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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001: 창조와 신앙(창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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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1 조회 7,787 2005.03.16 14:43

본문

창세기001: 창조와 신앙(창 1:1-5)

(1)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그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3)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4)그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5)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행위를 설명하는 책인데, 창세기의 창조행위를 시작으로 해서 계시록의 새 하늘과 새 땅, 곧 재창조에 관한 기록으로 끝을 맺습니다.
계시행위란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사람의 눈에 보이는 형태로 나타내 보이시는 행위를 말합니다. 그 형태가 예수님처럼 사람의 모습일수도 있고, 홍해가 갈라지는 일처럼 기적일수도 있습니다. 구름기둥, 불기둥, 천사, 거지, 등 여러 형태로 나타나실 수 있지만, 어느 것 하나도 하나님의 참모습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참 모습을 본다는 것은 피조물로써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마귀나 천사와 같은 영계의 인물들도 계시의 형태로만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삼위 하나님이외에 그 어떤 피조물도 하나님의 참모습은 볼 수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하나님께서 계시의 방법으로 인간들에게 나타내보이셨고, 인간사에 관여를 해오셨으며, 특히 말씀으로 나타내보이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창조와 재창조 사이에서 인류와 만물은 타락을 경험하게 되고, 시련을 겪게 되고, 하나님은 이 타락한 피조세계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계획을 세워 실천해 가시는데, 이것을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라고 말합니다. 이 구원의 역사에 등장하는 주연인물이 예수 그리스도이신데, 2000년 전 처음 오셨을 때에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십자가에 죽으심과 무덤에서 부활하심으로 성취하셨고, 앞으로 다시 오실 때에는 성취하신 그 일을 완성시키실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가 이제 시상식만을 기다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죄를 회개하고, 믿음을 고백하고, 침례를 받은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과 무덤에서 부활하심과 더불어 죄로 죽은 것이고, 새 생명에로 부활한 것이기 때문에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가 시상식만을 앞두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이 시상식을 위한 것인데, 성경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뤄진, 또 앞으로 지속해서 이뤄질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담고 있는 책입니다. 이 성경책이 ‘창조’라는 위대한 하나님의 계시행위로 시작되고 있고, 그 행위를 기록한 책이 창세기입니다.
‘창조’라는 말이 얼마나 좋은 말입니까? 대단히 긍정적이고, 대단히 적극적이며, 대단히 활동적이고, 대단히 위력적인 말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믿고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이 사람들이 왜 성공할 수 있었는가? 조건이 좋았기 때문인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도깨비 방망이를 하나씩 손에 쥐어주었기 때문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직면했던 현실들은 한결같이 빛이 보이지 않는 흑암이었고, 혼돈이었으며, 죽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흑암에서 빛을, 혼돈에서 질서를, 죽음에서 생명을 만들어내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그들은 그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그들 앞을 가로막는 흑암을 빛으로, 혼돈을 질서로, 죽음을 생명으로 바꿔놓을 수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직면했던 흑암의 현실을 빛으로, 혼돈의 현실을 질서로, 죽음의 현실을 생명으로 바꿀 수 있었던 능력이 어데서 온 것일까요? 그것은 그들이 믿었던 창조신앙에서 온 것입니다. 그들은:
⑴성부 하나님을 창조주로 믿었습니다.
⑵성자 하나님을 부활의 주로 믿었습니다.
⑶성령 하나님을 피조물과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로 믿었습니다.
⑷그리고 그들 자신은 부족한 존재로, 무익한 죄인으로 고백하였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⑴하나님을 능히 당할 자가 없다는 확신을 갖고 살았습니다.
⑵하나님만이 유일한 구원자란 확신을 갖고 살았습니다.
⑶그들은 하나님의 승리, 그리스도의 승리, 그리고 모든 하나님의 자녀의 승리에 대해서 확신하였습니다.
⑷고난에서의 승리, 죽음에서의 부활을 확신하였습니다.
⑸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시련을 허락하시지만, 시련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확신하였습니다.
⑹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고 확신하였습니다.
⑺시련은 결코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고 확신하였습니다.
또한 그들은:
⑴이 물질세계가 본래 좋은 것임을 믿었습니다. 여기에 재창조의 정신과 모든 것을 선용하는 정신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것에는 악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을 지으시고,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했습니다.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본래 나빴던 것이 아닙니다. 만일에 나빴거나 나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것을 창조적으로 선하게 사용해야할 인간이 악하게 사용한데서 비롯된 것들입니다. 창조신앙은 모든 것을 선용하는 자세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것을 악하다고 하면 안 됩니다. 비록 악할지라도 정죄하기보다는 새롭게 하는 영으로 재창조해 가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잘못된 가치관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기 자신만이 선하고 옳고, 남들은 악하고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하나님처럼 “보기에 좋더라”에서 출발하는지, 사단처럼 “너는 악해서 안돼”에서 출발하고 있는지, 창조신앙은 우리 자신들을 깊이 반성하게 합니다.
⑵인간과 하나님, 인간과 인간, 인간과 물질과의 관계를 계약과 책임에서 보았습니다. 인간은 이성과 감성과 의지를 가진 인격체로서 만들어졌습니다. 인간은 본시 하나님과 인간과 물질과 함께 계약관계 속에서 살아가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이 계약이 이행되고 못되는 것은 인간의 선택의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인간이 이성적 동물이요, 인격체라는 점은 인간이 곧 책임적 존재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선한 일에 쓰일 도구로써 세상의 모든 것을 주셨고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책임적 존재인 인간이 선하게 쓰겠다는 약속을 파기하고 그것을 악하게 사용했을 때에 흉기로 변하여 악이 발생되고 죄가 인간세계에 유입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반드시 심판 때에 그 책임을 인간들에게 묻게 되실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바른 관계를 맺고 있는지, 자신과의 약속은 물론 하나님과의 약속, 사람들과의 약속은 잘 지키고 있는지, 창조신앙은 우리 자신들을 깊이 반성하게 합니다.
⑶이 우주와 우주의 역사에 목적과 방향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우연히 발생한 우주는 목적도 방향도 없습니다. 단지 죽음을 향해 달려갈 뿐입니다. 그러나 인격자이시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 우주를 의도적으로 만드셨다면, 반드시 이 우주는 그 목적과 가는 방향이 있을 것입니다. 성서는 이 우주가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의 유익을 위해서 만들어 졌다고 말하며, 머지않아 전개될 새로운 세계, 곧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고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역사의 주인이시며, 역사를 만들어 가신다고 믿었습니다. 비록 세상이 뒤집어진 것 같고, 악의 세력이 권세를 잡은 듯싶어도 그것은 잠시잠간에 불과한 것이고, 결국엔 하나님의 손에서 정리될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인들의 역사의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이런 역사의식이 있는지,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잘 참고 견디고 있는지, 창조신앙은 우리들을 깊이 반성하게 합니다.
⑷인간의 삶에 목적과 의미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인간이 우연히 이 세상에 왔다가 사라지는 진화의 부산물이라면 삶에 목적이나 의미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셨다면, 인간은 자신의 존재이유를 물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각 사람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소명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부르심 속에 그 사람의 삶의 목적과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인의 소명의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이런 소명의식이 있는지, 하나님의 부르심의 목적을 따라 살고 있는 것인지, 자신의 욕심을 따라 살고 있는지, 창조신앙은 우리들을 깊이 반성하게 합니다.
⑸과학과 학문이 가능하다고 믿었습니다.  이 물질세계는 계획하시고 설계하시고 만드신 분이 계시기 때문에 일정한 법칙이 존재하게 되고 문제에 대한 예측과 진단과 처방도 어느 정도 가능합니다. 또한 만들어진 세계는 영원하지도 절대적이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이기 때문에 인간이 믿고 의지하고 살 만한 곳이기도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신실하시며 이성적인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만드신 이 우주는 인간이 신뢰하고 살아 갈 만하며, 합리적이며, 예측이 가능하며, 과학과 학문이 가능한 곳입니다. 이 우주에 질서와 법칙이 있다는 것은 곧 이 우주가 하나님에 의해서 만들어졌으며 하나님에 의해서 계획되고 운영된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20세기를 사는 인간이 이루어낸 과학문명도 따지고 보면 모두가 이미 존재했던 것들을 발견해 낸 것에 불과합니다.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다만 발견하고 조립할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이런 세계관을 갖고 살고 있는지, 창조신앙은 우리들을 깊이 반성하게 합니다.
⑹창조는 윤리에 대한 기초를 제공한다고 믿었습니다. 하나님만이 이 우주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절대적인 법칙과 옳고 그름의 표준을 세울 권리를 갖고 계시다는 뜻입니다. 인간은 청지기에 불과하기 때문에 인간의 뜻이 하나님의 뜻을 우선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세운 규범과 표준을 절대화 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 그것을 남들에게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과연 우리에게 겸손히 배우려는 생각은 있는 것인지, 창조신앙은 우리들을 깊이 반성하게 합니다.
⑺인간이 피조물임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인간이 결코 신이 될 수 없음을 가르치며,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는 위치에 서야 할 것을 요구합니다. 인간이 피조물이라는 인식은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고, 부족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또 피조물 인식은 인간이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이고, 겸손과 용서와 인내와 사랑으로 살아야할 것을 알게 해주는 것입니다. 피조물은 채워가는 존재이지 이미 채워진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마치 우리 자신이 하나님이나 된 것처럼 처신하고 있지는 않는지, 창조신앙은 우리들을 깊이 반성하게 합니다.
⑻인간은 하나님의 청지기임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자의 권리로써 모든 것을 소유하십니다. 우리가 소유한 것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심지어 자식까지라도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것을 맡아 관리하는 청지기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소유한 것은 우리의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래서 창조는 우리가 평생 하나님의 것을 관리하는 관리자라는 겸허한 자세로 살 것을 가르칩니다.
창조신앙을 소유했던 유대인들은 수천 년에 걸친 엄청난 시련을 겪고도 해체되지 않고 오늘날까지 살아남아서 그들의 뛰어난 민족성을 마음껏 발휘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유대인인구라고 해봐야 고작 1,421만 명에 불과한데, 그 가운데 540만 명이 우리나라 10분의 1정도 되는 사막의 열대성기후의 땅 팔레스타인에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지난 50년간 사막을 개간하여 옥토로 만들었고, 국민 일인당 소득이 세계 22위인 18,000불에 달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3,500년 전 이집트에서 최소 215년에서 최장 430년간 억압상태로 있다가 탈출해서 사막에서 40년을 보낸 다음에 가나안 땅에 정착했습니다만, 먹고 살기가 어려운 지역인 데가 대국사이에 놓인 길목이어서 강대국들의 침략이 끊일 줄 몰랐습니다. 기원전 10세기경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잠시 번영을 누린 것 빼고는 불행의 연속이었습니다. 솔로몬 사후에 나라가 남과 북으로 쪼개졌고, 북쪽 이스라엘 왕국은 기원전 722년에 아시리아 제국에 멸망당하여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남쪽 유다 왕국도 기원전 605년부터 바벨론제국을 시작으로 페르시아제국, 헬라제국, 로마제국의 속국으로 살았으며, 그나마도 주후 70년에는 팔레스타인에서 영구히 쫓겨났고, 1948년 5월 14일 다시 국가를 수립할 때까지 무려 1,878년간 나라 없이 남의 나라에 흩어져 서럽게 살아왔습니다. 이 기간에 학살된 유대인들이 무려 1,200만 명에 달합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아랍연맹의 위협 속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지 아니하고, 역사에 살아남아 기적을 만들어 냈고, 강대국들의 배후세력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이 고작해야 세계인구 60억 가운데 500분의 1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소수의 유대인들이 세계경제의 본산인 미국의 금융자본과 언론계, 학계를 장악하여 그 힘을 바탕으로 1948년 5월 14일 독립국가 창설을 이뤄냈고, 지난 100년 동안 전체 노벨상 수상자 가운데 21%를 배출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의 이 엄청난 성공의 뿌리가 어디에 있을까요? 지난 수천 년의 역사 속에서 유대인들이 겪었던 수난과 수모는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것들이고, 그들 앞에 주어진 현실은 언제나 흑암이요 혼돈이며 죽음뿐이었습니다. 이런 부정의 현실을 빛과 질서와 생명의 긍정의 현실로 바꿔나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다름 아닌 그들이 어려서부터 배우고 믿었던 창조주 야훼 하나님에 대한 신앙교육 때문이었습니다. 비록 그들이 믿었던 하나님은 신화도 없고, 여신도 없고, 우상이나 그 어떤 형상도 없고, 볼 수도 없고, 만져 볼 수도 없고, 엎드려 절할 수도 없었지만, 분명한 사실 한 가지는 그들이 믿었던 야훼 하나님은 그들처럼 언제나 부정의 현실에 직면해 계셨지만, 부정을 긍정으로, 어둠을 빛으로, 혼돈을 질서로, 죽음을 생명으로 바꿔놓으시는 분이였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섬긴다는 뜻인데,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의 하나가 하나님을 본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흑암과 혼돈과 죽음의 현실에 직면해 계시고, 또 그와 같은 부정의 현실에서 출발하고 계십니다. 우리들의 현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앞에 놓인 현실들이 그렇게 만만한 것들이 아닙니다.
현실은 언제나 자연법칙에 지배를 받습니다. 자연법칙이 무엇입니까? 자연법칙은 모든 것이 망가지는 죽음의 법칙입니다. 자연 상태에서는 내버려두면 무엇이든지 망가지고 맙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반대입니다. 하나님은 이 자연법칙을 거슬려 사는 모순을 갖고 계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적 삶의 방식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은 버려두면 망가지는 자연법칙에 거슬려 망가지는 것을 막고, 망가진 것을 고쳐나가는 창조적 하나님의 삶의 방식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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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2024년 통계로 볼 때 전 세계 유대인인구라고 해봐야 고작 1,520만 명에 불과한데, 그 가운데 693만 명(이스라엘 인구는 934만 명)이 우리나라 10분의 1정도 되는 사막의 열대성기후의 땅 팔레스타인에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사막을 개간하여 옥토로 만들었고, 국민 일인당 소득이 세계 20위인 53,372불에 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