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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층곡그리스도의교회의 종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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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동진
댓글 1 조회 10,180 2011.11.03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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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충곡그리스도의교회의 종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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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곡그리스도의교회의 종소리

                        

                                                                                  함동진 


충곡리(005)충곡교회 2011.11.01.JPG

충곡리(005) 현재의 충곡그리스도의교회교회     2011.11.01

 

  흰눈이 깊이 쌓인 마을에 교회당이 있고 종탑이 우뚝 솟아 있는 그림의 성탄절 카드나 달력을 보면 평화로움이 느껴지며 교회의 종소리가 그리워진다.

  종소리가 울려 퍼져 고요한 마을과 산천을 돌아 메아리로 이어져 올 때 아름다운 서정 속에 은혜로움 속으로 잠기며 마음이 온화하여졌던 시절이 생생하다.

  8·15해방과 6·25전쟁을 전후한 시기에는 도시나 농촌을 불구하고 시계가 귀한 시시였다. 더구나 시각을 알리는 괘종시계는 부유하다고 인정되는 집 이외에는 그것을 소유한 가정이 매우 드물었던 시절이었다.

  이 시절에 시각을 알리는 고마운 것이 있었으니 교회당의 새벽 종소리였다.  경우에 따라 정오의 종소리도 있었고 주일과 수요일에는 저녁 종소리도 있었다.  마을마다 집집마다 이 종소리에 의하여 일과의 시작과 끝나는 시각을 가늠할 수 있었던 종소리였다.  

 

  1951년 가을 6·25전쟁 피난시절에 목사(창현 함태영)인 아버지를 따라 새로 개척한 목회지인 충남 논산시 부적면 충곡리에 소재한 충곡리그리스도의교회로 이사를 하였다. 새로이 개척한 교회임으로 신도의 수도 적고 재정 또한 목사인 아버지의 개인 사비로 운영되었다. 자그마한 교회당이었음으로 종탑이 없었으며 또한 종이 달려 있을 리가 없었다.

  아버님은 교회에 부임하신지 얼마 안 되어 학교종을 닮은 은색의 커다란 종 하나를 구입하여 오셨다. 종은 양은(알미늄)으로 주조하여 만들진 것이었으며, 동그란 쇠뭉치에 긴 줄을 매어 달아 타종을 하였다. 종탑이 없었음으로 교회 앞에 있는 큰 소나무의 높은 가지에 매어 달아놓고 있었다.

  이 종의  종지기는 내가 담당하였다. 눈이오나 비가오나 새벽종을 타종하여 울렸고, 주일저녁 수요일 저녁에도 어김없이 타종하여 울렸다. 그러나 불행한 일이 벌어졌다. 전시였음으로 물자가 귀한 탓으로 폐품의 불량한 알미늄으로 주조되었고 기술 또한 부족한 터이라 종에 금이 가 종소리가 곱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날이 갈수록 깨어진 종소리가 털털거림이 심하여지더니 그 깨어진 조각이 떨어져 내렸다. 조각을 들여다보았더니  빵 속이나 스펀지처럼 기포가 들어있는 듯 엉성한 조직이었다. 종이 깨어져 나간 후 산골 마을의 곡곡으로 울려 퍼지던 종소리가 사라지게 되어 아쉬웠을 뿐만 아니라 마음이 쓰리고 아팠다.


  세월이 흐르면서 인구가 많아지고 마을들도 새로이 더 생겨나고 생활반경이 많이 넓혀졌다.  이와 같이 마을의 증가와 인구의 증가에 비례하여 교회당들도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한 마을에도 둘 셋 식의 교회들이 세워지게 되었다.  이뿐인가 과학도 발달하여 고성능 앰프의 출하가 홍수를 이루는 가운데 실제 종소리와 녹음된 종소리, 찬송가가 한마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울려 퍼지게 되었다. 기독교인들에게는 별 문제가 되지는 않았으나 불신자들에게는 짜증나는 소음공해였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교회의 종소리에 대하여 비난하기에 이르고 항의와 더불어 행정당국에 교회의 종소리소음공해를 규제해 달라는 고소고발 소송까지 하는 사태가 줄을 잇게 되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1990년 <소음진동규제법>을 제정하였는데 이 법률 중에는 교회의 종소리도 규제대상이 되도록 규정되어 있다. 특히 확성기의 종소리는 1회에 2분 이내에 15분 간격으로 울리게 규정하였다. 그러나 이도 주민들의 소음항의에 부딧치면서 교회의 종소리는 거의 사라져 간 것이다.

  현대화한 오늘날에 와서는  온갖 종류의 자명종시계와 시보가 내장된 핸드폰이 누구에게나 보급되어 시간 첵크에 어려움이 없도록 편한 세상이 되었으나 은혜스러운 종소리만은 다시 찾아오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우리나라의 유일한 교회종 제작전문가인 조병헌 장로(성음종주식회사 대표)는 지금도 유럽에서는 교회마다 아무런 탈이 없이 수백 년 내려온 전통의 종소리를 울리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고 전하였다.

  유럽에서는 교회의 종의 크기와 소리의 음향에 따라 교회의 부흥도 다르다는 것을 유럽 현지답사에서 확인하였다고 전하였다. 조 장로는 귀국한 후 교회의 종소리에 대하여 과연 <소음진동규제법>에 저촉이 되는가? 라는 질의서를 관련 정부기관에 제출하였더니 1999년 7월 "교회의 종소리는 확성기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 규제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회신을 받았다고 하였다.

  다만 한 마을의 여러 교회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교회마다 구구각각의 종소리를 동시에 울림으로 문제가 되는 것이며 이를 주민들이 그냥 넘길 수 있는가 하는 문제점이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같은 마을과 인근마을의 교회들이 협의하여 순번제로  당번을 정하고  교회마다 돌아가며 종을 울리는 날자나 기간을 정하여 행하는 것이 해결점이 된다고 교회들에게 제안하였다.

  조장로의 말대로 우리나라의 모든 교회들이 타종이 가능한 지역(도시지역은 어려울 것임)에서  타종을 시도한다면 은혜로운 종소리가 각 가정으로 전달될 것이다.

  또한 교파를 초월하여 교회들 간에 화합하고 서로 소통하며 복음전파에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고 하나님 보시기에도 아름다운 일이 되며 주민 복음화운동에도 덕을 끼칠 것이다.   

  밤10시에 타종을 하여 온 가족이 집으로 돌아가게 하여 가족의 행복을 함께 누리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도 교회의 할일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의 어린 시절에 충곡리그리스도의교회에서 종지기를 하던 일이 새삼스럽게 떠올려 지며 그 종소리가 그리워진다.


  

      2007. 1. 29. 

      깊은산골(長山)

      함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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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곡리(013)건너마을이초기충곡교회세워졌던마을 2011.11.01.JPG

 충곡리(013)   들 건너  멀리 산밑 마을이 초기 충곡그리스도의교회가 세워졌던 마을.     2011.11.01

  *현재의 충곡교회의 뒤 언덕위 밭에서 바라다본 예교회가 있던 충곡리 마을, 당시에는 교회와 申000 집사댁만이 있었던 곳이 현재는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충곡리(018)초기충곡교회세워졌던마을거리(차있는집부분노인증언) 2011.11.01.JPG

 충곡리(018)   충곡그리스도의교회가 세워졌던 마을거리.     2011.11.01

  *차가 세워져있는 집 부근이 초기 충곡그리스도의교회가 세워졌던 곳이라고 한 노인이 증언하여 줌.

 

 

충곡리(001)충곡교회 2011.11.01.JPG

 충곡리(001)   한양말에서 건너다 본 現 충곡그리스도의교회.    2011.11.01

*현재의 충곡그리스도의교회는 초기의 교회가 있던 곳의 건너마을에 곱고 아담하게 훌륭한 모습으로 건춛되어 이었다.

 

 

충곡리(006)충곡교회 2011.11.01.JPG

 충곡리(006)   現 충곡그리스도의교회(종탑과 함꼐 봄).   2011.11.01

 

 

충곡리(009)충곡교회 2011.11.01.JPG

 충곡리(009)   現 충곡그리스도의교회(정면에서 봄).       2011.11.01

 

 

충곡리(010)충곡교회 2011.11.01.JPG

  충곡리(010)   現 충곡그리스도의교회(정면에서 봄).       2011.11.01

 

*고 창현 함태영 목사께서 충곡그리스도의교회와 신교리그리스도의교회(현 금성그리스도의교회)를 개척하고, 동시에 신교리에 복음고등공민학교(중학과정)를 운영하면서, 충곡리 신교리 신풍리 감곡리 탑정리 등을 발이 닳도록 뛰어 다녔다.

 필자는 6.25 전쟁이 막바지인 1953년 7월초에 어머니를 사별하고 이곳을 떠난지 60년이 가까워지는 이 가을, 어머니 산소를 성묘하고, 함태영목사가 복음전도로 오갔던 길들을 삿삿이 더듬의며 순례의 길을 걸었다.

  지금까지 굶주림과  헐벗던 어린 소년시절의 추억만으로 가득찻던 곳이데.............

  60년이란 많은 세월이 흘러 상전벽해라 할까 천지개벽을 한 모습으로 옛 두메산골의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자랑스러운 것은 충곡그리스도의교회와 금성그리스도의교회가 위치한 부근 여러 마을을 포함하여 이곳에는 교파의 여타의 교회를 찾아 볼 수 없는 그리스도의교회 즉 환원교회(신약교회)만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위의 양 교회에서 수고하셨거나  현재에 목회하시는 환원운동 목회자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2011년  11월  1일       합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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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CS
이곳까지 오셨는데, 연략을 주셨으면, 함께 교제의 시간을 갖고 선배님들의 노고에 관한 말씀을 듣는 기쁨을 누렸을 텐데 아쉽습니다. 다음에 오시면 연락주십시오.<조동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