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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들이 의존할 능력, 긍정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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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7,347 2007.04.20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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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들이 의존할 능력, 긍정의 언어◀
예수님의 말씀의 권세는 그분의 살림과 긍정의 언어에서 비롯되었다. 마태복음 5-7장에 실린 주옥같은 산상수훈, 13장에 실린 8개의 천국비유, 19-25장에 실린 많은 말씀들을 “무리가 듣고 가르치심에 놀랐다”(마 7:28; 22:33)고 마태는 민중의 반응을 소개하였으며, 마가도 “다 놀라 서로 물어 가로되, 이는 어찜이뇨? 권세 있는 새 교훈이로다.”(막 1:27)라고 무리의 놀람을 소개하였고, 누가도 “저희가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말씀이 권세가 있음이라.”(눅 4:32)고 민중의 충격을 소개하였다. 모세의 율법밖에는 아는 것이 없었던 민중들이 모세의 가르침보다 더 권세 있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놀라워’했고, ‘새로운 교훈’이고 ‘권세’가 있다고 이구동성으로 고백했다.
예수님의 권세는 그 분의 행동 속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예수님의 행동의 권세 역시 그분의 살림과 긍정의 행동에서 비롯되었다. 마태와 누가는 각각 20개씩의 예수님의 기적을 소개하고 있다. 그 가운데서 마태복음 8장 27절과 누가복음 8장 25절에는 바람과 바다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본 제자들의 반응이 아주 잘 나타나 있다. “그 사람들이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고 하더라.”(마 8:25), 또 “저희가 두려워하고 기이히 여겨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고 하더라”(눅 8:25). 이토록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의 권세와 행동의 권세에 다 놀라며 기이히 여겼다. 이를 두고 누가는 9장 43절에서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위엄에 놀랐다.”고 했고, “저희가 다 그 행하시는 모든 일을 기이히 여겼다.”고 적고 있다. 그만큼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에서 나타난 권세는 일찍이 다른 사람에게서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었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에 권세가 있었던 것은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이 플러스가 되는 살림의 언어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믿지만 성도들의 삶에 권세가 없는 것은 말과 행동이 마이너스가 되는 죽임의 말이요 행동이기 때문이다. 남에게 보탬이 되는 말과 행동, 살림이 되는 말과 행동에는 사람을 살리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가 담겨 있어서 권세가 있는 것이다. 비록 우리가 예수님처럼 병자를 고치지는 못하고, 귀신을 떨며 꼬꾸라져 떠나가게는 못한다 해도, 살림의 말, 칭찬의 말, 위로의 말, 감사의 말, 믿음의 말, 소망의 말, 창조의 말, 긍정의 말, 할 수 있다는 말을 한다면, 우리의 그와 같은 말들 속에는 엄청난 권세와 위력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점에서 창세기 1장 3절의 “하나님이 가라사대”는 하나님의 창조와 살림의 능력과 언어의 권세를 나타낸다. 바울은 하나님을 소개할 때마다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이라 하였다. 따라서 ‘하나님이 가라사대’는 살림의 말이요 창조의 언어이다. 없음을 있음으로, 죽음을 생명으로, 어둠을 빛으로, 무질서를 질서로, 넘어진 것을 바로, 더럽혀진 것을 깨끗하게, 타락한 것을 거듭나게 하며, 병든 것을 고치며, 불의를 정의로, 분쟁을 평화로, 분열을 일치로, 거짓을 진실로, 악을 선으로, 미움을 사랑으로, 의심을 믿음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슬픔을 기쁨으로, 모순을 조화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부정을 긍정으로, 수동을 능동으로, 닫힘을 열림으로, 파괴를 건설로 바꾸는 살림의 언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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