)하고 나도 영어로 물었더니 홍콩까지 간다고 서슴없이 대답을 한다. 그와는 더 대화가 없었다. 일본인이라 하니 물어보고 싶지도 않고, 알아보고 싶은 것도 없었다. 나는 아직까지 일본인에 대해서는 마음 문이 닫혀있었다. 그는 영어신문을 보며 나에게 호의를 베푸는 태도로 나왔으나, 나는 관심 밖의 일이었다. 그는 여행에 익숙하여 있었고 나는 미숙하여 있었다.
얼마 후에 시츄어디스가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라고 한다. 기내에서 마시는 것도 처음 있는 일이라 엉겁결에 생각지도 않았던 맥주(Beer)를 청해 그것을 마시기도 하였다. 기내에서는 먼저 땅콩(Peanuts)과 휴지가 나온다. 그러고 나서 음료수와 술이 나왔으며 이어서 양식이 나왔는데 별로 먹어 본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모든 것이 서툴고 어색하기만 했다. 가까이 앉아서 식사하는 일본인의 하는 것을 슬슬 곁눈질 해 보면서 하여 보지만, 왠지 습관이 되어 있지 않은 나로서는 미숙하기만 하다. 양식 차림(Menu)에는 빈틈이 없었다. 소금(Salt)과 고춧가루와 이쑤시게까지 나왔다. 술을 못하는 사람에게는 거피(Coffee)가 나왔으며, 비행기가 머물렀다가 떠날 때마다 스튜어디스들도 교대했다. 새로운 얼굴들이 나타났다. 공항이 바뀔 때마다 손님들도 내리고 새로 탔다. 장거리를 가는 손님에게는 식사가 두 번 씩이나 겹쳐 나오는 수도 있었다. 기내에서 나오는 식사는 모두가 한결같이 특식이었다.
타이페이(taipei)에서 함께 올랐던 한국인 기술자들은 홍콩(Hong Kong)공항 대합실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홍콩에서는 한국 사람을 많이 볼 수가 있었다. 그들과 함께 짐을 들고서 대합실 문을 나서는데 대합실에는 각 호텔에서 종업원들이 나와 있었다. “어느 호텔로 가느냐?”고 묻는 그들에게 “그랜드 호텔”(Grand Hotel)이라 대답했더니, 각 호텔별로 사람을 모았으며, 호텔에서 차가 나와 있었다. 여행을 할 때 짐이 많은 것은 큰 고역이다. 나는 그 고역을 홍콩에서 치루어야 했다. 다른 사람들은 짐을 직접 목적지까지 부칠 수 있었는데, 나는 경험이 없어서 그 큰 짐을 운반하느라 고생을 했다. 어떤 여행객은 방콕까지 간다면서 직접 부친 표까지 나에게 보여 주지 않는가.
호텔에서 나온 차를 타고 우리는 홍콩시내로 들어갔다. 홍콩시가지는 깨끗하지 못하였다. 함께 차를 타고 가는 동승자도 깨끗하지 못하다고 말한다. 다닥다닥 붙은 간판들과 낡은 건물과 비좁은 거리에 많은 차량과 사람들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차를 타고 가면서 우리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을 지나갔다. 노천극장에서 ‘써커스’를 구경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을 보며 동승자들은 함께 웃었다. 그 웃음은 무었을 말하는지 나도 모르지만 나도 따라 웃었다. ‘아직도 여기는 광대놀이를 즐기고 있구나!’ 그것이 우리에게는 어딘지 모르게 좀 지나간 놀이가 아닌가? 하는 뜻이었는지 모르겠다.
내 눈에 처음으로 들어오는 홍콩 거리는 완전히 서구화한 거리였다. 반 벌거숭이의 미인들이 활보하고 있었고, 8월이라 날씨는 굉장히 더웠다. 찌는 듯한 무더위였다.
호텔에서 여장을 풀었다. 숙박계에 이름을 기록하고 방 배당을 받았다. 나는 625호실이었다. 나는 한국에서 올 때 필름을 사가지고 와야 했는데 준비를 못해서, 홍콩 상점에 가서 36판 짜리 2개와 20판 짜리 8개합해서 10개를 샀는데 계산기에서 나온 계산서는 $15.20 불이었다. 방은 특실이었다. 방마다 화장실과 샤워시설이 되어 있었다. 나는 샤워를 했다. 방안에는 음료수까지 준비하여 냉장고안에 넣어두고 있었다. 나는 콜라를 마시고 땅콩을 먹고 보니 표지판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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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 첫 발을 딛는 사람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그 나라 말과 글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 다음이 돈을 계산 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말을 못하면 벙어리 취급을 받을 것이며, 돈 계산을 못하면 물건을 살 수 없을 것이다. 홍콩 돈과 U.S$와는 몇 대 몇으로 환산되는지 나는 모르고 있었다.
나는 호텔 방에서 콜라와 땅콩을 먹었다. 콜라와 땅콩 값으로 1$을 지불하였더니 고맙다고 호텔 종업원은 말한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U.S1$=홍콩$5이다. 화폐는 십진법으로 계산되었다.
내가 머쓱하고 어색하게 대했던 외국인과의 대화가 점차 완화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은행에 들려서 돈을 바꾸기도 하였다. 인생은 죽을 때까지 배우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은 환경에 따라 적응을 하게 되어있다.
나는 외국에 나가서 호텔에서 잠을 자는 일도 처음이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방안 온도가 좀 더운 것 같아 냉방 스위치(Air-Conditioner)를 틀어 놓았다. 자다가 보니 너무 추웠다. 내가 든 방은 6층 높은 방이요, 홍콩은 낮 기온과 밤 기온의 차이가 심한 것을 느끼며, 가방에서 내의(內衣)를 꺼내 입고야 잠이 들었다. 미국인들이 우편엽서(Post-Card)를 들고 다니기에, ‘카운터’ (Counter)에서 나도 두장을 사서 한 장은 집 사람에게 보내고, 또 한 장은 내가 고국을 나올 때 도움을 주었던 총장 사모님에게 한 장을 보냈다. (이제는 고인이 되신 민 사모님이시다. 참으로 세월은 무상한 것이다.) 그림엽서에는 홍콩사람들이 바다에서 배를 젓고 있었으며, 또 하나의 그림은 홍콩 시가지이다. 우선 홍콩까지 무사히 도착한 것을 전하였다.
나는 홍콩에서 하룻밤을 지나고 다시 공항으로 나가서 이스라엘 가는 비행기를 타야 했다. 호텔에서는 비행기로 떠나는 손님을 호텔 차로 공항까지 태워다 주었다.
‘나는 한국을 대표하고 있다.’라는 책자를 보면, 외국에 나가면 10%의 ‘팁’(Tip: 사례금)을 지불하라고 되어 있다. 나는 ‘팁’주는 일에도 익숙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팁’주는 것을 달갑게도 생각하지 않았다. 홍콩 그랜드 호텔에서 이 ‘팁’ 문제에 걸리게 되었다. 호텔마다 심부름 하는 사람이 있어 손님의 가방을 들어다 준다. 내가 잠을 잤던 방이 6층이었으므로 6층에서 승강기(Elevator)로 내릴 때 종업원(Boy)은 내 가방을 들어서 승강기 안에 넣어주고 내리는 데에도 도와주었다. 호텔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은 상당히 많았다. 방에서 짐을 운반할 때 도와주는 종업원과 카운터에서 차(車)를 타는데 까지 짐을 운반하는 종업원이 따로 있었다. 계속해서 하는 말이지만 나는 가방이 너무 많았다. 혼자서 큰 가방을 포함한 4개의 가방을 옮기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짐을 옮길 때마다 종업원들은 “도와 드릴까요?(May I help you?)하면서 가까이 와서 가방을 옮기려 한다. 그들의 하는 일이란 단지 짐을 엘리베이터 안에 들여 놓고 엘리베이터가 서면 내어 가는 일이다. 그리고 승강기 밖에서는 또 다른 보이(Boy)가 받아서 잠깐 대합실에 두었다가 차(車)가 떠나기 전에 차에 싣는 일이였다.
차에 짐을 싣고서는 수고비(fare:운임)를 요구 하는 것이 아닌가?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수고비는 얼마면 되겠습니까?”(사실 이런 말은 묻는 게 아니고 알아서 해야 하는 건데 말이다.) 하는 말이, 물건을 살 때 묻는 말이 튀어 나왔다.(How mach is it?) 그래도 그 사람은 무슨 말인지 알아듣고 “당신에게 달렸다.”“좋으실 대로 하시지요” “처분만 기다리겠습니다.”라는 뜻의 “ Up to you! ”라고 하지 않는가.
호텔에서 공항(空港)으로 가는 차(車)안 에는 미국인 내외분과 아이가 타고 있었다. 한 가족인 모양이다. 그들의 가방도 일하는 종업원들이 실었는데 홍콩 달러인지, 아니면 미국 돈 25quarter인지 거리가 멀어서 확실히 볼 수는 없었지만 서너 개씩 집어준다.
나도 팁을 주어야 하는데, 나는 얼마를 주어야 할지 내 마음은 결정을 못하고 있었다. 아직도 내 머리 속에는 미화(美貨), 한화(韓貨), 홍콩 돈으로 재빠른 환산이 서 있지 않았다. 이러할 때가 나에게는 큰 고역이었다.
종업원은 짐을 싣고 나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고, 미국인들은 나를 보고 앉아서 웃고 있지 않은가? 나의 마음속에는 ‘나는 한국인을 대표하고 있다.’ 라는 생각과 더불어, 만약 내가 그냥 있다면, ‘팁을 줄줄 모르는 무례한 한국인’이라고 할 것이다. 나는 미국 돈 3dime을 종업원에게 건네주었더니, 종업원은 “고맙다. 고맙다.”(Thank!,Thank.)를 연발하면서 내 앞에서 사라져 갔다.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짐 나르는 팁은 완 다임(1dime: 50원)만 주어도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150원을 주었으니, 분명히 무례한 한국인이 아닌, 예의를 갖춘 한국인을 대표하고 있었다. 그래서 종업원이 감사하다는 말을 연발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진정한 면에서는 세상물정(世上物情)을 모르는 한국인 노릇을 한 것이다. 나는 한국에 살면서도 물정에 어두웠던 사람인데, 더욱이 외국에 나갔으니 그 나라 물정에는 더욱 캄캄할 뿐이었다.
공항에 우리를 내려놓고서, 호텔 차는 호텔로 돌아갔다. 공항 대합실에서 나는 맡겨 두었던 짐을 찾았더니, 홍콩 달러 3달러(1.500원)를 보관세로 받는다.
홍콩은 내가 실수투성이로 지냈던 곳으로 나의 외국 여행 경험 속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냉방(冷房)의 스위치를 너무 올려서 한 여름에 겨울 내의(內衣)를 꺼내 입고 잠을 잤던 일, 그래도 감기 걸리지 않은 것을 하나님께 감사한다. 양식(洋食)을 처음 하는 나의 위(stomack)가 그것을 잘 소화하지 못하여 큰 고역을 치루었던 일, 그래도 설사 하지 않은 것을 하나님께 감사한다. 호텔 식당에서 주문을 하는데 무었을 해야 할지 몰라서 맛도 모르는 음식을 주문(注文)해서 먹었던 일, 그래도 소화가 잘 되었으니 하나님께 감사 한다. 호텔 예약권(hotel reservation)에는 두 끼의 식사가 무료로 제공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나중에야 알아서 타먹지 못했던 일, 그래도 끼니를 굶지 않고 건강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지나놓고 보니 외국 나들이 초행인 나에게는 좋은 경험이었고 감사의 제목이 되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홍콩에서 어쩌다가 비행기를 놓쳐서 공항에서 꼬박 하룻밤을 지새운 이도 있다고 하니 거기에 비하면 나의 실수는 너무나도 적은 실수가 아닌가? 하고 자위(自慰)를 하여본다.
홍콩 호텔 식당에서 내가 느낀 것은 지금까지 내가 한국에서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즉 그것은 내가 누런 키 작은 황인종(黃人種)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한국에서 살 때는 그런 것을 전연 몰랐는데 외국에 나와 보니 그런 것을 느끼게 된다.
홍콩 공항에 들어서니 짐 군들이 모여 들었지만 한번 경험을 한 나로서는 그 팁 문제가 걸려서, 좀 힘들지만 내 손으로 그것을 들어 운반했다. 곳곳마다 그 나라 돈을 조금씩 바꿔야 한다. 공항마다 환전소(exchang money)가 있어서 내릴 때 바꿔주고 떠날 때 바꿔주는 서비스를 하고 있었다.
나는 홍콩에서 하루를 지나고 다시 불란서 비행기(Air France)로 홍콩을 떠나게 되었다. 한국을 떠날 때는 사랑하는 아내를 비롯하여, 귀여운 자녀들과 도움을 준 학장 사모님, 전송하러 나왔던 친구들, 기도하여 주었던 목사님들이 있었지만, 홍콩 비행장 대합실에서는 쓸쓸히 혼자서 떠나게 되었다. 가족이란 있어야 하고 친구란 필요한 것이며, 하나님의 사람들의 기도란 힘이 되며, 고국이란 내가 밟고 서야 할 터(基)가 되는 것이다.
다시 타랍을 밟고 비행기 안으로 들어왔다. 300명을 태운다는 대형(大型)여객기 안은 넓기도 하였다. 특등실, 일등실, 이등실을 커튼과 의자 카바 빛깔로 구분(區分)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여행을 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스튜어디스들도 음료수니 식사를 운반하느라 바쁘기만 하다. 어느 비행기 안에서도 마찬 가지지만 구급대착용법을 설명(說明)하는 일을 빠뜨리지 않았다. 몇 번이고 그 설명은 되풀이 되었다.
태국의 수도 방콕(Bang Kok.)에서는 한국에서 같이 가기로 했던 김형(金兄)을 만났다. 이역만리 외국에서 한국인을 만난다는 것 이상의 기쁨은 없으리라! 그와 나는 방콕 대합실에서 즐거운 대화를 주고받았다.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지나가던 한국인도 반기며 “한국에서 왔느냐?”고 인사를 한다. 방콕에만 가도 벌써 한국인은 만나기 힘 드는 일이다.
불란서 비행기 안에서는 영화도 상영 되었다. 봄베이를 지나고 또 카라치(Karachi)를 지나고 테헤란(Theran)를 지나서 목적지(目的地)를 향해서 비행기는 나르고 있었다.
이스라엘의 수도는 예루살렘(Jerusalem)이다. 예루살렘( )이라는 말은 두 단어가 하나로 된 합성어이다. ‘도시’(都市)와 ‘평화’라는 말이 합친 것이다. ‘이얼’( )은 도시(city)를 말하며, ‘샬라임’( )은 평화(peace)를 말한다. 그들은 그냥 ‘샬라임’( )이라고 부른다.
안내 책자(Guide Book)를 보면 서울(Seoul)에서 예루살렘까지 직행으로 15시간 10분이 소요 된다지만, 나는 하룻밤을 홍콩에서 자고 또 비행기 안에서 하룻밤을 지났다.
한국에서 이스라엘까지는 길고도 지루한 여행이었다. 장시간(長時間) 의자에 앉아 있어서 피곤하다. 여행은 사람을 피곤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애급에서 나올 때 40년의 광야 길을 걷지 않았는가?
사하라 사막(沙漠)위를 나르고 있는 비행기 밖의 경치는 풀 한 포기 없는 사막이었다. 보고 또 보아도, 넓고 넓은 사막이었다. 비행기 안에서 밖을 내려다보기만 하여도 열기(熱氣)가 온 몸을 엄습(掩襲) 하여 오는 것 같았다.
드디어 나를 태운 비행기는 이스라엘의 탤아비브 욥바 (Tel-Aviv Yafo: )항(港)을 눈앞에 놓고 있었다. 이스라엘 제일의 항구 도시 탤아비브 욥바( )는 ‘언덕’( )과 ‘봄’( : spring)과 그리고 ‘미’(美)( : beautiful)라는 말이 합친 것이다.
우리는 착륙 준비를 하고 있었다. 비행기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욥바 항에는 황금 빛깔의 곡식이 밭에 서 있었다. 그것이 ‘밀’ 인지 ‘보리’ 인지 멀리서는 분간 할 수 없었다. 나중에 이스라엘에 살면서 알게 된 것은 ‘보리’가 아니라 ‘밀’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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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礎稿), 1978.6.11-9.1. 아가페지(紙)에 게재(揭載)(6호-8호)
개고(改稿), 2001.6.17.
※이 글은 초고를 쓰고 나서 22년이란 세월이 지나서 개고(改稿)를 하고 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강산이 변해도 두 번씩이나 변한 것이다.
내가 이스라엘에서 한국으로 돌아올 때, 김포 비행장에 마중 나왔던 우리의 자녀들이 그 때 당시 10대들이었는데 벌써 30대가 되었으며, 이제는 모두 다 결혼해서 10대의 자녀들을 기르고 있다. 우리의 후손이 3대째 이어 가고 있다.
초고를 쓸 당시에는 컴퓨터(computer)가 없었지만 지금은 컴퓨터를 사용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나도 손수 컴퓨터를 사용해서 개고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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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은 여기 홈페이지로 옮겨오는 과정에서 히브리어가 변환되지지 않음으로 히브리어 자리에 '()'로만 표기하여둠. -홈주인 함동진
* 날짜 : 2006년 3월 11일 토요일, 오후 20시 30분 33초 +0900
보낸이 : "박연웅"
받는이 : "함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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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연웅 목사는
서울기독대학교(서울성서신학교 -> 대한기독교신학교)졸업(그리스도의교회)
이스라엘 유학 히브리대학교(구약전공)졸업
서울신학대학교졸업(성결교회)
현재 강원도 원주시에서 목회활동.
*박연웅 목사는 함동진과 서울성서신학교(현서울기독대학교)에서 함께 공부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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