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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버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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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동진
댓글 0 조회 10,033 2010.11.27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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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버릇
       -미친개 북괴의 연평도 기습공격(2010년 11월 23일)

                                                 함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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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조선일보(연평도주민제공)  2010.11.23   북 연평도 포격후 불타는 장면      


   

      언제나 도지는 것이
      개버릇이다
      긴장하지 않으면 미친개에게
      물리고 찢기고 주검도 당하게 된다

      미친개에게는 초기에 백신으로 막지만
      백신이 효험 없으면 즉시
      죽여 버려야 한다

      살려두면
      제 주인도 이웃도 아무도 몰라보고
      공격하는게 미친개의 속성
      그로인해
      날뛰는 광견병 환자가 저리 많은데

      6.25 남침 때 북괴를 죽여 버렸어야 했을 것인데
      살려둔 그 미친개에게 얼마나 당했느냐

      대한민국은 저 광견들로부터 안 밖으로
      날마다 물리고 찢기고 당했으면서도 광견병 걸린 것 모르고
      느슨한 채 맘 놓고 있다가 또 당했다

      북괴 미친개는 오늘(2010.11.23)도 광견병 퍼트리며
      물어뜯고 뒤흔든다
      연평도에
      민간인들에게 까지 무차별 포격, 기습공격으로 살상을 자행하는
      저 미친개를
      대한민국이여 국민들이여 정신 똑바로 차리고
      빨리 죽여 없애자.
    
                        (2010. 11. 23)  

   ***********************************************



   [북한괴뢰집단의 대남 테러행위들]


1) 1950년 06월 25일
     북한군의 남침으로 한국전쟁 발발 : 380만의 사상자가 발생.
2) 1958년 02월
     KNA 민간 항공기(34명) 납북사건 : 26명 귀환 석방, 8명 억류후 처형
3) 1965년 04월
     북한 미그 제트 전투기 2기, 미국 RB-47 정찰기 공격
4) 1968년 01월
     청와대 기습 미수사건 : 박정희 대통령과 요인 암살을 위해 31명의 북한 무장공비가 침투
5) 1968년 01월
     미 정보함 푸에블로호 납치사건 : 승무원 83명중 1명 사망,나중에 시신 1구와 82명의 생존자는 석방되었으나, 선박은 억류
6) 1968년 10월
     울진·삼척지구 무장공비 침투사건 : 130명의 무장공비 침투. 110명 사살, 7명 생포, 13명 도주,북한이 강원·경상도 일대의 산간부락을 점거하여 혁명기지화할 목적으로 10.30∼11.2.동안 무장간첩 120명을 3회에 걸쳐 침투시킴...12.29.까지 2개월에 걸친 군·경 합동작전으로 공비 116명을 생포 또는 사살했으나 이승복 군(당시 9세)을 비롯한 민간인 23명이 공비에 의해 피살 되는 비극을 겪는 등 대간작전 사상 최대 규모의 사건이었음
7) 1969년 03월
     주문진 무장간첩 침투사건 : 북한 간첩 6명 침투. 해안근무 중이던 경찰 1명 살해
8) 1969년 04월
     EC 121 미 정찰기 격추사건 : 미군 31명 사망
9) 1969년 06월
     서해안 흑산도 무장간첩 침투사건 : 15명 살해
10) 1969년 07월
     비무장지대 남방 한계선 미군 병사 4명 살해
11) 1969년 12월
     KAL YS-11 여객기 납북사건 : 승객 및 승무원 51명 납치.
12) 1970년 02월
     승무원과 승객 39명 석방. (1998년 현재 나머지 12명은 여전히 북한에 억류되어 있으며, 이외에도 한국 정부에 따르면 북한에는 1955년 이 래 약 450여 명의 한국인이 납치되어 북한에 억류중임. 1999년 3월 한국의 국 가정보원은 아직 북에 억류 중인 454명의 한국인 명단을 발표함. 또한 북으 로 끌려간 407명의 남한 전쟁 포로 신원도 공개함. 이중 231명의 전쟁포로들 은 아직도 북한에 생존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됨)
13) 1970년 03월
     일본 항공기 보잉 707기(요도호) 납치사건 : 2000년 3월초 현재 북한은 계속해서 몇몇 적군파 소속 대원들에게 피난처를 제공
14) 1970년 06월
     북한 초계정들이 남한의 포함 I-2정 나포.언론에는 방송선이라고 알려졌으나 실제는 전투용 포함이었음.승무원 20명 미귀환 상태임.
15) 1970.6.22
     서울 관악구 동작동 국립묘지에 6.25에 국립현충원을 참배하는 대통령과 정부요인을 살해할 목적으로 침투한 북한 간첩 3명이, 현충원내 현충문 지붕에 폭발물 을 설치하다가 조작 실수로 폭발하여 간첩 1명이 사망하고, 잔당 2명은 북상도주한 사건.
16) 1971년 01월
     대한항공 소속 F-27 항공기 납북미수 사건..이 과정에서 납치를 시도한 북한 공작원이 사살되고 공작원이 떨어뜨린 폭탄을 조종사가 몸으로 막았음.조종사와 공작원 2명 사망.
17) 1974년 02월
     어선 「수원32, 33호」격침 및 납북사건 : 현재 어부 30명 억류
18) 1974년 11월
     제1 남침용 땅굴 발견
19) 1974년 08월
     8·15 경축식장서 박정희 대통령 저격미수 사건 : 문세광의 총탄에 박정희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 여사가 시해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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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여사를 쓰러뜨린 비운의 흉탄  35년전 8.15의  못잊을 비극.



20) 1975년 03월
     남침용 제2땅굴 발견
21) 1975년 09월
     전라북도 고창으로 침투하던 2명의 북한 간첩이 저지됨. 1명은 사살
22) 1976년 06월
     북한 간첩 3명이 비무장지대 남쪽 동부지구에서 사살됨
23) 1976년 08월
     8·18 판문점 도끼 만행사건 : 미군 장교 2명 사망, 경비 병 8명 중상
24) 1976년 08월
     제3신진호 납북사건
25) 1977년 07월
     유고슬라비아 베오그라드 남한부부(윤정희/백건우 부부) 납치 기도 미수 사건
26) 1978년 02월
     영화배우 최은희·영화감독 신상옥 부부 납치사건
27) 1978년 10월
    제3 남침용 땅굴 발견 : 경화기로 무장한 3만 명의 북한군이 매 시간 통과할 수 있는 것으로 판단됨
28) 1978년 11월
     북한 무장 간첩단(3명), 남한 민간인(5명) 살해. 이들은 충남광천에 침투한 무장공비들로서 아군은 한달 동안 추적을 했으나 결국은 놓쳤음. 이들은 *공수여단 지역인 김포반도의 감바위를 통과하여 월북함. 그래서 오늘날 *공수여단의 모토가 <감바위를 잊지 말자>임.
29) 1979년 06월
     한국인 고상문 오슬로 납치사건.노르웨이 수도 오슬로에서 수도여고 교사인 고상문씨가 납치됨.이 분은 아마도 분실여권 신고를 위해 한국 대사관을 찾는다는 것이 북한 대사관으로 들어간 것으로 추측돰.
30) 1979년 10월
    북한 간첩 비무장지대 동부지구 침투 사건 : 3명중 1명 사살
31) 1980년 01월
     해왕 6, 7호 납북사건
32) 1980년 03월
     북한 간첩 한강 침투미수 사건 : 3명 전원 사살됨
33) 1980년 11월
     전라남도 황간도 무장간첩 침투미수 사건 : 3명 전원 사살됨
34) 1980년 12월
     3명의 북한 간첩이 경상남도 해안에서 사살됨
35) 1981년 03월
     강원도 금화에서 3명의 북한 간첩이 침투하다 1명 사살됨
36) 1981년 06월
     충남 서산 앞바다 간첩선 침투사건 : 9명 사살, 1명 생포,이때 생포된 사람이 김광현씨로 당시 40대였음. 이 팀은 원래 광주사태때 광주로 들어올 예정이었으나 유고 대통령 티토의 장례식에 김일성이 참석하러 나가는 바람에 훈련이 중지되어 남파가 1년 가량 늦어졌음.이 사건 이후로 대남 공작팀들의 평균 연령이 젊어지기 시작했음.
37) 1981년 07월
     북한 간첩(3명) 임진강 침투미수 사건
38) 1982년 08월
     캐나다 경찰이 북한의 전두환 대통령 암살 계획을 밝혀냄. 여기에 연루된 사람이 국제 XXX 연맹 총재인 최XX씨임. 그러나 친북/좌익세력들은 최씨가 무고하다고 주장.
39) 83년 6월
    임진강을 통해 문산지역으로 침투를 기도하던 무장간첩 3명을 사살하고 1,400여점의 간첩장비를 노획.
40) 83년 월 미상(기억안남)
    월성 원전 근처에 북한 공작원 침투 발견.아군응사하여 사살.
41) 1983.9.22
     대구 미 문화원 폭파사건.한·미 관계를 이간하고 IPU/ASTA 총회 등 국내에서 개최될 예정이던 국제행사를 방해하여 사회 혼란을 조성할 목적으로 침투한 간첩이 대구 미 문화원에 시한 폭발물을 설치하여 폭파.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음.
42) 1983년 10월
     미얀마 랭군 아웅산 폭탄테러 사건 : 전두환 대통령을 수행 하던 17명의 고위 관리 사망, 14명 부상. 전대통령은 이 살해사건을 『전쟁선 포와 다름없는 중대한 도발 행위』로 규정, 이러한 도발행위가 재발 될 경우 이에 상응하는 보복 조치가 뒤따를 것이라고 경고. 11월 4일 버마는 북한과 의 외교관계 단절
43) 1983년 12월
     무장간첩 전충남과 이상규가 다대포에서 생포됨
44) 1984년 02월
     2명의 캐나다인 찰스 야노버와 알렉산더 제롤, 북한 간첩들 이 전두환 대통령 암살 목적으로 1981년에 60만불에 자신들을 고용했다고 법 정에서 증언
45) 1985년 10월
     북한 간첩선 부산 앞바다 침투 미수사건.이들이 침투한 지역은 청사포 앞바다로 해공 합동 작전으로 격침시킴.
46) 1986년 09월
     김포공항 폭탄테러 사건 : 15명 사망, 30명이상 부상
47) 1987년 01월
     서해상 제27동진호 납북사건 :어선 1척, 12명 납치.원래 이 어부들은 송환될 예정이었으나 3월에 한국으로 김만철씨 가족이 망명하자 북측에서 김만철 일가와의 교환을 요구하며 억류.
48) 1987년 08월
     MIT대 유학생 이채환 납치사건.현재 이씨는 강제 수용소에 수감 중인데 평생 나올 수 없는 완전 통제구역에 있음.
49) 1987년 10월
     서해상 제31진영호 피침사건
50) 1987년 11월
     KAL 858기 공중폭파사건 : 승객 및 승무원 115명 전원 사 망. 범인 김현희는 서울올림픽을 무산시키기 위한 테러였다고 자백
51) 1988년 01월
     미국무성, 1979년 수출관리법률에 따라 『북한은 국제 테러 행위에 대하여 반복적으로 지원을 제공한 국가』로 판정
52) 1989년 01월
     제37, 38태양호 납북사건
53) 1990년 03월
     제4 남침용 딸굴 발견 : 남한당국은 17개의 땅굴이 더 있는 것으로 판단.
54) 1992. 5.21.
     육군 백골부대 경계근무자가 북한 무장간첩 3명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하하는 것을 관측하고 신속히 작전을 전개하여 DMZ 내에서 전원 사살
55) 1992년 10월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간첩단 사건 : 고위 간첩 이선실의 지 휘를 받는 남한내의 400명으로 구성된 북한 간첩단이 남한의 국가안전기획부 에 의해 발각됨. 이 간첩단의 임무는 남한 내에서의 전복활동을 위한 지휘센 터를 수립하는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짐.
56) 1994년 03월
     북한 판문점 회담서 「서울불바다」협박
57) 1995년 05월
     북한 초계정, 남한 어선에 발포 : 3명 사망.
58) 1995년 06월
     남측 구호물품 실은 선박, 북한 인공기게양 위협
59) 1995년 07월
     안승운 목사 납치 사건
60) 1995년 08월
     남한의 쌀수송선 선원이 선상에서 사진촬영 이유로 선박 억류, 선원 체포
61) 1995년 10월
     2명의 북한 공작원 부여에서 발각. 1명 사살, 1명 생포
62) 1995.10.17
     임진강을 통해 경기도 파주시 장단반도 지역으로 침투하던 무장간첩 1명을 사살하고, M16 소총 등 67종 564점의 간첩장비를 노획.
63) 1996년 04월
     비무장지대 보전에 관한 휴전 규정 일방적 파기, 수백명의 북 한 무장군인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어 옴.
64) 1996년 05월
     7명의 북한 병사 군사분계선 침범, 한국군의 경고사격으로 철 수.
65) 1996년 05월
     5척의 북한 해군 초계정 서해안 남한 영해 침범
66) 1996년 07월
     북한 간첩 정수일(무하메드 깐수) 12년간 필리핀 교수로 행세하 다 서울서 체포됨
67) 1996년 09월
     강릉 북한 잠수정 및 무장공비 침투사건
68) 1996년 10월
     한국외교관 최덕근 영사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살해사건
69) 1997년 02월
     북한 공작원 귀순자 이한영 살해사건
70) 1997년 02월
     김일성 사망 원인과 관련기사 실은 「조선일보」보복 협박
71) 1997년 03월
     일본 산케이신문, 1977년 11월 일본인 여학생 「메구미 요코 타」 납치되었다고 보도 -일본당국은 북한이 1970년대 중반이래 적어도 9명 의 일본인을 납치한 것으로 추정함.
72) 1997년 06월
     북한 노동신문, 남한 국민들에게 김영삼 정부 전복 선동
73) 1997년 07월
     북한군 병사 14명, 군사분계선 남방 70미터 지점까지 침범
74) 1997.10.27
     최정남,강연정 부부간첩 체포
75) 1997년 11월
     서울대 교수 고영복 등 6명의 고정간첩 체포
76) 1998년 04월
     북한 대표, 북경회담서 전쟁 도발적 발언
77) 1998년 06월
     북한 소형 잠수정, 속초시 근해에서 남한의 그물에 걸린 채 발 견
   1998년 08월
     미국 정보기관들, 북한 비밀지하 핵시설 발견
   1998년 08월
     3단계 대포동 1호 미사일 발사
78) 1998년 11월
     북한 고속간첩선, 서해안 강화도 부근 출현후 도주
79) 1998년 12월
     남한 해군, 포격전에서 남해안 침투 북한 고속 반잠수정 1척 격침
80) 1999년 03월
     북한 간첩선 2척 일본 영해 침투
81) 1999년 06월
     연평 도발
82) 1999년 09월
     민혁당 간첩 사건
83) 2000년 01월
     김동식 목사 중국 길림성 연길서 납치 의혹 사건
84) 2000년 03월
     북한은 1970년 요도호를 납치한 적군파 회원에게 더 이상 은신처를 제공하지 말고 추방하라는 미국의 요구 거절
85) 2002년6월
     6.29만행
86) 2008년7월
     박왕자 여인 테러
87) 2010년 3월26일

     오후 9시22분 해군 1천200t급 대한민국 초계함(천안함) 격침 해군 46명 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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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       2010.04.27  서울광장 천안함전사자추모       사진/함동진  



88)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에 무차별 기습포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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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3일 오후 발생한 북한군의 연평도 포격으로 초토화된 연평도의 처참한 현장이 24일 오전 공개되어 침통함을 더하고 있다. (사진=옹진군청 제공) /뉴시스=(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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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6년 이후 북괴의 도발 일지


▲1996. 4. 4   : 북한, 군사분계선(MDL) 및 비무장지대(DMZ) 임무포기 선언
▲1996. 4. 5~7 : JSA(공동경비구역) 무장병력초과 투입(200~300명), 중화기 반입
▲1996. 9. 18  : 북 잠수함 강릉 앞바다 좌초(26명 탑승)
▲1997. 10. 17 : 북한 무장군인 12명 대성동주민 2명 납치
▲1998. 2. 2 : JSA 북한군 1명 2회 MDL 월경
▲1998. 3. 12 : 북한군 12명 MDL 40∼50m 월경(아군 경고사격 20여 발)
▲1998. 6. 11 : 북한군 GP(경계초소)서 아군 GP 방향 자동소총 4발 발사
▲1998. 6. 22 : 속초 동방 11.5마일 해상서 북한 유고급 잠수정 1척(사체 9구) 발견
▲1998. 7. 12 : 동해시 해안서 무장간첩 사체 1구, 침투용 수중추진기 1대 발견
▲1998. 12. 18 : 여수 앞바다 침투 북한 반잠수정 1척 격침
▲1999. 6. 15 : 북 경비정 서해 북방한계선(NLL) 월선, 연평해전 발생
▲2001. 9. 19∼20 : 북한군 철원군 DMZ서 MDL 월경(아측 경고사격)
▲2001. 11. 27 : 북한군 파주군 장파리 DMZ서 아군 초소에 기관총 2∼3발 발사
▲2002. 6. 29 : 북 경비정 NLL 침범, 서해교전 발생
▲2003. 2. 20 : 북 미그-29기 1대 연평도 NLL 13㎞ 남하(아군 전투기 대응출격)
▲2003. 7. 17 : 북한군, 경기 연천 DMZ서 14.5㎜ 기관총 4발 발사(아군 경고사격)
▲2003. 10. 30 : 북 경비정 NLL 월선(아군 경고사격)
▲2004. 7. 14 : 북 경비정 NLL 월선(아군 함포사격)
▲2004. 10. 26 : 연천군 GOP 철책선 2곳 절단
▲2004. 11. 1 : 북 경비정 3척, 서해 소청도 동방 6.5 마일 및 연평도 서방 25마일 해상 NLL 월선, 해군 경고사격
▲2005. 5. 13 :  북 경비정 2척, 순위도 서남방 7.5마일 NLL 월선
▲2005. 8. 21  : 북 경비정 1척, 백령도 북방 4마일 월선
▲2005. 10. 14  : 북 경비정 1척, 등산곶 부근2.7㎞ NLL 월선
▲2005. 11. 13  : 북 경비정 1척·어선 9척, 연평도 서남방 10마일 NLL 월선
▲2008. 5. 17  : 북 경비정 1척, 대청도-연평도 사이 1.9㎞ NLL 월선
▲2009. 9. 4  : 북 경비정 1척, 백령도 동북방 10㎞ NLL 월선
▲2009. 11. 10 :  북 경비정 1척, 대청도 동쪽 6.3 마일 NLL 월선, 대청해전
2010-02-19 09:5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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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北), 정전협정 중요 위반 사례만 262건
   판문점 도끼 만행·KAL기 폭파·서해교전… 오늘 협정체결 56주년

   북한 김영춘(차수) 인민무력부장은 26일 정전협정 체결 56주년(27일)을 하루 앞두고 평양에서 열린 중앙보고대회에서 6·25전쟁이 끝난 지 반세기가 넘었지만 "제국주의와의 대결전은 계속되고 있다"고 했다. 이어 "(한·미·일의) 반(反)공화국 제재 소동과 군사적 도발 책동으로 (한반도에는)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정세가 조성되고 있다"고 밝혔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그러나 본지가 입수한 정부 자료에 따르면, 1953년 정전협정 서명 직후부터 올해 6월까지 북한이 위반한 정전협정 중요 사례만 262건으로 집계됐다. "육·해·공을 가리지 않는 무력 도발로 한반도에 위기를 조성한 것은 북한"이라는 게 정부 당국의 분석이다. 동시에 북한은 1954년부터 주한 미군(美軍) 철수를 전제로 한 '평화협정 체결' 공세를 벌이며 '정전협정 불능화'를 시도하고 있다. 평화협정을 맺자며 미국에 양자 협상을 제의한 것은 1979년 7월(외무성 대변인 성명)로 거슬러 올라간다.

북한의 중요 위반 사례 262건 중 육상 위반은 115건이다.

▲국군 초소 수류탄 투척(1962.11)
▲판문점 도끼 만행(1976.8)
▲남침용 땅굴 4개(1974~90년)
▲대성동 주민 납치(1997.10)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해상 위반은 125건으로
▲어선·어민 납치(80년대 말까지)
▲강릉 잠수함 침투(1996.9)
▲여수 반잠수정 침투(1998.12)
▲2차례 서해교전 (1999·2002년) 등이 꼽힌다. 두 차례의 여객기 납치(1958·1969년)
▲KAL 858기 폭파(1987년)
      등이 포함된 공중 위반 사건도 22건으로 나타났다. 북한의 중요 위반 사례는 60년대가 82건으로 가장 많았고 70년대(32건)와 80년대(21건)에는 감소세를 보였지만, 90년대 42건에 이어 2000년대 72건으로 다시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북한은 휴전 다음해인 1954년 6월 제네바 정치회의에서 '남북 평화협정 체결'을 거론한 이후 줄기차게 "평화협정을 맺자"고 요구하고 있다. 정전협정을 무력화·무효화하려고 끊임없이 시도해 온 것이다.

평화협정 체결의 대상과 내용은 국제 정세 등에 따라 미북 평화협정(1974~83년), 남·북·미 3자 회담(1984 ~90년), 미북 평화협정(1991~99년), 미북 불가침 조약(2002~03년), 한반도 평화체제 및 종전선언(2005~07년) 등으로 달라졌다. 그러나 "주한 미군 철수" 요구가 빠진 적은 없다. 남주홍 경기대 교수는 "80년대 초까지 북한은 주한 미군이 철수하면 남한을 무력 침공하겠다는 의도가 강했지만, 80년대 후반 공산권이 몰락한 뒤에는 남한 주도의 통일을 막고 체제를 지키기 위해 평화협정에 매달리고 있다"고 했다.

북한이 정전협정 무력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은 1991년 유엔군사령부가 한국군 황원탁 소장을 군사정전위원회(군정위) 수석대표로 임명하자 이를 문제 삼으며 군정위에서 전면 철수하면서부터다. 이후 북한은 군정위 대신 판문점대표부(1994.5)를 설치했고 평화협정 때까지 정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미북 군사 공동기구 운영'(1996.2)을 제의하기도 했다. 정부 당국자는 "북은 2003년부터 올해 5월까지 '정전협정을 지키지 않겠다'는 취지의 발표만 5차례 했다"고 했다.
   (조선일보 2009.07.27 01:00 안용현 기자 ahnyh@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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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정전협정 무력화(無力化)의 전략에 속지말라.

                 (정전협정 제54주년을 맞으며)
                    Written by. 김흔중(2007.7.27)


   일제로부터 1945년 8월 15일 광복의 해방을 맞이 했지만 미,소에 의해 38선인 고통의 허리띄를 두르고 한반도는 강제로 분단되었다.그리고 1950년 6.25일 구 소련의 작전계획서에 의한 김일성의 남침 전쟁은 남한 지원군으로 미국을 비롯한 UN 16개국이 참전했고,북한을 지원한 중국 지원군이 참전하여 국제전의 양상으로 3년1개월이 지속되었다. 그러나 1953년 7월27일 한국 대표의 서명이 없이 미국(클라크),중국(팽덕회),북한(김일성)의 3대표의 서명으로 정전협정이 체결되어 오늘날까지 155마일 휴전선의 군사분계선은 민족적 한이 서려 있다.
    금년의 정전협졍 54주년을 맞이하며 전쟁종식과 평화협정의 전망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북한은 2006년 10월17일 외무성을 통해 당당한 핵보유국이 되었다고 주장했다.이와 때를 같이하여 공교롭게도 10월1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APEC정상회담이 열린가운데 한,미 정상회담에서 부시는 깜짝 놀랄 세가지 제안을 했다. 첫째,한반도 전쟁의 종식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둘째,북한에 대한 안전보장 셋째,미국의 대북경제지원 참여 등이었다.그후 북한의 핵폐기를 위한 6자회담이 급진전되면서 전쟁종식과 평화협정 문제가 종종 거론되고 있다.
    북한은 휴전협정이 발효된 이후 적화통일전략은 추호도 변함이  없으며 그간의 휴전협정 위반은 42만 5천건이나 된다는 자료를 보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 대량살상무기의 생산 뿐만 아니라 북한 동포들을 300만명 이상 굶겨 죽이면서 핵무기의 운반수단인 미사일과 한반도를 초토화 시킬수 있는 핵무기를 생산,보유하게 되었다는 것은 천인공로할 사실이다.
   오늘날 핵무기를 빌미로 핵폐기를 빙자하여 정전협정을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위장전략이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북한의 음흉한 전략적 계산인 평화협정체제의 전환은 근본적으로 연방제 적화통일의 목적 실현에 있으며 세가지 중심 축으로 고려해 볼수 있다.
   첫째는 이라크의 장기전으로 진퇴유곡에 빠진 미국 부시를 설득하며 핵폐기의 시간을 버는 동시에 미국의 내년도 대통령선거를 겨냥하여 실리를 추구하자는 것이고 둘째는 중국의 내년 북경 올림픽개최를 배경으로 북.중 혈맹관계를 유지하면서 북.미 관계의 유리한 조건을 조성하자는 것이며 셋째로 노무현 정권을 헨드링하여 햇볕정책에 의한 대북지원을 고수하게 하고,남한내의 반미.친북의 동조세력을 동원하여 12월 19일 대선에서 좌파세력이 재집권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전략으로 분석된다.
   남한은 대선을 앞두고 안보는 실종되고,안보 불감증은 야당인 한나라당에게도 번져서 여야를 가릴것 없이 안보를 외면 한채 대권경쟁에 혈안이 되고 있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로 인한 비대칭 군사력의 위협에 대한 인식과 국가안보에 대한 관심은 어느때 보다도 긴장을 더해가고 있지만 모든 국민들과 정치인들은 안일하게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바라보는데 따른 안보는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더욱 우리는 북핵의 인질상태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핵무기는 남한을 위협하지 않는 자위의 수단이라고 두둔하며,남북 경제력의 격차가 너무 커서 북한의 전쟁도발은 불가능하다는 논리를 전개하는 친북세력들이 많이 있다. 
   김일성은 6.25남침전쟁에 실패한 이후 적화통일을 포기하지 않고 전쟁준비를 철저히 해왔었다. 더욱 베트남의 적화통일을 보면서 한반도에 대한 적화통일에 고무되었겠지만 김일성에게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으며 구 소련의 붕괴와 공산위성국가의 민주화로의 변화는 김일성에게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김일성은 자기 생전에 적화통일을 하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그는  사망하고 말았다. 김정일의 세습적 후계체제는 선군정치를 내걸고 핵무기 개발을 비롯한 대량살상무기 생산으로 인해 경제파탄에 직면하게 되었으며 북한 동포들이 무수히 아사(餓死)하고,탈북자들이 속출하고 있는 현실이다.
   김정일은 정권의 붕괴에 대비하기 위하여 핵카드를 최대한 활용하면서 남한의 좌파정권과 친북세력을 손아귀에 틀어 쥐고 있는것 같다.최근 노무현 정권은 평화협정을 빙자하여 남북 정상회담을 내걸고 있는 저의는 김정일에 동조하며 비위를 맞추는 동시에 좌파정권을 연장시키려는 계략으로 보여 진다.오직 북한의 교묘한 적화통일전략과 통일전선 전술에 속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정전협정을 무력화(無力化)하여 유사시 한반도에 미군의 자동개입을 불가능하도록 기도(企圖)해 온 사례를 살펴보기로 한다.

   1,1991년 3월25일 한국군 장성(황원탁 소장)을 군사정전위원회 유엔군측 수석대표로 임명하고 이를 북한에 통보하자 정전위원회 본회의를 보이콧하여 제459차 군사정전위원회를 마지막으로 본회의는 열리지 않고 있다. 즉 정전협정에 서명하지 않은 남한을 그들이 상대적 실체 국가로 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2,1994년 4월24일 북한은 군사정전위원회 대표를 일방적으로 철수 한데 이어 중립국감독위원회 체코와 폴란드의 두 대표를 철수 시켰다. 그리하여 정전협정체제의 핵심인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감독위원회의 기능을 무력화 시켰다.
   3,1994년 5월24일 북한은 군사정전위원회 대신에 “조선인민군 판문점 대표부”라는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는 기구를 설치하였고,같은 해 12월15일에 중국은 군사정전위원회 대표를 본국으로 소환하기에 이르렀다.북한은 정전협정체제를 본격적으로 와해시키고 주도권을 장악하겠다는 본심이 여실히 들어 났다.
   4,북한은 최근 신문과 방송을 통해 NLL(북방한계선)의 무효화를 주장하고 있다. 노무현 정권은 이런 북쪽의 요구를 검토할수 있는 듯이 동조의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그러나 국방부가 며칠전 NLL을 확고히 유지할 것이며 북측이 NLL을 침범할 경우 단호히 대처하겠다는 내용의 책자를 발간하게 되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정전협정의 규정에 서해5도서(백령도,대청도,소청도,연평도,우도)는 유엔군총사령관의 군사통제하에 둔다고 명시되어 있다.그러나 5개섬을 연결하는 선이나 수역은 협정에 합의된 바 없다.그래서 육지의 DMZ 군사분계선의 연장선에 서해 5개섬을 연결하는 해상 북방한계선(NLL)은 지난 1992년 남북 기본합의서에 의해서도 남북간에 확인된 사실이다.
   그러나 북한은 북방한계선을 무력화하기 위하여 북방한계선을 자주 침범.도발했으며 많은 어선을 서해에서 나포해 갔다.2002년 6월29일 우리 해군 참수리호 357호는 북한 경비정에 맞서 연평해전에서 승리의 쾌거를 보였으며 북방한계선(NLL)사수의 사명을 다했다.
   북한의 NLL의 무력화는 정전협정 파기의 전단계(前段階)인 것이며 미군철수가 이루어지고 주한 유엔군사령부가 해체되면 자동적으로 서해5도서를 북한의 영토로 접수하여 관할 하겠다는 속셈으로 보아야 한다.
   5,미 부시 대통령의 하노이 발언에서 한반도 전쟁종식 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의사 표명에 김정일은 고무될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미국의 공화당은 그간 10년간의 집권을 청산하는냐 재집권을 하느냐의 중대한 기로에 놓인 2008년 11월 대통령선거가 있게 된다. 공화당의 부시행정부는 공화당의 재집권을 위한 정책은 필요불가결한 사실이다.
   미국은 이라크의 장기전으로 인해 파병 이후 미군 전사자 3.390명(2007.5월말 현재)의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다.따라서 미국민들의 반전여론과 부시행정부에 대한 의회의 불신은 베트남전의 상황에 방불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보여 진다.
   이러한 부시행정부의 딜레마 (dilemma)는 북한의 핵 보유선언에 따른 핵폐기의 6자회담으로 방향이 선회되고 있으며 미 부시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평화협정체제 전환이라는 당근을 주면서 전쟁종식의 미끼까지 주려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2007년 7월11일 버시바우 주한 미국 대사는 “서울 화계사”의 강연에서 “미국은 한반도 평화체제 협상 과정을 올해 안에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리고 “올해 안에 2.13합의의 2단계조치인 핵프로그램 신고와 불능화 조치를 마치고 내년까지 완전 비핵화와 평화체제 수립까지 가기를 원한다”고 밝혔다.우리는 올해 시작해서 내년에 완전 비핵화를 마무리 짖겠다는 점을 주목하게 된다.
   6,중국에서 개최되는 2008년 8월 북경올림픽을 앞두고 미.중 관계는 어느때 보다도 긴밀할 것이며 한반도 문제 해결에 영향이 클것이다. 역사적 외교사에 오점을 남긴 미.일 간의 가스라-데프트 협약과 같이 남한의 참여 없이 전쟁종식을 선포하여,정전협정체제가 평화협정체제로 전환하게 되는 미.중,북 간의 물밑 외교적 흥정은 기필코 막아야 한다.
   7,2007년 12월의 대선과 2008년 4월의 총선은 좌파정권의 10년 집권이 종식되는냐 연장되느냐의 중대한 기로에 서게 된다.이러한 중요한 시기에 남북 정상의 만남을 통하여 사전에 밀약된 평화선언과 서해 해상 NLL 을 조정하여 공동어로의 구역이 선포된다면 대선정국에 큰 회오리 바람이 불어 닥칠 것이다.그러나 미국과 중국의 합의나 동의 없이는 평화협정체제의 전환은 사실상 어렵겠지만 정전체제를 파기하려는 김정일과 정권 재창출을 노리는 노무현 사이에 광적 돌출행위를 자행할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제 마무리를 짓고자 한다.이상의 7개항은 한반도의 비핵화에 따른 6자회담의 귀추에 따라 관심도는 가변성이 있겠지만 결론적인 해답은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에 의하여 문제 해결이 이루어 진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은 2008년 11월 대선에 초점을 맞추게 될것이며 금년 안에 큰 변화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따라서 부시는 이라크 장기전의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북한의 핵보유를 내심으로 기정사실화하는 가운데 점진적으로 북핵문제해결의 수순을 밟아 김정일 정권체제의 붕괴를 바라는 동시에 변화를 추구할 것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완전 폐기한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우며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은닉하여 보유할 것이라 예상된다.
   한반도를 초토화시킬수 있는 핵무기의 보유는 잠재적 국력이며 생존 수단이기 때문에 김정일은 벼랑끝 전략으로 버티면서 부시의 넥타이를 잡아 당겼다 늦췄다 하고,노무현의 덜미를 잡고 흔들며,후진타오의 영향력을 교모히 이용하는 고차원적 위장전략을 전개할 것으로 판단된다. 그래서 “韓國의 大選,中國의 北京 올림픽,美國의 大選에 따른 延長線上에서 今年과 來年은 大 變革의 해”가 될것이다.
   결국 한국전쟁의 종전 씨나리오와 평화협정의 실질적 거론에 따른 국제정치적 급변상황에 어떻게 능동적으로 대처할 것인가의 대비책에 따라 대한민국의 국체(國體,forms of state)와 정체(政體, forms of government)의 존속여부가 좌우될 것이다(八達山 一隅에서)
  <출처>;
   북한의 정전협정 무력화(無力化)의 전략에 속지말라(다시 보기)  김흔중 칼럼  
   2010/06/29 17:20 http://blog.naver.com/chungpha/4010945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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