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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시대에 적합한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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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7,010 2006.10.14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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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시대에 적합한 인물
Persons Fit to the New Covenant Age


조동호 교수

1. 베드로와 야고보

유대교인들은 2500여 년 전부터 두 가지를 희망하고 있었다. 첫 번째가 메시아가 나타나는 것이고, 두 번째가 그 메시아가 가져올 ‘올람 하바’(Olam Ha-Ba)이다. ‘올람 하바’란 ‘메시아 시대’ 혹은 ’다가올 세계‘(World to Come)를 뜻한다. 이 ’올람 하바‘ 곧 ’다가올 메시아 세계‘는 흔히 말하는 ’종말시대‘ 또는 ’마지막 시대‘를 말하는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이 ’다가올 마지막 세계‘가 2천 년 전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성육신사건에서 시작되었다고 본다. 그분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은 인류의 대속을 위한 것이었고, 그분이 승천하시고 대신 보내신 보혜사 성령님의 활동은 다가올 마지막 세계의 실현을 위한 것이었다. 성령님의 활동을 통해서 세워진 교회가 ’올람 하바‘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총을 힘입어 하나님의 ’의롭다 하심‘과 성령님의 ’중생과 씻음과 거룩하게 하심‘을 받은 사람은 이 ’올람 하바‘의 시민이 되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500여 년간 몹시 고대하던 그 마지막 세계 혹은 종말시대가 성령님의 활동을 통해서 ’교회‘라는 새 언약 공동체 속에서 ’이미‘ 시작되었고, 영적으로 실현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이 시대를 교회시대, 혹은 성령시대라고 부른다. 또 이 시대를 다른 말로는 시작된 종말시대 또는 실현된 종말시대라고 부른다.
시작된 종말이나 실현된 종말이란 말은 영적인 종말을 뜻하는 것이고, 종말의 완성을 뜻하는 것은 ‘아직’ 아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이란 말, 혹은 ‘칭의’나 ‘중생’이란 말은 종말이 완성되는 때에 주어질 완전한 구원의 축복을 하나님으로부터 약속받고, 성령님으로 보증 받고, 인침 받고, 그 축복들을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가르치심과 보호하심과 변호하심과 치료하심 속에서 맛보고 누리며 경험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대표적인 축복은 하나님의 평강이다. 마음의 평화, 가정의 평화, 이 평화가 있는 곳에 만사가 형통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이지, 끝은 아니다. ‘끝’ 곧 ‘완성’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에 이뤄진다. 그리스도인들이 재림을 믿고 기다리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 23절에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린다.”고 했다.
그런데 이런 축복이 유대인들에게는 없다. 그들에게는 시작된 종말이나 실현된 종말의 축복이 없는 것이다. 그 첫 번째 이유는 그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있는 것은 조상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약속뿐이고, 성령님으로 보증 받고, 인침 받고, 그 축복들을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가르치심과 보호하심과 변호하심과 치료하심 속에서 맛보고 누리며 경험하는 것이 없다. 유대인들에게 시작된 종말의 축복이 없는 두 번째 이유는 그들이 말하는 ’다가올 시대‘란 그들 민족만의 축복이기 때문이다. ’올람 하바‘는 유대인의 제2의 출애굽 사건, 곧 유대인의 대 구원 사건을 말하는데, 이 사건은 영적인 사건이 아니고, 육적인 사건이다. 문자적인 이스라엘 왕국의 완전한 회복을 말하는 것이다. 1948년 5월 14일에 이스라엘 국가가 건국되었는데, 건국된 지 60여년이 흘렀어도 이스라엘 왕국이 완전하게 회복되었다고 믿는 유대인은 없다. 아직 메시아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고, 세계를 통합할만한 여력도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활동하셨던 2천 년 전부터 오늘날까지 유대인들 가운데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 메시아닉 주(Messianic Jews), 곧 소수의 기독교인 유대인들이 있고,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않는 다수의 비기독교인 유대인들이 있다. 기독교가 처음 시작된 장소는 예루살렘이고, 시작한 사람들은 모두 유대인들이었다. 예루살렘에 교회가 세워진 것은 주후 30년 5월 28일이었고, 대표적 지도자는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와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였다.
이들 기독교인 유대인들을 보는 신학자들에는 두 가지 부류가 있다. 먼저 진보적인 신학자들은 기독교인 유대인들이 그들 자신들을 유대교 안에서의 개혁운동으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성전제사를 드렸고, 안식일을 지켰으며, 할례를 행하고, 절기와 음식에 관한 법들을 지켰다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섬겼고, 예수님을 선지자나 교사의 한 사람으로 보았으며, 신적이나 반신적 존재로 보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복음주의 신학자들은 예루살렘에 집중된 기독교인 운동이 할례를 행하고, 성전제사를 드리고, 절기와 음식에 관한 법들을 지킨 것을 제외하고는 바울 라인의 기독교인들의 신앙과 거의 다르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었고, 삼위일체의 한 인격으로 보았으며, 메시아와 구세주로 보았다고 말한다.
필자는 진보 보수 신학자들이 말하는 두 가지 견해의 유대인들이 언제나 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공통점은 그들이 예수님을 메시아였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기독교인 유대인들은 메시아에 대한 이해를 우리 기독교인들과 달리 한다. 그들이 우리 기독교인들이 믿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생각하는 메시아는 다윗 왕처럼 그들 나라의 왕이 될 사람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메시아는 우리가 말하는 ‘구세주’(救世主)도 아니고, 죄가 없으신 삼위일체 신도 아니다. 이스라엘의 영광을 되찾게 해줄 다윗과 같은 영웅이자 제2의 출애굽 사건을 이끌 모세와 같은 인물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 같은 인물이 유대인들을 이스라엘로 돌아오게 하고 예루살렘을 회복시킴으로써 정치적 영적 구원을 가져다 줄 것이며, 이스라엘에 한 정부를 세울 것이고, 그것을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위한 전 세계 정부의 중심에 세울 것이며, 성전을 재건할 것이고, 성전예배를 다시 세울 것이며, 이스라엘의 종교법정 체계를 회복시킬 것이고, 나라 법으로써 유대법을 세울 것이라고 믿는다.
예수님의 부활사건과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을 접하기까지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었던 유대인들조차도 여타의 다른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메시아가 무죄한 신적 또는 반신적 존재일 것이라든지,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실 구세주이시며 다시 이 땅에 오실 메시아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 수 있다. 그러나 부활사건과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은 그들의 보편적인 생각을 바꾸기에 충분히 충격적인 사건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록 그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었고,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로 믿었다 할지라도, 그 메시아가 온 인류의 대속, 곧 이방인을 위한 메시아도 된다는 생각을 갖지는 못했고, 유대인과 이스라엘 나라만을 위한 메시아라는 생각을 쉽게 떨쳐버리지를 못했다. 그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사도행전 10-11장이다.
유대인들 가운데는 두 종류의 유대인들이 있다. 먼저 언급된 두 종류의 유대인은 예수님을 믿고 안 믿는 신앙과 관련된 것이었지만, 지금 설명하는 두 종류의 유대인은 거주 지역에 관련된 것이다. 팔레스타인 땅에서 출생해서 아람어를 쓰고, 히브리어 성경을 읽으며, 이스라엘 영내에서 거주하는 유대인을 히브리파 유대인이라고 사도행전은 말한다. 그러나 외국에서 출생해서 헬라어를 쓰고, 헬라어 성경을 읽으며, 외국에 거주하면서 이스라엘 영내를 출입하는 디아스포라 유대인을 헬라파 유대인이라고 사도행전은 말한다. 본 장에서 살펴보려는 유대인은 팔레스타인 땅에서 출생해서 아람어를 쓰고, 히브리어 성경을 읽으며, 이스라엘 영내에서 거주하는 히브리파 유대인이고, 그들 가운데서도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따르는 기독교인 유대인이며, 그 대표자격인 베드로와 야고보의 사고와 신념과 역할과 사명에 관한 것이다.
사도행전 10장 14-15절에 보면,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것과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이 비교되어 있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것은 유대인이 이방인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은 사도행전 10장 22절에서 볼 수 있듯이 백부장 고넬료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말하는 것이다. 비록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이방인일지라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시기 때문에 아무라도 속되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실을 비기독교인 유대인들은 물론이고,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 베드로조차도 깨닫지 못했고, 알지 못했고,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것이 히브리파 유대인들의 한계였고, 그들의 활동범위를 동족에게 제한시키는 족쇄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이 왜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세 번씩이나 환상을 보이고,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는가라는 물음의 답이다.
베드로가 고넬료 가정에 모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을 때, 11장 3절의 말씀을 보면, 예루살렘 교회의 유대인들이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고 교제한 사실에 대해서 힐난하며 나무랐던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이 유대인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고, 하나님이 유대인의 구원만을 위하지 아니하시고, 동일하게 이방인의 구원도 위하신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히브리파 유대인들의 한계였고, 그들의 활동범위를 동족인 유대인에게 제한시킨 족쇄였던 것이다.
갈라디아서 2장 11-18절을 보면, 바울이 베드로를 책망했다는 말씀이 있다. 베드로가 안디옥교회를 방문했을 때, 이방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고 있었는데,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인 야고보가 보낸 히브리파 유대인들이 도착하자 이방인과 함께 음식 먹는 것을 보고 비방할 것을 두려워하여 자리를 피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다른 유대인들조차도 베드로를 따라 자리를 떠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이, 갈라디아서 2장 14-16절에 따르면, 모든 사람이 보는 자리에서 베드로에게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을 좇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 죄인이 아니로되,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고 면책했다는 것이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같은 인물이 쉽사리 빠져나올 수 없는 올무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 회중이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받은 십계명과 율법의 말씀인 토라였다. 할례를 포함한 그 토라의 내용을 지키지 않고서는 그 누구라도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다는 신념이 그들을 가두는 올무였던 것이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었던 히브리파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유대교에 개종하는 차원에서 이해하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에게 할례를 요구한 것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런 문제가 좀 더 구체적으로 논의 되고 있는 곳이 사도행전 15장이다. 바울과 바나바가 일차 선교여행을 성공리에 마치고 안디옥 교회로 돌아왔을 때, 예루살렘 교회에서 올라온 자들이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한다.”(행 15:1)고 주장하게 되면서 그들과 바울사이에 심한 변론이 일게 되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안디옥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를 몇몇 사람들과 함께 예루살렘 교회에 보내어 사도들의 의견을 듣게 하였다. 이 일로 예루살렘에서 사도와 장로들의 총회가 열리게 되었다. 많은 변론이 있고난 다음에 베드로의 설득과 야고보의 중재로 주님께로 돌아온 이방인들을 ‘문의 개종자’의 수준에서 처리하자고 제안하였다.
‘문의 개종자’란 문안의 객, 곧 손님이란 말에서 온 것으로써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들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유대인들의 궁극적인 희망사항이 이방인들의 완전한 개종이었다 치더라도, ‘하나님 경외자들’에게는 613개의 명령과 금령을 포함한 토라 전체의 준수가 요구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들에게는 노아의 일곱 개의 율법이 요구되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오늘날 유대인들은 ‘하나님 경외자들’을 ‘노아의 자녀들’(B'nai Noah)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유대인들은 이 일곱 개의 율법이 최초의 ‘하나님 경외자’였던 아담과 노아에게 주어졌던 것이며, 유대인들이 기대하는 ‘올람 하바,’ 곧 다가올 세계에 동참하고 싶어 하는 이방인들에게 요구하는 율법이다. 이들 일곱 개의 노아의 율법은 (1)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2)우상들을 숭배하지 말라. (3)간음하지 말라. (4)살인하지 말라. (5)도둑질하지 말라. (6)동물의 살코기를 산채로 먹지 말라. (7)사법체계를 제정하라는 것이다. 사도행전 15장에 소개된 사도총회에서 결정된 네 가지 금지사항들, 즉 우상의 더러운 것, 음행, 목매어 죽인 것, 피를 금하라는 야고보의 절충 제안은 바로 유대인들이 ‘하나님 경외자들’에게 요구했던 내용들이었던 것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로서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하신 마태복음 16장 18-19절의 말씀대로 그리스도의 교회의 설립권과 승인권을 가진 사도였다. 그의 입에서 나온 설교로 최초의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가 설립되었고, 빌립이 세운 사마리아 교회와 바울의 선교교회들이 그의 권위아래서 승인될 수 있었다. 그러나 베드로가 교회 설립권과 승인권을 가진 사도 중의 사도였다 할지라도 그의 역할은 거기까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야고보는 예수님의 동생으로서 예루살렘 교회의 대표자였다. 야고보가 예루살렘 교회의 최고 책임자로 부상되던 때에 사도들은 떠돌이 순회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야고보가 최초의 그리스도의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이었다 할지라도 그의 역할 또한 거기까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베드로나 야고보와 같은 히브리파 유대인들은 그들의 사고가 민족주의에 제한받고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이란 한계를 넘어 지평을 넓히기가 심히 어려웠다. 따라서 하나님이 쓰신 그들의 역할도 거기까지였다. 바울이 갈라디아서 2장 7-8절에서 “도리어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기를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이 한 것을 보고,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에게 사도로 삼으셨다.”고 말한 것에서 보듯이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의 역할을 그들의 민족인 소수 유대인에게 한정시켰던 것이다. 그래서 수많은 열방 민족을 향한 사역은 지평이 넓고 열방민족을 품을 수 있는 넓은 가슴과 뜨거운 열정을 가졌던 바울에게 넘어갔던 것이다. 우리를 옥죄는 올무가 무엇인지, 우리의 시야를 좁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의 역할과 사역을 제한시키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이 되었으면 한다.

2. 바울

수천 년 동안 자손대대로 조상의 하나님을 고백했던 엄청난 신앙의 유산을 가진 유대인들이 신생 기독교에 추월을 당하고 하나님의 축복에서 멀어진 이유가 무엇일까? 위대한 신앙의 유산을 물려받은 유대인들이 그들을 옛 언약공동체로 무시해버린 기독교신앙과 복음에 뒤진 이유가 무엇일까? 하나님을 자기 민족의 하나님으로 묶어버리고, 소수 유대민족의 신으로 제한해 버린 때문이 아닐까? ‘조상들의 하나님 신앙’이 유대민족의 결속에는 도움이 되지만, 결과적으로는 하나님을 민족신(民族神)으로 묶어버리는 단점이 있는 것이다. 그들 조상에게 계시하셨던 하나님은 결코 소수 유대인들만의 하나님으로 제한될 수 없는 이 우주에 한분밖에 없는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다. 그 점에 있어서 유대인들이 기독교에 패배한 것이다.
오랜 역사와 완고한 전통 속에 있던 유대교를 뛰어넘어 기독교시대를 연 인물이 누구인가? 사도 바울이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와 부름을 통해서 유대인의 하나님을 만인의 하나님으로 유대인의 구원의 하나님을 만인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지평을 넓힌 사람이다. 그는 에베소서 2장 19절에서, 이방인 기독교인들에게 말하기를, “그러므로 이제부터 여러분은 외국 사람이나 나그네가 아니요, 성도와 같은 시민이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고 했다. 로마서 10장 12절에서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꼭 같이 주님이 되어 주시고,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풍성한 은혜를 내려 주십니다.”라고도 했다. 에베소서 3장 6절에서는 “그 비밀이라는 것은 이방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한 몸이 되고, 함께 약속을 받은 지체가 되는 것입니다.”라고도 했다. 일찍이 유대인들이 상상조차도 할 수 없었던 이런 파격적인 선언이 계시로 하나님의 비밀을 깨닫고 말한 내용이라고 했고,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 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게 하지 아니하신 것이라고도 했다. 여기서 다른 세대의 사람의 아들들이란 하나님이 자기 민족만의 하나님이란 편협한 사고에 빠진 유대인들을 말한다. 예수님을 믿으면 이방인도 유대인과 동등한 위치에 서게 된다는 것, 유대인도 예수님을 믿어야 예수님을 믿는 이방인과 동등한 자격을 얻는다는 것,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하심을 받는 것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동등하게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된다는 것, 이것이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8절)이고,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였던 비밀의 경륜”(9절)이며,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11절)이라고 했다.
얼마나 파격적인가? 그러나 유대인들이 누구며, 어떤 생각을 갖고 있고,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를 알기 전에는 바울의 이러한 선언들이 얼마나 파격적인 것인가를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런 파격적인 대 선언 때문에 고린도후서 11장 23절 이하의 말씀대로 바울은 수없이 옥에 갇히고, 수없이 매를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고, 유대인들에게 39대의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강의 위험, 강도의 위험, 동족의 위험, 이방인의 위험, 시내의 위험, 광야의 위험, 바다의 위험,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고, 날마다 교회들을 위하여 염려 속에서 살았던 것이다.
이방인 구원에 대해서 유대인과 한 점 차별도 두지 않고, 언약의 하나님과 조상의 하나님을 자랑하며 유일신 하나님의 선민이 된 것과 언약서인 토라를 자랑하는 유대인과 동등하게 취급한 바울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는 헬라파 유대인이었다. 이방 나라와 이스라엘의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헬라파 유대인들은 히브리파 유대인들의 높은 벽을 뛰어넘어 문화가 다른 이방 나라에 하나님을 소개한 사람들이었다.
헬라파 유대인은 외국에서 출생해서 헬라어를 쓰고, 헬라어 성경을 읽으며, 외국에 거주하면서 이스라엘 영내를 출입하는 디아스포라 유대인을 말한다. 바울과 바나바, 스데반과 빌립과 같은 사람들이 헬라파 유대인들이다. 예루살렘 교회에 과부를 구제하는 일로 불평이 생겨서 사도들을 대신할 일군들로 뽑힌 일곱 사람들이 모두 헬라파 유대인들이다. 흔히 일곱 집사라는 말을 쓰지만, 그들은 집사이기보다는 오히려 전도자들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과 예수님의 동생인 야고보와 같은 이들은 팔레스타인 땅에서 출생해서 아람어를 쓰고, 히브리어 성경을 읽으며, 이스라엘 영내에서 거주하는 히브리파 유대인들이었다. 히브리파 유대인들의 사고가 민족주의에 묶여 있고, 하나님을 유대인만의 하나님으로 생각하는 배타주의에 묶여 있기 때문에 이방인 선교에 매우 소극적이었던 반면에, 헬라파 유대인들은 이방인 선교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그 결과 헬라파 유대인 회당에는 네로의 부인 포페아를 비롯해서 유대인 수에 못지않은 많은 수의 헬라인들이 유대교에 입교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수준에 있었다. 히브리파 유대인 회당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현상이었다.
헬라파 유대인들과 기독교는 독특한 관계를 맺고 있다. 첫째는 초기 기독교 박해가 헬라파 유대인들한테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헬라파 유대인이었던 바울이 역시 헬라파 유대인 기독교인이었던 스데반을 살해한 것이다. 헬라파 유대인이었던 바울을 죽일 것을 공모하고 39대의 매를 다섯 번이나 때리고 감옥에 가두고, 돌로 쳐서 거의 죽게 만들었던 사람들도 모두 헬라파 유대인들이었다. 둘째는 이런 극심한 견제와 배척과 핍박에도 불구하고, 기독교가 그레코로만 세계에 뿌리를 내려 급속히 성장할 수 있게 한 것도 헬라파 유대인 기독교인들 때문이었다. 셋째는 히브리파 유대인들의 편협한 사고 때문에 유대교에 매몰되고 말았을지도 모를 기독교 복음을 팔레스타인 국경을 넘어 시리아로 가져가고, 키프로스로 가져가고, 터키로 가져가고, 그리스로 가져가고, 로마로 가져가고, 북아프리카로 가져간 사람들이 모두 헬라파 유대인 출신 기독교인들이었고, 대부분의 선교교회들이 이들 헬라파 유대인 회당을 출입했던 자들에 의해서 세워졌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과 유대지방에 교회를 세우는 데는 열두 제자들과 같이 아람어를 사용하는 본토출생의 히브리파 유대인들을 들어 쓰셨지만, 안디옥과 해외에 이방인 교회를 세울 때는 헬라어를 사용하는 외국태생의 헬라파 유대인 기독교인들을 들어 쓰셨다. 예를 들면, 예루살렘과 유대지방에서는 베드로와 요한을 들어 쓰셨지만, 사마리아지방에서는 빌립을 들어 쓰셨고, 해외선교는 바울과 바나바 등의 인물을 들어 쓰셨다. 왜 그랬을까? 왜 하나님은 베드로나 요한 또는 야고보 등을 보내어 해외선교를 하지 않고 박해자였던 바울이 필요했을까? 왜 하나님은 기독교를 세우는데 그리스말을 하는 헬라파 유대인들이 필요했을까?
첫째, 해외선교는 무엇보다도 선교지역의 문화와 언어에 익숙한 사람이 유리했기 때문이었다. 빌립, 스데반, 바나바, 바울, 실라 등은 그 당시 상황으로 보면, 이미 세계화가 이루어진 사람들이었다. 많은 교육을 받았을 뿐 아니라, 이방문화에 익숙하였고, 무엇보다도 국제어인 헬라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베드로와 야고보처럼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나 아람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본토출생의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유대인만의 하나님으로 생각했을 뿐 아니라, 배타적이고 민족주의적이며, 무엇보다도 헬라어를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하나님에게는 준비된 그릇이 필요했던 것이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 가운데 유대교에 개종한 자들을 ‘의의 개종자’와 ‘문의 개종자’로 나누어 구분하였는데, ‘의의 개종자’는 유대교의 모든 율법과 의식을 준수하는 완전개종자를 말하고, ‘문의 개종자’는 율법과 유대교 의식에 제재 당하지 않고, 유대교 회당에 참석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었다. 이런 이방인들이 외국에 많았다. 터키에 있는 아프로디시아스(Aphrodisias)에서 1977년에 발굴된 2세기경 회당건립 후원자 명단이 새겨진 기념비에는 유대인이 69명인데 비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무려 54명이나 되었고, 완전개종자도 3명이나 새겨져 있었다. 이 기념비는 초대교회 당시 회당을 출입하면서 유대교 신앙을 받아 드린 이방인들이 얼마나 많았는가를 알게 해주는 아주 중요한 고고학적 자료이다. 이들이 바로 기독교 복음을 받아드릴 준비된 축복의 그릇들이었다. 하나님은 이들을 불러 축복하시고 구원하셨다.
기독교 복음은 처음에 하나님을 아는 히브리파 유대인들에서 시작하여 디아스포라 곧 헬라파 유대인들에게 전파되었고,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 의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들에게 전파되었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들에 의해서 완전 불신자들인 이방인들에게까지도 전파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 세계로 뻗어가는 징검다리였다.
하나님이 세계 선교를 위한 그릇으로 아람어를 사용하는 본토출신 베드로와 그 밖의 사도들을 택하지 않고, 헬라파 유대인인 바울을 택한 이유는 이방인을 이해하고 포용하며 그들의 구원에 뜨거운 열정과 하나님은 유대인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된다는 열린 사고와, 하나님의 구원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다는 세계화된 사고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히브리파 유대인들은 선민의식과 언약서에 대한 자기도취에 빠져서 자기 민족이란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우물 안 개구리 식으로 갇혀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역할과 활동범위가 그들 민족에 국한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기독교 복음은 편협한 배타적 선민의식과 독점적인 영토주의 그리고 율법주의의 소유자들인 히브리파 유대인들의 손과 팔레스타인의 울타리를 벗어나 세계로 뻗어가야 했다. 히브리파 유대인들의 대표격인 베드로와 야고보는 편협한 배타적 선민의식과 독점적인 영토주의와 율법주의에 젖어 있을 뿐 아니라, 당대의 헬레니즘 문명권에 동화되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헬라문화와 언어 및 지리에 익숙하지 못하였고, 해외에서 자랐거나 공부한 경험이 없었으며, 친지들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므로 이들은 세계 선교에 기여할 능력이 많지 않았던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준비된 그릇이었던 헬라파 사람들의 포용적이고 열린 복음적 사고와 익숙한 언어와 문화수준을 세계 선교를 위해서 쓰셨던 것이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선민이었으면서도 열방민족들의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비밀을 알지 못하고 그 비밀에 동참할 수 없었던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보다는 오히려 자신들의 세속적인 욕망을 위해서 맞춤 그리스도를 바라고 원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율법의 약속을 문자적으로 믿으면서 제2의 출애굽사건을 이끌 그리스도의 등장을 기다렸고, 그 그리스도가 세울 ‘올람 하바’가 유대인들로 하여금 세계를 지배하게 할 유대인 국가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만세전부터 간직했던 비밀을 그들은 제대로 알 수 없었고, 지금도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된 생각을 고치지 않고 있다.
사도 바울이 깨닫고, 이것을 온 세계에 전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었던 것은 이것이다. 하나님은 만세전부터 간직하셨던 당신의 비밀인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피로 말미암아 온 인류를 구속하시고, 죄 사함을 얻게 하시며(골 1:14, 엡 1:7),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들을 살리시는 것이다(엡 2:1). 또 그리스도 안에서 인류가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시고(골 1:18-20),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복을 주시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을 자를 택하시고, 예정하시고, 자녀로 삼으신다는 것이다(엡 1:3-5).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비록 그들이 약속을 받지 못한 이방인일지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제 더 이상, 일찍부터 약속을 누렸던 유대인들과 비교했을 때, 외국인도 아니요, 문안의 객, 곧 손님 혹은 문의 개종자도 아니요,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이요, 하나님의 진정한 가족이며(엡 2:19),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셨던 축복을 물려받을 상속자들이란 것이다(엡 1:11). 이 놀라운 소식을 온 세계에 전할 일군으로, 이방인의 사도로 바울이 뽑혔다는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4장 1절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하나님을 믿되, 히브리파 유대인들처럼 편협하고 배타적이고, 그래서 빗장을 안으로 걸고, 자기 울타리 안에서 우물 안 개구리 식으로 신앙생활하지 말고, 열방을 품은 크고 넓은 활짝 열린 마음으로 바울처럼 세계로 뻗어가야 한다.

3. 빌립과 스데반

빌립의 공헌은 유대인들에 의해서 매몰될 번한 기독교를 유대인들이 개 취급하며 상종도 하지 않던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가져간 것이다. 히브리파 유대인들이었다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빌립이 디아스포라 유대인, 곧 헬라파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스데반의 공헌은, 공헌이라고 말해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후에 불세출의 이방인 사도가 된 바울의 마음에 꺼지지 않는 기독교복음의 불을 지핀 것이다. 스데반은 이 일의 고귀한 희생자였다. 교회가 유능한 젊은 일군 한 사람을 얻는 일에 스데반이 목숨을 바쳤고, 수많은 사람들이 감옥에 갇혔으며, 박해를 피해서 흩어져야 했다. 스데반의 죽음은 바울에게 한평생 복음에 빚진 자로서(롬 1:14, 8:12) 살아가게 한 좋은 의미의 족쇄가 되었을 것이다.
빌립과 스데반의 등장은 예기치 아니한 일에서 비롯되었다. 주후 30년 5월 28일 오순절 날, 곧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50일째가 되는 일요일에 성령이 불의 혀처럼 제자들 위에 강림함으로써 예루살렘 성전 솔로몬 행각에서 베드로의 설교로 시작된 인류 최초의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는 체계와 질서가 채 서지 못한 상태에서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졌고”(행 6:7), 문화와 언어가 다른 히브리파 유대인들과 헬라파 유대인들이 서로 갈등하게 되었다(6:1)
이 갈등은 사도행전 6장 1절의 말씀대로,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한대”(6:1)서 비롯되었다. “원망”의 근원은 헬라파 유대인들에게 지도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도들은 모두 히브리파 유대인들이었다. 그래서 교회는 “일곱을 택하여”(6:3) 헬라파 유대인들의 지도자로 삼았는데, 이 때 뽑힌 일곱 사람은 모두가 헬라파 유대인들이었다. 빌립과 스데반도 이 때 뽑힌 일곱 사람에 속한 지도자들이었다.
사도행전 6장 2-4절에 따르면, 본래 빌립과 스데반은 열두 사도들을 대신해서 구제를 받아야할 자들에게 식량을 배급하거나 식사를 제공하는 일을 책임 맡은 자들이었다. 이들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들이었고, 사도들이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할 수 있도록 돕는 자들이었다. 잘 모르긴 해도, 이들은 아마 일주일에 하루씩 책임을 맡아 구제업무를 관리했거나 자기 구역을 따로 맡아 관리했을 것이다.
빌립과 스데반은 구제업무를 관리하는 일에 만족하지 않았다. 헬라파 유대인들의 성격상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사도들에게만 맡겨두지 않았다. 특히 그들은 사도들이 관심을 갖지 못하는 소외계층에 깊은 관심을 갖고 여유 시간을 활용하여 복음을 전하였다. 그런 그들의 노력으로 인해서 기독교복음이 편협한 배타주의와 율법주의에 사로잡힌 히브리파 유대인들의 손과 팔레스타인의 울타리를 서서히 벗어날 수 있었다.
빌립과 스데반이 교회로부터 정식으로 선출되고, 사도들로부터 안수를 받아 지도자로 세움을 받았다는(행 6:6) 점에서 그들이 평신도 지도자(집사)였는지, 목회자(장로)였는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후에 빌립은 “전도자 빌립”으로 불렸다(행 21:8). 중요한 것은 그들과 같은 디아스포라 유대인, 곧 헬라파 유대인들에 의해서 기독교복음이 편협한 배타주의와 율법주의에 사로잡힌 히브리파 유대인들의 손과 팔레스타인의 국경을 넘어 이방세계에까지 전파되었다는 것이다.
빌립은 유대총독부가 있는, 그래서 이방인이 많을 수밖에 없는 가이사랴에 살았다. 빌립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이방인과의 접촉을 당연시하는 열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이런 성품 때문에 예루살렘 이외의 지역에 복음을 전한 최초의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유대지방 사람들에게는 물론이고, 유대인들이 가기를 꺼려하는 사마리아 사람들과 에티오피아 사람 내시에게조차 복음을 전하고 침례를 베푼 최초의 사람이었다. 그가 유대인들이 상종도 아니 하고, ‘개’ 취급했던 사마리아 사람과 에티오피아 사람인 흑인 내시에게까지 복음전하는 일을 전혀 꺼려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이었다는 점은 왜 헬라파 유대인들이 이방인 선교의 그릇들이 될 수 있었는지를 잘 설명해준다.
빌립은 복음전도, 특히 이방인 선교에 뜨거운 열정과 열린 마음을 가진 헬라파 유대인이었다는 점에서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을 것이고, 헬라어를 구사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 경외자였던 에티오피아인 내시에게조차 기독교 복음을 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비록 사마리아 교회와 이방인 교회들의 정통성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승인권이 아람어를 쓰는 베드로와 요한 같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있었다할지라도, 히브리파 유대인들의 사고의 한계 때문에 세계 선교의 그릇들은 빌립과 스데반, 바울과 바나바와 같은 헬라파 유대인들이 감당하게 된 것을 볼 수 있다.
사마리아인들은 혼혈인들이었다. 앗수리아제국에 망하여 대부분 포로로 끌러갔고, 폐허 속에 내버려진 가난하고 못 배운 북왕국 이스라엘 사람들과 점령국 앗수르제국이 이주시킨 이방인들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들이고, 종교적인 혼합도 막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유대와 사마리아는 솔로몬 왕이 죽은 해인 주전 930년에 왕국이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갈라지면서 분열하였다. 북 왕국은 주전 722년에 앗수르왕 사르곤 2세에게 멸망당하였고, 사르곤은 이스라엘인 27,290명을 포로로 잡아갔다. 그 후 한 세기 동안 유다왕국의 히스기야왕 때(주전 715-686년, 대하 30:1이하)와 요시아왕 때(주전 640-609년, 왕하 23:15이하)에 종교적 통합과 화해를 위한 시도가 있었다. 그리고 바벨론 유배이후에도 화해를 위한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이 예루살렘에 재건된 성전에 대항하여 자기들의 성산인 그리심산에 성전을 세우면서(요 4:20) 대립은 더욱 심화되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인종적 종교적 혼혈족으로 간주하였다. 앗수르 침략이후 사마리아에는 혼족과 혼교의 문제가 있었다. 그 후 혼교의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유대인들의 지역감정은 누그러들지 않았다. 그러다가 주전 128년에 요한 힐카누스가 사마리아를 정복하고 분열의 원인이 되는 성전을 파괴시켜 버렸다. 그리고 주전 63년 이후 로마제국의 정복 아래서 사마리아는 유다의 지배에서 벗어났지만, 지역감정은 그대로 남았다.
북 왕국 사람들보다 130여년 늦게 바벨론제국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남왕국 유대인들은 다행히 뿔뿔이 흩어지지 않고 게토를 이뤄 살았기 때문에 혈통과 유대교신앙의 혼합을 막을 수 있었고, 고국에 돌아올 때는 유대인 혈통은 물론이고, 더욱 발전된 유대교신앙까지 가져올 수 있었다. 그런 민족적 종교적 우월주의에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개’라 부르며 상종하기를 꺼렸던 것이다. 따라서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은 피가 섞인 동족이었으면서도 감정의 골이 깊었다.
그러나 빌립은 디아스포라출신의 헬라파 유대인이었다. 그에게는 사마리아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 없었고, 전도에 대한 뜨거운 열정만이 있었다. 따라서 빌립은 사마리아인들의 마음을 활짝 열 수 있었던 것이다. 전도를 함에 있어서 특정인에 대한 편견을 버리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스데반은 빌립과 함께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로 선출된 일곱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도 역시 디아스포라 출신의 헬라파 유대인이었다.
예루살렘에는 유대인의 회당이 많았는데, 그 가운데는 헬라파 유대인들만이 따로 모이는 회당이 두개 정도 있었을 것으로 학자들은 추측하고 있다. 후에 바울 사도가 된 사울과 스데반이 부딪힌 곳이 바로 헬라파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이었다. 이곳에 출입했던 스데반이 회당예배 때, 정확히 말하면, 그 주간에 읽는 성서낭독 후에 주어진 설교시간에(당시 회당에서는 성서낭독 후에 지목된 자나 자원자가 나서서 설교할 수 있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전파하였고, 설교를 듣고 난 사울은 스데반을 이단자로 간주하였다. 유대인들의 언약서인 모세오경에는 이단자를 돌로 쳐 죽이도록 정하고 있다. 사울이 앞장을 서서 헬라파 유대인들을 선동하여 스데반을 돌로 치게 하였고, 이 사건을 계기로 사울은 헬라파 유대인들 가운데 기독교에 개종한 자들을 색출하여 말살시키기 위해서 이웃나라에까지 갔다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을 만나 거꾸러졌고, 후에는 바울로 이름을 바꾸어 기독교 역사상 가장 뛰어난 업적을 남긴 인물이 되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하나님의 경륜을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스데반의 순교이후 사울의 박해를 피해 외국에 흩어진 기독교인들은 모두가 다 디아스포라 출신의 헬라파 유대인들이었다. 사도행전 11장 19-21절을 보면, “스데반에게 가해진 박해 때문에 흩어진 사람들이 베니게와 키프로스와 안디옥까지 가서, 유대사람에게만 말씀을 전하였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는 키프로스 사람과 구레네 사람 몇이 있었는데, 그들은 안디옥에 이르러서 그리스 사람에게도 말을 붙여서 주 예수를 전하였다. 주께서 그들을 돌보시니, 믿게 된 수많은 사람이 주께로 돌아왔다.”고 적고 있다.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경륜인가? 스데반의 순교는 디아스포라 출신의 헬라파 유대인들을 온 세계로 흩어지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고, 빌립과 스데반처럼 이방인 선교에 열정을 품었던 헬라파 유대인들은 가는 곳마다 기독교복음을 전하고, 이방인 지역에 그리스도의 교회들을 세웠으니, 교회를 흩어지게 한 사울의 박해가 하나님의 경륜에 따른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스데반의 설교와 거룩한 죽음은 후에 불세출의 이방인 사도가 된 바울의 마음에 꺼지지 않는 기독교복음의 횃불이 되었다. 하나님의 교회가 유능한 젊은 일군 한 사람을 얻는 일에 스데반이 목숨을 바친 것이다. 스데반의 죽음은 바울로 하여금 한평생 복음에 빚진 자로서(롬 1:14, 8:12) 쉬지 않고 달리게 한 채찍이었을 것이다.
사도행전 8장 1-6절을 보면, “사울은 스데반이 죽임 당한 것을 마땅하게 여겼다. 그 날에 예루살렘 교회가 크게 박해받기 시작하여, 사도들 이외에는 모두 유대 지방과 사마리아 지방으로 흩어졌다.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그를 생각하여 몹시 통곡하였다. 그런데 사울은 교회를 없애 버리려고 집집마다 찾아 들어가서 남자나 여자나 가리지 않고 끌어내서 감옥에 넘겼다. 그러나 흩어진 사람들은 두루 돌아다니면서 말씀을 전하였다. 빌립은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파하였다. 무리는 빌립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가 하는 기적을 보기도 하는 가운데서, 한 마음으로 빌립이 하는 말을 좇았다.”고 적고 있다. 이 또한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경륜인가? 그리스말을 사용할 줄 알고, 또 외국에서 태어난 유대인들이 흩어지면서 복음을 전하게 되니, 위기가 변하여 기회가 되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인 빌립이 유대인들이 멸시하고 깔보는 절반쯤 유대인의 피가 흐르는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내려가 복음을 전하니 위기가 변하여 기회가 되었다. 사마리아에 그리스도의 교회가 탄생된 것이다. 후일담이긴 하지만, 박해자 사울이 길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변하여 바울이 되고, 이방인 선교사로 자처하면서 목숨을 내걸고 해외에서 선교할 때에 동족인 헬라파 유대인들로부터 극심한 박해를 받았고, 그들을 피하여 다른 도시로 피신할 때마다 그곳 도시들에 새로운 그리스도의 교회들이 탄생하였다. 이 또한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경륜인가?
빌립과 스데반의 활동범위에는 제한적이었다. 사도 바울과 바나바처럼 해외선교에까지 활동범위를 확장시키지는 못했다. 빌립은 유대와 사마리아 지방을 커버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보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있다. 이 말씀은 사도행전의 주제일 뿐 아니라, 누가는 실제로 사도행전을 기독교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어지는 역사를 더듬어 기록하고 있다. 그 가운데서 보다 완고한 히브리파 유대인이었던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에 머물렀고, 야고보보다는 훨씬 더 헬라파 유대인들의 사고에 다가서려고 했던 베드로는 예루살렘과 유대지방에까지 그의 활동범위를 넓혔다. 베드로는 예루살렘 교회와 하나님 경외자였던 고넬료 가정에 세워진 가이사랴 교회를 창립하였고, 빌립과 바울과 바나바와 같은 헬라파 유대인 전도자들의 활동에 힘입어 사마리아와 안디옥과 로마에까지 그의 활동범위를 넓혀갔다. 그리고 빌립은, 비록 그가 해외에까지 활동범위를 확장시키지는 않았지만,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보다 앞서서 유대지방과 사마리아로 그의 활동범위를 넓힌 전도자였다. 스데반은 아쉽게 예루살렘에서 전도활동을 펼치다가 기독교인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경륜을 읽을 수 있어야겠다. 히브리파 유대인들은 편협한 배타적 선민주의와 율법주의에 젖어 있었을 뿐 아니라, 당대의 헬레니즘 문명권에 동화되지도 못했고 세계화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헬라문화와 언어 및 지리에 익숙하지 못하였고, 해외에서 자랐거나 공부한 경험이 없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그들의 동족에게 기독교복음의 발판을 놓는 일에 공헌하였으나 이방민족에게까지 기독교복음을 확장하는 선교의 주도권은 헬라파 유대인들에게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주후 70년 유대전쟁의 패배로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추방당하면서 예루살렘 교회는 문을 닫게 되었다. 예루살렘의 멸망과 그 후 1878년간 해외에서의 유배생활은 히브리파 유대인들의 유대민족주의가 만들어낸 재앙이었다. 따라서 히브리파 유대인 기독교인들은 실질적인 주도권을 잃게 되었다. 그리고 70년 이후 교회의 주도권은 점차 제국의 수도인 로마로 옮겨가게 되었다. 베드로와 바울도 로마에서 순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시대를 ‘올람 하바’라고 했다. 이 세계가 다가올 종말세계인데, 이 새로운 세계에 적합한 인물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진 자들이다. 예수님이 오셔서 침례를 받으시고, 첫 설교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하신 것이나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다.”(눅 5:38)고 하신 것은 새 시대에 적합한 인물이 되어야 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여기서 “회개하라”는 말씀은 죄를 뉘우치라는 말씀도 되지만, 새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패러다임, 곧 ‘새 부대’로 상징되는 새로운 사상, 새로운 가치관, 새로운 세계관 등을 말하는 것이며, ‘새 포도주’란 ‘올람하바’ 곧 메시아시대 혹은 교회시대를 말하는 것이다. 모든 기독교인들은 이 실현된 종말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성령님의 능력으로 메시아시대를 살아가는 신앙인답게 열린 생각과 창조적인 활동으로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그릇들이 되어야겠다.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담을 줄 알아야겠고, 새 시대를 맞이할 기름을 준비하는 자들이 되어야겠다.

4. 바나바

바나바는 레위족의 유대인이었다. 그가 얼마나 오랫동안 예루살렘에 거주했는지, 그가 실제로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를 돕는 레위인의 업무를 수행했는지, 그가 소유했던 땅이 어디에 얼마나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확실한 것은 그가 유대교의 성전업무를 보는 대신에 기독교복음을 위한 전도자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바나바는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서 밭을 팔아 바친 사람이었다. 교회가 처음 설립되어 뿌리를 내리는 과정에 있던 주후 30년대에는 재산을 팔아 교회에 바치는 사람이 많았다. 그 가운 한 사람이 바나바였다. 사도행전 4장 37절을 보면,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다”고 되어 있다. 레위인이었던 바나바가 밭을 팔아 생긴 돈을 유대교 회당이나 성전에 바치지 않고,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께 드렸다는 사실이 주목할 만한 사건이다(행 4:37). 교회 건물이나 목회자 사례비가 없었던 때인데도 교회에 그토록 많은 돈이 필요했던 것은 구제해야할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바나바를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자기 것에 강한 집착을 보이는 사람은 선교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바나바는 디아스포라 헬라파 유대인이었다. 헬라파 유대인들은 유대민족의 배타주의와 율법주의를 뛰어넘어 이방인을 포용할만한 선교열정과 열린 마음을 갖고 있었다. 디아스포라 헬라파 유대인들은 외국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 교포들을 말한다. 헬라파 유대인들은 디아스포라의 문자적인 뜻인 ‘흩어진’이란 말보다 ‘유배’라는 말을 더 자주 쓴다. 헬라파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외국에 유배되어 떠돌이처럼 사는 인생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이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헬라파 유대인 회당에서 스데반의 순교로 촉발된 박해로 인해서 또 다시 흩어지게 되었고, 그들이 페니키아와 키프로스와 안디옥까지 이동하면서 동족인 헬라파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했는데, 그들 가운데 용기 있는 키프로스와 구레네 사람 몇이 헬라인들에게도 복음을 말하여 예수님을 전했고, 하나님의 손길이 그들과 함께 하시면서 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는 놀라운 역사가 있었다(행 11:19-21).
예수님의 제자들인 히브리파 유대인들에 의해서 시작된 복음이 떠돌이 헬라파 유대인들에게 전파되고, 흩어진 헬라파 유대인들에 의해서 그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전파되면서 기독교 복음이 온 세계로 뻗어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선교라는 이름의 복음전도를 처음 시작한 사람들은, 붙박이 히브리파 유대인들이 아니라, 고향을 떠난 떠돌이 헬라파 유대인들이었다. 떠돌이 헬라파 유대인들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붙박이처럼 발걸음을 떼거나 입을 떼기 어려워하는 사람은 전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에 파송된 목회자였다. 사도행전 11장 22절을 보면, 예루살렘 교회가 안디옥 일대에 복음이 전파되어 믿는 자들이 많다는 소식을 듣고, 바나바를 파송한 사실을 보게 된다. 고대 시리아의 수도 안디옥에 교회를 세우고, 목회자로 바나바가 뽑힌 것이다. 23절을 보면, 바나바가 안디옥에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고 열심히 설교하였다.
바나바는 목회자로서의 자질을 제대로 갖춘 인물이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었다. 착하다는 말은 하나님의 일에 유익한 인간의 성품이나 사역을 나타내는 데 자주 사용되는 말이다. 바나바는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서 하나님의 선하신 구원계획을 이뤄드리기에 합당한 자였던 것이다. 또한 그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목회자였다. 그로 인해서 안디옥 교회가 크게 부흥하였고, 든든하게 세워져 나갈 수 있었다(행 11:24).
바나바는 위로의 아들이었다. 바나바에 관한 최초의 언급은 사도행전 4장 36-37절에 나온다. “키프로스 태생으로 레위 사람이요, 사도들로부터 바나바 곧 ‘위로의 아들’이란 뜻의 별명을 가진 요셉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밭을 팔아서 그 돈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다.”라고 되어 있다. 그가 어떤 인품의 사람이었는가를 잘 묘사해 주는 구절이다. 바나바를 언급한 구절들을 종합해서 정리해 보면, 바나바는 위로의 사람(행 4:36), 착한 사람(행 11:24), 화목케 하는 사람(행 11:27), 긍정적인 사람(행 9:26-27), 행동하는 사람(행 9:27), 인정받는 사람(행 4:36, 행 11:22,25), 협동하는 사람(행 11:25-26),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행 11:24), 기도하는 사람(행 13:1-2), 순종하는 사람(행 11:22, 13:2-4), 신령한 사람(행 11:23, 13:2), 헌신하는 사람(행 4:37),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이었다(행 11:26). 이것이 바나바에 대한 성서의 평가이다.
사도들은 그를 '바나바'로 불렀는데, ‘위로의 아들’(Son of Encour- agement)이란 뜻이다. 사도들이 그를 ‘바나바’라 부른 것은 사람들을 격려하는 그의 성품이 특별했기 때문이다. 그는 성경 전체를 통해 유일하게 '착한 사람'으로 소개된 자이다. 예수님은 하나님 외에 착한 분이 없다고 하셨는데(막 10:18), 어떻게 해서 바나바는 착한 사람으로 불릴 수 있었는가? 그 이유는 '위로'의 성품이 곧 하나님의 성품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God of Encouragement, 롬 15:5 NRSV)'이시고, 바나바는 '위로의 아들(Son of Encourage- ment)'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로마서 15장 4절은 '성서의 위로(Encouragement of Scripture)'라는 말을 적고 있는데, 이는 위로가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서 나오는 것임을 암시한다. 바나바가 어떻게 위로의 아들이란 좋은 별명을 얻을 수 있었을까? 그것은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자기 말이 아니라, 성서에서 나오는 말씀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바나바는 바울의 멘토르였다. 그는 인물을 볼 줄 아는 사람이었고, 그 인물을 키우고 후원하는 달란트를 가진 멘토르(Mentor)였다. 멘토르는 트로이의 목마로 유명한 전쟁영웅 오디세우스(Odysseus)의 친구이자 충실한 조언자로서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가 장성해 아버지를 구할 때까지 항상 곁에서 그를 가르치고 이끌어 주었던 스승이었다. 여기서 유래된 말이 멘토르인데, 현명하고 믿을 만한 의논 상대나 스승, 또는 영향력 있는 후원자를 말할 때 쓰인다.
바울이 다메섹(다마스쿠스)으로 가던 길에서 주님을 만난 후 그리스도께 헌신을 결심하고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자 그들이 바울을 죽이려고 달려든 적이 있었다. 겨우 피신한 바울은 곧장 예루살렘에 상경하여 사도들을 만나려 했으나 면담의 기회조차 얻질 못했다. 이때 사도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바울의 회심과 그의 믿음이 진실한 것임을 알려 바울로 하여금 복음사역의 일원이 되는 전기를 마련한 사람이 바나바였다. 사도행전 9장 26-27절을 보면,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의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본 것과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던 것을 말하였다."고 그가 행한 일을 소개하고 있다. 여호와는 유대인만의 하나님이라고 믿었던 배타적이고 율법적인 히브리파 유대인 기독교인들에게 바울을 소개하여 높은 유대인의 장벽을 뛰어넘어 세계로 복음을 가져가게 할 위대한 사도를 만든 그 한 가지 공로만으로도 바나바는 중요하기 이를 데 없는 인물이다.
바울 곁에 바나바가 있었던 것은 크나큰 행운이요 은혜였다. 사도들이 바울의 과거만을 회상하며 의심하고 두려워하며 그와의 대면을 꺼려 할 때에 바나바는 바울에게서 사도들이 보지 못하는 무한한 가능성을 보았고, 마치 땅 속에 묻힌 보물을 발견하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산 사람처럼(마 13:44), 또 매우 값진 진주를 발견한 후에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귀한 진주를 산 사람처럼(마 13:46) 바울이 위대한 사도로 성장하는 일에 혼신의 힘을 쏟은 멘토르였다. 예수님은 이와 같은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마 13:43)고 하셨다.
또 바나바는 바울에게 자신과 동역해줄 것을 처음으로 요청한 사람이다. 스데반이 순교하던 날 살벌한 박해를 피해 헬라파 유대인들이 흩어져 고대 시리아의 수도 안디옥에까지 이르렀다. 예루살렘교회는 그곳으로 바나바를 파송했다. 바나바는 부흥하는 안디옥 교회를 섬기면서 협력 목회자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일찍이 바울 안에 감춰진 무한한 가능성의 보물을 발견했던 바나바는 바울이 칩거하던 터키 남단에 위치한 다소에까지 가서 그를 찾아내 데려와서 안디옥 교회에 중책을 맡겼으며, 그를 돕고 협력하는 후원자의 역할을 자진해서 맡아했다. 처음에 바나바는 바울을 그의 협력자로 불러왔지만, 그의 가능성의 보물이 밖으로 돌출되면서 바나바는 기꺼이 그를 자신의 주연 자리에 서게 하였고, 자신은 그를 돕는 조연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바나바는 불세출의 인물, 바울을 키워냈던 것이다. 바나바는 기꺼이 기득권을 버리고 자신보다 뛰어난 바울을 앞장 세웠으며, 함께 협력했던 착한 사람이었다. 이 두 사람은 합심해서 일 년 동안 안디옥 교회를 섬겼고, 또 함께 선교여행을 구상하고 실행에 옮겼다. 이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Christian)이란 고유명사가 생겨나게 되었다(행 11:25-26).
바나바는 마가의 멘토르였다. 바나바는 크게 실수한 자일지라도 가능성이 보이면 그에게 재기할 기회를 주는 일을 꺼리지 않았다. 그런 방식으로 바나바는 미숙하고 경솔한 행동을 마다않던 그래서 바울로부터 외면을 당했던 마가 요한을 위로의 사도답게 용기를 북돋아 다시 전도자로 세워 큰 일군이 되게 하였다.
바울조차도 마가의 가능성을 보지 못했다. 바울은 제1차 선교여행 때 일행을 버리고 중도에서 귀향해 버린 마가를 용서하려 하지 않았고(행 13:13), 끝까지 바울은 제2차 여행에 마가를 대동하지 않으려 했다. 바울의 고집이 너무 완고하여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안 바나바는 한 젊은 일군을 위해서 기꺼이 사랑하는 동역자 바울과 갈라섰다. 사도들이 바울의 단점을 보았다면, 바나바가 바울의 장점을 보고 그를 픽업하여 위대한 이방인 사도가 되게 하였듯이, 바울이 마가의 단점을 보았다면, 바나바는 마가의 장점을 보고 그가 성장하는 것을 기꺼이 도왔던 것이다. 바나바의 처신이 얼마나 훌륭한 것이었는지는 바울의 글들에 마가가 자주 언급되고 있는 것을 보아 알 수 있다.
바울은 마가를 단호히 배제했지만 바나바는 그를 힘껏 품었다. 마가가 일시적인 경거망동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성장하여 바울의 사역에 없어서는 아니 될 큰 인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나바가 그의 곁을 지켜주었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다. 바나바는 바울과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기”까지(행 15:39) 하면서 마가를 자신의 선교여행에 동행시켰던 뛰어난 멘토르였다. 후에 바울은 마가가 자신과 함께 복음을 위해서 옥에 갇혔던 동역자로 교회가 영접할 것을 명하였고(골 4:10), 자기 일에 유익하니 마가를 데려오라고 디모데에게 지시하였으며(딤후 4:11), 빌레몬서 1장 24절에서는 “나의 동역자 마가”로 부르고 있다. 후에 마가는 베드로의 통역관으로 로마에서 사역하였고(벧전 5:13), 베드로 사후에는 그의 설교를 회상하여 최초의 복음서인 마가복음을 저술하였다. 마가가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바나바가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바울이 나중에 깨달은 마가의 진면목을 바나바는 훨씬 이전부터에 발견했던 것이다. 바울은 마가를 미숙한 자로 보았지만, 바나바는 그에게 숨겨진 무한한 가능성의 보물을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바나바는 그 보물을 얻기 위해서 바울에게 했던 것처럼 마가에게도 똑같이 멘토르의 역할을 했던 것이다. 바나바는 한때의 실수로 평생 배신자의 멍에를 짊어지고 패배의 쓴 잔을 마셔야했을 마가를 극적으로 회생시킨 것이다. 사도들이 왜 요셉인 그에게 ‘바나바’란 새로운 이름을 지어 주었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들이다. 그래서였을까? 마가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유대인 건축에 주춧돌과 같은 중요한 모퉁이돌이 되었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잊지 않고 소개하고 있다(막 12:10).
바나바는 해외에 파송된 선교사였다. 사도행전 11장 24절은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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