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자처럼 살았던 그리스도의 교회 죤 힐선교사의 소천에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페이지 정보 김상호 댓글 0 조회 26,177 2009.11.06 23:32 목록 관리 수정 삭제 본문 장성우 (Homepage) - Download #1 : photo015.jpg (17.2 KB), Download : 1 마지막 생애까지 고령에도 불구하시고 택시운전을 하며 한국교회를 도왔던성자처럼 살았던 죤 힐 선교사님이 2009년 11월 5일 96세를 사시다가 영원한 나라에가신 님에게 삼가 애도를 표합니다그는 정말 한국교회를 사랑했습니다... 그는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를 사랑하고 믿음이 좋은 진실한 신앙인였습니다미국 그리스도의 교회로부터 파송된 어느 선교사보다 한국에 오래 거주했던 선교사였습니다 1939년 처음 한국에 와서, 체이스선교사와 그리스도의 교회를 돕고,1939년과 1940년에 고아원 사역을 하며 돕기 시작했고,1940년 가을, 채이스가 미국으로 돌아간 후, 죤 힐은 한국인 목회자 양성을 위해서 성경학교를 다시 열었으나 어느 날 오후 갑자기 일본인 경찰이 선교부 마당에 들어서서 허가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성경학교를 폐쇄하라고 탄압해서 폐쇄하고 미국으로 잠시 돌아 갔습니다죤 힐은 다시 가족과 함께 1948년 2월 18일에 한국으로 되돌아왔고, 서울 성서 신학교는 1949년 3월 15일에 시작되었습니다. 그때 신학교 교수로 봉직했던 분들이 최상현, 성낙소, 백낙중이었습니다. 학생 수가 70명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의 교회들이 새로 세워지기도 했고, 인간이 세운 교파 교단들로부터 신약성서 그리스도의 교회로 환원해 오기도 하였습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 공산군의 갑작스런 남한 침공으로 한국전쟁이 발발하기까지만 해도 그리스도의 교회들이 크게 성장하고 있었습니다.전쟁발발로 인해서 힐선교사 가족은 일본으로 잠시 피신했다가 1950년 11월 한국에 다시 돌아 왔습니다그리고 서울 장충동에 있는 임대 건물에서 성경학교가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1951년 8월 4일 "크리스찬 밋션 고아원"을 시작했습니다. 인천에 고아원을 세워 도왔습니다죤 힐은 1955년 잠시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 목회를 하고 버틀리 대학교에서 문학석사학위를 받고 1959년에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대전에서 정착하고 1959년 12월 1일, 대전 성서 신학교를 세웠습니다. 일 년 가량 후에 한국 성서 신학교로 이름이 바꿨습니다. 그때에는 한국 성서 신학교가 한국에서 운영되는 유일한 그리스도의 교회 신학교였습니다. 힐 힐(1959-1971년까지 교장 역임)이었습니다.1959년 개교이래 한국 성서 신학교는 90명 이상의 젊은이들을 졸업시켰습니다. 그들 중 많은 수가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의 목회자로 섬기고 있습니다. 1969년 봄에, 대전에 새로운 신학교 건물의 건축이 시작되었습니다. 김찬영목사과 그의 넉넉한 미국인 후원자들의 힘있는 도움으로 1972년에 완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후임으로 김찬영목사는 1972년 1월 21일 이후 한국 성서 신학교의 교장으로 재직했습니다. 그리스도의 교회에 위대한 선교사위대한 별은 사라졌습니다그러나 그는 이제 그가 염원했던 영원한 나라에서 주님의 품 안에서 영생복락을 누릴 것입니다 첨부파일 힐 요한 선교사 내외.bmp 241.9K · 1회 다운로드 · 2009-11-06 23:32:38 관련링크 http://www.sejin-m.org 7353회 연결 이전글 이젠 교회요람을 맞춤식 수첩으로 경험해보세요 09.11.07 다음글 세진회보 10월호 09.11.04 댓글 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