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말씀: 믿음과 죄 사함
본문
▶예수님의 말씀: 믿음과 죄 사함◀
마태복음 9장 2절에서 예수님은 중풍병자를 고치시면서 “네 병이 나았다.“고 말씀하지 않고,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네 죄 사함을 받았다.”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우리는 나타난 현상보다는 본질의 문제에 접근하신 예수님의 능력과 지혜를 엿보게 된다. 인간은 육체와 영혼으로 이뤄진 만물의 영장이다. 육체에 나타난 현상은 육체만의 문제가 아니라, 내면의 문제로 인한 것일 수 있다. 인간의 몸도 조직이다. 조직에 문제가 나타난다면, 나타난 현상보다는 근원적인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네 죄 사함을 받았다.”고 하신 것은 나타난 현상에 대한 본질을 보시고 근원적인 문제를 제거하신 것이라 믿어진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몸에 나타난 질병만을 보시지 않고, 그 질병의 근원인 죄 문제를 보신 것이다. 근원적인 문제가 해결될 때, 비로소 그는 온전한 고침을 받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서기관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참람하다고 생각했다. 하나님 외에는 누구도 근원에 접근할 수 없다는 뜻일 것이다. ‘참람하다’는 말은 ‘모독하다’는 뜻인데, ‘신성을 취하다,’ ‘신성을 모독하다,’ ‘신처럼 언행을 일삼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서기관들의 생각을 아시고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 있으며, 어떤 신분인가를 분명하게 밝히신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것을 신성모독으로 생각했다. 유대인들은 유일신 한분 하나님만을 믿었기 때문에 메시아가 신성을 가진 자란 것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는 ”네 죄 사함을 받았다.”는 예수님의 선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선언과 간구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이들 말씀은 간구가 아니라, 단언적인 선포이다. 예수님은 중풍병자가 낫기를 간구한 것이 아니라 발생하라고 선언하신 것이다. 이와 같은 선언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신성을 가진 자만이 할 수 있는 선언이다. 특히 이천년 전 유대인들은 병을 앓거나 가난에 찌들어 사는 이유는 부모의 죄든, 자기 자신의 죄든, 아무튼 죄로 인해서 벌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사람들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다.”는 선언은 곧바로 “네 병이 나았다.”는 선언과 같은 것이며, 그와 같은 선언을 통해서 죄 사함을 얻게 하고, 병을 낫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일찍이 없었다. 오직 신성을 가진 예수님만이 할 수 있는 선언이었던 것이다. 그로 인해서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예수님의 말씀의 권세와 치유능력으로 인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누가복음 7장 36-50절에 어떤 죄 많은 여인이 향유가 담긴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발 곁에 서서, 울면서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머리카락으로 닦고, 예수님의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바른 이야기가 나온다. 눈물로 회개하는 이 여인에게 예수님은 “네 죄 사함을 얻었다.”고 하셨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고 하셨다. 이 여인에게는 육체의 병은 없었다. 그러나 마음의 병이 깊었었다. 예수님은 그녀의 마음의 병을 고치셨다. 이렇게 예수님을 믿으면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육체가 강건하여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태복음 9장 2절에서 예수님은 중풍병자를 고치시면서 “네 병이 나았다.“고 말씀하지 않고,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네 죄 사함을 받았다.”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우리는 나타난 현상보다는 본질의 문제에 접근하신 예수님의 능력과 지혜를 엿보게 된다. 인간은 육체와 영혼으로 이뤄진 만물의 영장이다. 육체에 나타난 현상은 육체만의 문제가 아니라, 내면의 문제로 인한 것일 수 있다. 인간의 몸도 조직이다. 조직에 문제가 나타난다면, 나타난 현상보다는 근원적인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네 죄 사함을 받았다.”고 하신 것은 나타난 현상에 대한 본질을 보시고 근원적인 문제를 제거하신 것이라 믿어진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몸에 나타난 질병만을 보시지 않고, 그 질병의 근원인 죄 문제를 보신 것이다. 근원적인 문제가 해결될 때, 비로소 그는 온전한 고침을 받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서기관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참람하다고 생각했다. 하나님 외에는 누구도 근원에 접근할 수 없다는 뜻일 것이다. ‘참람하다’는 말은 ‘모독하다’는 뜻인데, ‘신성을 취하다,’ ‘신성을 모독하다,’ ‘신처럼 언행을 일삼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서기관들의 생각을 아시고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 있으며, 어떤 신분인가를 분명하게 밝히신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것을 신성모독으로 생각했다. 유대인들은 유일신 한분 하나님만을 믿었기 때문에 메시아가 신성을 가진 자란 것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는 ”네 죄 사함을 받았다.”는 예수님의 선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선언과 간구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이들 말씀은 간구가 아니라, 단언적인 선포이다. 예수님은 중풍병자가 낫기를 간구한 것이 아니라 발생하라고 선언하신 것이다. 이와 같은 선언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신성을 가진 자만이 할 수 있는 선언이다. 특히 이천년 전 유대인들은 병을 앓거나 가난에 찌들어 사는 이유는 부모의 죄든, 자기 자신의 죄든, 아무튼 죄로 인해서 벌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사람들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다.”는 선언은 곧바로 “네 병이 나았다.”는 선언과 같은 것이며, 그와 같은 선언을 통해서 죄 사함을 얻게 하고, 병을 낫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일찍이 없었다. 오직 신성을 가진 예수님만이 할 수 있는 선언이었던 것이다. 그로 인해서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예수님의 말씀의 권세와 치유능력으로 인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누가복음 7장 36-50절에 어떤 죄 많은 여인이 향유가 담긴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발 곁에 서서, 울면서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머리카락으로 닦고, 예수님의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바른 이야기가 나온다. 눈물로 회개하는 이 여인에게 예수님은 “네 죄 사함을 얻었다.”고 하셨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고 하셨다. 이 여인에게는 육체의 병은 없었다. 그러나 마음의 병이 깊었었다. 예수님은 그녀의 마음의 병을 고치셨다. 이렇게 예수님을 믿으면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육체가 강건하여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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