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그리스도의교회 75주년기념대회라고 한 이유(대회명칭) 글에 오른 댓글)
본문
(한국그리스도의교회 75주년기념대회라고 한 이유(대회명칭) 글에 오른 댓글)
저의 blog에 올린 <(환원운동75주년기념)한국그리스도의교회 75주년기념대회라고 한 이유>에
아래와 같은 댓글이 올려졌기에 여기에 옮겨왔습니다. 참고바랍니다. -함동진.
*****************************
greatpioneer greatpioneer ukkeyssy2002@hanmail.net Y 2007.08.06 10:59
성락소목사님은 애초에 구세군이 영국군대인줄 잘못 알고, 바깥사돈인 보령군수 출신인 이완호씨와 그의 동생 성낙철등과 구센군에 입대하였으나, 군대가 아닌 종교단체임을 알고 , 독립운동에 도움이 않되겠다 싶어 , 구세군의 연구작업을 하였고," 2003년, 그의 손자가 구세군에 기증한 , 자필 구세군 교육강령, 사진등등" 사돈과 구세군을 나와, 인연을 맺은 성경을 연구하다가, 오늘의 한국의 그리스도교회가 발전하게 된것이다. 그의 동생인 성낙철은 계속 구세군에 남았다. 그는 이 응목목사 등 많은 구세군원로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케 하였다. 그의 아들 성 수경목사도 병원을 운영하며 여러 교회를 세웠으나, 70년대 당시의 그리스도계의 여러 문제점으로 부각되지 못했다. 현재 그의 논문이 삭아가고 있으나, 보장자의 어려움으로 파손되어가고 있고, 성낙소목사의 살아생전의 설교와 강의의 테이프도 보장자의 경제적어려움으로 파손되어 가고 있다. 수많은 선교사들과의 사진도 마찬가지다.
***********************************
(함동진 blog의 글 원문)
(환원운동75주년기념)한국그리스도의교회 75주년기념대회라고 한 이유(대회명칭)
대회명칭을
한국그리스도의교회 75주년기념대회라고 한 이유
한국에 환원운동이 처음 소개된 것은 일본주재 미국인 월리엄 커닝함(William D. Cunningham) 선교사가 1924년 10월에 파송한 한국인 전도인 이완건에 의해서 였습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나 사실 확인에 대한 문제점이 있어 지난 협의회 총회에서는 1927년 성낙소 목사께서 충남 부여군 세도면 화수리에 세운 기독지교회(基督之敎會)를 자생적 교회로 인정하고 한국그리스도의교회 출발의 깃점(起點)을 1927년으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자생적 교회에 대한 부담감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왜냐하면 부여의 기독교회가 당시의 주변상황에서의 기독교회인지 아니면 미국에서 일어난 환원운동을 하는 그리스도의교회인지 연구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낙소 목사의 1927년 이후 행적을 살펴보면 일본에서 그리스도의교회 선교부 선교사로 있던 커닝함의 초청으로 1930년에 일본으로 가서 커닝함을 만나고 1년여 요코하마 조선인 교회에 부임하였습니다. 그후 성낙소 목사는 1931년 11월 15일에 경성에 도착하여 경동에 거주하며 선교를 하려고 하였지만 일제의 정책에 따라 조선총독부 종교과에 포교계를 내어 등록한 후에야 포교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성낙소 목사는 동경 사곡선교회 기독의교회라는 명칭으로 제출하여 등록하였습니다. 그 해가 1932년도입니다. 그 후 계동, 공덕동, 청엽동, 내수동, 인천 송현동 외 2곳과 평북 구성에 기독의교회를 1년 반 동안 7개 교회를 설립하였습니다. 이 해에 쉐리(J. Michael Shelly)가 선교사로 왔다가 9개월만에 고향인 오레건주로 돌아갔습니다.
따라서 한국땅에 공식적으로 기독지교회(그리스도의교화)로 등록했던 시점인 1932년을 기준으로 하여 75주년이라 하였습니다. 75주년기념대회를 '교회설립75주년'이라든가 '선교75주년'이라는 목적을 가진 75주년으로 결정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설립이나 선교라는 단어는 빼고 단순히 '75주년기념대회'라고 하였습니다. 만약 부여에 있는 교회가 현존한다면 말할 것 없이 80주년 교회설립기념대회라고 해야 되겠지만 공교롭게도 부여에 있던 교회는 현존하지 않습니다. 현존하지 않는 교회를 깃점으로 삼고 대회를 치룬다는 것에 회의를 가졌습니다. 혹자는 필운동교회의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필운동교회의 탄생 역사를 보면 전혀 부여의 교회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물론 성낙소 목사라는 동일인이 두 교회를 시작했던 것임은 자명하게 받아들이지만 부여교회가 서울 필운동으로 이전되었다는 것은 납득이 안 된다고 봅니다. 또한 75주년이라는 것은 누구의 명령에 의해서가 아닌 공식적인 협의회를 통해 결정된 것입니다.
대회를 함에 있어 75라는 의미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 보통대회는 25, 50, 75, 100이라는 숫자적 의미를 갖고 치루기 때문입니다. 이 대회는 역사적인 것을 기리는 것 보다 향후 그리스도의교회 비전을 위한 준비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합니다. 따라서 역사적 가치 기준보다 한국에 그리스도의교회가 한국땅에 현존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또한 우리 그리스도의교회가 우리나라에서 더 이상 교회 이름 때문에 선교에 지장이 있는 아픔을 뛰어 넘고 싶었습니다. 한국 선교에 부흥을 이루는 중심에 서는 교회가 되는 것을 더욱 목적으로 삼았습니다. 점프(JUMP)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대회를 치루는 것입니다. 항간에 오해를 하시는 분들이 계신 같은데 어떻게 일일이 답변할 수 있겠습니까? 80년이나 75주년이나 그 중심에 성낙소 목사가 있습니다. 한국 땅에 처음으로 그리스도의교회를 세웠고 등록하신 분이 성낙소 목사입니다.
끝으로, 75주년 기념대회는 특정한 사람을 위하여 준비된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우리 그리스도의 교회가 새로운 부흥의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 준비하는 것입니다.
(위의 글 출처 : 大會會報中에서)
한국그리스도의교회 75주년기념대회
The 75th Aniversary Covention of
Korea Christian Churches and churches of Christ
온 교회여 일어나 성서로 돌아가자!
회보(會報)
JUMP UP !
"Return to Bible 성서로 돌아가자!"
-------------------
*2007년8월06일∼08일
*한국그리스도의교회 교단창립75주년기념대회 (올림픽공원 올림픽홀 )
*(그리스도의교회협의회 : 서울 종로구 충신동 62-12 02-3676. 9995∼7 http://www.cco.or.kr )
***********************
http://www.poet.or.kr/hdj
http://cafe.daum.net/hamdj
http://cafe.naver.com/hamdongjin.cafe
저의 blog에 올린 <(환원운동75주년기념)한국그리스도의교회 75주년기념대회라고 한 이유>에
아래와 같은 댓글이 올려졌기에 여기에 옮겨왔습니다. 참고바랍니다. -함동진.
*****************************
greatpioneer greatpioneer ukkeyssy2002@hanmail.net Y 2007.08.06 10:59
성락소목사님은 애초에 구세군이 영국군대인줄 잘못 알고, 바깥사돈인 보령군수 출신인 이완호씨와 그의 동생 성낙철등과 구센군에 입대하였으나, 군대가 아닌 종교단체임을 알고 , 독립운동에 도움이 않되겠다 싶어 , 구세군의 연구작업을 하였고," 2003년, 그의 손자가 구세군에 기증한 , 자필 구세군 교육강령, 사진등등" 사돈과 구세군을 나와, 인연을 맺은 성경을 연구하다가, 오늘의 한국의 그리스도교회가 발전하게 된것이다. 그의 동생인 성낙철은 계속 구세군에 남았다. 그는 이 응목목사 등 많은 구세군원로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케 하였다. 그의 아들 성 수경목사도 병원을 운영하며 여러 교회를 세웠으나, 70년대 당시의 그리스도계의 여러 문제점으로 부각되지 못했다. 현재 그의 논문이 삭아가고 있으나, 보장자의 어려움으로 파손되어가고 있고, 성낙소목사의 살아생전의 설교와 강의의 테이프도 보장자의 경제적어려움으로 파손되어 가고 있다. 수많은 선교사들과의 사진도 마찬가지다.
***********************************
(함동진 blog의 글 원문)
(환원운동75주년기념)한국그리스도의교회 75주년기념대회라고 한 이유(대회명칭)
대회명칭을
한국그리스도의교회 75주년기념대회라고 한 이유
한국에 환원운동이 처음 소개된 것은 일본주재 미국인 월리엄 커닝함(William D. Cunningham) 선교사가 1924년 10월에 파송한 한국인 전도인 이완건에 의해서 였습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나 사실 확인에 대한 문제점이 있어 지난 협의회 총회에서는 1927년 성낙소 목사께서 충남 부여군 세도면 화수리에 세운 기독지교회(基督之敎會)를 자생적 교회로 인정하고 한국그리스도의교회 출발의 깃점(起點)을 1927년으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자생적 교회에 대한 부담감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왜냐하면 부여의 기독교회가 당시의 주변상황에서의 기독교회인지 아니면 미국에서 일어난 환원운동을 하는 그리스도의교회인지 연구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낙소 목사의 1927년 이후 행적을 살펴보면 일본에서 그리스도의교회 선교부 선교사로 있던 커닝함의 초청으로 1930년에 일본으로 가서 커닝함을 만나고 1년여 요코하마 조선인 교회에 부임하였습니다. 그후 성낙소 목사는 1931년 11월 15일에 경성에 도착하여 경동에 거주하며 선교를 하려고 하였지만 일제의 정책에 따라 조선총독부 종교과에 포교계를 내어 등록한 후에야 포교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성낙소 목사는 동경 사곡선교회 기독의교회라는 명칭으로 제출하여 등록하였습니다. 그 해가 1932년도입니다. 그 후 계동, 공덕동, 청엽동, 내수동, 인천 송현동 외 2곳과 평북 구성에 기독의교회를 1년 반 동안 7개 교회를 설립하였습니다. 이 해에 쉐리(J. Michael Shelly)가 선교사로 왔다가 9개월만에 고향인 오레건주로 돌아갔습니다.
따라서 한국땅에 공식적으로 기독지교회(그리스도의교화)로 등록했던 시점인 1932년을 기준으로 하여 75주년이라 하였습니다. 75주년기념대회를 '교회설립75주년'이라든가 '선교75주년'이라는 목적을 가진 75주년으로 결정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설립이나 선교라는 단어는 빼고 단순히 '75주년기념대회'라고 하였습니다. 만약 부여에 있는 교회가 현존한다면 말할 것 없이 80주년 교회설립기념대회라고 해야 되겠지만 공교롭게도 부여에 있던 교회는 현존하지 않습니다. 현존하지 않는 교회를 깃점으로 삼고 대회를 치룬다는 것에 회의를 가졌습니다. 혹자는 필운동교회의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필운동교회의 탄생 역사를 보면 전혀 부여의 교회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물론 성낙소 목사라는 동일인이 두 교회를 시작했던 것임은 자명하게 받아들이지만 부여교회가 서울 필운동으로 이전되었다는 것은 납득이 안 된다고 봅니다. 또한 75주년이라는 것은 누구의 명령에 의해서가 아닌 공식적인 협의회를 통해 결정된 것입니다.
대회를 함에 있어 75라는 의미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 보통대회는 25, 50, 75, 100이라는 숫자적 의미를 갖고 치루기 때문입니다. 이 대회는 역사적인 것을 기리는 것 보다 향후 그리스도의교회 비전을 위한 준비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합니다. 따라서 역사적 가치 기준보다 한국에 그리스도의교회가 한국땅에 현존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또한 우리 그리스도의교회가 우리나라에서 더 이상 교회 이름 때문에 선교에 지장이 있는 아픔을 뛰어 넘고 싶었습니다. 한국 선교에 부흥을 이루는 중심에 서는 교회가 되는 것을 더욱 목적으로 삼았습니다. 점프(JUMP)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대회를 치루는 것입니다. 항간에 오해를 하시는 분들이 계신 같은데 어떻게 일일이 답변할 수 있겠습니까? 80년이나 75주년이나 그 중심에 성낙소 목사가 있습니다. 한국 땅에 처음으로 그리스도의교회를 세웠고 등록하신 분이 성낙소 목사입니다.
끝으로, 75주년 기념대회는 특정한 사람을 위하여 준비된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우리 그리스도의 교회가 새로운 부흥의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 준비하는 것입니다.
(위의 글 출처 : 大會會報中에서)
한국그리스도의교회 75주년기념대회
The 75th Aniversary Covention of
Korea Christian Churches and churches of Christ
온 교회여 일어나 성서로 돌아가자!
회보(會報)
JUMP UP !
"Return to Bible 성서로 돌아가자!"
-------------------
*2007년8월06일∼08일
*한국그리스도의교회 교단창립75주년기념대회 (올림픽공원 올림픽홀 )
*(그리스도의교회협의회 : 서울 종로구 충신동 62-12 02-3676. 9995∼7 http://www.cco.or.kr )
***********************
http://www.poet.or.kr/hdj
http://cafe.daum.net/hamdj
http://cafe.naver.com/hamdongjin.cafe
- 이전글 12월 교도소 사역 보고드립니다. 08.12.19
- 다음글 이젠 교회 수첩과 교회 요람 제작이 달라져야 합니다. 08.12.06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