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원운동] 창현 함태영목사 략전(전기) / 함동진(앞에서 부터 계속)
본문
(함태영-2)
창현 함태영목사 략전(전기)
唱泫 咸泰英牧師 略傳(傳記)
(앞에서 부터 계속)
***************************
1975년 :
(61세때) 서울시 서대문구 홍제동 장자 동진의 집에서 동료목회자들인 이신·구강서·이종만·조충연·설하운·함명덕·임상규(이상 목사), 박정훈·백00(이상 장로) 등 친지 여러분들과 형제자매 자손들과 함께 조촐한 회갑연을 가졌다. 이날 회갑기념예배의 사회는 조충연 목사께서 축하설교는 이신 목사께서 축하찬양은 설하운 목사 사모인 김경옥 여사(부평그리스도원 및 유치원 원정)께서 맡아 하였다. 작은 회갑연의 자리였지만 기쁨으로 가득한 자리였다.
1980년 :
(66세때) 부강그리스도의교회와 방서리그리스도의교회 담임을 마지막으로 하여 노환을 얻어 하나님을 위한 사역인 거룩한 목회직을 은퇴하였다.
반신마비와 당뇨환으로 투병할 때 아우인 태욱이 모시고 침 뜸(鍼灸)과 약으로 간병하며 한없는 헌신으로 형제의 우애를 바쳤다.
이 세상의 재산과 육신을 주님과 복음을 위하여 교육을 위하여 바치고 남은 것은 맨주먹과 뿌려서 썩어진 밀알 정신 뿐, 이제 마지막 병든 육신으로 주님의 십자가를 짐 지고 가는 고난과 고통의 시험을 견디어 내는 것이었다. 오직, "감사합니다!" 이 한마디 뿐 십자가상의 가시관을 쓰시고 옆구리가 창에 찔리시고 양손과 양발에 박혀있는 대못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대속의 피를 보며 자신이 주님을 위하여 완전히 썩어진 밀알이 되었는지 확인하였다.(평생의 좌우명 <生則福音 死則麥粒> : 살아서는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고 죽어서는 주님의 분부대로 한 알의 밀알로 썩는다. 마28:19∼20. 행1:8. 요12:2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
1983년 :
(69세때) 11월 28일 01시 30분 충청남도 대전시 가오동(지금의 대전광역시동구 가오동)에서 주님의 보좌 곁으로 부르심을 받았다.
운명한 후에는 죽은 사람이 아니라 살아있는 듯 화평하고 깨끗한 얼굴의 모습을 하여 가족들이 기이히 여기고 평안을 얻어 끊임없이 찬송을 하였다.
김치연 목사께서 위로의 유가족 예배를 인도되었고 이춘식 목사의 집례로 영결예배를 드렸다. 출상 후 하관예배는 이영호 목사의 집례로 장례절차가 마무리되었다.
묘소는 전리남도 순천시 외서면 장산리 12번지 선영에 소재하고 있다.
아우 태호는 형인 창현 목사의 무덤 앞에 춘란을 심어 난초로 십자가를 만들어 사시사철 늘 푸른 십자가가 되도록 하였다. 그리고 "형님. 이산의 과수에서 나오는 복숭아 감 밤 을 마음 것 드시면서 편안히 쉬십시요"하며 눈시울을 붉히며 유족인 조카들을 등뒤로 돌리고 눈물을 감추었다. 형인 창현 함태영 목사를 참으로 존경하고 사랑하였다. 창현 함태영 목사도 장자인 자신을 대신하여 고향을 지키며 부모를 섬기며 가산을 일구는 어질고 어진 아우 태호를 늘 고맙게 생각하여 왔었다.
이상과 같이 창현 함태영(唱泫 咸泰英) 목사는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그의 사명은 물욕과 탐함이 없이 한국그리스도의교회와 기독교환원운동사에 있어서 순교자적 사도의 정신으로 남이 모르게 그의 모든 것을 다 바쳐 일생을 주님께 헌신하였다.
일제로부터 8.15광복을 맞이하고, 6.25전쟁 북한인민군의 남침전쟁으로 인한 암흑시기에 동족상잔(同族相殘)의 전쟁을 겪고 폐허화된 국토 위에서 묻 사람들이 지나치게 생에 탐하여 서로를 미워하고 보복하며 속이고 저주하던 그 시기에 이 사회에서는 윤리와 도덕과 종교가 땅에 떨어져 사랑이 짓밟히고 있었다.
창현 함태영 목사는 이때에 십자가를 메고 복음을 전하며 밀알이 되려고(生則福音 死則麥粒) 기도하고 찬송하며 헌신하였다.
국민들은 무지하고 가난이 찌든 시기에 불신자들은 교회를 향한 핍박이 극심하였다. 교회를 연애당이라 부르고, 교회에 다니는 청소년들을 연애쟁이라 불러 교회를 비윤리적 부도덕한 장소인 것처럼 지칭하며 핍박하였다. 그리고 교회에 다니는 집안은 모두 망한다고 비방하녀 핍박을 더욱 가하였다.
예배시간에 신도들의 신발을 감추고 유리창에 돌을 던지며 오물을 끼얹기도 하였다. 혹시 신도들 중에서 병이 들거나 죽게 되면 예수를 믿어 망한 것이라고 비방을 하였다.
전등이 없는 석유초롱불 밑에서, 겨울이면 난방이 없는 냉방에서 신도들과 함께 기도하며 예배를 드렸다. 하루에도 수 십리 산을 넘고 물을 건너 험한 길을 밤낮으로 걷고 뛰며 전도하고 심방을 하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때로는 불량배들의 핍박과 위협을 받으면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열심히 뛰었다. 십자가를 메고 주님께서 가신 그 고난의 길을 따라.....
이때에 창현 함태영 목사는 복음으로 교육으로 그 해결방안을 찾으려고 동분서주 밤낮을 가리지 않고 뛰면서 생의 진리 곧 복음을 전파하였다. 때문에 때로는 자녀들 인척들 친구들 친지들로부터 너무나 지나치지 않느냐는 비난도 수 없이 받았다. 이때마다 창현 함태영 목사는 감사하는 기도와 찬송으로 더욱 힘을 내어 사명을 감당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서 생존시 좌우명으로 삼았던 "살아서는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고 죽어서는 주님의 분부대로 한 알의 밀알로 썩는다(生則福音 死則麥粒)" 를 실천함과 아울러 그리스도의 교훈을 따랐다.
교회를 지키며 교육과 복음을 전하는 일을 자신의 이익과 명예와는 아무러한 관계없이 오직 주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일념으로 헌신을 하였다.
봉사와 헌신의 일생, 뛰며 달리는 활동의 생활, 십자가의 사랑을 실천하는 일생이었다.
창현 함태영 목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운명하였을 때에는 공수래 공수거(空手來 空手去)란 말 그대로였다. 손수 찍어 만든 시멘트 블록 몇 장으로 그것도 남의 땅 위에 가까스로 손수 쌓아 올려지어 비가 새는 움막같은 거처였다. 지니고 있던 재산이라고는 손때 묻은 낡은 찬송가와 셩경책 그리고 몇 권의 신학서적 뿐이었다. 그리고 보람으로 간직했던 복음중학교 창립20주년 기념일에 설립자공로로 받은 황금메달도 치료비에 보태기 위하여 이미 팔아 없어진 터였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 참으로 육신을 위한 모든 것을, 한 알의 밀알이 많은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한 밑거름으로 주님께 다 헌신하였다.
이제 창현 함태영 목사의 뜻이 이루어져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서 한국의 기독교환원동사와 더불어 사랑의 실천이 메마르지 않을 것이며 갈보리 산상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더욱 빛날 것이다.
어리석은 놈, 바보
예수쟁이, 멍청이 놀림을 받고
신사참배 거부하다가
쇠고랑 차고 감옥에 누웠어도
야곱의 돌베개 침방으로 여기고
돌은 놈, 미치광이
예수쟁이, 정신병자 비아냥 받고
공산주의 거부하다
친미파 반동분자로 몰려
내무서 감방에 앉았어도
골방의 기도실로 여기고
알거지같은 놈, 비렁뱅이
예수쟁이, 거러지 손가락질 받고
배고파 기진하고
누더기 걸치고 거친 침실이었어도
볶음을 전할 수 있다면
어디든 천국으로 여기고
자나깨나 볶음전도와 교육, 환원운동으로
일생을 살아가신 나의 아버지
창현 함태영 목사
남기신 유산은 오직
낡은 성경책과 찬송가 단 한 벌
그리고 교훈
"生則福音(생즉복음)
死則麥粒(사즉맥립)"
환원운동이여* 빛나라
떨구어진 밀알
천배나 만배나 더 결실하소서!
* (함동진의 시 <사부곡(思父曲) -나의 아버지 창현 함태영 목사 >전문)
위의 <창현 함태영 목사 략전(전기)>는 창현 함태영 목사 탄생77주년일인 1991년6월11일(음력4월30일) 초판 발행하였고, 재판은 창현 함태영 목사의 아우인 태욱의 증언과 협의를 거쳐 창현 함태영 목사 탄생79주년일에 수정 증보되었다 .
장자 장산 함동진(長山 咸東振 <炯振 : 咸氏大同譜인 甲子譜上登載名>) 엮고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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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현 함태영 목사 카페<카페자료실>란] http://cafe.naver.com/hamdongjin.ca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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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태영-1)
창현 함태영목사 략전(전기) 서문
唱泫 咸泰英牧師 略傳(傳記) 序文
창현 함태영 목사는 生則福音 死則麥粒(생즉복음 사즉맥립 : 살아서는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고 죽어서는 주님의 분부대로 한 알의 밀알로 썩는다. 마28:19∼20. 행1:8. 요12:24.)의 삶으로, 번화한 도시 보다는 주로 후미진 곳 농촌, 난민촌, 빈민촌을 찾아 복음을 전하고 교육사업을 하였다.
그런 까닭에 그는 헌금을 받아 교회를 개척하고, 목회를 하고, 교육사업을 한 것이 아니라 늘 자기의 가진 것을 모두 털어 헌신하였다.
그때에 농촌과 빈민촌에서 뿌린 복음의 밀알이 지금은 백 배, 천 배 결실을 하여 도시로도시로 향하여 모여들고 있다.
도시의 교회들은 차고 넘치어 서로 경쟁을 하며 맘모스 교회당을 지으려 하고 부흥사를 동원하여 기성교인을 서로 차지하려고 안간힘 하고들 있다.
그러므로 어렵게어렵게 복음을 전하여 불신자를 새 신자로 만드는데는 힘을 덜 쓰려한다.
오늘날 모든 도시의 교회들은 농촌을 돌아볼 때다 . 농촌의 교회들은 얼마나 험난한 가시밭길을 걷고 잇는가.
도시의 교회는 호화롭다 못해 은혜스럽지 못하고 재물을 가진 자가 헌금으로 천국을 사 놓은 듯 빗나가게 가르쳐지고 있다.
그리고 가장 도덕적이어야 하고, 윤리적이어야 하며 질서가 정연하여야 할 신앙인들이 행동은 멋대로 하고도 교회에 나아가 헌금이나 많이 하고 기도만 하면 천국이 자기의 것이 되는 것처럼 가르쳐지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십자가의 뜻(희생. 봉사)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창현 함태영 목사의 약전(略傳-傳記)을 통하여 보면 복음을 자기를 나타내지 않고 전하는 것으로 일관해 왔다.
창현 함태영 목사의 전기가 신학을 입문하는 신학도나 목회를 지망하는 전도자들에게 지침과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
신학과 목회를 지상에서 누리는 열화(榮華)나 명예욕으로 시작한다면 썩어지는 밀알이 될 수 없고 참된 열매를 결실치 못할 것이다.
복음 전도자는 자기를 낮추고 농촌의 후미진 곳, 빈민촌, 난민촌과 같은 곳에서 고난을 겪는 자들에게 더욱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히 여기는 자, 청결한 자, 화평케 하는 자, 의로 인해 핍박을 받는 자(마5:1∼12)의 편이시다.
그리고 사랑은 어떤 것이고 어떻게 실천하는 것인지 고린도전서 13장은 말씀하시고 계신다.
복음은 가난한 자, 고통받는 자, 병든 자에게 찾아가야 할 것이고, 거기에 더욱 필요한 것이다.
부(富)는 그러한 곳에 가져가 나누어주어야 할 목적 이외에는 신앙과 교회의 목적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끝으로 기억하여 둘 것은 창현 함태영 목사는 어려움 속에서도 초대교회(初代敎會)로의 성서적 그리스도의교회로 돌아가자는 환원운동(還元運動)에 일관하여 목회를 하여왔고, 이를 회고하여 보면 한국환원운동사(韓國還元運動史>의 한 편을 보는 듯 하다.
<한국그리스도의교회 환원운동 : "성서적 초대교회로 돌아가자!(基督敎 初代敎會로의 還元運動)">
19991년 6월 11일 (음력 4월 30일)
-창현 함태영 목사 탄생 77주년-
함동진 삼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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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현 함태영 목사 카페<카페자료실>란] *[창현 함태영 목사 카페<카페자료실>란] http://cafe.naver.com/hamdongjin.cafe
창현 함태영목사 략전(전기)
唱泫 咸泰英牧師 略傳(傳記)
(앞에서 부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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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
(61세때) 서울시 서대문구 홍제동 장자 동진의 집에서 동료목회자들인 이신·구강서·이종만·조충연·설하운·함명덕·임상규(이상 목사), 박정훈·백00(이상 장로) 등 친지 여러분들과 형제자매 자손들과 함께 조촐한 회갑연을 가졌다. 이날 회갑기념예배의 사회는 조충연 목사께서 축하설교는 이신 목사께서 축하찬양은 설하운 목사 사모인 김경옥 여사(부평그리스도원 및 유치원 원정)께서 맡아 하였다. 작은 회갑연의 자리였지만 기쁨으로 가득한 자리였다.
1980년 :
(66세때) 부강그리스도의교회와 방서리그리스도의교회 담임을 마지막으로 하여 노환을 얻어 하나님을 위한 사역인 거룩한 목회직을 은퇴하였다.
반신마비와 당뇨환으로 투병할 때 아우인 태욱이 모시고 침 뜸(鍼灸)과 약으로 간병하며 한없는 헌신으로 형제의 우애를 바쳤다.
이 세상의 재산과 육신을 주님과 복음을 위하여 교육을 위하여 바치고 남은 것은 맨주먹과 뿌려서 썩어진 밀알 정신 뿐, 이제 마지막 병든 육신으로 주님의 십자가를 짐 지고 가는 고난과 고통의 시험을 견디어 내는 것이었다. 오직, "감사합니다!" 이 한마디 뿐 십자가상의 가시관을 쓰시고 옆구리가 창에 찔리시고 양손과 양발에 박혀있는 대못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대속의 피를 보며 자신이 주님을 위하여 완전히 썩어진 밀알이 되었는지 확인하였다.(평생의 좌우명 <生則福音 死則麥粒> : 살아서는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고 죽어서는 주님의 분부대로 한 알의 밀알로 썩는다. 마28:19∼20. 행1:8. 요12:2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
1983년 :
(69세때) 11월 28일 01시 30분 충청남도 대전시 가오동(지금의 대전광역시동구 가오동)에서 주님의 보좌 곁으로 부르심을 받았다.
운명한 후에는 죽은 사람이 아니라 살아있는 듯 화평하고 깨끗한 얼굴의 모습을 하여 가족들이 기이히 여기고 평안을 얻어 끊임없이 찬송을 하였다.
김치연 목사께서 위로의 유가족 예배를 인도되었고 이춘식 목사의 집례로 영결예배를 드렸다. 출상 후 하관예배는 이영호 목사의 집례로 장례절차가 마무리되었다.
묘소는 전리남도 순천시 외서면 장산리 12번지 선영에 소재하고 있다.
아우 태호는 형인 창현 목사의 무덤 앞에 춘란을 심어 난초로 십자가를 만들어 사시사철 늘 푸른 십자가가 되도록 하였다. 그리고 "형님. 이산의 과수에서 나오는 복숭아 감 밤 을 마음 것 드시면서 편안히 쉬십시요"하며 눈시울을 붉히며 유족인 조카들을 등뒤로 돌리고 눈물을 감추었다. 형인 창현 함태영 목사를 참으로 존경하고 사랑하였다. 창현 함태영 목사도 장자인 자신을 대신하여 고향을 지키며 부모를 섬기며 가산을 일구는 어질고 어진 아우 태호를 늘 고맙게 생각하여 왔었다.
이상과 같이 창현 함태영(唱泫 咸泰英) 목사는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그의 사명은 물욕과 탐함이 없이 한국그리스도의교회와 기독교환원운동사에 있어서 순교자적 사도의 정신으로 남이 모르게 그의 모든 것을 다 바쳐 일생을 주님께 헌신하였다.
일제로부터 8.15광복을 맞이하고, 6.25전쟁 북한인민군의 남침전쟁으로 인한 암흑시기에 동족상잔(同族相殘)의 전쟁을 겪고 폐허화된 국토 위에서 묻 사람들이 지나치게 생에 탐하여 서로를 미워하고 보복하며 속이고 저주하던 그 시기에 이 사회에서는 윤리와 도덕과 종교가 땅에 떨어져 사랑이 짓밟히고 있었다.
창현 함태영 목사는 이때에 십자가를 메고 복음을 전하며 밀알이 되려고(生則福音 死則麥粒) 기도하고 찬송하며 헌신하였다.
국민들은 무지하고 가난이 찌든 시기에 불신자들은 교회를 향한 핍박이 극심하였다. 교회를 연애당이라 부르고, 교회에 다니는 청소년들을 연애쟁이라 불러 교회를 비윤리적 부도덕한 장소인 것처럼 지칭하며 핍박하였다. 그리고 교회에 다니는 집안은 모두 망한다고 비방하녀 핍박을 더욱 가하였다.
예배시간에 신도들의 신발을 감추고 유리창에 돌을 던지며 오물을 끼얹기도 하였다. 혹시 신도들 중에서 병이 들거나 죽게 되면 예수를 믿어 망한 것이라고 비방을 하였다.
전등이 없는 석유초롱불 밑에서, 겨울이면 난방이 없는 냉방에서 신도들과 함께 기도하며 예배를 드렸다. 하루에도 수 십리 산을 넘고 물을 건너 험한 길을 밤낮으로 걷고 뛰며 전도하고 심방을 하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때로는 불량배들의 핍박과 위협을 받으면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열심히 뛰었다. 십자가를 메고 주님께서 가신 그 고난의 길을 따라.....
이때에 창현 함태영 목사는 복음으로 교육으로 그 해결방안을 찾으려고 동분서주 밤낮을 가리지 않고 뛰면서 생의 진리 곧 복음을 전파하였다. 때문에 때로는 자녀들 인척들 친구들 친지들로부터 너무나 지나치지 않느냐는 비난도 수 없이 받았다. 이때마다 창현 함태영 목사는 감사하는 기도와 찬송으로 더욱 힘을 내어 사명을 감당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서 생존시 좌우명으로 삼았던 "살아서는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고 죽어서는 주님의 분부대로 한 알의 밀알로 썩는다(生則福音 死則麥粒)" 를 실천함과 아울러 그리스도의 교훈을 따랐다.
교회를 지키며 교육과 복음을 전하는 일을 자신의 이익과 명예와는 아무러한 관계없이 오직 주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일념으로 헌신을 하였다.
봉사와 헌신의 일생, 뛰며 달리는 활동의 생활, 십자가의 사랑을 실천하는 일생이었다.
창현 함태영 목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운명하였을 때에는 공수래 공수거(空手來 空手去)란 말 그대로였다. 손수 찍어 만든 시멘트 블록 몇 장으로 그것도 남의 땅 위에 가까스로 손수 쌓아 올려지어 비가 새는 움막같은 거처였다. 지니고 있던 재산이라고는 손때 묻은 낡은 찬송가와 셩경책 그리고 몇 권의 신학서적 뿐이었다. 그리고 보람으로 간직했던 복음중학교 창립20주년 기념일에 설립자공로로 받은 황금메달도 치료비에 보태기 위하여 이미 팔아 없어진 터였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 참으로 육신을 위한 모든 것을, 한 알의 밀알이 많은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한 밑거름으로 주님께 다 헌신하였다.
이제 창현 함태영 목사의 뜻이 이루어져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서 한국의 기독교환원동사와 더불어 사랑의 실천이 메마르지 않을 것이며 갈보리 산상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더욱 빛날 것이다.
어리석은 놈, 바보
예수쟁이, 멍청이 놀림을 받고
신사참배 거부하다가
쇠고랑 차고 감옥에 누웠어도
야곱의 돌베개 침방으로 여기고
돌은 놈, 미치광이
예수쟁이, 정신병자 비아냥 받고
공산주의 거부하다
친미파 반동분자로 몰려
내무서 감방에 앉았어도
골방의 기도실로 여기고
알거지같은 놈, 비렁뱅이
예수쟁이, 거러지 손가락질 받고
배고파 기진하고
누더기 걸치고 거친 침실이었어도
볶음을 전할 수 있다면
어디든 천국으로 여기고
자나깨나 볶음전도와 교육, 환원운동으로
일생을 살아가신 나의 아버지
창현 함태영 목사
남기신 유산은 오직
낡은 성경책과 찬송가 단 한 벌
그리고 교훈
"生則福音(생즉복음)
死則麥粒(사즉맥립)"
환원운동이여* 빛나라
떨구어진 밀알
천배나 만배나 더 결실하소서!
* (함동진의 시 <사부곡(思父曲) -나의 아버지 창현 함태영 목사 >전문)
위의 <창현 함태영 목사 략전(전기)>는 창현 함태영 목사 탄생77주년일인 1991년6월11일(음력4월30일) 초판 발행하였고, 재판은 창현 함태영 목사의 아우인 태욱의 증언과 협의를 거쳐 창현 함태영 목사 탄생79주년일에 수정 증보되었다 .
장자 장산 함동진(長山 咸東振 <炯振 : 咸氏大同譜인 甲子譜上登載名>) 엮고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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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현 함태영 목사 카페<카페자료실>란] http://cafe.naver.com/hamdongjin.ca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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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태영-1)
창현 함태영목사 략전(전기) 서문
唱泫 咸泰英牧師 略傳(傳記) 序文
창현 함태영 목사는 生則福音 死則麥粒(생즉복음 사즉맥립 : 살아서는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고 죽어서는 주님의 분부대로 한 알의 밀알로 썩는다. 마28:19∼20. 행1:8. 요12:24.)의 삶으로, 번화한 도시 보다는 주로 후미진 곳 농촌, 난민촌, 빈민촌을 찾아 복음을 전하고 교육사업을 하였다.
그런 까닭에 그는 헌금을 받아 교회를 개척하고, 목회를 하고, 교육사업을 한 것이 아니라 늘 자기의 가진 것을 모두 털어 헌신하였다.
그때에 농촌과 빈민촌에서 뿌린 복음의 밀알이 지금은 백 배, 천 배 결실을 하여 도시로도시로 향하여 모여들고 있다.
도시의 교회들은 차고 넘치어 서로 경쟁을 하며 맘모스 교회당을 지으려 하고 부흥사를 동원하여 기성교인을 서로 차지하려고 안간힘 하고들 있다.
그러므로 어렵게어렵게 복음을 전하여 불신자를 새 신자로 만드는데는 힘을 덜 쓰려한다.
오늘날 모든 도시의 교회들은 농촌을 돌아볼 때다 . 농촌의 교회들은 얼마나 험난한 가시밭길을 걷고 잇는가.
도시의 교회는 호화롭다 못해 은혜스럽지 못하고 재물을 가진 자가 헌금으로 천국을 사 놓은 듯 빗나가게 가르쳐지고 있다.
그리고 가장 도덕적이어야 하고, 윤리적이어야 하며 질서가 정연하여야 할 신앙인들이 행동은 멋대로 하고도 교회에 나아가 헌금이나 많이 하고 기도만 하면 천국이 자기의 것이 되는 것처럼 가르쳐지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십자가의 뜻(희생. 봉사)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창현 함태영 목사의 약전(略傳-傳記)을 통하여 보면 복음을 자기를 나타내지 않고 전하는 것으로 일관해 왔다.
창현 함태영 목사의 전기가 신학을 입문하는 신학도나 목회를 지망하는 전도자들에게 지침과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
신학과 목회를 지상에서 누리는 열화(榮華)나 명예욕으로 시작한다면 썩어지는 밀알이 될 수 없고 참된 열매를 결실치 못할 것이다.
복음 전도자는 자기를 낮추고 농촌의 후미진 곳, 빈민촌, 난민촌과 같은 곳에서 고난을 겪는 자들에게 더욱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히 여기는 자, 청결한 자, 화평케 하는 자, 의로 인해 핍박을 받는 자(마5:1∼12)의 편이시다.
그리고 사랑은 어떤 것이고 어떻게 실천하는 것인지 고린도전서 13장은 말씀하시고 계신다.
복음은 가난한 자, 고통받는 자, 병든 자에게 찾아가야 할 것이고, 거기에 더욱 필요한 것이다.
부(富)는 그러한 곳에 가져가 나누어주어야 할 목적 이외에는 신앙과 교회의 목적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끝으로 기억하여 둘 것은 창현 함태영 목사는 어려움 속에서도 초대교회(初代敎會)로의 성서적 그리스도의교회로 돌아가자는 환원운동(還元運動)에 일관하여 목회를 하여왔고, 이를 회고하여 보면 한국환원운동사(韓國還元運動史>의 한 편을 보는 듯 하다.
<한국그리스도의교회 환원운동 : "성서적 초대교회로 돌아가자!(基督敎 初代敎會로의 還元運動)">
19991년 6월 11일 (음력 4월 30일)
-창현 함태영 목사 탄생 77주년-
함동진 삼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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