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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혜사는 누구인가?(요 16: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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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8,297 2003.12.06 06:35

본문

보혜사는 누구인가?(요 16:7-11)

[오후 성경공부 내용]
첫째, 보혜사는 새 언약시대의 가장 큰 축복이자 특징입니다.
혹자는 인류역사를 일곱 시대, 곧 ①무죄시대, ②양심시대, ③인간정부시대, ④약속시대, ⑤율법시대, ⑥은혜시대, ⑦왕국시대로 나누지만, 크게 보면, 인류역사는 구약시대와 신약시대로 나뉩니다. 양시대의 공통점은 하나님이 모든 시대의 주인이며 주관자이시란 점이고, 차이점에 있어서는 구약시대의 경우,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제사장의 나라 곧 열방민족의 선교를 위한 도구로 택하시어 성령님의 권능으로 덧입힘을 입은 특별한 일군들을 통해서 사역하신 점이고, 신약시대의 경우, 교회를 선교의 도구로 택하시어 모든 그리스도인들 곧 모든 성도들에게 성령님으로 침례하시어 일군을 삼으신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구별된 하나님의 일군들에게 한해서 하나님의 신의 권능을 덧입히셨지만, 신약시대에는 하나님이신 성령님이 하나님의 선물로 모든 성도들의 마음속에 내주동거하십니다. 이 하나님이 보혜사 성령님이십니다. 이 보혜사 성령님이 성도들의 마음속에 함께 하시는 축복이 구약시대에는 없던 신약시대만의 큰 축복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시대를 신약시대, 교회시대, 성령시대, 은혜시대, 종말시대라 부르는 것입니다. 본문 16장 7절, “....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에서 볼 수 있듯이 구․신약시대의 다리역할을 담당하신 분은 부활승천하신 우리 주 예수님이십니다.
신약시대와 교회시대라 함은 베드로전서 2장 9절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한 말씀에서처럼, 성도가 복음을 듣고, 믿고, 회개하고, 고백(서약)하고, 침례를 받음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교회)의 선민(성도)이 되는 새 언약을 받고 전도(선교)의 일을 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시대와 은혜시대 그리고 종말시대라 함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신 구원사역을 주후 30년 오순절 날 이후로부터는 성령님을 통해서 구원사역을 이루시며, 하나님이 없는 것 같고 뒤집어진 것 같은 이 시대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는 임마누엘의 시대로 또 하나님의 나라를 믿음으로 우리 안에 시작하여 맛보고 누리고 경험하는 시대로 만드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16장 8-11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 대한 성령님의 역할을 지적하신 말씀입니다. 성령님이 구약시대에는 다만 권능으로만 역사하셨지만, 신약시대에는 진리의 영과 보혜사로 활동하시기 때문에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으로만 나타내지 않고, 교사로 의사로 상담가로 변호사로 활동하시기 때문에 이런 명백한 성령님의 증거와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거절한다면 이는 이미 심판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우리 믿는 자들이 약속으로만 받고 아직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였는데도 불구하고 구원받았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을 신학에서는 ‘시작된 종말’ 또는 ‘종말의 현재화’라고 부릅니다.
둘째, 보혜사는 인성을 지닌 인격자이십니다.
성령님은 여호와증인이나 단일신론자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하나님의 권능 혹은 에너지가 아닙니다. 만일에 성령님이 이단자들의 주장처럼 단지 권능에 불과하다면, 성령님은 성도에게 아무런 유익을 줄 수 없습니다. 사고력이 없는 권능은 그저 가공할 힘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인격자이십니다. 지성 감성 의지 사회성을 갖고 계십니다. 생각하시고 판단하시고 느끼시고 교제하시고 말씀하십니다. 성령님과 인간은 인성을 공통으로 갖고 있다는 점에서 느낌을 나눌 수 있고, 교제할 수 있고,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4장 16절에서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는데, ‘다른 보혜사’에서 ‘다른’(allos)은 ‘다른 종류’가 아닌 ‘같은 종류’의 또 하나를 뜻하기 때문에 ‘다른 보혜사’란 예수님과 같은 다른 또 한 분의 인격자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인격자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령님도 예수님처럼 인격자이십니다. 또 ‘보혜사’(parakletos)란 ‘다른 사람 곁으로 불려온 사람’을 뜻합니다. 누군가를 곁으로 부를 때는 도움을 받자는 데 있고, 초청에 응한 사람은 도움을 주자는 데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혜사는 법적인 문제와 관련해서 볼 때 변호사에 해당되고, 질병에 관련해서 볼 때 의사에 해당되고, 인생문제에 관련해서 볼 때 상담가에 해당됩니다. 이들이 인격자들인 것처럼 성령님도 인격자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다른 보혜사’라고 하신 말씀은 대단히 중요한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얼마나 많은 일들을 하셨습니까? 예수님은 의사처럼 병든 자들을 고쳐 주셨고, 귀신들린 자들을 고쳐 주셨고, 변호사처럼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변호하셨고, 상담가처럼 수가성 여인의 인생문제와 니고데모의 신앙문제를 상담하셨습니다. 구조대원처럼 광풍 만난 제자들을 구해 주셨고, 예언자처럼 생명의 말씀을 들려 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님도 의사처럼 육신의 병과 영혼의 병을 고쳐 주시며, 변호사처럼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며,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십니다. 또 상담가처럼 우리가 연약하여 환난과 고통과 죄와 악의 수렁에서 절망하고 있을 때 새 힘과 소망을 주십니다. 또 예언자처럼 귀 있는 자들이 마땅히 들어야 할 말씀들을 교회들에게 선포하십니다. 또 성령님은 안내자처럼 믿는 자들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이처럼 성령님은 인성을 가졌기 때문에 성도를 도울 수 있고 교제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처럼 지적 활동, 감성적 활동, 의지적 활동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는 성령님의 인도하심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이며 인격자이십니다. 성령님은 영원하며, 전지전능하며, 무소부재하십니다. 성령님은 영원한 존재이기 때문에 세상 끝날까지 우리 곁에 항상 함께 계십니다. 성령님은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에 성도의 형편과 사정을 아십니다. 성령님은 모든 일을 하실 수 있기 때문에 성도를 도와주십니다. 성령님은 어디나 계시기 때문에 언제나 찾는 자의 곁에 계십니다. 하나님은 선물로 성령님을 주셨기 때문에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성령님은 휘발유와 같습니다. 인생을 자동차로 볼 때, 제힘으로 자동차를 끌면 무겁고 힘에 부쳐 쉽게 지치고 쓰러집니다. 그러나 휘발유를 채워 엔진파워로 조작한다면 오히려 우리는 쉽게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고 아무리 먼 길도 즐겁게 달려갈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 안에 충만하시면 우리는 인생살이를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타고 갈 수 있습니다. 이 성령님을 하나님께서는 성도에게 선물로 구원과 함께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혼자서 잘해 보려고 발버둥치지 말고 모든 것을 성령님과 함께 의논하시고 인도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성령님이 반드시 이김을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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