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요 12: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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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요 12:20-50)
[오후 성경공부 내용]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헬라인들은(20절) 사도행전에 나오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일 것입니다(행 13:16,26). 아시리아제국, 바벨론제국, 페르시아제국, 헬라제국, 로마제국 당시 망명 또는 유배로 인하여 외국에 거주하는 유대인들(‘디아스포라’라 함)이 많았는데, 그들은 가는 곳마다 회당을 건립하여 회당중심의 생활을 하였습니다. 이 유대인들의 회당에 하나님을 섬기는 상당수의 이방인들이 있었습니다. 이들 이방인들은 극소수만이 완전 개종자(‘의의 개종자’라 함)들이었고, 대다수는 절반 개종자(‘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 또는 ‘문의 개종자’라 함)들이었습니다. 이들 중 열심 있는 자들은 유월절이나 오순절과 같은 유대인 명절에 예루살렘을 찾아 순례하였습니다. 이들 이방인들이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듣고 만나 뵙기를 청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예수님을 만나려고 찾아온 것과 예수님의 죽음과 어떤 연관성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이방인들이 만나기를 원한다는 전갈을 받으시고 느닷없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23-26절).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기도 하셨습니다.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27-28절).
예수님은 유대교 개종자들의 방문을 십자가 수난의 시점으로 이해하신 것 같습니다. 바야흐로 열방선교의 시대가 활짝 열린 것을 보신 듯합니다. 선교를 위한 자신의 순교가 셀 수 없이 많은 구원의 열매를 지속적으로 맺게 할 것임을 몸소 실천해 보이실 때라 믿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순교를 본받는 자가 생명을 영생토록 보존하는 자요, 하나님의 귀히 여김을 받을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죽고 부활승천하신 후 예루살렘에 교회가 세워지고 하나님의 구원의 소식이 열방에 전파되기 시작할 때에 바울이 선교지에서 제일 먼저 찾아가 전도한 사람들이 다름 아닌 바로 이들 절반 유대교 개종자들이었고, 이들 가운데서 일부가 복음을 받아들여 선교지 교회들의 창립멤버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또 예수님이 죽으시고 50일이 지난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온 유대교 개종자들 가운데는 에티오피아의 내시를 비롯해서 기독교로 개종한 후 본국에 돌아간 사람들이 다수 있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예수님은 자기를 찾아온 이방인들을 보실 때, 활짝 열린 기독교시대의 미래를 함께 보신 것이고, 이들의 방문에 고무되어 하나님의 뜻을 실현키 위해서 죽기를 재차 다짐하신 것이고, 순교의 중요성까지 언급하신 것이라 생각됩니다.
34절 이하의 말씀은 예수님의 공생애 마지막 대중설교이자 나타난 결과입니다.
첫째, 메시아에 대한 이해와 기대에 있어서 예수님과 대중사이에 좁혀지기 어려운 간격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기다렸던 메시아는 적어도 세 사람의 인물에 함축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세와 엘리야 그리고 다윗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보기를 원했던 표적은 다름 아닌 모세와 엘리야가 행했던 하늘로부터 내리는 표적, 곧 배고픔을 해결해줄 하나님의 권능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영으로써 만난 인물들이 바로 모세와 엘리야였습니다. 그들은 민중의 굶주림을 해결했던 하나님의 종들이자 영적인 문제를 다뤘던 선지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민중에게 제시했던 메시아상이 이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모세처럼 광야에서 굶주린 민중을 먹이셨고, 모세보다 훨씬 뛰어난 표적들을 많이 행하여보이셨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는 민중들도 만족해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더 민중이 원했던 것은 그들이 예수님을 향해서 종종 외쳤던 대로 다윗임금과 같은 정치적 군사적인 영웅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점에 있어서 민중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사명은 세상나라의 왕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평화의 왕이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이 땅에 영원히 계실 메시아가 아니라 인류의 죗값을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써 인류의 구세주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잠시 있다가 없어질 이 세상나라의 왕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나라의 평화의 왕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34절에서처럼 민중이 묻기를, “우리는 율법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 함을 들었거늘, 너는 어찌하여 인자가 들려야 하리라 하느냐? 이 인자는 누구냐?”고 하였던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은 자신이 세상의 빛으로 오셨음을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36절에서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나 민중은 이해할 수 없는 예수님의 설교에 실망만 커졌습니다. 그들의 기대는 이제 분노로 변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생각을 아신 예수님은 유월절에 영광 곧 죽음의 때를 맞추기 위해서 그들을 피해서 잠시 숨으셨습니다. 그러나 저자 요한은 민중이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사유를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인용하여 40절에서 말하기를,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민중은 빵의 문제와 세상의 일에 매어 하나님의 신령한 뜻을 눈이 어두워 보지 못했고, 마음이 완고하여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까지도 바리새인들 때문에 드러나게 말하지 못했고 유대교에서 출교를 당하게 될까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43절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유대인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던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은 자신을 믿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요, 자신을 보는 것이 하나님을 보는 것이며,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오히려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가르치고 선포하신 말씀들은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명령에 따른 것임을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예수께서 외쳐 이르시되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그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내가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하리라.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 하시니라(44-50절)
예수님은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밝히 보여준 세상의 빛이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진리이신 하나님을 믿은 것이며, 더 이상 어둠에 살지 않고 빛 가운데 사는 것이며, 빛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본받는 자가 되면, 하나님께서 그를 귀히 여기십니다.
[오후 성경공부 내용]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헬라인들은(20절) 사도행전에 나오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일 것입니다(행 13:16,26). 아시리아제국, 바벨론제국, 페르시아제국, 헬라제국, 로마제국 당시 망명 또는 유배로 인하여 외국에 거주하는 유대인들(‘디아스포라’라 함)이 많았는데, 그들은 가는 곳마다 회당을 건립하여 회당중심의 생활을 하였습니다. 이 유대인들의 회당에 하나님을 섬기는 상당수의 이방인들이 있었습니다. 이들 이방인들은 극소수만이 완전 개종자(‘의의 개종자’라 함)들이었고, 대다수는 절반 개종자(‘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 또는 ‘문의 개종자’라 함)들이었습니다. 이들 중 열심 있는 자들은 유월절이나 오순절과 같은 유대인 명절에 예루살렘을 찾아 순례하였습니다. 이들 이방인들이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듣고 만나 뵙기를 청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예수님을 만나려고 찾아온 것과 예수님의 죽음과 어떤 연관성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이방인들이 만나기를 원한다는 전갈을 받으시고 느닷없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23-26절).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기도 하셨습니다.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27-28절).
예수님은 유대교 개종자들의 방문을 십자가 수난의 시점으로 이해하신 것 같습니다. 바야흐로 열방선교의 시대가 활짝 열린 것을 보신 듯합니다. 선교를 위한 자신의 순교가 셀 수 없이 많은 구원의 열매를 지속적으로 맺게 할 것임을 몸소 실천해 보이실 때라 믿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순교를 본받는 자가 생명을 영생토록 보존하는 자요, 하나님의 귀히 여김을 받을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죽고 부활승천하신 후 예루살렘에 교회가 세워지고 하나님의 구원의 소식이 열방에 전파되기 시작할 때에 바울이 선교지에서 제일 먼저 찾아가 전도한 사람들이 다름 아닌 바로 이들 절반 유대교 개종자들이었고, 이들 가운데서 일부가 복음을 받아들여 선교지 교회들의 창립멤버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또 예수님이 죽으시고 50일이 지난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온 유대교 개종자들 가운데는 에티오피아의 내시를 비롯해서 기독교로 개종한 후 본국에 돌아간 사람들이 다수 있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예수님은 자기를 찾아온 이방인들을 보실 때, 활짝 열린 기독교시대의 미래를 함께 보신 것이고, 이들의 방문에 고무되어 하나님의 뜻을 실현키 위해서 죽기를 재차 다짐하신 것이고, 순교의 중요성까지 언급하신 것이라 생각됩니다.
34절 이하의 말씀은 예수님의 공생애 마지막 대중설교이자 나타난 결과입니다.
첫째, 메시아에 대한 이해와 기대에 있어서 예수님과 대중사이에 좁혀지기 어려운 간격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기다렸던 메시아는 적어도 세 사람의 인물에 함축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세와 엘리야 그리고 다윗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보기를 원했던 표적은 다름 아닌 모세와 엘리야가 행했던 하늘로부터 내리는 표적, 곧 배고픔을 해결해줄 하나님의 권능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영으로써 만난 인물들이 바로 모세와 엘리야였습니다. 그들은 민중의 굶주림을 해결했던 하나님의 종들이자 영적인 문제를 다뤘던 선지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민중에게 제시했던 메시아상이 이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모세처럼 광야에서 굶주린 민중을 먹이셨고, 모세보다 훨씬 뛰어난 표적들을 많이 행하여보이셨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는 민중들도 만족해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더 민중이 원했던 것은 그들이 예수님을 향해서 종종 외쳤던 대로 다윗임금과 같은 정치적 군사적인 영웅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점에 있어서 민중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사명은 세상나라의 왕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평화의 왕이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이 땅에 영원히 계실 메시아가 아니라 인류의 죗값을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써 인류의 구세주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잠시 있다가 없어질 이 세상나라의 왕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나라의 평화의 왕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34절에서처럼 민중이 묻기를, “우리는 율법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 함을 들었거늘, 너는 어찌하여 인자가 들려야 하리라 하느냐? 이 인자는 누구냐?”고 하였던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은 자신이 세상의 빛으로 오셨음을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36절에서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나 민중은 이해할 수 없는 예수님의 설교에 실망만 커졌습니다. 그들의 기대는 이제 분노로 변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생각을 아신 예수님은 유월절에 영광 곧 죽음의 때를 맞추기 위해서 그들을 피해서 잠시 숨으셨습니다. 그러나 저자 요한은 민중이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사유를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인용하여 40절에서 말하기를,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민중은 빵의 문제와 세상의 일에 매어 하나님의 신령한 뜻을 눈이 어두워 보지 못했고, 마음이 완고하여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까지도 바리새인들 때문에 드러나게 말하지 못했고 유대교에서 출교를 당하게 될까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43절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유대인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던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은 자신을 믿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요, 자신을 보는 것이 하나님을 보는 것이며,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오히려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가르치고 선포하신 말씀들은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명령에 따른 것임을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예수께서 외쳐 이르시되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그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내가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하리라.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 하시니라(44-50절)
예수님은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밝히 보여준 세상의 빛이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진리이신 하나님을 믿은 것이며, 더 이상 어둠에 살지 않고 빛 가운데 사는 것이며, 빛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본받는 자가 되면, 하나님께서 그를 귀히 여기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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