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자료

KCCS Digital Archive의 자료와 게시판을 분류별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컨텐츠&자료공유 최근자료 KCCS Digital Archive

예수님의 말씀: 형제를 용서하라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조동호
댓글 0 조회 8,137 2007.01.27 00:01

본문

▶예수님의 말씀: 형제를 용서하라◀
작가 박완서는 묵상집, 󰡔옳고도 아름다운 당신󰡕에서 마태복음 18장 21-35절을 무진장 용서받을 수 있다는 뜻으로 오해하지 말고, 무진장 용서해주라는 주님의 뜻을 힘써 실천하는 사람이 되자고 적고 있다.
톨스토이는 “악마의 일은 아름답고 신의 일은 까다롭다”란 글에서 형제의 과실을 용서하는 것은 마귀의 계략을 무너뜨리는 일이라고 믿었다. 세상 사람들에게 마귀의 일은 아름답고 하나님의 일은 까다롭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살림의 일은 마귀의 죽임의 일을 멈추게 할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용서는 살림의 일이며 하나님의 일이다. 마귀가 가장 싫어하는 일이다. 그래서 마귀를 물리치는 가장 훌륭한 전략이 용서하는 일이다.
마태복음 18장 21-35절에서 ‘용서하다’는 의미는 무언가를 떠나보내는 개념으로써 ‘죄나 징계로부터 풀어주다.’는 뜻이다. 따라서 ‘용서’란 것은 형제가 저지른 죄나 잘못을 ‘떠나보내 주는’ 혹은 ‘없애 주는’ 태도를 말한다.
베드로는 형제를 용서해 주는 횟수를 일곱 번으로 제한했다. 이 일곱 번은 당시 유대교의 관습에 비하면 매우 관대한 것이었다. 당시 랍비들은 “사람이 죄를 범하면 한 번, 두 번, 세 번 용서하고, 네 번째는 용서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베드로가 제시한 용서의 횟수 일곱 번은 매우 관대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용서해 주는 횟수에만 관심했지, 형제를 잃어버린 양처럼 찾아야할 소중한 가치란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잃어버린 형제를 얻기 위한 것이라면 횟수가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이 예수님의 신념이었다. 용서 자체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형제의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식의 잘못을 용서하고, 용서하고, 또 용서한다. 관심과 사랑이 없는 용서는 어쩌면 잘못을 용인하고 방임하는 것일는지 모른다.
마태복음 18장 21-35절의 비유에서 임금은 하나님을, 동관은 형제를 말한다. 임금으로부터 빚을 탕감 받은 사람은 우리 신앙인들이다. 일만 달란트는 신앙인들의 목숨값이다. 노동자 하루 품삯을 6만원으로 계산했을 때, 일만 달란트는 3조 6,000억 원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액수이다. 개인으로써는 도저히 갚을 수 없는 큰돈이다. 그러나 100데나리온은 600만 원에 불과한 돈이다. 목숨에 해당되는 큰 죄를 사함 받고도 형제의 작은 실수를 용서하지 못한다면, 아직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았다고 말할 수 없는 사람이다.
마태복음 18장 21-35절의 비유는 기독교 복음이 갖는 은혜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형제의 실수나 잘못을 용서해야 하는 이유는 나의 죄를 용서받거나 나의 죄로부터 구원받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미 용서받았고, 구원받았기 때문에, 그것도 아주 큰 죄로부터 사함 받았기 때문에 감사의 표시로 형제들의 작은 실수나 잘못들을 용서하라는 것이다. 비유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임금의 큰 은혜를 입고도 감사할 줄 몰랐다. 그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에 감사한 마음을 가졌다면, 동료에게 베풀어야할 작은 사랑을 거절하지 않았을 것이다.
용서는 마귀의 계략을 무너뜨리는 일이다. 용서는 마귀의 죽임의 일을 멈추게 할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용서는 살림의 일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