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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유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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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8,515 2004.09.24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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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유 1:1-4)

유다서는 예수님과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가 60년에서 80년 사이에 거짓교사들과 그들의 교리로부터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서 기록한 서신입니다. 고린도전서 9장 5절에 의하면, 예수님의 형제들은 순회 전도자들이었습니다. 유다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또 유다서는 유대인들만이 알 수 있는 구약의 인물과 외경인 ꡔ모세의 승천기ꡕ나 외경 ꡔ에녹서ꡕ를 취급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유다서는 유다가 순회하며 설교했던 한 유대인 교회 공동체에 보내어진 서신으로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유다서는 “가만히 들어온” 방탕한 영지주의자들로부터 교회를 지킬 목적과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고 권면하기 위해서 기록된 서신입니다. 방탕한 영지주의자들은 한편으로는 육체적인 것을 죄악시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은혜를 색욕거리로 바꾸고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유다서는 비록 짧은 글이지만,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점들이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의 친형제들의 신앙에 관한 것입니다. 예수님에게는 네 명의 이복형제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입니다(마 13:55). 이들 육신의 형제들은 예수님께서 살아계신 동안에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사람들입니다(요 7:5). 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아마도 예수님의 부활사건과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이후의 일인 듯싶습니다. 이후에 야고보는 예루살렘교회의 최고지도자로(행 15:13) 부상하였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2장 9절에서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란 표현을 썼고, 2장 11-12절에서는 베드로가 안디옥에 있을 때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야고보가 보낸 유대인들이 오자 자리를 피했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야고보는 예루살렘교회의 실질적인 지도자였던 것입니다. 신약성서 야고보서가 바로 이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에 의해 기록된 것입니다. 그리고 유다서를 기록한 유다는 예수님의 이복동생들 가운데 막내였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놀라운 것은 이들 이복형제들이 예수님을 일컬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야고보도 그랬고(약 1:1), 유다(유 1:1)도 그랬습니다. 그들은 예수님 살아생전에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사람들입니다(요 7:5). 그러던 그들이 어떻게 또는 어떤 계기로 예수님을 믿게 되었을까요? 자기들의 친 형님을 어떻게 주님으로 고백할 수 있었을까요? 실로 놀라운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같은 어머니를 모신 혈육으로써 어떻게 예수님을 일컬어 주님이라 말할 수 있고, 자신들을 예수님의 종이라고 낮춰 말할 수 있었을까요? 유다는 1절에서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당시에 야고보가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음을 암시하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그들의 신앙과 순종을 보여주는 호칭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더 이상 혈육이 아니라, 신앙과 순종의 대상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예수님의 부활사건이 허구가 아닌 진실한 것임을 입증하는 상황증거인 것입니다. 남이 아닌 친형제들이 그것도 한 때는 전혀 믿지 않았던 자들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게 된 것은 예수님의 부활사건이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였음을 더 이상 거부할 수 없게 만든 명백한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둘째, 유다서에 나타난 성도들에 관한 호칭입니다. 유다서 1절은 성도를 세 가지 다른 말로 표현하였습니다. 그중 하나가 “부르심을 입은 자”란 표현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으로부터 택정을 입은 자란 뜻입니다. 옛날 조정에서는 세자비를 고르는 일을 간택(揀擇)이라고 하였습니다. 골라 뽑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란 다름 아닌 하나님이 특별히 골라서 뽑은 자란 뜻입니다. 따라서 “부르심을 입은 자”는 매우 존귀한 자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구원주실 자를 이미 만세전에 간택하셨고, 간택된 자들을 부르십니다.
또 하나는 ‘사랑을 얻은 자’란 표현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얻은 자란 뜻입니다. 옛날 조정에서는 세자비로 뽑힌 자가 시아버지인 임금과 남편인 세자 모두로부터 사랑을 입기가 매우 어려웠던 것으로 압니다. 정권의 쟁탈과 갈등의 틈새에서 있었던 세자비로서 임금과 세자 모두로부터 사랑을 입기가 쉽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한결같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물론이요 예수님의 사랑까지도 듬뿍 얻은 자들이 되었습니다.
마지막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들”이란 표현입니다.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란 말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혹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또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지키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일전에 러시아에서 발생된 인질사건에서 러시아 당국은 인질범들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1천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국가라도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하는 일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또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안전하게 지켜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요, 사랑을 입은 자들이요, 지키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이런 큰 은혜를 입은 성도들에게 유다는 긍휼과 평강과 사랑의 충만함까지 빌어 주었습니다.
셋째, 유다서에 나타난 구원과 믿음에 관한 설명입니다. 유다는 우리가 받은 구원을 ‘차별 없이 함께 나눈 구원’으로, 믿음을 ‘단번에 결정적으로 전해진 것’으로 설명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은 차별이 없기 때문에 은혜요, 값이 없기 때문에 은혜이며, 조건이 없기 때문에 은혜인 것입니다. 이뿐 아니라, 우리 성도들의 믿음은 단 한번에 결정적으로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이 소중한 믿음과 구원을 우리 모두가 함께 나누고 있는 것입니다. 밝혀진 유다서의 기록목적은 이 구원과 믿음을 지켜내기 위해서 힘써 싸우라고 권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교회 안에 몰래 침투한 이단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넷째, 교회에 침투한 이단자들에 관한 설명입니다. 유다서에 언급된 이단자들은 방탕한 영지주의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이 예수님이란 사실을 부정하였고, 육체를 악하게 생각하면서도 금욕하기보다는 음란을 일삼는 타락한 무리였습니다. 이 타락한 무리에게 유다서는 엄중한 경고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이 무리에게 저주의 심판이 예비되어있음을 과거의 사례들을 들어서 경고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입고 이집트에서 구출받았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의심하고 불신함으로 광야에서 멸망당했고,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은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던짐을 당했고, 간음과 동성애의 극한 죄악 때문에 소돔과 고모라성의 사람들은 불과 유황과 연기로 멸망을 당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단자들은 꿈꾸는 자들처럼 그들의 육체를 더럽히고, 하나님의 종들의 권위를 업신여기며, 하나님의 영광을 훼방한다고 하였습니다(5-8절). 이들 이단자들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신 후에 있을 최후의 심판 때 정죄함을 받을 것이라고 15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뭇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15절).
두 번째로는 세 명의 역사적인 인물들을 거론하면서 경고하였습니다. 11절에서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좇아 멸망을 받았도다.”고 하였습니다. 가인은 동생을 미워하여 아벨을 살해한 인물입니다. 마찬가지로 이단자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미워하여 해하려 하는 자들입니다. 발람은 발락의 지시를 받고 하나님의 백성을 저주하였고, 올무를 놓아 우상을 숭배하게 할뿐 아니라 음란에 빠지게 하여 멸망당하게 하였던 인물입니다. 이처럼 이단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저주에 빠뜨리는 자들입니다. 고라는 사람들을 선동하여 하나님의 모세를 대적하였다가 지진에 삼킴을 당했던 인물입니다. 이와 같은 자들의 행동을 10절에서는 이성 없는 자들의 행동, 짐승 같은 행동, 본능에 의한 행동이라고 지적하면서 이와 같은 자들은 장차 큰 재앙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경고하였습니다.
세 번째로는 이단자들의 해악성을 들어서 경고하였습니다. 12-13절에서 “저희는 기탄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의 애찬의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자기의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요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에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이라.”고 하였습니다. 한편의 멋들어진 시어(詩語)들로 이단자들의 해악성을 열거하였습니다. 애찬의 암초, 자기 배만 불리는 목자, 물 없는 구름,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나무, 열매 없는 가을 나무,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 깊은 흑암의 구덩이에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 이것이 이단자들의 운명이요 숙명이요 결국이라고 하였습니다.
네 번째로는 그들의 죄악성을 들어 경고하였습니다. 16절에서 “이 사람들은 원망하는 자며 불만을 토하는 자며 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라. 그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내며 이(利)를 위하여 아첨”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해 볼 것은 잘못된 교리에 빠져 그것을 누룩처럼 퍼뜨리는 자들만이 이단자들이 아니라, 교회의 물을 흐려놓고 질서를 어지럽게 하는 모든 행악자들 또한 이단자들의 범주에 든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자들에 대해서 유다서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의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치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기롱하는 자들이 있으리라 하였나니, 이 사람들은 당을 짓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은 없는 자니라(17-19절).
마지막으로 유다서에는 우리 성도들이 겸허하게 수용해야할 매우 중요한 권면의 말씀이 결론부분 20절부터 25절까지에 실려 있습니다. 여기에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과 우리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해야 할 일들이 나타나 있습니다.
먼저 우리 자신을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네 가지입니다. 첫 번째로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우리 자신을 건립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단사설은 안 됩니다. 사도들이 주께 받아서 전해준 신약성서의 가르침 위에 우리 자신을 세워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신약성서 위에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우리의 신념과 행동 곧 믿음과 실천은 신약성서가 가르친 것이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성령으로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속한 이 시대는 성령시대입니다. 성령님은 우리 구원과 관련된 모든 약속의 보증이시며 인침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령님 안에서 성령님과 더불어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 무시로 기도해야 합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우리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말고 그 사랑을 힘입어서 교리적인 이단사상과 윤리적인 부패와 부도덕과 모든 적대자들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켜내야 합니다. 네 번째로 하나님의 약속이 이뤄질 날이 멀지 않음을 굳게 믿고서 영생의 복이 이뤄질 그리스도의 긍휼의 날을 소망 중에 인내하며 기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 우리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의 진리를 의심하는 자들과 믿음이 연약한 자들을 긍휼히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심정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세는 그들을 비판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위로하고 용기를 주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불에서 사람을 끌어내듯이 영적인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의무감을 가지고 구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더러운 옷을 싫어하듯이 영육이 더러워진 이들의 더러움을 멀리하되 그들을 긍휼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님 앞에서 성령님의 은혜로 건전한 믿음을 지켜나갈 때, 우리 하나님께서는 능히 우리를 보호하시고, 거침이 없게 하시며, 우리를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24절)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만고 전부터 이제와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2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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