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비 소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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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비 소녀상
함동진

(1) 소녀상(정신대) 2012.01.13 종로 099. 사진/함동
짐승보다 더 잔인무도한 일제의 만행, 침략도 모자라
남자들은 징용으로 전장터 사지에 몰아넣고
여자들은 꽃다운 소녀를 정신대라는 묘책삼아 위안부로 욕보인 쪽발이들
아직도 뉘우치지 못하고 철면피로 꼳꼳한 큰 소리
사죄는커녕 평화비 소녀상부터 철거하란다
위안부 1,000차 집회에 이르도록 무감각한 저 왜놈들 정권.
소녀상, 빈의자, 할머니의 그림자 이 세 가지를 합한 전체가 <평화비>이다.
이 평화비는 2011년 12월 14일 정오, 할머니들은 일본대사관 앞에 일본군 위안부(정신대) 소녀를 형상화한 1.2m 높이의 <평화비> 제막식을 가졌다.
석비에 새겨진 <평화비>라는 글씨는 길원옥 할머니의 자필이라고 한다.
16분의 할머니가 세상을 뜨고 김요지 할머니는 1,000차 집회 하루 전에 세상을 떴다.
평화비 소녀상은 15세에 맨발로 정신대에 끌려가던 모습이다.
소녀상 옆에 있는 의자는 같이 앉아서 일본대사관을 향하여 구호를 외치다 세상을 뜬 할머니들의 자리를 상징한다.
소녀상의 뒤에 있는 그림자는 1,000회(1992년1월8일-2011년12월14일 현재 20년간이나 계속 집회)가 넘도록 수요집회를 하던 할머니의 모습을 상징한다.
그림자를 보면 가슴에 날개 짓을 하는 나비 한 마리가 있다. 이 나비는 하늘로 (한을 풀고 평화로이)날아오를 수 있는 날을 기다리는 상징이다.
할머니들의 유언은 “평화로운 세상”이다.


▶ 정글터널(Jungle Tunnel)
넋 나갈 정도로 흔들림과 시달림 끝에 멈춰진 곳 좌측에는 영문으로 정글터널(Jungle Tunnel)이란 목판의 안내판이 세워져 있고, 좌측 동해안(태평양)쪽에는 역시 목판에 영문으로 라우라우베이 "C"포대(Laulau Bay "C" Guns)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이들 모두가 2차 세계대전시 일본군이 주둔하던 곳으로 싸이판 동부 라우라우비치(灣) 북쪽 태평양 연안에 불쑥 튀어나온 곳이다.
정글터널은 “영혼의 동굴”이라고도 한다. 전쟁당시 이 동굴에는 철책문(鐵柵門)이 굳게 닫혀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그 철책문이 흔적도 없다. 동굴입구에는 모기인지 하루살이인지 분간키 어려운 한 떼의 무리가 맴돌고 있었고, 음습한 동굴 속에는 수많은 계단을 밟고 내려가도록 깊이 뚫려 있다. 계단에는 앞서 다녀간 관광객들이 켜 놓은 촛불들이 가냘프게 떨면서 가물가물 비친다. 저 아래 너른 바닥이 있고, 조금 더 깊은 동굴 벽에는 방 모양으로 여러개의 굴을 파 놓았다. “C"포대의 일본군들이 강제로 끌고 온 조선의 정신대 여인들을 이곳에서 차례로 순결을 짓밟고 욕보인 곳이다. 일본군이 주둔한 부대나 진지근처에는 어디든 정신대 수용소가 있었던 모양이다. 짐승만도 못한 놈들…….
저 유명한 TV극 ”여명의 눈동자“의 여자 주인공 ”여옥“이 아기를 해산한 장소, 수많은 조선인정신대 여인들과 여옥이 흘린 눈물이 아직도 마르지 않고 음습한 채 우리의 가슴을 쥐어뜯는다. 가슴 쓰라린 우리들의 눈물도 함께 떨구어져 적셔지기도 하거니와 그녀들의 통곡이 귀를 찢는 듯 동굴을 메운다. 짐승 같은 일본군의 만행에 다시금 치가 떨리고 있다.
눈물이 글썽하여 나오려는데 동굴 벽과 천장에 온통 정 자국이 나있다. 강제 징집된 한국 징용인들이 파고 들어간 동굴 속에서 한국의 여인들이 정조를 유린당하고 짓밟히다니 진정 굴욕스럽고 수모스럽다. 안에서 밖으로 향한 철책문 왼쪽에 겨우 두 손이나 밥그릇이 드나들 정도의 구멍이 뚫려져 있다. 정신대원들에게 밥을 넣어주던 구멍이라 한다. 정신대원들은 일체 철책 밖 외출을 금했다 한다. (함동진의 1996. 11. 26 사이판 기행문 [여옥의 눈물] 중에서)

평화비는 소녀상의 우측 보도불럭 위에 설치되어 있다.

소녀상의 어깨에는 평회의 상징 비둘기상이 앉아있다.
▶ 악마의 소굴 정신대를 어찌 잊으랴
일본제국주의자들은 태평양전쟁에서 참패를 당할 때까지 전쟁터에 일본군주둔부대가 있는 곳마다 위안소를 차려놓고 점령지 여성들을 정신대원(종군위안부) 명목으로 끌고 가 정조와 순결을 짓밟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들 위안소 운영은 1932년 상해사변(上海事變) 발발시부터 개시되어, 1937년부터는 소위 정신대(나라를 위해 몸 바치는 부대)를 만들고, 1943년에는 여자정신대근무령 이라는 행정명령을 제정 발동하고, 1945년 항복 패망할 때까지 지속되어 왔다.
강제로 이에 끌려간 여성들은 12세부터 20세 안팎의 꽃봉오리 같은 어린 소녀들이 대부분이었으며, 40세 여성까지 도합 20여만 명 이상이 강제징발 되었다. 이들 중 8만 여명 이상이 종군위안부로 강제동원, 일본군 진지에 투입되어 추악한 수욕(獸慾)에 의해 우리의 어린 누이들이 정조와 순결을 유린당했다. 정신대의 수용에는 한국의 여인뿐만 아니라 중국, 기타 동남아 등지에서 강제로 끌려온 약소국의 여인들이었는데, 대부분 좋은 일터에 취직시켜주겠다고 감언이설로 꼬득이거나 유괴, 납치 등의 수법으로 강제 연행해 이루어졌다.
일본군의 정신대(위안소)는 일본, 중국, 대만, 필립핀, 인도네시아, 말레시아, 태국, 미얀마, 베트남, 파푸아뉴기니, 홍콩, 마카오와 남태평양의 섬(이들 중 하나인 싸이판섬에 87학원장친목회원들은 역사의 현장에서 연수를 하고 있는 것이다.) 등 일본군부대가 주둔한 곳이라면 어디에든 빠짐없이 있었다고 한다.
이들 위안소에서는 1인의 정신대원이 하루에 적개는 3~4명 많게는 5~6명 또는 그 이상의 일본군들을 상대케 하였다니 치욕이요, 수모요, 굴욕이요, 조선의 부끄럼이다.
생존한 일본군의사과장 증언에 의하면 정신대원(종군위안부)을 수용한 위안소는 중국에 280개소, 동남아시아에 100개소, 사할린에 10개소 등 도합 400여 개소(1943년 1월 현재)가 있었다는 것이다.
아직도 50여명에 이르는 여자 정신대원 할머니들이 생존하여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여전히 과거의 만행을 뉘우칠 줄 모르고 자만한 일본, 그들이 진정 뉘우치고 사과하며 보상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조선의 누이들을 짓밟은 대가의 저주가 돌아가리라. 이러한데도 아직 일본이라면 사족을 못쓰고 그 문화, 물질문명을 무조건 수용하고 따르는 멍청이들은 정신을 차리라.
정글터널에서의 여옥의 눈물은,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우리 한국인들의 수모스런 모습이요, 상처요, 악몽이요, 아픔으로 남게될 것이다. (함동진의 1996. 11. 26 사이판 기행문 [여옥의 눈물] 중에서)

소녀상 의자 뒷편 보도불럭 위 석판에 위안부 할머니 그림자상이 족가되어 있다. 가슴 위에 나비상도 새겨져 있다.(혹 지나갈 때에는 밟지 않도록 요조심)

(8) 소녀상(정신대) 2012.01.13 종로 101. 사진/함동진

(9) 소녀상(정신대) 2012.01.13 종로 083. 사진/함동진
소녀상과 마주한 길건너의 일본대사관 관저건물(갈색건물)

(10) 소녀상(정신대) 2012.01.13 종로 098. 사진/함동진

(11) 보성사 터 탑비에 새겨진 부조 2012.01.13 종로 119. 사진/함동진
(3.1독립만세장면, 이들은 일본헌병들의 총칼저지에 쓰러지면서도 만세소리를 드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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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산골(長山)
함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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