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요 18:1-32)
본문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요 18:1-32)
[오후 성경공부 내용]
예수님은 금요일 밤(우리 시간으로 목요일 밤)에 체포되어 밤새도록 심문을 받으시고 같은 날 아침 일찍 빌라도 법정에서 사형언도를 받고 9시에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처형당하셨습니다(마 26:47- 27:56; 막 14:26-15:41; 눅 22:39-23:49; 요 18:1-19:30).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예수님은 겟세마네동산에서 체포된 직후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 앞에서 밤 12시에서 3시경에, 공회원 앞에서 3시에서 4시경에, 빌라도 총독 앞에서 4시경에, 헤롯 안디바 앞에서 5시경에, 다시 빌라도 총독과 군중 앞에서 아침 7시에서 8시경에 재판을 받으시고 사형선고를 받으셨습니다. 8시경에는 상의를 벗긴 채로 등에 살을 찢는 채찍을 맞으셨고 골고다 언덕까지 십자가 형틀에 쓰일 가로대를 짊어지셨고, 기도시간인 아침 9시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며, 역시 기도시간인 12시 정오에 어둠이 내려 오후 3시경 유대인들이 저녁 희생을 드리는 시간까지 지속되었으며, 예수님은 저녁희생제사가 드려지는 바로 그 시각에 운명하심으로써 인류의 화목제물로써 하나님께 드려졌습니다.
총독부는 항구 도시인 가이사랴(예루살렘 서북쪽 약 112㎞지점)에 있었으며, 헤롯 안디바는 갈릴리 지방 디벨료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는 안토니우스 성곽에 주둔하는 로마군과 함께 총독관저가 있었고, 헤롯궁전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민란이 일기 쉬운 유월절민족행사에 정치적 책임자로서 혹은 행사참여를 목적으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체포되신 후 밤새도록 여섯 차례, 곧 안나스와 가야바에게 각각 한 번씩, 공회원들에게 한번, 헤롯 안디바에게 한번, 그리고 빌라도 총독에게 두 번 심문을 받으시는 동안 단 한 차례도 동요되지 않으시고 끝까지 자신에 대한 믿음과 신념을 지키시며 심문자들이 오히려 마음에 동요를 일으키게 하시는 동안 베드로는 예수님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세 번의 심문, 그것도 아랫사람들에게 자유의 몸으로 받은 심문에 세 번 다 예수님을 모르며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부인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세 차례에 걸쳐 예수님을 부인한 이야기는 초대교회의 박해상황을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터키 지역인 비두니아(Bithynia)에 111년 총독으로 임명되었던 소(小) 플리니(Pliny the Younger)는 체포된 기독교인들에게 세 차례 배교할 기회를 준 후에 그래도 계속해서 신앙을 고집하면 처형토록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여섯 차례, 곧 안나스와 가야바에게 각각 한 번씩, 공회원들에게 한번, 헤롯 안디바에게 한번, 그리고 빌라도 총독에게 두 번 심문을 받으신 것 외에도 요한복음에서만 여섯 번 배교할 기회를 갖게 됩니다.
먼저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 체포조가 왔을 때, 그들에게 두 번씩이나 그들이 ‘네가 나사렛 예수냐?’고 묻기도 전에 먼저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18:4,7)고 물으셨고, 그들이 “나사렛 예수라”(18:5,7)고 했을 때, “내로라”(18:5,8)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체포조가 오는 것을 아시고도 도망하지도 숨지도 아니하시고 오히려 대담하게 ‘내가 바로 너희가 찾고 있는 나사렛 예수다’고 밝히셨습니다. 그러자 체포조원들이 오히려 화들짝 놀라며 땅바닥에 나자빠졌습니다. 세 번째는 안나스의 심문에서 나타납니다. 그가 예수님에게 그의 제자들과 교훈에 대하여 물었을 때,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내가 드러내 놓고 세상에 말하였노라. 모든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항상 가르쳤고, 은밀하게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아니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자들에게 물어 보라. 그들이 내가 하던 말을 안다”(18:20-21)고 하셨고, 곁에 섰던 아랫사람이 예수님을 때릴 때에도 예수님은 “내가 말을 잘못하였으면 그 잘못한 것을 증언하라. 잘하였으면 네가 어찌하여 나를 치느냐?”(18:23)고 담대하게 대응하셨습니다.
로마총독 빌라도 앞에서도 예수님은 세 차례 배교할 기회를 갖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18:33-37)고 세 번이나 물었고, 예수님은 그 때마다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라.”(36-37절)고 담대하게 대답하셨습니다. 이에 빌라도는 유대인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라”(38절)고 고백하였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심문자 앞에서 담대하게 말씀하시고 오히려 심문자들을 압도하시고 계실 적에 평상시 매우 용감하고 저돌적이었던 수제자 베드로는 안나스의 아랫사람들의 세 번의 물음에 허망하게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첫 번째로 문지키는 여종이 베드로에게 물었습니다.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17절). 두 번째로 불을 쬐던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물었습니다.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25절). 세 번째로 귀를 베인 말고의 친척이 베드로에게 물었습니다.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던 것을 내가 보지 아니하였느냐?”(26절). 이 세 번의 물음에 베드로는 “나는 아니라.”고 강하게 부인하였습니다. 이 세 번의 강한 부인은 베드로의 배교를 확정짓는 것이었고, 그 증거로 닭이 울었습니다.
기독교 초창기시대에 예수님을 믿기로 작정하고 침례받기를 원했던 사람들에게는 세 번의 신앙고백과 세 번의 침례를 주었습니다. 이 당시 침례는 물이 많은 공개된 장소에서 행하여졌고 박해시대였으므로 목숨을 거는 모험이었습니다. 마음으로 믿는 것이야 발설치 아니하면 남이 믿는지 믿지 않는지 알 수 없지만, 침례는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침례받기 직전에 행하는 세 번의 신앙고백과 또 세 번의 침수는 공개된 장소에서 이뤄졌습니다. 두 남녀가 비밀리에 연예할 수는 있어도 증인을 세우지 아니한 결혼식은 올릴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결혼식이란 두 남녀의 결합을 공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침례식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므로 침례를 받는 자들은 먼저 “나는 하나님 아버지를 믿습니다.”고 고백한 후에 첫 번째 침수를, “나는 성자 예수님을 믿습니다.”고 고백한 후에 두 번째 침수를, “나는 성령님을 믿습니다.”고 고백한 후에 세 번째 침수를 받았습니다. 이처럼 세 차례의 신앙선언과 세 차례의 침수세례는 박해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이 자주 직면했던 세 차례의 배교선언과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배교상황에 직면했을 때 우리 성도들은 예수님처럼 담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죽는 것이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득이한 상황에서 배교선언을 했다면 반드시 회개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베드로나 잘못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배교가 매우 심각하고 무서운 행위지만, 박해시대에는 늘 있어왔던 일들입니다. 주리를 틀리고 치도곤을 맞고 여러 날 먹고 마시지 못하면 믿음이 돈독했던 사람조차도 밀고자나 배교자가 되고 맙니다. 배교는 아주 나쁘지만, 그보다 더 나쁜 것은 회개치 않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유다의 차이점은 죄질의 차이에 있지 않고, 회개의 유무에 있었던 것입니다. 살인자라도 회개하면 하나님은 용서하시고 받으십니다. 죽음 앞에서 비굴해졌던 베드로는 주리를 틀린 것도 아니었고, 치도곤을 맞은 것도 아니었고, 굶주림에 시달리거나 잠을 못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의 배교는 너무도 나약하고 비굴한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의 통회함을 받으시고 그의 실수를 용납하셨고 그를 다시 들어 귀히 쓰셨습니다.
[오후 성경공부 내용]
예수님은 금요일 밤(우리 시간으로 목요일 밤)에 체포되어 밤새도록 심문을 받으시고 같은 날 아침 일찍 빌라도 법정에서 사형언도를 받고 9시에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처형당하셨습니다(마 26:47- 27:56; 막 14:26-15:41; 눅 22:39-23:49; 요 18:1-19:30).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예수님은 겟세마네동산에서 체포된 직후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 앞에서 밤 12시에서 3시경에, 공회원 앞에서 3시에서 4시경에, 빌라도 총독 앞에서 4시경에, 헤롯 안디바 앞에서 5시경에, 다시 빌라도 총독과 군중 앞에서 아침 7시에서 8시경에 재판을 받으시고 사형선고를 받으셨습니다. 8시경에는 상의를 벗긴 채로 등에 살을 찢는 채찍을 맞으셨고 골고다 언덕까지 십자가 형틀에 쓰일 가로대를 짊어지셨고, 기도시간인 아침 9시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며, 역시 기도시간인 12시 정오에 어둠이 내려 오후 3시경 유대인들이 저녁 희생을 드리는 시간까지 지속되었으며, 예수님은 저녁희생제사가 드려지는 바로 그 시각에 운명하심으로써 인류의 화목제물로써 하나님께 드려졌습니다.
총독부는 항구 도시인 가이사랴(예루살렘 서북쪽 약 112㎞지점)에 있었으며, 헤롯 안디바는 갈릴리 지방 디벨료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는 안토니우스 성곽에 주둔하는 로마군과 함께 총독관저가 있었고, 헤롯궁전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민란이 일기 쉬운 유월절민족행사에 정치적 책임자로서 혹은 행사참여를 목적으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체포되신 후 밤새도록 여섯 차례, 곧 안나스와 가야바에게 각각 한 번씩, 공회원들에게 한번, 헤롯 안디바에게 한번, 그리고 빌라도 총독에게 두 번 심문을 받으시는 동안 단 한 차례도 동요되지 않으시고 끝까지 자신에 대한 믿음과 신념을 지키시며 심문자들이 오히려 마음에 동요를 일으키게 하시는 동안 베드로는 예수님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세 번의 심문, 그것도 아랫사람들에게 자유의 몸으로 받은 심문에 세 번 다 예수님을 모르며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부인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세 차례에 걸쳐 예수님을 부인한 이야기는 초대교회의 박해상황을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터키 지역인 비두니아(Bithynia)에 111년 총독으로 임명되었던 소(小) 플리니(Pliny the Younger)는 체포된 기독교인들에게 세 차례 배교할 기회를 준 후에 그래도 계속해서 신앙을 고집하면 처형토록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여섯 차례, 곧 안나스와 가야바에게 각각 한 번씩, 공회원들에게 한번, 헤롯 안디바에게 한번, 그리고 빌라도 총독에게 두 번 심문을 받으신 것 외에도 요한복음에서만 여섯 번 배교할 기회를 갖게 됩니다.
먼저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 체포조가 왔을 때, 그들에게 두 번씩이나 그들이 ‘네가 나사렛 예수냐?’고 묻기도 전에 먼저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18:4,7)고 물으셨고, 그들이 “나사렛 예수라”(18:5,7)고 했을 때, “내로라”(18:5,8)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체포조가 오는 것을 아시고도 도망하지도 숨지도 아니하시고 오히려 대담하게 ‘내가 바로 너희가 찾고 있는 나사렛 예수다’고 밝히셨습니다. 그러자 체포조원들이 오히려 화들짝 놀라며 땅바닥에 나자빠졌습니다. 세 번째는 안나스의 심문에서 나타납니다. 그가 예수님에게 그의 제자들과 교훈에 대하여 물었을 때,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내가 드러내 놓고 세상에 말하였노라. 모든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항상 가르쳤고, 은밀하게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아니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자들에게 물어 보라. 그들이 내가 하던 말을 안다”(18:20-21)고 하셨고, 곁에 섰던 아랫사람이 예수님을 때릴 때에도 예수님은 “내가 말을 잘못하였으면 그 잘못한 것을 증언하라. 잘하였으면 네가 어찌하여 나를 치느냐?”(18:23)고 담대하게 대응하셨습니다.
로마총독 빌라도 앞에서도 예수님은 세 차례 배교할 기회를 갖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18:33-37)고 세 번이나 물었고, 예수님은 그 때마다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라.”(36-37절)고 담대하게 대답하셨습니다. 이에 빌라도는 유대인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라”(38절)고 고백하였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심문자 앞에서 담대하게 말씀하시고 오히려 심문자들을 압도하시고 계실 적에 평상시 매우 용감하고 저돌적이었던 수제자 베드로는 안나스의 아랫사람들의 세 번의 물음에 허망하게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첫 번째로 문지키는 여종이 베드로에게 물었습니다.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17절). 두 번째로 불을 쬐던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물었습니다.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25절). 세 번째로 귀를 베인 말고의 친척이 베드로에게 물었습니다.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던 것을 내가 보지 아니하였느냐?”(26절). 이 세 번의 물음에 베드로는 “나는 아니라.”고 강하게 부인하였습니다. 이 세 번의 강한 부인은 베드로의 배교를 확정짓는 것이었고, 그 증거로 닭이 울었습니다.
기독교 초창기시대에 예수님을 믿기로 작정하고 침례받기를 원했던 사람들에게는 세 번의 신앙고백과 세 번의 침례를 주었습니다. 이 당시 침례는 물이 많은 공개된 장소에서 행하여졌고 박해시대였으므로 목숨을 거는 모험이었습니다. 마음으로 믿는 것이야 발설치 아니하면 남이 믿는지 믿지 않는지 알 수 없지만, 침례는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침례받기 직전에 행하는 세 번의 신앙고백과 또 세 번의 침수는 공개된 장소에서 이뤄졌습니다. 두 남녀가 비밀리에 연예할 수는 있어도 증인을 세우지 아니한 결혼식은 올릴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결혼식이란 두 남녀의 결합을 공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침례식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므로 침례를 받는 자들은 먼저 “나는 하나님 아버지를 믿습니다.”고 고백한 후에 첫 번째 침수를, “나는 성자 예수님을 믿습니다.”고 고백한 후에 두 번째 침수를, “나는 성령님을 믿습니다.”고 고백한 후에 세 번째 침수를 받았습니다. 이처럼 세 차례의 신앙선언과 세 차례의 침수세례는 박해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이 자주 직면했던 세 차례의 배교선언과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배교상황에 직면했을 때 우리 성도들은 예수님처럼 담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죽는 것이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득이한 상황에서 배교선언을 했다면 반드시 회개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베드로나 잘못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배교가 매우 심각하고 무서운 행위지만, 박해시대에는 늘 있어왔던 일들입니다. 주리를 틀리고 치도곤을 맞고 여러 날 먹고 마시지 못하면 믿음이 돈독했던 사람조차도 밀고자나 배교자가 되고 맙니다. 배교는 아주 나쁘지만, 그보다 더 나쁜 것은 회개치 않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유다의 차이점은 죄질의 차이에 있지 않고, 회개의 유무에 있었던 것입니다. 살인자라도 회개하면 하나님은 용서하시고 받으십니다. 죽음 앞에서 비굴해졌던 베드로는 주리를 틀린 것도 아니었고, 치도곤을 맞은 것도 아니었고, 굶주림에 시달리거나 잠을 못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의 배교는 너무도 나약하고 비굴한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의 통회함을 받으시고 그의 실수를 용납하셨고 그를 다시 들어 귀히 쓰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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