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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2103: 이스라엘의 율법, 피해보상(출 21: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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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1,287 2006.11.01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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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 이스라엘의 율법, 피해보상(출 21:18-36)

hammurabi_cuneiform1s.jpg출애굽기 21장 1-11절은 생명과 인격을 보존하는 노예법 규례이고, 12-17절은 생명과 인격을 말살하는 사형법 규례이며, 18-36절은 신체상해자와 재산권 침해자에(33-36절) 대한 처벌법 및 배상법 규례이다. 여기에 그 유명한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라는 이른바 동태복수법(同態復讐法, Lex talionis)이 응용되고 있다. 이 동태복수법은 야훼 하나님의 엄격한 공의성을 보여주지만, 본래 의도는 더 큰 보복의 악순환을 막자는데 있었다.  본문에 나타난 피해보상에 대한 정신을 보면, 첫째, 이웃의 생명과 재산을 존중한다. 둘째,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고의든 고의가 아니든 간에 자신의 부주의나 불성실에 의한 상해라면 그것을 솔직히 인정하고 책임을 진다. 셋째, 생활 중 아무리 사소한 일이더라도 정의로운 법은 항상 적용되어야 한다. 넷째, 소극적인 자기 관리, 즉 타인에게 손상을 입히지 않으려는 주의에 머물지 않고, 적극적으로 이웃의 유익을 위한다는 정신이다.

이스라엘의 법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법이란 점이 고대근동지방의 다른 나라의 법과 다른 점이었다. 우리가 읽고 있는 출애굽기 20-23장은 이른바 ‘언약 법전’으로써 법규가 지배적인 내용을 차지한다. 그러면서도 그 법규는 하나님의 복과 보호가 약속되어 있으며, 이스라엘 백성이 장차 가나안땅에 정착하여 지킬 법이란 점을 전제하고 있다. 이 법은 인간의 일상사를 다루고 있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유지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종교적인 색채가 짙은 법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은 이방인들과는 달리 세속적인 삶과 종교적인 삶이 구별되지 않는다. 그들에게 삶이란 그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따라 사는 것을 의미했다. 이와 같이 하나님 앞에서 살아간다는 의식 때문에 그들은 새로운 상황에 부딪칠 때마다 율법정신에 기초한 새로운 판례법을 적용해왔다. 그 같은 법들은 랍비들이 만든 게자이로트(토라의 울타리), 타카나(랍비들이 제정한 율법), 민하그(관습의 법적지위)와 같은 것들이다. 

hammurabi_cuneiform2s.jpg이스라엘의 법이 고대문명을 이뤘던 주변 국가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이 사실이고, 언약법전의 많은 법규들이 인근 앗수르나 바벨론의 법전과 비교해서 내용과 형식이 많이 유사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삶의 내용이 동일하며 인간의 일상사에서 추구하는 것이 거의 유사하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지 구약성경의 법이 함무라비 법전 등을 차용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함무라비 법전은 이스라엘의 언약법과 달리 귀족계급의 우위를 전제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야훼신앙보다 우선되는 상위법을 만들지 않았다. 귀족에게 유리한 법제정이나 적용을 더더욱 용납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에서는 왕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계명에 복종해야했다. 고대근동세계에서 왕은 현신이었으나 이스라엘에서 왕은 일반 국민과 다르지 않았다. 왕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앞과 율법 앞에서 평민과 동등하였다. 야훼 한분 외에 그 누구도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고대 근동의 법전은 왕이 백성에게 내린 것이지만, 토라는 하나님이 선민에게 내린 언약법전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법은 인도적이고, 윤리적이며, 야훼신앙을 기초로 만들어졌다. 이스라엘의 법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토대로 하고 있다. 따라서 백성은 세속적 가치기준에 맞춰 살지 않고 언제나 야훼의 계명대로 살려고 힘썼다.

동태복수법(同態復讐法, Lex talionis)은 신체상해의 경우를 대비한 처벌법이다. 남의 신체를 다치게 한 행위에 대해 똑같은 방법으로 보복해야한다는 동태복수법은 잔인한 원시법이란 느낌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사실은 매우 인도적인 법이다. 법이란 것이 공정하게 집행되어야하지만, 가진 자에게 유리하게 적용되는 때가 많다. 따라서 동태복수법은 잔인하기는 하지만, 법 앞에 모든 사람이 공평하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다. 그렇더라도 이 법은 형법이 발달되지 못한 고대국가들에서 질서유지에 필요했던 것이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충분한 금전적 보상제도나 징역 등으로 대체되고 있다.?동태복수법은 본문 출애굽기 21장 23-25절, 레위기 24장 20절, 신명기 19장 21절, 세 곳에 언급되었는데, 다른 율법규정이 ‘만일…하면…하라’식의 문체로 기록되어 있는 반면, 이곳은 필연법(必然法的) 형식, 곧 ‘반드시…하라’로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이 법이 지배층에게는 적용되지 않아도 되는 힘없는 법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단연코 적용되어야 하는 절대법이란 것을 말해준다. 이것은 정의의 원리를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누구든 인간은 똑같이 귀하게 창조되었으므로, 그 행한 범죄의 대가를 공정하게 치러야 한다는 근본 원리가 담겼다. 그리고 이 법은 계급과 상관없이 공평하게 적용되었다. 심지어 짐승과 외국인에게까지도 공평하게 적용되었다(레 24:17-22). 또 모세오경에는 한 군데(신 25:11-12)를 제외하고는 죄인의 신체손상을 처벌내용으로 명시한 사례가 없다. 따라서 동태복수법의 근본원리는 감정에 치우쳐 죗값 이상으로 보복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보복의 악순환을 차단하는데 있었다.

hammurabi_Lextalionis.jpg마지막으로 본문말씀은 소가 사람을 받아서 죽인경우 그 처벌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우연한 사고였을 경우 소는 죽이되 그 임자는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도록 규정하였고, 만일 주인의 부주의로 인해 잘 받는 습성을 지닌 소가 사람을 죽였을 경우 소는 물론이고 그 주인도 사형에 처하도록 정하였다. 하지만 그 주인은 사형대신에 속죄금을 내면 대속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악한 의도가 없는 부주의로 인한 잘못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을 들이받은 소는 반드시 돌로 쳐 죽이도록 하였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그 소에게 받힌 인간이 죽음의 고통을 당한 만큼의 고통을 소에게 줌으로써 말 못하는 짐승일지라도 생명에 대한 피 값을 치러야했기 때문이다(창 9:5). 인간이 율법을 어겼을 때 율법에 정한처벌을 받는 것처럼 동물에게도 율법에 정한처벌을 적용함으로써 동물도 율법 아래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또 소가 중요한 재산이긴 하지만, 소보다도 인명이 훨씬 존엄하고 고귀하다는 사실(마 16:26)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소가 사람을 죽인 원인이 소 주인의 부주의로 인한 경우라면 그 소 주인은 사형을 받거나 속죄금을 내도록 했다. 이것은 타인의 생명을 보호하는 일에 모든 사람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한다는 교훈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이때 내는 속죄금은 사람의 생명에 대한 속전이었기 때문에 거금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돌에 맞아 죽은 소의 고기는 피 흘린 죄를 범한 저주받은 동물로 간주하여(레 24:16; 민 15:35; 신 21:21) 식용으로 사용하는 것을 금하였다.

출애굽기 21장에서 살펴본 율법의 근본정신을 성취하고 승화시킨 분이 예수님이시다(마 5:17). 예수님은 악을 악으로 갚는 인간의 단순논리를 초월하여 악을 선으로 갚는 사랑과 희생의 법을 가르치셨다(마 5:28-44).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는 동태복수법이 예수님의 아가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라’(마 5:39)는 원수 사랑의 법으로 승화되었다. 이러한 사랑과 희생, 그리고 용서의 법이 곧 그리스도교의 근본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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