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들이 의존할 능력, 창조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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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들이 의존할 능력, 창조사관◀
창세기는 이스라엘 민족의 뿌리와 이동과 사상과 사명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글이다. 유대인들의 역사관은 창조사관이다. 유대민족과 그들의 땅은 역사적으로 아주 오랜 기간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던 곳이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했던 나라였고, 가장 처참하게 살았던 민족이었다. 그들의 땅은 아주 오랜 기간 그들의 무덤이었고, 그들은 그 무덤 속에 갇혔던 자들이었다. 그곳은 혼란스런 빈터였으며 어둠의 권세가 지배하던 곳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신(神)은 언제나 그들 위에 있었고, 그들과 함께 했으며, 떠돌이였던 그들을 부르셨고, 약속의 땅으로 이동시키셨으며, 노예였던 그들을 해방시키셨고, 언약의 말씀으로 계명들을 주셨으며, 선민으로 택하셨고, 나라가 없던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셨다. 그곳이 비록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던 무덤 속과 같은 곳이었다 할지라도 그 위에 하나님의 신이 운행하던 곳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곳, 하나님의 신(神)이 운행하던 곳에서 창조의 역사가 일어났다. 어둠이 빛이 되고, 혼돈이 질서가 되고, 죽음이 생명이 되었다.
이처럼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있는 곳이면, 그곳이 비록 모래바람 몰아치는 삭막하고 황량한 사막일지라도, 버려진 두엄더미 같이 냄새나는 곳이라 할지라도, 그곳에서 꽃이 피고 샘이 솟고 양떼가 뛰놀고 마소가 풀을 뜯고 물을 마시는 젖과 꿀이 흐르는 옥토가 되고 에덴동산이 된다. 하나님이 동행하는 곳이면, 그곳이 비록 깊은 바다 속이라할지라도, 그곳에서 부활의 능력이 나타나고 창조의 역사가 일어난다.
사막 같고, 두엄더미 같고, 바다 속 같았던 곳이 이스라엘 땅이고, 그곳에서 일어난 일들이 유대역사이고, 유대역사는 천지창조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그 역사가 다른 인류역사와 다른 것은 유대인의 역사가 철저하게 하나님이 개입하시고 관여하신 하나님의 경륜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는 것, 곧 이스라엘의 역사를 하나님의 동행의 역사로 보는 것이 유대인들의 민족사관이다.
유대인들의 민족사관은 창조사관이다. 그들의 창조사관은 창조신앙에서 비롯된 것이다.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던 땅에 하나님의 신이 운행하시고, 그분이 말씀하시면 어둠이 빛이 되고, 혼돈이 질서가 되며, 죽음이 생명이 된다.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던 땅이 이스라엘 땅만은 아니다.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경험을 유대인들만이 하는 것은 아니다. 인류가 경험해온 것이고, 우리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우리들의 삶에 반드시 필요한 것, 그런 인류의 역사에 반드시 필요한 것, 그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하나님이 수면 위에 운행하시고 계시다는 동행신앙이다. 이 동행신앙에서 창조사관이 비롯되고, 창조사관은 우리들의 삶에 빛이 되고, 생명이 되고, 능력이 되고, 지혜가 된다.
수천 년에 걸친 고난과 시련 속에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지 아니하고, 유대민족의 오늘이 있는 것은 그들의 창조사관 때문이다. 우리가 겪는 혼돈과 공허와 흑암과 고통의 배후에 하나님이 언제나 동행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창세기는 이스라엘 민족의 뿌리와 이동과 사상과 사명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글이다. 유대인들의 역사관은 창조사관이다. 유대민족과 그들의 땅은 역사적으로 아주 오랜 기간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던 곳이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했던 나라였고, 가장 처참하게 살았던 민족이었다. 그들의 땅은 아주 오랜 기간 그들의 무덤이었고, 그들은 그 무덤 속에 갇혔던 자들이었다. 그곳은 혼란스런 빈터였으며 어둠의 권세가 지배하던 곳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신(神)은 언제나 그들 위에 있었고, 그들과 함께 했으며, 떠돌이였던 그들을 부르셨고, 약속의 땅으로 이동시키셨으며, 노예였던 그들을 해방시키셨고, 언약의 말씀으로 계명들을 주셨으며, 선민으로 택하셨고, 나라가 없던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셨다. 그곳이 비록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던 무덤 속과 같은 곳이었다 할지라도 그 위에 하나님의 신이 운행하던 곳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곳, 하나님의 신(神)이 운행하던 곳에서 창조의 역사가 일어났다. 어둠이 빛이 되고, 혼돈이 질서가 되고, 죽음이 생명이 되었다.
이처럼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있는 곳이면, 그곳이 비록 모래바람 몰아치는 삭막하고 황량한 사막일지라도, 버려진 두엄더미 같이 냄새나는 곳이라 할지라도, 그곳에서 꽃이 피고 샘이 솟고 양떼가 뛰놀고 마소가 풀을 뜯고 물을 마시는 젖과 꿀이 흐르는 옥토가 되고 에덴동산이 된다. 하나님이 동행하는 곳이면, 그곳이 비록 깊은 바다 속이라할지라도, 그곳에서 부활의 능력이 나타나고 창조의 역사가 일어난다.
사막 같고, 두엄더미 같고, 바다 속 같았던 곳이 이스라엘 땅이고, 그곳에서 일어난 일들이 유대역사이고, 유대역사는 천지창조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그 역사가 다른 인류역사와 다른 것은 유대인의 역사가 철저하게 하나님이 개입하시고 관여하신 하나님의 경륜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는 것, 곧 이스라엘의 역사를 하나님의 동행의 역사로 보는 것이 유대인들의 민족사관이다.
유대인들의 민족사관은 창조사관이다. 그들의 창조사관은 창조신앙에서 비롯된 것이다.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던 땅에 하나님의 신이 운행하시고, 그분이 말씀하시면 어둠이 빛이 되고, 혼돈이 질서가 되며, 죽음이 생명이 된다.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던 땅이 이스라엘 땅만은 아니다.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경험을 유대인들만이 하는 것은 아니다. 인류가 경험해온 것이고, 우리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우리들의 삶에 반드시 필요한 것, 그런 인류의 역사에 반드시 필요한 것, 그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하나님이 수면 위에 운행하시고 계시다는 동행신앙이다. 이 동행신앙에서 창조사관이 비롯되고, 창조사관은 우리들의 삶에 빛이 되고, 생명이 되고, 능력이 되고, 지혜가 된다.
수천 년에 걸친 고난과 시련 속에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지 아니하고, 유대민족의 오늘이 있는 것은 그들의 창조사관 때문이다. 우리가 겪는 혼돈과 공허와 흑암과 고통의 배후에 하나님이 언제나 동행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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