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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자(요일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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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9,255 2004.08.22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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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자(요일 1:1-10)

요한일서는 저자가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의 목격자로 또 예수님의 제자라는 인상을 주고 있어서 사도 요한이 저자라는 확신을 갖게 합니다. 기록연대와 장소는 85년에서 95년 사이에 에베소에서 기록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시기에 요한이 에베소에 머물렀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는 편지라고는 하지만 전혀 편지의 형식으로 되어있지 않고 수신자가 언급되어 있지 않아서 주변의 여러 교회들이 돌려 읽었던 회람편지로 믿어집니다.
요한일서의 기록목적은 ‘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자’가 마땅히 갖춰야할 몇 가지 중요한 덕목들을 가르치기 위한 것인데, 모두가 “형제 사랑”과 관련된 것들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자’는 형제를 사랑하는 자이고,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예수님을 믿는 자이며, 예수님을 믿는 자는 동시에 하나님을 믿는 자입니다. 각 장별로 그 내용들을 정리해보겠습니다.
제1장의 내용은 ‘사귐’에 관한 내용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와의 사귐, 예수님과 우리와의 사귐, 그리고 우리와 다른 사람들과의 사귐에 관한 내용입니다.
1절부터 4절까지에서 요한은 예수님을 세 가지로 소개합니다.
첫 번째로 요한은 예수님을 “생명의 말씀”으로 소개합니다. 이 “생명의 말씀”은 태초부터 계셨던 분인데, 우리가 귀로 들어왔던 분이고, 눈으로 보아왔던 분이며, 주목해왔던 분이고, 손으로 만져왔던 분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인 예수님이 일찍이 선지자들에 의해서 이 땅에 오실 메시아로 예언되었던 바로 그분이고, 예언대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직접 눈으로 보았고, 주목했으며, 함께 먹고 마셨고 사귀었던 분이시다는 것입니다. 바꿔서 말하면, 생각이나 머리 속에만 있고, 실제로는 없었던 그런 추상적인 분이 아니라, 태초부터 지금까지 살아계셔서 우리 가운데 계신 분이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요한은 예수님을 “생명,” 또는 “영원한 생명”으로 소개합니다. 이 “영원한 생명”이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사귐 속에 계시다가 인간세계에 나타나셨고, 죄인과 세리와 창녀를 포함하는 많은 사람들과 사귐 속에 계셨던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눈으로 확인했던 그런 분이십니다.
세 번째로 요한은 태초부터 하나님과 사귐 속에 계셨고, 이천년 전 수많은 사람들과 사귐 속에 계셨던 예수님을 지금 여기서 우리가 만나서 “사귐”을 가져야할 대상으로 소개합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 또는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님을 사람들에게 증거하고 선포해야할 이유가 바로 인류가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사귐을 가져야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미 그와 같은 사귐의 축복 속에 있는 먼저 믿는 성도들이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 또는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님을 증거하고 선포함으로써 모든 사람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사귐을 갖고, 또 먼저 믿고 구원받은 자들과도 사귐을 갖도록 하려는 데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존재 목적은 바로 이 사귐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하나님과의 사귐의 시간이고, 예수님과의 사귐의 시간이고, 성도들과의 사귐의 시간인 것입니다.
5절부터 10절까지에서 요한은 하나님과 관련해서 세 가지를 강조하였습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은 빛이시기 때문에 그분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어두움이 무엇입니까? 어두움은 빛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따라서 성서에서는 어두움이 상징적인 의미로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어두움은 ‘고난’을 상징합니다(시 112:4, 사 5:30, 애 4:8). 어두움은 ‘죄악’을 상징합니다(욥 18:6, 엡 5:11). 어두움은 ‘타락’을 상징합니다(롬 13:12). 어두움은 ‘미움’을 상징합니다(요일 2:9-10). 어두움은 ‘영적 소경’을 상징합니다(행 13:11). 어두움은 ‘죽음’을 상징합니다(욥 10:21-22). 어두움은 ‘지옥’을 상징합니다(마 22:13). 어두움은 사단의 권세를 상징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이런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십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는 말은 하나님을 본 받아 빛의 일을 행한다는 뜻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이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5장 1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하셨고, 에베소서 5장 1절에 보면, 사도 바울께서 “너희는 하나님을 본 받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이 두 구절의 말씀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은 빛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빛의 일을 본 받아 빛의 일을 행하셨고, 이 예수님을 믿고 빛의 자녀가 되어 그분과 사귐 속에 있는 성도들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빛의 일을 본 받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빛의 일이란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도 우리 인간들처럼 태초부터 지금까지 혼돈하고 공허하며 깊은 흑암의 권세에 직면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흑암의 권세를 물리치시고, 혼돈과 공허를 빛과 질서와 생명으로 바꿔놓으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언제나 빛의 일을 행하십니다. 그래서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비록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빛의 자녀라 할지라도 우리는 너무 자주 어두움과 혼돈과 공허의 세력 앞에 직면하게 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어두움을 빛으로, 혼돈을 질서로, 공허를 생명에로 바꿔놓으신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능력을 힘입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처럼 예수님처럼 흑암을 빛에로, 혼돈을 질서로, 죽음을 생명에로 바꿔가는 경험들을 축적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만일 우리가 빛 가운데서 행하면 하나님과 우리와의 사귐은 지속될 것이요, 사람들과의 사귐도 지속되어 선한 열매들이 풍성히 맺힐 것이며,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케 하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빛의 일을 하게 되면 세 가지 축복이 동시에 이뤄지게 됩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사람의 특징은 스스로 죄인인 것을 고백하고 회개하는 사람입니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사귐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진정한 의미의 사귐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제2장의 내용은 “형제를 사랑하라”는 계명에 관한 내용입니다. “형제 사랑”이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는 증거요, 빛이신 하나님 안에 있다는 증거라고 하였습니다.
요한은 1절과 2절에서 예수님을 “대언자”와 “화목제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자는 죄를 범치 않는 자입니다. 만일 죄를 범했더라도 세상 죄를 위해서 화목제물이 되셨던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하나님께 대변을 해주십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기를 주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한은 3절부터 17절까지에서 ‘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자’는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그 속에 진리가 있는 자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된 자요, 하나님 안에 있는 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안에 있는 자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은 빛의 일이요, 살림의 일입니다. 빛의 일과 살림의 일은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빛의 일과 살림의 일은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첫째 계명은 사랑이요, 둘째 계명도 사랑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온 인류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빛의 일을 하셨고, 살림의 일을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빛이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인류를 사랑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신 일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는 자요,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움에 거하는 소경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형제를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는 자는 영원히 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요한은 18절부터 29절까지에서 ‘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자’는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인정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부정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적그리스도이며, 하나님과 사귐이 없는 자입니다.
제3장의 내용은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가 어떻게 다른가에 관한 내용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죄를 짓지 않고, 마귀에게 속한 자는 죄를 짓습니다. 또 형제를 사랑하는 자이면 하나님의 자녀이고, 형제를 사랑치 않는 자이면 마귀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생명에 들어간 자이고,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입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또한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이고,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님 안에 거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제4장의 내용은 ‘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자’ 곧 ‘하나님께 속한 자’에 관한 내용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자이고, 예수를 시인하지 않는 자는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에게 속한 자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자입니다. 4장 7절부터 24절까지를 다같이 읽겠습니다.
(7)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8)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9)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10)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11)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12)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13)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14)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거하노니, (15)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16)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17)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18)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19)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20)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21)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4:7-24).
제5장의 내용은 1-4장까지에서 언급한 내용들을 일곱 가지로 마무리 짓는 내용입니다.
첫째,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그분의 자녀를 사랑하는 자입니다.
둘째,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넷째,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또 하나님을 믿는 자는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는 자입니다.
다섯째,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는 자이고, 믿지 않는 자는 생명이 없는 자입니다.
여섯째, 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자,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죄를 범하지 않는 자입니다.
일곱째, 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자,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는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을 받게 됩니다.
사도 요한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명백합니다. ‘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자’는 형제를 사랑하는 자이고,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예수님을 믿는 자이며, 예수님을 믿는 자는 동시에 하나님을 믿는 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행하는 것이 사람에게 행하는 것이고, 사람에게 행하는 것이 곧 하나님께 행하는 것임을 분명하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피차 긍휼히 여기면서 사랑하기를 힘써서 ‘하나님과 사귐을 갖는 자’란 인정을 받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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