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꽃의 계절 6월이 오면 / 함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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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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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암 함봉표의 년보(松庵 咸鳳表의 年譜) (사진: 송암 함봉표 지사(松庵 咸鳳表 志士)
☞ 송암 함봉표는 정언관, 의관(正言官, 議官)인 父 명사 함장기(明沙 咸莊基 - 基昊, 兆海)와 母 파주 염씨(波州 廉氏)와의 사이에 七子女 중 次男으로 전남 장성군 황룡면 삼룡리(全南長城郡黃龍面三龍里 - 지금의 와룡리-臥龍里)에서 출생하다. ☞ 동학혁명(東學革命)을 겪다. ☞ 연옹 박선생 문하(然翁 朴先生 門下)에서 2年間 수학(受學)하다. ☞ 죽은거사 김대규 문하생(竹隱居士 金大奎 門下生)으로 2年間 受學하다. ☞ 朴然翁 先生 門下에서 2年間 수학(受學)한 後 16세가 될 때까지 가내(家內)에서 독학(獨學)을 하다. ☞ 광산 김영호(光山 金永鎬) 선생 門下에서 受學하다. 이 때에 社會가 극(極)히 혼란(混亂)하여 의지(意志)를 굳게하다. ☞ 장성 황룡면에서"<생즉의사 사즉의귀-生則義士 死則義鬼>-살아서는 의(義)를 위(爲)하여 싸우는 투사(鬪)士요, 죽어서도 義로운 귀신(鬼神)이되어 싸운다."라는 좌우명(座右銘)으로 의지(意志)와 정신(精神)을 삼아 분연(憤然)히 일어나 자위대(自衛隊)를 조직 인솔(組織 引率)하여 호남의용장(湖南義勇將)인 참봉 김태원 막하(參奉 金泰元 幕下)에 가담하다. ☞ 장성 황룡면에서장성군 황룡면 월암리(月岩里-鼓岩) 전투(戰鬪)에 참전(參戰)하여 일주야간 일본군부대(一晝夜間 日本軍部隊)와 대혈전(大血戰)을 벌여 日本軍을 총몰살(總沒殺)하는 전과(戰果)에 가담(加擔)하다. ☞ 羅州·靈岩·江津·海南에서 군자금조달운반책(軍資金調達運搬責)의 命令을 받들고 義兵 3人을 거느리고 羅州·靈岩·江津·海南 等地를 巡廻, 義兵支援을 꾀하는 元老들의 家宅을 秘密裏에 訪問, 軍資金受領調達의 任務를 完遂하다. ☞ 光州(光山) 魚登山에서光州(光山) 魚登山 戰鬪에 參戰하여 日兵과 血戰, 追擊하던 中 不幸하게도 義兵將 金泰元 將軍께서 戰死하므로 哀慕하고 痛哭하다. ☞ 光州(光山) 大峙里에서光州 大峙里 戰鬪에 參戰하여 日兵과 大血戰을 벌이며 追擊하여 日兵을 總 沒殺하고 武器를 노획하는 戰果에 加擔하다. ☞ 長城 自隱谷에서長成의 自隱谷戰鬪에 參戰, 日兵과 大血戰을 벌이며 追擊하는 戰果에 加擔하다. ☞ 羅州 古幕浦에서 羅州의 古幕浦 戰鬪에 參戰, 日軍駐屯所를 包圍하여 攻擊하다. 이 戰鬪에서 先鋒將 鄭 參尉의 指揮로 連戰連勝의 攻擊이 繼續되었으나 不幸하게도 先鋒將 鄭 參尉의 戰死로 哀慕하다. ☞ 日將 西村(니시무라)의 捕虜가 되어 拷問을 당하면서도 "生則義士 死則義鬼-살아서는 義로운 鬪士요, 죽어서도 義로운 鬼神이 되어 싸운다."라는 義兵 加擔時의 決意를 되세기며 意志와 節介를 屈하지 아니하다.(木浦刑務所 3個月 受刑) 이로써 가정이 敗家(破産)되어 훗날을 期約하고 杜門不出 隱居生活을 하던 中 參奉 金平淑의 次女인 金月林과 結婚을 하다. ☞ 大韓帝國의 國運이 不幸하여 韓日合邦이 되었다는 消息을 듣고 땅을치며 哀痛학 痛哭하다. ☞ 珍原面 栗谷里로 移住하여 農業에 熱中하는 한편 松沙 奇宇萬(蘆沙 奇正鎭의孫으로 義兵을 이르키고 日本을 排斥한 人物) 先生을 따르며 隱居生活을 계속하다.(義兵決意를 못버림). ☞ 장자 태영<영주,창현>(長子 泰英<英柱,唱泫>)을 낳다. <註>: 창현 함태영 목사(唱泫 咸泰英 牧師 1914. 5. 24∼1983. 11. 28 조선일보 인터넷 인물 DB에 수록 - 자세한 인적사항은 www.poet.or.kr/hdj <문학의즐거움>詩人 함동진의 홈페이지 참조. 창현 함태영 목사는 함동진의 父이다. ☞ 동북면 남산리(東化面 南山里)로 이주하여 수년간 농업(數年間 農業)을 경영(經營)하다. 이 때에도 춘추성제(春秋聖祭)를 계속 집례(執禮)하다. ☞ 자산(自産)과 자비(自費)로 本家에 사립학교(私立學校)를 설립(設立)하고, 교사김종운(敎師 金鐘雲)을 임명(任命)하여 자신-봉표(自身-鳳表)가 校長이 되었고, 생도(生徒)의 수(數)는 백여명(百餘名)으로 수년간 교육(數年間 敎育)을 하다. ☞ 기미(己未) 3·1 독립운동(獨立運動)이 일어 대한독립만세(大韓獨立萬歲)를 천지(天地)가 진동(振動)하도록 높이 부르고, 민족(民族)을 교육(敎育)으로 깨우쳐 항일정신(抗日精神)을 기르는데 힘쓰다. ☞ 모친(母親)이 별세(別世)하여 동귀산 고조묘소(東貴山 高祖墓所) 아래 부친묘(父親墓)와 쌍묘(雙墓)로 합장(合葬)하고 호천망극(昊天罔極-하늘같이 가없는은혜)하며 초토(草土)에서 근신(謹愼)하다. ☞ 군(郡)의 사회유지회의 요망(社會有志會議 要望)에 의(依)하여 소작상조회 감사(小作相助會 監司)에 피선(被選)된 後, 회장 김경환(會長 金璟煥)씨의 협력하(協力下)에 전답지세(田畓地稅)를 소작인(小作人)이 선세(先稅)로 부담(負擔) 하느냐, 부호(富戶)가 자진납부(自進納付) 하느냐는 일로 각처(各處)의 지주(地主)들 간(間)에 언쟁(言爭)과 다툼이 있으므로 각면(各面)에 설명회(說明會)를 개최(開催)하여 지세(地稅)는 완전(完全)히 지주(地主)의 부담(負擔)으로 하여 소작인(小作人)을 보호(保護)하고 小作人의 離農을 防止하다. ☞ 2月에 求禮地域方面을 돌아보다. ☞ 5月에는 구례 봉서리(求禮 鳳西里)로 移住, 土地를 개간 농업(開墾 農業)을 經營하던 中 7年間이나 天災로서 한발(旱魃)이 들다. ☞ 繼續된 凶年으로 因한 生活苦로 不得已 順天郡(昇州) 外西面 長山里 12 番地에 새로히 기반(基盤)을 造成하여 移住하다. 이곳 長山里에서 田畓을 開墾하며 "自力更生"의 意志를 圖謀하여 農業을 經營하다. ☞ 地域區 農民會 會員들의 要望에 依하여 自力更生委員長에 피선(被選)된 後에 뜻하는 바 民風을 改善하고, 農業方法을 改良하며, 靑少年 兒童을 敎育키 爲하여 私設學習場을 運營 民族意識을 고취(高趣)하다. ☞ 武科하여 주부-증 병조참판(主簿-贈 兵曹參判)을 지내고 임진왜란(壬辰倭亂)때 義兵을 이끌고 도원수 권율(都元帥 權栗)을 따라 행주전투(幸州戰鬪)에서 戰死하고 선무원종 종훈(宣武原從 從勳)에 참여한 수정공 함덕립(水亭公 咸德立 -승주·구례·보성 地域의 江陵咸氏一家가 모시는 派先祖)의 墓所 神道碑 設立을 위한 모임을 發起한 바 종제 우현(從弟 宇鉉)과 종순(鐘淳)이 協力하여 卽時 設立하고 碑를 刻하고 이름을 넣다. ☞ 地域區民의 모임인 애림계(愛林契)의 長에 被選되다. ☞ 農民들의 모임인 공려회(共勵會)의 長과 식산계(殖産契)의 主事로 被選되어 營農事業을 改善하여 이에 必要한 資金을 조달하다. ☞ 竹山里 6代祖墓祭位의 沓 2筆地와 증조산위(曾祖山位) 土地 沓 1筆地, 전 1筆地, 垈地 1筆地를 買入하여 호제(護祭)하다. ☞ 農民指導上 必要에 依하여 長城郡의 뽕나무農園의 누에치기를 視察하고, 光州의 모범농장(模範農場)과 방직공장(紡織工場), 제사공장(製絲工場) 等을 視察하다. ☞ 外西國民學校 學務委員에 被選되어 3回 連任하였으며 向後 6年間 校務에 힘쓰다. ☞ 水原의 模範農場을 視察하다. ☞ 學術指導, 講習指導 功勞로 表彰을 받다. ☞ 長孫 東振(그리스도의교회 목사 唱泫 咸泰英의 長子) 태어나다. <註>: 함동진 시인-「문학의즐거움」홈페이지 www.poet.or.kr/hdj 참조. ☞ 土地開拓優良成績功勞로 表彰을 받다. ☞ 淸日戰爭으로 四海가 분분(紛紛)하다. ☞ 世界大戰宣戰布告와 포성(砲聲)으로 天下가 진동(振動) 地球의 變動이 일어나 초목금수(草木禽獸)가 다 죽어가고 民間人들은 定處없이 흐터져 방황(彷徨)하는 日帝天下의 無情의 歲月 34年을 지내다.( 註 : 日帝天下에서 굴욕적-屈辱的인 生活의 한탄-恨歎 섞인 말이다.) ☞ 日帝天下의 戰亂이 빨리 끝나고 太平스런 平和가 오라고 소리 높여 부르짖을 때에, 우리 大韓國 곧 새로운 大韓民國의 獨立萬歲 소리가 天地를 振動하니 萬物이 춤을 추며 和答하도다. ☞韓國民主黨에 加入하여 建國運動에 노심초사(勞心焦思)하다. ☞ 本來의 (아호)雅號인 松原을 松庵으로 改號하고 雅號를 따서 長山里12番地 本家 뒷東山 山頂에 松庵亭을 건립하여 子孫들에게 松庵의 意志와 精神을 계승(繼承)토록 하다. ☞ 回甲日에는 子女들이 잔치상을 陳設하고 베푼 헌수(獻壽)에 鄕里의 모든 벗들을 招待하여 술을 돌리며 詩 읊기를 3日間 하고 詩集을 이루니 락광세지성사(樂曠世之盛事 - 세상에 비길 바 없는 가장 즐거움)하다. 또한 장산리 山12番地에 자신의 假墓를 準備, 封墳을 만들고 이로 하여금 門中의 山으로 삼도록 하다. ☞ 農民會長에 被選되다. ☞ 地域區民 要望에 依하여 殖産契主事에 被選되다. ☞ 北韓共産集團의 南侵, 6·25事變 戰爭으로 杜門不出 隱居生活을 하다. 鄕里의 指導者이며 共産黨에 非協助한 罪目으로 장자 창현 함태영 목사(親美波 罪目)와 함께 內務署에 연행되어 收監되는 苦痛을 겪었으나 天運으로, 人心 좋은 善行人 인정되어 풀려나다. ☞ (家族祭日 陰曆3月24日) 午後4時 全羅南道 昇州郡 外西面 長山里 12番地 自宅에서 老患으로 逝去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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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 이 年譜는 松庵 咸鳳表 志士의 親筆 家乘譜를 土臺로 번역작성(飜譯作成)됨. 또 咸 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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