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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公)만 있고 나(我-私)는 없다 -복음전도 자체가 역사다 / 함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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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동진
댓글 0 조회 9,162 2008.11.23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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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칼럼) 공(公)만 있고 나(我-私)는 없다 -복음전도 자체가 역사다



<한국그리스도의교회환원운동 칼럼>

 
                공(公)만 있고 나(我-私)는 없다 
                -복음전도 자체가 역사다



                                                                                  함동진




  날이 가면 갈수록 사람들은 공(公)보다는 사(私-나我)를 위해 목숨을 걸거나 전력투구한다.  나의 어린 시절에는 남을 먼저 배려하고 공적인 일에 더 열심이하라는 교육과 교훈을 많이 받고 자랐다. 그 공적인 일에는 국가에 충성하는 일, 사회에 헌신하는 일, 남을 위하여 봉사하는 일 등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마태복음 16장 24절)



  그리스도의교회 환원운동으로서의 교회개척은 크게 번창한 것에만 기준을 두지 않는다. 가정교회 또는 작은 모임이 시작되면 교회의 개척이며 교회를 이루는 것이다.
복음전파(전도) 그 자체가 교회를 이루며 역사이다. 할 수만 있다면 기록하고 간수하는 것은 더 좋은 것이지만 교회의 시작장소와 교회당과 간판이 없어졌다 하여 복음 전파도 함께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목회자(복음전도자)의 삶의 방식과 그의 처지(處地)한 환경에 따라 그 자취나 기록이 있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한다.
  그리스도의교회는 복음을 받아드린 한사람한사람이 교회이며 개교회주의가 "성서로 돌아가자"는 환원운동의 주축이며 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초대교회(신약성서시대)의 사도들이 세상을 떠난 후 로마 폭정의 갖은 핍박과 억압 속에서도, 성서에 기록된 일곱 교회 이외에도 복음은 전하여졌고 그 복음을 전한 전도자들과 교회들이 있었을 것이다. 이런 미기록의 교회들과 전도자들이 전한 복음은 무효한 것인가? 아니다.  2세기 속사도시대에서 새 제도권(교권.교파)으로 도달하기까지의 복음전도자들과 교회들이 활동한 기록들은 없다. 온갖 핍박 속에서 순교를 불사하며 정처없이 이동되고 쫓겨다니던 교회들이나 전도자들의 기록이 남아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 복음의 전파는 전세계를 누비며 오늘에 이르도록 한 원천이요 밑거름 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만약 기독교 탄압국에 선교사를 파송하여 현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다  체포, 구금, 폭행, 고문, 순교당하거나 추방당하였다면 그 곳에 전한 복음(교회)은 영원히 없어지는 것인가?  아니다.
  지금 중국이나 북한 그리고 아프칸(탈레반지역 등) 등지에서 교회당이나 그에 속한 목회자(복음전도자)가 없어도 지하에서 복음이 전해지고 교회(교회당 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님)가 유지되고 있다.  이들로부터 훗날 역사를 따지며 기록이나 물증을 대라하면 가능한가?  복음전도와 교회를 그런 것의 물증으로 현장을 일일이 증명하라하면 이를 증명할 수 있겠는가?

  복음전파와 교회는 그런 것의 물증으로만 역사를 삼을 수 없는 것이다. 50-100여 년 전의 후미진 오지(교통 통신 인쇄물 언론매체가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의 복음전도와 교회(에클레시아)의 역사를 내어놓으라 하면 이는 어불성설이다.  문화의 기반이 전무하다시피한 열악하고 피폐한 곳에서 복음을 전파하였다면 얼마만큼의 역사적 기록물과 물증을 내어놓을 수 있겠는가?  기어이 내어놓으라고 요구한다면 이는 무리(無理)이다. 

 



        문명과 물질과 문화가 미개하거나 외부와의 소통도 원활치 않는 열악한 지역에서 순교적 사명으로 복음전파와 전도에 온 정성을 다 쏟아 부었어도 그에 관한 기록이나 유물이 없으면 그가 전한 복음 전도와 환원운동이 인정되지 않는 업적이라고 한다.  쉽게 말하면 당시의 교회당이 남아 있고,  당시에 기록된 활동기록이 있어야만 하고, 그 밖에 당시의 자료와 유물이 현존하여야만 하고, 당시에 목격한 인물들이 증언하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를 들어 오늘날의 어떤 교회는 자체교회에서 전도한 신자는 없다시피하고, 타교회 타전도자의 전도에 의하여 그리스도인이 된 분, 또는 그 후손들이 이주하여 와 그 교회의 신도가  된 경우가 있다.  이렇게 이주하여 온 성도들 중에 섬기던 前교회는 없어지고 그때의 복음전도자(목회자)도 세상을 뜨고 없다.  그렇다면 이주하여오기 전의 교회와 그 교회 복음전도자(목회자)가 전파한 복음은 무효한 것인가?  무효하다면 이주하여온 이 신도들 또한 그리스도인이 아니여야 하지 않겠는가?    필자는 참으로 부끄러운 우문(愚問)을 남기게 되었다.

 


          복음 전도에는 명예나, 자랑이나, 자기의 이익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그리스도와 그의 복음그리고 십자가만이 우선할 뿐이다. 
          복음전도의 진정한 역사는 주님의 나라인 천국의 생명록에 다 기록되어 있다.




            2007. 08. 23
            깊은산골(長山)
            함동진
            http://www.poet.or.kr/hd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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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 믿고 손해 보기

  도무지 예수를 믿고 손해볼 요량이 전혀 안 보인다.
  한국 기독교의 선교나 전도 용어는 ‘예수 축복’으로 점철되어 있다.
  예수를 믿으면 이익이 오고, 부자가 된다. 기도한 대로 성취되고, 못 나을 병도 나을 것이다.
  기독교회에 입회하면 형제자매로 공동체가 되어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어 서로 나눌 수 있는 이익은 한량이 없다.
  예수를 믿으면 손해가 없고, 최소한 보험에 드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제 이런 논리로 이룬 전도의 성과도 정체되거나 감소하고 있다.

  한국 기독교는 내부의 급성장과 더불어 해외 선교의 꿈에도 부풀었다. 대단히 빠른 전환이며, 기적 같은 변화이다. 그런데 참된 선교가 지닌 진정한 헌신이나 성숙된 희생보다는 과시와 우위라는 양적 성취의 추구가 만연해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일각에선 한국 기독교의 해외 선교 프로그램이야말로 ‘신제국주의 선교’라고 혹평하고 있다. 한국 기독교는 지척의 이웃이 지닌 고통에 인색하고, 직접 속해 있는 사회의 그늘에 고개를 돌린 채 해외 선교의 허영에 부풀어 있다는 비판에도 직면해 있다.

  올해는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 제일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라고 치는 대부흥운동이 100주년 되는 해이다. 1903년부터 시작되어 1907년 절정에 이른 이 사건의 의의는 한마디로 교회와 크리스천의 잘못에 대한 진솔한 회개와 반성이었다. 당시 한국 주재 선교사 하디는 자신의 ‘교만’과 ‘마음의 포악함’ 그리고 ‘신앙의 부족함’을 자책했다. 선교 대상인 한국인들에게 취한 오만했던 태도를 고백한 사건이었다. 선교사의 죄책 고백은 한국인 지도자 길선주의 회개와 고백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회개운동이 교회의 갱신과 그 결과로서의 부흥을 가져다 준 것이다.

  현재 한국 기독교는 선교 수용 이후 최대 성장의 절정에서 최고의 위기를 맞았다. 위기는 한국 기독교의 교만과 독선, 이기심에 연결되어 있다. 한국 사회 다수는 한국 기독교에 대해 헌신적 공동체로서의 기대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이대로라면 서구의 기독교가 걸어 간 길과 같은 한국 기독교의 좌절을 지켜보아야 할지 모른다.
  기독교의 개혁은 메시지의 변화가 있어야 가능하다. 한 통계에 의하면 현재 한국 교회 강단의 80% 이상 설교가 ‘예수 축복’의 주제라고 한다.

  예수를 믿은 자가 치르는 피땀 어린 파종(播種)은 없고 그 열매의 단맛만 거두는 축복의 메시지만 난무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기독교의 역사 안에는 대속(代贖)과 수난자로서의 전통도 강하게 남아 있다. 단적으로 3·1운동 당시 기독교는 소수였으나 이 운동의 결과로 짊어져야 했던 책임의 중심에 서 있었다. 거기에는 당시 한국 교회의 건강한 메시지가 가장 큰 힘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당시의 크리스천들은 예수를 믿는다는 일이 이익의 길로 가는 것이 아니라 희생과 고난을 마다하지 않는, 참 은총의 길로 가는 것이라는 성숙한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죽어야 될 자리, 손실을 보아야 할 자리가 있다면 예수를 믿는 자들이 먼저 나서야 할 것이라는, 어쩌면 당연한 이치를 깨닫고 있었다.

  기독교는 위기가 기회가 되는 종교이다. 작은 모퉁이에서부터 ‘예수 믿고 손해 보기 운동’이 전개된다면 한국 기독교의 희망은 살아날 수 있다.  진정한 운동이 벌어지면 한국 사회가 크리스천과 교회를 더는 이기적 집단으로 보지 않는 길이 열릴 것이다. 그 운동의 과정에서 저 100 년 전 이 땅의 선교사들이나 크리스천들처럼 회개운동도 재현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크리스천들이여! 바로 이 역사 안에서 십자가를 먼저 질 용기가 있는가? 다른 이에 앞서 겸손히 나아가 손해볼 자신이 있는가?  여기에 참으로 손드는 자 열만 찾는다면(창세기 18: 32) 한국 기독교에 빛 다시 있으리라.   
          (조선일보 [시론]2007.09.08 서정민 연세대 교수·신학 http://news.chosun.com)
              *창세기 18: 32  "32 아브라함이 또 가로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말씀하리이다 거기서 십 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내가 십 인을 인하여도 멸하지 아니하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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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의교회의 신약교회로의 환원운동*****

      ※ 그리스도의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설립하셨고 성경적인 기초 위에 창건되었으며, 성경에 기인된 시기(사도행전시대)에 교파가 파생되지 않고 단 하나의 교회(그리스도의교회)로 시작되었다.
          그리스도의교회 환원운동은 기독교 초기의 신약성서에 기록된 교회로 돌아가자는 운동이다.
          범람하고 있는  *인위적인 신조· *인위적인 교리· *인위적인 교파와 조직· *인위적인 교회헌법 등이 신약성서에 기록된 그리스도인들이 지켜야할 규범들을 왜곡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의 법 자체가 성서'이다.  성서의 기록된 대로 준수하고 집행하면 된다. 성서에 없는 그 밖의 다른 것을 가미하여 제정하는 규례들은 주님을 슬프게 하는 성서를 벗어난 사람의 생각일 뿐이다.

                  성경이 말하는 것은 우리가 말하고
                  성경이 말하지 않는 것은 우리도 말하지 않는다
                  우리의 신조는 성경의 가르침뿐이며
                  우리가 믿는 이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이시다
                  우리 신앙의 결정은 성경의 가르침에만 의한다.
                                    (딤후3:13-17,  벧후1:20,21,  히13:8,  히7:26-28,  마16:18)
                       

                            ♣♣♣
                              성부
                              성자
                              성신
          ◐◐ 하나가되자!  요17:21, 엡4:3-6 ◑◐
                              말씀                       
                              교회
                              교리
                              신조
                              믿음
                              세례
                          주의 만찬 
                          ▣▣ ▣▣


          <환원운동(Restoration Movement)의 지침> 

                  ① 책은 성경만(No book but the Bible)
                  ② 신조는 그리스도만(No creed but Christ)
                  ③ 명칭은 하나님의 것으로만(No name but the Divine)
                  ④ 주장은 복음만(No plea but the Gospel)
                  ⑤ 일치의 기초는 성경으로만(No basic of unity but the Scriptural)
                  ⑥ 본질에는 일치를(In essential Unity)
                  ⑦ 의견에는 자유를(To opinions Liberty)
                  ⑧ 매사에는 사랑으로 한다(In all things Charity).

              <환원운동의 주장>

                  ① of the Christ(그리스도의),
                  ② by the Bible(성경으로),
                  ③ for the Christian(그리스도인을 위하여),
                  ④ with the Gospel(복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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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그리스도의교회 환원운동본부 제공
          KOREAN CHRISTIAN CHURCH  RESTORATION MOVEMENT CENTER
                                        1970 개설
                                        함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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