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배급한다더니 무참한 마르크스주의 공산독재혁명씨앗만 퍼트리고 죽은 [레닌]
본문
(역사)
자유를 배급한다더니 무참한 마르크스주의 공산독재혁명씨앗만 퍼트리고 죽은 [레닌]
함동진
"참다운 자유는 귀중한 것, 무척 귀중한 것이기 때문에 배급되지 않으면 안된다". (블리디미르 일리치 레닌)고 외치며 혁명한다면서 남긴 것은 전쟁과 냉전시대와 무참한 마르크스주의 공산독재혁명씨앗만 퍼트리고 1924. 1. 21. 죽고 말았다. 우리 대한민국은 그가 뿌린 공산주의 때문에 북한공산주의자들로부터 1951. 6. 25. 기습남침으로 혹독한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어야 했고 아직도 그 아픈 상흔은 분단의 고통과 함께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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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가 블리디미르 일리치 레닌[Vladimir Il'ich Lenin, 1870.4.22 - 1924.1.21]사망,
본명은 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리야노프(Vladimir Ilich Ulyanov)이며, 공식명인 니콜라이 레닌은 1902년경부터 사용한 필명이다.
1917년 러시아 10월혁명의 중심인물로서 독일파 마르크스주의자 K.카우츠키의 사회민주주의에 대립하여 마르크스주의를 후진국 러시아에 적용함으로써 러시아파 마르크스주의를 발전시킨 혁명이론가이자 사상가이다.
볼가 강변의 심비르스크에서 교육자의 아들로 태어나, 1887년 황제 알렉산드르 3세의 암살계획에 참여하여 처형된 맏형 알렉산드르의 영향으로 혁명에 뜻을 두기 시작하였다.
카잔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는 한편, 1870년대에는 플레하노프에 의하여 러시아에 도입된 마르크스주의를 연구하여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었다. 이후 혁명운동에 투신하여 체포와 유형의 세월을 거친 뒤 1900년 국외로 망명, 1903년 브뤼셀과 런던에서 열린 러시아 사회민주당 제2차 대회에서 당원 자격문제로 마르토프와 맞서 직업혁명가주의를 관철시킴으로써 볼셰비키(다수파)가 되었다.
1905년 제1차 러시아혁명 직후 일단 귀국하였으나, 1907년 다시 망명하여 주로 스위스에 머물면서 연구와 저술에 종사하다가, 1917년 2월혁명 직후 독일이 제공한 봉인열차(封印列車)로 귀국하였다. 같은 해 11월 7일 무장봉기로 과도정부(過渡政府)를 전복하고 이른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표방하는 혁명정권을 수립한 다음, 러시아의 공산정권을 지키기 위하여 1919년 제3인터내셔널인 공산주의자 인터내셔널(약칭 코민테른)을 결성하였다.
1922년 뇌일혈 발작으로 와병, 마지막 1년은 실어증(失語症)까지 겹쳐 병상에서 지내다가, 1924년 사망하였다. (출처:두산백과)
*[레닌 사망 - 뇌졸증 발표속 ‘스탈린 독살설’ 나돌아 ]
1924년 1월21일, 공산주의 혁명가 레닌이 모스크바 근교 고리키 별장에서 네번째 발작을 일으키며 54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뇌졸중으로 발표됐지만 죽음을 둘러싸고 많은 설들이 난무했다.
스탈린의 지시로 독약이 장기간 소량씩 투약됐다는 독살설의 진원지는 트로츠키였다. 최근에는 망명 때 걸린 매독에 의한 정신착란설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소문이야 어떻듯 죽기전 레닌의 몸은 이미 망가질대로 망가진 상태였다. 극도로 긴장해야 하는 오랜기간의 혁명활동과 그에 따른 과로는 1921년 중반경부터 격심한 두통으로 발전했다. 1922년 5월, 마침내 최초의 발작이 일어났다. 정상적인 활동이 불가능할 정도로 고통스러웠지만 공산주의가 뿌리내릴 때까지 일에서 손을 뗄 수는 없었다.
이런 와중에 1923년 3월에 발병한 세번째 정신착란은 레닌을 거의 식물인간으로 만들어버렸다. 숨지기 전 몇달 동안 자살을 하게 해달라고 부탁했으나 스탈린은 아직 살아있는 레닌이 필요했다. 레닌의 유토피아 건설 약속이 민중들에겐 그렇게 큰 복음으로 비쳤던 탓일까? 혹한의 날씨에도 수십만의 인파가 모스크바에 몰려들어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스탈린은 유족의 반대를 무시하고 시신을 방부처리해 모스크바 붉은광장 지하에 조성한 영묘(靈廟)에 안치했다.
레닌이 신격화될수록 그의 위치도 단단해질 것이라는 계산에서였다. 레닌은 죽기 1년전에 작성한 유서에서 스탈린의 편집광적인 권력욕을 경고하며 경질을 시사했지만, 스탈린은 유서를 철저히 은폐한 채 ‘레닌찬가(讚歌)’에 열을 올리며 입지를 강화해나갔다. 레닌이 죽기 전부터 소련의 세력판도는 이미 스탈린과 카메네프, 지노비에프가 3인방을 이루고 있었고, 반대편에 트로츠키 만이 유일하게 버티고 있었다. (조선일보2003.01.21 김정형기자 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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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레타리아혁명 proletarian revolution
프롤레타리아트(노동자계급)가 지도주체가 되는 계급혁명을 통하여 일체의 자본주의적 관계를 소멸시키고 계급없는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해 나가는 과정으로 프롤레타리아혁명 이론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 〈공산당 선언〉 〈독일 이데올로기〉 등에서 이론화되었으며, 레닌에 의해 〈무엇을 할 것인가〉 〈국가와 혁명〉 등에서 발전되었다.
그에 따르면 프롤레타리아혁명의 과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계급대립을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적 지배를 통하여 폐절(廢絶)시키는 데 있다고 한다.
그것을 위해서는 먼저 종래의 국가기구에서 계급지배를 유지 ·강화해 온 군대 ·경찰 등 낡은 권력장치를 부수고, 노동자계급과 근로인민을 위한 새로운 국가기구를 세워야 한다고 보았다.
이 국가는 계급대립이 없는 공산주의 사회로의 이행기의 국가로서, 다음과 같은 기능을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① 종래 지배계급의 반혁명 음모를 분쇄하고, 국제적 간섭을 배제한다.
② 국가경제의 사회주의적 공업화, 농업의 집단화, 교육 ·사상면에서의 문화혁명 등을 통하여 사회주의를 건설한다.
③ 공산주의로의 이행을 보장하고 점차 사멸(死滅)하여 사회적 자치에 자리를 물려 준다.
이러한 프롤레타리아혁명은 1917년 러시아에서 레닌의 지도하에 실현되었으며, 그 후 동유럽과 중국 ·쿠바 ·베트남 등으로 확산되어 갔다.
그러나 혁명은 스탈린을 거치면서 점차 모순이 보이기 시작하였는데, 1985년 소련 공산당서기장이 된 고르바초프에 의하여 그러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개혁이 실시되었다.
그렇지만 체제 내적 개혁은 무위로 끝나고 1991년 소련이 붕괴됨으로써 인류 최초로 실시되었던 공산주의의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 (출처: 두산백과)
▶러시아혁명 Russian Revolution
-917년 10월 러시아에서 발생한 프롤레타리아혁명으로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1905년의 제1차 러시아혁명과 1917년의 2월혁명을 포함하는 러시아의 사회변혁 혁명을 일컫는다.
1905∼1907년의 혁명을 소련에서는 제1차 러시아혁명이라 하였고, 1917년 3월(러시아 구력 2월)과 11월(동 10월)의 혁명을 유럽 ·미국에서는 각각 ‘3월혁명’ ‘11월혁명’이라고도 하지만, 소련에서는 전자를 ‘2월혁명’ 또는 ‘2월 부르주아 민주주의혁명’, 후자를 ‘대(大)10월 사회주의혁명’이라고 하였다. (출처: 두산백과)
자유를 배급한다더니 무참한 마르크스주의 공산독재혁명씨앗만 퍼트리고 죽은 [레닌]
함동진
"참다운 자유는 귀중한 것, 무척 귀중한 것이기 때문에 배급되지 않으면 안된다". (블리디미르 일리치 레닌)고 외치며 혁명한다면서 남긴 것은 전쟁과 냉전시대와 무참한 마르크스주의 공산독재혁명씨앗만 퍼트리고 1924. 1. 21. 죽고 말았다. 우리 대한민국은 그가 뿌린 공산주의 때문에 북한공산주의자들로부터 1951. 6. 25. 기습남침으로 혹독한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어야 했고 아직도 그 아픈 상흔은 분단의 고통과 함께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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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가 블리디미르 일리치 레닌[Vladimir Il'ich Lenin, 1870.4.22 - 1924.1.21]사망,
본명은 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리야노프(Vladimir Ilich Ulyanov)이며, 공식명인 니콜라이 레닌은 1902년경부터 사용한 필명이다.
1917년 러시아 10월혁명의 중심인물로서 독일파 마르크스주의자 K.카우츠키의 사회민주주의에 대립하여 마르크스주의를 후진국 러시아에 적용함으로써 러시아파 마르크스주의를 발전시킨 혁명이론가이자 사상가이다.
볼가 강변의 심비르스크에서 교육자의 아들로 태어나, 1887년 황제 알렉산드르 3세의 암살계획에 참여하여 처형된 맏형 알렉산드르의 영향으로 혁명에 뜻을 두기 시작하였다.
카잔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는 한편, 1870년대에는 플레하노프에 의하여 러시아에 도입된 마르크스주의를 연구하여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었다. 이후 혁명운동에 투신하여 체포와 유형의 세월을 거친 뒤 1900년 국외로 망명, 1903년 브뤼셀과 런던에서 열린 러시아 사회민주당 제2차 대회에서 당원 자격문제로 마르토프와 맞서 직업혁명가주의를 관철시킴으로써 볼셰비키(다수파)가 되었다.
1905년 제1차 러시아혁명 직후 일단 귀국하였으나, 1907년 다시 망명하여 주로 스위스에 머물면서 연구와 저술에 종사하다가, 1917년 2월혁명 직후 독일이 제공한 봉인열차(封印列車)로 귀국하였다. 같은 해 11월 7일 무장봉기로 과도정부(過渡政府)를 전복하고 이른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표방하는 혁명정권을 수립한 다음, 러시아의 공산정권을 지키기 위하여 1919년 제3인터내셔널인 공산주의자 인터내셔널(약칭 코민테른)을 결성하였다.
1922년 뇌일혈 발작으로 와병, 마지막 1년은 실어증(失語症)까지 겹쳐 병상에서 지내다가, 1924년 사망하였다. (출처:두산백과)
*[레닌 사망 - 뇌졸증 발표속 ‘스탈린 독살설’ 나돌아 ]
1924년 1월21일, 공산주의 혁명가 레닌이 모스크바 근교 고리키 별장에서 네번째 발작을 일으키며 54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뇌졸중으로 발표됐지만 죽음을 둘러싸고 많은 설들이 난무했다.
스탈린의 지시로 독약이 장기간 소량씩 투약됐다는 독살설의 진원지는 트로츠키였다. 최근에는 망명 때 걸린 매독에 의한 정신착란설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소문이야 어떻듯 죽기전 레닌의 몸은 이미 망가질대로 망가진 상태였다. 극도로 긴장해야 하는 오랜기간의 혁명활동과 그에 따른 과로는 1921년 중반경부터 격심한 두통으로 발전했다. 1922년 5월, 마침내 최초의 발작이 일어났다. 정상적인 활동이 불가능할 정도로 고통스러웠지만 공산주의가 뿌리내릴 때까지 일에서 손을 뗄 수는 없었다.
이런 와중에 1923년 3월에 발병한 세번째 정신착란은 레닌을 거의 식물인간으로 만들어버렸다. 숨지기 전 몇달 동안 자살을 하게 해달라고 부탁했으나 스탈린은 아직 살아있는 레닌이 필요했다. 레닌의 유토피아 건설 약속이 민중들에겐 그렇게 큰 복음으로 비쳤던 탓일까? 혹한의 날씨에도 수십만의 인파가 모스크바에 몰려들어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스탈린은 유족의 반대를 무시하고 시신을 방부처리해 모스크바 붉은광장 지하에 조성한 영묘(靈廟)에 안치했다.
레닌이 신격화될수록 그의 위치도 단단해질 것이라는 계산에서였다. 레닌은 죽기 1년전에 작성한 유서에서 스탈린의 편집광적인 권력욕을 경고하며 경질을 시사했지만, 스탈린은 유서를 철저히 은폐한 채 ‘레닌찬가(讚歌)’에 열을 올리며 입지를 강화해나갔다. 레닌이 죽기 전부터 소련의 세력판도는 이미 스탈린과 카메네프, 지노비에프가 3인방을 이루고 있었고, 반대편에 트로츠키 만이 유일하게 버티고 있었다. (조선일보2003.01.21 김정형기자 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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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레타리아혁명 proletarian revolution
프롤레타리아트(노동자계급)가 지도주체가 되는 계급혁명을 통하여 일체의 자본주의적 관계를 소멸시키고 계급없는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해 나가는 과정으로 프롤레타리아혁명 이론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 〈공산당 선언〉 〈독일 이데올로기〉 등에서 이론화되었으며, 레닌에 의해 〈무엇을 할 것인가〉 〈국가와 혁명〉 등에서 발전되었다.
그에 따르면 프롤레타리아혁명의 과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계급대립을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적 지배를 통하여 폐절(廢絶)시키는 데 있다고 한다.
그것을 위해서는 먼저 종래의 국가기구에서 계급지배를 유지 ·강화해 온 군대 ·경찰 등 낡은 권력장치를 부수고, 노동자계급과 근로인민을 위한 새로운 국가기구를 세워야 한다고 보았다.
이 국가는 계급대립이 없는 공산주의 사회로의 이행기의 국가로서, 다음과 같은 기능을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① 종래 지배계급의 반혁명 음모를 분쇄하고, 국제적 간섭을 배제한다.
② 국가경제의 사회주의적 공업화, 농업의 집단화, 교육 ·사상면에서의 문화혁명 등을 통하여 사회주의를 건설한다.
③ 공산주의로의 이행을 보장하고 점차 사멸(死滅)하여 사회적 자치에 자리를 물려 준다.
이러한 프롤레타리아혁명은 1917년 러시아에서 레닌의 지도하에 실현되었으며, 그 후 동유럽과 중국 ·쿠바 ·베트남 등으로 확산되어 갔다.
그러나 혁명은 스탈린을 거치면서 점차 모순이 보이기 시작하였는데, 1985년 소련 공산당서기장이 된 고르바초프에 의하여 그러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개혁이 실시되었다.
그렇지만 체제 내적 개혁은 무위로 끝나고 1991년 소련이 붕괴됨으로써 인류 최초로 실시되었던 공산주의의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 (출처: 두산백과)
▶러시아혁명 Russian Revolution
-917년 10월 러시아에서 발생한 프롤레타리아혁명으로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1905년의 제1차 러시아혁명과 1917년의 2월혁명을 포함하는 러시아의 사회변혁 혁명을 일컫는다.
1905∼1907년의 혁명을 소련에서는 제1차 러시아혁명이라 하였고, 1917년 3월(러시아 구력 2월)과 11월(동 10월)의 혁명을 유럽 ·미국에서는 각각 ‘3월혁명’ ‘11월혁명’이라고도 하지만, 소련에서는 전자를 ‘2월혁명’ 또는 ‘2월 부르주아 민주주의혁명’, 후자를 ‘대(大)10월 사회주의혁명’이라고 하였다. (출처: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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