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시대에 적합한 인물: 베드로와 야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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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시대에 적합한 인물: 베드로와 야고보◀
교회가 처음 시작된 곳은 예루살렘 성전이었고, 창설멤버는 모두 유대인들이었다. 그 때가 주후 30년 5월 28일이었고, 대표적 인물은 베드로와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였다.
신약시대에는 문화가 서로 다른 두 종류의 유대인들이 있었다. 팔레스타인 땅에서 출생해서 아람어를 쓰고, 히브리어 성경을 읽으며, 이스라엘 영내에서 거주하는 히브리파 유대인이 있었고, 외국에서 출생해서 헬라어를 쓰고, 헬라어 성경을 읽으며, 외국에 거주하면서 이스라엘 영내를 출입하는 디아스포라 유대인, 곧 헬라파 유대인이 있었다. 베드로와 야고보는 히브리파 유대인이었다.
대부분의 히브리파 유대인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으면서도, 오직 유대인과 이스라엘 나라만을 위한 것이고, 이방인을 위한 메시아도 된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하지 못했다. 그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사도행전 10, 11, 15장과 갈라디아서 2장이다.
사도행전 10장 14-15절에 보면,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것과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이 비교되고 있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것은 베드로와 같은 유대인이 이방인을 보는 편견이고,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은 백부장 고넬료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다. 베드로가 고넬료 가정에 모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을 때, 11장 3절의 말씀을 보면, 예루살렘 교회의 유대인들이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고 교제한 사실에 대해서 힐난하며 나무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이 유대인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고, 하나님이 유대인의 구원만을 위하지 아니하시고, 동일하게 이방인의 구원도 위하신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히브리파 유대인들의 한계를 보인 것이고, 그들의 활동범위를 동족에게 제한시키는 족쇄였던 것이다.
또 갈라디아서 2장 11-18절을 보면, 바울이 베드로를 책망했다는 말씀이 있다. 베드로가 안디옥교회를 방문했을 때, 이방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다가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인 야고보가 보낸 히브리파 유대인들을 보자 식탁에서 떠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던 것이다. 이 점을 바울은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베드로를 책망했던 것이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었던 히브리파 유대인들은 이방인기독교인들을 유대교에 개종한 자로 이해하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도행전 15장에 보면, 안디옥교회의 대표들과 예루살렘교회의 대표들이 모여 격론을 벌린 끝에 내린 결론이 ‘문의 개종자’의 수준에서 처리하자는 것이었다. ‘문의 개종자’란 문안의 객, 곧 손님이란 말에서 나온 것으로써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들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비록 베드로가 마태복음 16장 18-19절의 말씀대로 그리스도의 교회의 설립권과 승인권을 가진 사도였고, 그의 입에서 나온 설교로 최초의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가 설립되고, 빌립이 세운 사마리아 교회와 바울의 선교교회들이 그의 권위아래서 승인될 수 있었다 해도, 또 야고보가 예수님의 동생으로서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 자리에 있었다고 해도 그들의 역할은 거기까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사고가 민족주의에 묶여 동족의 한계를 넘어 지평을 넓히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교회가 처음 시작된 곳은 예루살렘 성전이었고, 창설멤버는 모두 유대인들이었다. 그 때가 주후 30년 5월 28일이었고, 대표적 인물은 베드로와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였다.
신약시대에는 문화가 서로 다른 두 종류의 유대인들이 있었다. 팔레스타인 땅에서 출생해서 아람어를 쓰고, 히브리어 성경을 읽으며, 이스라엘 영내에서 거주하는 히브리파 유대인이 있었고, 외국에서 출생해서 헬라어를 쓰고, 헬라어 성경을 읽으며, 외국에 거주하면서 이스라엘 영내를 출입하는 디아스포라 유대인, 곧 헬라파 유대인이 있었다. 베드로와 야고보는 히브리파 유대인이었다.
대부분의 히브리파 유대인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으면서도, 오직 유대인과 이스라엘 나라만을 위한 것이고, 이방인을 위한 메시아도 된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하지 못했다. 그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사도행전 10, 11, 15장과 갈라디아서 2장이다.
사도행전 10장 14-15절에 보면,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것과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이 비교되고 있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것은 베드로와 같은 유대인이 이방인을 보는 편견이고,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은 백부장 고넬료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다. 베드로가 고넬료 가정에 모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을 때, 11장 3절의 말씀을 보면, 예루살렘 교회의 유대인들이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고 교제한 사실에 대해서 힐난하며 나무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이 유대인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고, 하나님이 유대인의 구원만을 위하지 아니하시고, 동일하게 이방인의 구원도 위하신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히브리파 유대인들의 한계를 보인 것이고, 그들의 활동범위를 동족에게 제한시키는 족쇄였던 것이다.
또 갈라디아서 2장 11-18절을 보면, 바울이 베드로를 책망했다는 말씀이 있다. 베드로가 안디옥교회를 방문했을 때, 이방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다가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인 야고보가 보낸 히브리파 유대인들을 보자 식탁에서 떠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던 것이다. 이 점을 바울은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베드로를 책망했던 것이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었던 히브리파 유대인들은 이방인기독교인들을 유대교에 개종한 자로 이해하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도행전 15장에 보면, 안디옥교회의 대표들과 예루살렘교회의 대표들이 모여 격론을 벌린 끝에 내린 결론이 ‘문의 개종자’의 수준에서 처리하자는 것이었다. ‘문의 개종자’란 문안의 객, 곧 손님이란 말에서 나온 것으로써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들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비록 베드로가 마태복음 16장 18-19절의 말씀대로 그리스도의 교회의 설립권과 승인권을 가진 사도였고, 그의 입에서 나온 설교로 최초의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가 설립되고, 빌립이 세운 사마리아 교회와 바울의 선교교회들이 그의 권위아래서 승인될 수 있었다 해도, 또 야고보가 예수님의 동생으로서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 자리에 있었다고 해도 그들의 역할은 거기까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사고가 민족주의에 묶여 동족의 한계를 넘어 지평을 넓히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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