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남침전쟁 -UN참전 한국지원 54개 국가 / 함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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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6.25남침 한국전쟁 -UN참전 한국지원 54개 국가
6.25남침 한국전쟁
-UN참전 한국지원 54개 국가 를 잊지말자
자료: 함동진 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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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사회주의자들은 종교를 용납하지 않는다. 특히 기독교를 거부한다. 그들은 교회를 파괴하고 기독교인들을 탄압. 체포. 구금. 고문. 인민재판. 학살. 또는 수용소에 격리 강제노역으로 병들어 죽게하였다.
일제로부터 해방후 북한에서 그러하였고 지금도 그러하다, 공산괴뢰군이 6.25남침전쟁을 벌여 남한을 침범하였을 때에도 많은 기독교인들이 고통속에서 희생되었고 순교자가 속출하였었다. 그리고 생사를 모르는 납북자도 있었다. 만약 UN에서 한국전쟁 때에 지원하고 싸워주지 않았다면 오늘날 한국기독교회의 존재와 기독교인들의 샌앙생활이 유지되었을까? UN의 참전과 지원은 하나님께서 도우신 크신 은총일 수밖에 없었음을 감사드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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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6.25 한국전쟁 참전16개국 국가별 피해 내용(단위: 명)
참전국 ㅣ 전사/사망 ㅣ 부상 ㅣ 실종 ㅣ 포로 ㅣ 합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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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54,246 468,659 739 4,439 528,0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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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1,078 2,674 - 979 4,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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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721 2,493 175 234 3,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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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레일리아 339 1,216 - 28 1,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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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312 1.212 32 1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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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262 1,008 7 12 1,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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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188 459 - - 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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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 143 567 69 30 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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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129 1,139 5 - 1,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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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오피아 121 536 - - 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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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119 463 3 - 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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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112 299 16 41 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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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104 336 - 1 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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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공화국 34 34 - 8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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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23 79 1 -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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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셈부르크 2 15 - -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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總 計 57,933 481,155 1,047 5,773 545,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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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6.25 한국전쟁 참전 의무지원국(6 개국)
인도 / 덴마크 / 스웨덴 / 노르웨이 / 이탈리아 / 서독.
3. 6.25 한국전쟁 참전 물자지원국(32 개국)
대만 / 도미니카공화국 / 레바논 / 리베리아 / 멕시코 / 모나코 / 미얀마 / 베네수엘라 / 베트남 / 브라질 / 사우디아라비아 / 스위스 / 아르헨티나 / 아이슬란드 / 에콰도르 / 엘살바도르 / 오스트리아 / 온두라스 / 우루과이 / 이스라엘 / 이집트 / 인도네시아 / 일본 / 칠레 / 캄보디아 / 코스타리카 / 쿠바 / 파나마 / 파라과이 / 파키스탄 / 페루 / 아이티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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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팡이 핀 꿈속을 헤매는 공산당사회주의혁명과 주체사상
함동진
블리디미르 일리치 레닌(Vladimir Il'ich Lenin, 1870.4.22 - 1924.1.21)은 "참다운 자유는 귀중한 것, 무척 귀중한 것이기 때문에 배급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외치며, 혁명한다면서 남긴 것은 전쟁과 냉전시대와 무참한 마르크스주의 공산독재혁명씨앗만 퍼트리고 1924. 1. 21. 죽고 말았다.
우리 대한민국은 레닌과 그의 추종자(소련의 스탈린 등)가 뿌린 공산주의 때문에 북한공산주의자들로부터 1950. 6. 25. 기습남침을 당하여 혹독한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어야 했고 아직도 그 아픈 상흔은 분단의 고통과 함께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6.25전쟁 중 대한민국의 운명이 위태로울 때에 UN에서는 미국을 비롯한 54개국(6․25한국전쟁 참전 16개국 / 6.25 한국전쟁 의무지원국 6 개국 / 6.25 한국전쟁 물자지원국 32 개국)의 국가가 유엔군으로 참전하여 우리 대한민국에게 승리를 안겨준 사실을 망각해서는 아니되겠다. 지금에 와서 보면 UN 참전국들의 국명조차 우리들의 기억에서 희미해져가고 관심 밖에 있음을 새삼 느껴진다.
세계제2차대전 후 소련과 중공은 제 국민을 먹여살릴 능력도 없이 생활물자도 바닥난 상태에서 무슨 공산혁명을 하겠다고 북한을 꼬드겨 앞세워 6.25전쟁을 이르켰다가 능력없는 제풀에 꺾이어 북한으로 부터 자진철수하였다. 이에 고립무원의 북한은 주체사상을 만들고 한층 공산독재체제로 강무장을 하며 군사와 무력증강에만 열을 올려왔다.
북한주민은 도탄에 빠졌고 굶주림으로 3백만이 죽어갔다. 기아를 탈피하고자 국경을 넘어 목숨을 걸고 탈출로 이어졌다. 체제에 불만을 품으면 죽이거나 혹독한 형벌을 가하였다. 그리고 강제수용소에서 처참하게 인권을 박탈당하고 유린된 채로 죽어갔다
북한은 이런 상황인데 6.25전쟁을 치룬지 59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북한정권은 자신들의 공산학정의 압박으로 인하여 헐벗고 굶주리는 북한인민들은 안중에도 없고, 달러와 온갖 물자원조로 도움을 준 대한민국과 대한민국국민에 대하여 원자폭탄 실험과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하면서 이를 무기삼아 공갈하며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하는 것을 공산혁명이라고 뇌깔인다.
아직도 곰팡이 핀 꿈속을 헤매는 공산혁명의 속성이요 근성이 아닐 수 없다.
1905년과 1917년 10월 러시아에서 발생한 혁명* 등으로 이룩된 것이 소련공산당 독제체제의 국가였다. 1991년 스탈린의 포악정치로 이어졌던 소련이 붕괴됨에 따라 그의 위성국들의 공산체제도 붕괴되었다. 따라서 프롤레타리아혁명(공산당혁명)은 인류 최초로 실시되었던 공산주의의 실험이었으나 大실패로 끝났다.
쓰레기에 던져 버려져 전세계가 외면하는 공산주의를 <주체사상>이라는 미명의 가면으로 고쳐 쓴 북한을 찬양하며 따르는 좌파, 진보파니 하면서 으쓱대는 이들을 보면 가관이 아닐 수 없다.
러시아의 10월혁명의 시발점을 살펴보면, 이를 사회주의 10월 혁명, 10월 혁명, 혹은 볼셰비키 혁명(十月革命)이라 한다. 1917년 2월 혁명에 이은 러시아 혁명의 두 번째 단계이었다. 두번째의 10월 혁명은 블라디미르 레닌의 지도하에 볼셰비키들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카를 마르크스의 사상에 기반한 20세기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이었다. 그러나 사회주의 10월 혁명의 주체는 레닌등의 사회주의 이론가들이 아니라 민중들이었다.
모스크바에 와 있던 일본언론인 특파원은 혁명의 기운이 달아오른 민중들의 모습에 대해 "노동자와 사병들이 근위병들의 탄압에도 혁명가를 부르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레닌 자신도 "혁명이 이렇게 빠르게 올 줄은 몰랐다"고 놀라와 하였다. 볼셰비키혁명(볼셰비키: 다수파란 말, 소수파는 멘세비키. 혁명과정에서 공산당이 다수파였으므로 볼세비키 혁명이라고 한다)으로 소련에 강력한 공산통치가 이루어졌으나 정작 10월혁명의 주체인 민중들은 여전히 헐벗고 굶주리며 탄압 당했고, 세월이 흐를 수록 공산산당 간부들만이 배불리 살았다. 이러한 소련의 공산통치는 멸망의 길로 치닫다 결국은 붕괴되고 말았다.
지금 북한의 통치자들은 북한의 민중들을 잘 살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굶기면서도 주체사상 혁명으로 내몰며 인권을 무시한 채 탄압하는 데에만 열중하고 있다.
★공산주의사회주의자들은 종교를 용납하지 않는다. 특히 기독교를 거부한다. 그들은 교회를 파괴하고 기독교인들을 탄압. 체포. 구금. 고문. 인민재판. 학살. 또는 수용소에 격리 강제노역으로 병들어 죽게하였다.
일제로부터 해방후 북한에서 그러하였고 지금도 그러하다, 공산괴뢰군이 6.25남침전쟁을 벌여 남한을 침범하였을 때에도 많은 기독교인들이 고통속에서 희생되었고 순교자가 속출하였었다. 그리고 생사를 모르는 납북자도 있었다. 만약 UN에서 한국전쟁 때에 지원하고 싸워주지 않았다면 오늘날 한국기독교회의 존재와 기독교인들의 샌앙생활이 유지되었을까? UN의 참전과 지원은 하나님께서 도우신 크신 은총일 수밖에 없었음을 감사드리자.
함동진 http://www.poet.or.kr/hd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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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한국전쟁
1951년 4월25일 밤 경기도 파주군 적성면 설마리 235고지. 영국군 29여단 글로스터셔부대가 사흘 전 시작된 중공군 3개 사단의 공격을 일곱 차례나 격퇴하고 나서 대대장 카네 중령은 말했다. "각자 알아서 후퇴하라. 나는 부상자들과 남겠다." 중공군 4만여명과 맞서 싸운 이 전투에서 영국군 50명이 전사하고 526명이 포로로 붙잡혔으며 56명만이 탈출했다.
▶설마리 격전을 비롯한 임진강 전투에서 영국군은 1개 여단 4000명 병력으로 중공군 4만명에 맞서 나흘을 용맹하게 버티면서 서울로 진격하던 중공군의 발목을 잡았다. 영국군 전사자 1100명 대부분이 임진강 전투에서 숨졌다. 생존한 참전용사 50여명은 지금도 런던에 있는 선술집 '임진 퍼브(Pub)'에서 모이고 일부는 해마다 4월이면 파주에 있는 설마리 전적기념비를 찾는다.
▶6·25 참전국들은 피흘려 싸운 전쟁을 잊지 않는다.
*캐나다는 작년에 가평 전투를 3부작 TV 다큐멘터리로 만들었고
*필리핀도 재작년에 다큐를 방영했다.
*미국은 중공군 인해전술에 근접전투와 백병전으로 맞섰던 양평 지평리 전투를 지금도 육군 전투교재로 쓴다. 미국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의 외곽순환도로 이름은 '한국전 기념 고속도로'이고
*호주 사관학교 건물 이름은 '가평'이다.
*캐나다 위니펙의 부대는 '캠프 가평'이다.
▶한국전쟁에서 16개국 유엔군 4만여명이 전사했다. 그러나 이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은 부산 유엔묘지와 경기도 지역 전적비쯤이다. 유엔묘지 1만1000명의 유해 대부분은 본국으로 옮겨갔고 영국군 885명을 비롯한 영연방 국가 전사자들이 남아 있다. 숨진 곳에 묻는 영국 풍속에 따른 것이다. 영국·뉴질랜드·호주의 참전 부대들은 지금도 가평·포천 등 전적비가 있는 지역 학교들에 장학금을 대준다.
▶더타임스 기자 등으로 한국에서 활동한 영국 저널리스트 앤드루 새먼이 '마지막 총알(To the Last Round)'이라는 책을 영국에서 펴냈다. 임진강 전투에 참전한 영국군 50여명을 2년 동안 만나 쓴 한국전쟁 논픽션이다. 그는 한국전쟁이 2차대전과 베트남전 틈바구니에서 잊혀져 가는 게 안타깝다고 했다. "나보다 한국인이나 한국 정부가 먼저 참전군인들 이야기를 발굴해 알려야 하지 않을까요." 그의 말에 낯이 뜨겁다. 우리가 한국전쟁을 세계 속에 잊혀진 전쟁으로 방치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돌아보게 된다. (조선일보[만물상] 2009.04.23 김동섭 논설위원 http://new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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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가 블리디미르 일리치 레닌[Vladimir Il'ich Lenin, 1870.4.22-1924.1.21]
본명은 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리야노프(Vladimir Ilich Ulyanov)이며, 공식명인 니콜라이 레닌은 1902년경부터 사용한 필명이다.
1917년 러시아 10월혁명의 중심인물로서 독일파 마르크스주의자 K.카우츠키의 사회민주주의에 대립하여 마르크스주의를 후진국 러시아에 적용함으로써 러시아파 마르크스주의를 발전시킨 혁명이론가이자 사상가이다.
볼가 강변의 심비르스크에서 교육자의 아들로 태어나, 1887년 황제 알렉산드르 3세의 암살계획에 참여하여 처형된 맏형 알렉산드르의 영향으로 혁명에 뜻을 두기 시작하였다.
카잔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는 한편, 1870년대에는 플레하노프에 의하여 러시아에 도입된 마르크스주의를 연구하여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었다. 이후 혁명운동에 투신하여 체포와 유형의 세월을 거친 뒤 1900년 국외로 망명, 1903년 브뤼셀과 런던에서 열린 러시아 사회민주당 제2차 대회에서 당원 자격문제로 마르토프와 맞서 직업혁명가주의를 관철시킴으로써 볼셰비키(다수파)가 되었다.
1905년 제1차 러시아혁명 직후 일단 귀국하였으나, 1907년 다시 망명하여 주로 스위스에 머물면서 연구와 저술에 종사하다가, 1917년 2월혁명 직후 독일이 제공한 봉인열차(封印列車)로 귀국하였다. 같은 해 11월 7일 무장봉기로 과도정부(過渡政府)를 전복하고 이른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표방하는 혁명정권을 수립한 다음, 러시아의 공산정권을 지키기 위하여 1919년 제3인터내셔널인 공산주의자 인터내셔널(약칭 코민테른)을 결성하였다.
1922년 뇌일혈 발작으로 와병, 마지막 1년은 실어증(失語症)까지 겹쳐 병상에서 지내다가, 1924년 사망하였다. (출처: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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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레타리아혁명 proletarian revolution
프롤레타리아트(노동자계급)가 지도주체가 되는 계급혁명을 통하여 일체의 자본주의적 관계를 소멸시키고 계급없는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해 나가는 과정으로 프롤레타리아혁명 이론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 〈공산당 선언〉 〈독일 이데올로기〉 등에서 이론화되었으며, 레닌에 의해 〈무엇을 할 것인가〉 〈국가와 혁명〉 등에서 발전되었다.
그에 따르면 프롤레타리아혁명의 과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계급대립을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적 지배를 통하여 폐절(廢絶)시키는 데 있다고 한다.
그것을 위해서는 먼저 종래의 국가기구에서 계급지배를 유지 ·강화해 온 군대 ·경찰 등 낡은 권력장치를 부수고, 노동자계급과 근로인민을 위한 새로운 국가기구를 세워야 한다고 보았다.
이 국가는 계급대립이 없는 공산주의 사회로의 이행기의 국가로서, 다음과 같은 기능을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① 종래 지배계급의 반혁명 음모를 분쇄하고, 국제적 간섭을 배제한다.
② 국가경제의 사회주의적 공업화, 농업의 집단화, 교육 ·사상면에서의 문화혁명 등을 통하여 사회주의를 건설한다.
③ 공산주의로의 이행을 보장하고 점차 사멸(死滅)하여 사회적 자치에 자리를 물려 준다.
이러한 프롤레타리아혁명은 1917년 러시아에서 레닌의 지도하에 실현되었으며, 그 후 동유럽과 중국 ·쿠바 ·베트남 등으로 확산되어 갔다.
그러나 혁명은 스탈린을 거치면서 점차 모순이 보이기 시작하였는데, 1985년 소련 공산당서기장이 된 고르바초프에 의하여 그러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개혁이 실시되었다.
그렇지만 체제 내적 개혁은 무위로 끝나고 1991년 소련이 붕괴됨으로써 인류 최초로 실시되었던 공산주의의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출처: 두산백과)
▶러시아혁명 Russian Revolution
917년 10월 러시아에서 발생한 프롤레타리아혁명으로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1905년의 제1차 러시아혁명과 1917년의 2월혁명을 포함하는 러시아의 사회변혁 혁명을 일컫는다.
1905∼1907년의 혁명을 소련에서는 제1차 러시아혁명이라 하였고, 1917년 3월(러시아 구력 2월)과 11월(동 10월)의 혁명을 유럽 ·미국에서는 각각 ‘3월혁명’ ‘11월혁명’이라고도 하지만, 소련에서는 전자를 ‘2월혁명’ 또는 ‘2월 부르주아 민주주의혁명’, 후자를 ‘대(大)10월 사회주의혁명’이라고 하였다. (출처: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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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당국, 소련붕괴 교훈 잊었나
국제사회의 계속되는 설득과 경고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5일 오전 장거리 로켓을 발사했다.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는 인공위성을 위한 우주발사체(space launch vehicle)라고 할지라도 탄도미사일과 기술적으로 매우 유사하므로 동북아와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도발행위다. 더구나 우리는 직접적 이해당사자로서 안보적 위협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과 일본 등 주요 관련국도 북한의 로켓 발사에 대해 국제사회의 안정에 위해가 됨을 지적하고 크게 우려하고 있다.
# 주민 굶겨가며 로켓 발사하다니
북한은 인공위성 발사가 모든 국가에 적용되는 평화적인 우주개발 권리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2006년 10월 북한의 핵실험 강행에 따라 북한에 적용되는 제재 조치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1718호는 우주의 평화적 이용의 자유라는 일반 국제법 원칙보다 우선한다는 게 국제사법재판소의 판시이다. 또한 안보리 결의안 1718호 5항에 규정된 ‘탄도미사일 관련 모든 활동 중단’이라는 문구는 모든 규제 대상을 최대한 넓게 설정하라는 취지이다. 따라서 탄도미사일과 기술적으로 유사한 위성 발사도 결의안의 금지된 활동에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특히 인도적 측면에서 볼 때 ‘먹는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채 주민을 굶겨가며 핵무기를 만들고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는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은 반인권적, 반인륜적이라고 비난받을 수밖에 없다. 로켓 발사는 발사장 건설비용을 제외하고도 3억 달러 정도 소요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이 이번 로켓 발사에 들인 3억 달러는 식량 100만 t 정도를 수입할 수 있는 엄청난 비용이다. 북한 당국이 이런 비용을 주민의 식량난 해소에 사용했다면 올 한 해 식량 부족량의 상당 부분을 충당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북한의 탈북여성은 식량난으로 단돈 몇십만 원에 중국 오지로 팔려간다. 또한 1만6000여 명의 탈북자가 경제난으로 북한을 떠나 한국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중국 몽골 태국 등 외국 땅을 떠도는 탈북자도 5만∼1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기본적으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빚어진 일이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은 북한이 로켓을 발사하던 날 ‘북한 인구의 40%가 넘는 870만 명이 몇 달 내 식량 원조를 시급히 필요로 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제난을 겪는 북한의 상황에서 막대한 비용이 드는 로켓 발사는 주민이 처한 어려운 식량난을 철저히 외면하는 매우 부도덕하고 무책임한 처사이다. 이런 무모한 행위가 북한에 결과적으로 손해가 된다는 점을 분명하게 각인시킬 필요가 있다. 북한으로 하여금 도발행위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일반적 견해이기도 하다.
# 핵무기-미사일 부족해 망했던가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규칙은 반드시 구속력이 있어야 하며, 위반은 반드시 처벌받아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강력한 국제사회의 반응이 필요한 때”라고 북한을 비판했다. 일본 정부도 현행 대북 제재조치를 1년 더 연장할 방침이다. 따라서 국제사회의 지원 중단과 제재로 북한의 경제 사정은 더욱 악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제 북한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눈을 돌려 주민의 ‘먹는 문제’ 등 민생을 해결하고 이를 위해 개혁 개방의 길, 정상국가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미국과 함께 한때 세계질서를 주도했던 소련이 붕괴한 것은 핵무기와 미사일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라 극심한 경제난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북한 당국자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남궁영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동아일보 [시론/남궁영]2009-04-07 http://ww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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