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일(요 6:22-40)
본문
하나님의 일(요 6:22-40)
[오후 성경공부 내용]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는 세 가지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인물이어야 했습니다. 첫째 인물은 모세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을 애급의 종살이에서 구출하여 냈으며,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40년간이나 하늘로부터 만나를 내려 먹게 한 지도자였습니다. 신명기 18장 15절에 보면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라는 모세의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근거로 유대인들은 장차 올 메시아는 모세와 같은 선지자일 것이고, 그 선지자는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제국의 압제로부터 구출하여 내고 또 광야에서 만나를 내려 먹게 했던 것처럼 민중을 먹이는 표적을 보일 것이고, 장차는 로마제국의 속박에서 구출할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둘째 인물은 엘리야입니다. 엘리야는 이스라엘 민족을 박해하였던 아합과 이세벨에 대항하여 싸웠고 사르밧 과부의 집의 가루통의 가루와 병의 기름을 다하지 아니하고 마르지 않게 한 예언자였습니다. 말라기 4장 5절에 보면,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근거로 유대인들은 장차 올 메시아는 엘리야와 같은 예언자일 것이고, 엘리야가 이스라엘 민족을 독재자의 압제로부터 구출하여 내고 또 과부의 집에 양식이 끊이지 않게 한 것처럼 민중을 먹이는 표적을 보일 것이고, 장차는 로마제국의 속박에서 구출할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셋째 인물은 다윗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영토를 가장 크게 확장시킨 민족의 영웅이었습니다. 미가서 5장 2절에 보면,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와 이사야 11장 전체 특히 10절에 보면,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고 한 말씀이 있습니다. 이들 말씀에 근거하여 유대인들은 장차올 메시아는 다윗의 고향에서 그의 후손 가운데서 그와 같은 위대한 인물이 배출될 것을 기대하였습니다. 마태복음에 나오는 베들레헴의 별은 다름 아닌 다윗의 별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사건은 이 세 인물들 가운데 적어도 두 인물 곧 모세와 엘리야에 관련하여 메시아임이 분명해진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따라서 오랜 세월동안 이런 표적을 보고자했던 민중은 흥분하였고, 이 소식을 들은 열심당원들이 다음 날 예수님을 찾아와 다윗과 같은 임금을 기대하면서 유대인의 왕으로 삼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찾았던 목적은 분명합니다. 그것은 세상의 일(정치, 군사), 빵의 문제(경제)를 해결받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명과 관심은 세상의 일이나 빵을 먹기 위한 육신의 일이 아니었고, 하나님의 일과 복음의 일 곧 영의 일을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26-27절). 유대인들이 되물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28절).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29절).
하나님의 일, 이것이 오늘 말씀의 주제입니다. 5장 21절에서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일’이 살림의 일인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살림의 일을 하시고, 아들이신 예수님도 살림의 일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6장 29절에서는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일이란 하나님이 살림의 일을 하듯이 동일한 일을 하신 예수님을 믿는 것이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자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살림의 일을 본받아 동일하게 살림의 일을 하신 예수님을 믿고 또 본받아 동일한 살림의 일을 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자기 조상들이 광야에서 지낼 때에 하늘에서 내린 만나를 먹었던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메시아인 증거를 보이라고 하였습니다(30-31절). 그 때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라” 말씀하시고, “내 아버지는 하늘로부터 참 떡을 너희에게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이 떡은 다름 아닌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이요, 세상에 생명을 주시는 분이다.”(32-33절)고 하셨습니다. 미처 옳게 깨닫지 못한 유대인들이 엉겁결에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34절)라고 했을 때에,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35절)고 바로 잡아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진실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생명의 떡이요, 하나님으로부터 세상에 보내심을 받은 구세주였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36절). 불신의 이유는 그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못했기 때문이요, 하나님의 일, 살림의 일, 영의 일, 복음의 일에는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세상의 일, 빵의 문제, 육신의 일만을 추구하였기 때문에 예수님이 그들의 뜻에 부합하는 인물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자신들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려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자신들의 뜻에 꿰맞추려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자신의 뜻을 행하려하심이 아니요(38절), 오히려 자기를 보내신 자의 뜻을 행하려 하심이었고(39절), 그들을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었습니다(39절). 하나님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어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리는 것이었습니다(40절). 이 점에 있어서 예수님과 유대인들은 피차 코드가 맞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도 이들 유대인들과 같은 교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마가복음 4-8장을 보면, 오천 명을 먹이신 이야기가 “주는 그리스도이십니다.”(막 8:29)라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향해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귀먹고 어눌한 벙어리(7:31-37)가 고침을 받고 듣고 말할 수 있게 됩니다. 사천 명을 먹이신 이야기 또한 “주는 그리스도이십니다.”라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향해서 진행이 되는데, 그 사이에 벳새다 장님(8:22-26)이 고침을 받고 볼 수 있게 됩니다.
이와 같이 민중의 빵 문제를 해결했던 두 개의 급식기적들은 귀먹고 어눌했던 벙어리가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 듣고 말하게 되고, 장님이 눈을 떠 볼 수 있게 되는 이야기로 이어지고,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신앙을 고백하는데 까지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귀가 열리고, 눈이 열렸을 때, 빵 문제를 뛰어넘어 제자들은 예수님이 누구인가를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에서와 같이 마가복음 8장에서도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 곧 육신의 일을 걱정하는 사람은 아직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자요, 마음이 둔한 자이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또 기억치 못하는 자입니다. 이런 사람은 예수님이 누구이며, 왜 십자가를 지셨는가를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마음이 둔하고 눈이 어둡고 귀가 어둡고 또 기억력이 나쁜 자입니다. 이런 사람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그 깊은 영적인 비밀을 간직하지 못한 자이며, 복음과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목숨을 바칠 수 없는 자입니다.
[오후 성경공부 내용]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는 세 가지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인물이어야 했습니다. 첫째 인물은 모세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을 애급의 종살이에서 구출하여 냈으며,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40년간이나 하늘로부터 만나를 내려 먹게 한 지도자였습니다. 신명기 18장 15절에 보면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라는 모세의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근거로 유대인들은 장차 올 메시아는 모세와 같은 선지자일 것이고, 그 선지자는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제국의 압제로부터 구출하여 내고 또 광야에서 만나를 내려 먹게 했던 것처럼 민중을 먹이는 표적을 보일 것이고, 장차는 로마제국의 속박에서 구출할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둘째 인물은 엘리야입니다. 엘리야는 이스라엘 민족을 박해하였던 아합과 이세벨에 대항하여 싸웠고 사르밧 과부의 집의 가루통의 가루와 병의 기름을 다하지 아니하고 마르지 않게 한 예언자였습니다. 말라기 4장 5절에 보면,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근거로 유대인들은 장차 올 메시아는 엘리야와 같은 예언자일 것이고, 엘리야가 이스라엘 민족을 독재자의 압제로부터 구출하여 내고 또 과부의 집에 양식이 끊이지 않게 한 것처럼 민중을 먹이는 표적을 보일 것이고, 장차는 로마제국의 속박에서 구출할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셋째 인물은 다윗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영토를 가장 크게 확장시킨 민족의 영웅이었습니다. 미가서 5장 2절에 보면,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와 이사야 11장 전체 특히 10절에 보면,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고 한 말씀이 있습니다. 이들 말씀에 근거하여 유대인들은 장차올 메시아는 다윗의 고향에서 그의 후손 가운데서 그와 같은 위대한 인물이 배출될 것을 기대하였습니다. 마태복음에 나오는 베들레헴의 별은 다름 아닌 다윗의 별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사건은 이 세 인물들 가운데 적어도 두 인물 곧 모세와 엘리야에 관련하여 메시아임이 분명해진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따라서 오랜 세월동안 이런 표적을 보고자했던 민중은 흥분하였고, 이 소식을 들은 열심당원들이 다음 날 예수님을 찾아와 다윗과 같은 임금을 기대하면서 유대인의 왕으로 삼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찾았던 목적은 분명합니다. 그것은 세상의 일(정치, 군사), 빵의 문제(경제)를 해결받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명과 관심은 세상의 일이나 빵을 먹기 위한 육신의 일이 아니었고, 하나님의 일과 복음의 일 곧 영의 일을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26-27절). 유대인들이 되물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28절).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29절).
하나님의 일, 이것이 오늘 말씀의 주제입니다. 5장 21절에서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일’이 살림의 일인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살림의 일을 하시고, 아들이신 예수님도 살림의 일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6장 29절에서는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일이란 하나님이 살림의 일을 하듯이 동일한 일을 하신 예수님을 믿는 것이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자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살림의 일을 본받아 동일하게 살림의 일을 하신 예수님을 믿고 또 본받아 동일한 살림의 일을 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자기 조상들이 광야에서 지낼 때에 하늘에서 내린 만나를 먹었던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메시아인 증거를 보이라고 하였습니다(30-31절). 그 때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라” 말씀하시고, “내 아버지는 하늘로부터 참 떡을 너희에게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이 떡은 다름 아닌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이요, 세상에 생명을 주시는 분이다.”(32-33절)고 하셨습니다. 미처 옳게 깨닫지 못한 유대인들이 엉겁결에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34절)라고 했을 때에,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35절)고 바로 잡아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진실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생명의 떡이요, 하나님으로부터 세상에 보내심을 받은 구세주였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36절). 불신의 이유는 그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못했기 때문이요, 하나님의 일, 살림의 일, 영의 일, 복음의 일에는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세상의 일, 빵의 문제, 육신의 일만을 추구하였기 때문에 예수님이 그들의 뜻에 부합하는 인물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자신들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려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자신들의 뜻에 꿰맞추려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자신의 뜻을 행하려하심이 아니요(38절), 오히려 자기를 보내신 자의 뜻을 행하려 하심이었고(39절), 그들을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었습니다(39절). 하나님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어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리는 것이었습니다(40절). 이 점에 있어서 예수님과 유대인들은 피차 코드가 맞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도 이들 유대인들과 같은 교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마가복음 4-8장을 보면, 오천 명을 먹이신 이야기가 “주는 그리스도이십니다.”(막 8:29)라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향해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귀먹고 어눌한 벙어리(7:31-37)가 고침을 받고 듣고 말할 수 있게 됩니다. 사천 명을 먹이신 이야기 또한 “주는 그리스도이십니다.”라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향해서 진행이 되는데, 그 사이에 벳새다 장님(8:22-26)이 고침을 받고 볼 수 있게 됩니다.
이와 같이 민중의 빵 문제를 해결했던 두 개의 급식기적들은 귀먹고 어눌했던 벙어리가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 듣고 말하게 되고, 장님이 눈을 떠 볼 수 있게 되는 이야기로 이어지고,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신앙을 고백하는데 까지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귀가 열리고, 눈이 열렸을 때, 빵 문제를 뛰어넘어 제자들은 예수님이 누구인가를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에서와 같이 마가복음 8장에서도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 곧 육신의 일을 걱정하는 사람은 아직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자요, 마음이 둔한 자이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또 기억치 못하는 자입니다. 이런 사람은 예수님이 누구이며, 왜 십자가를 지셨는가를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마음이 둔하고 눈이 어둡고 귀가 어둡고 또 기억력이 나쁜 자입니다. 이런 사람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그 깊은 영적인 비밀을 간직하지 못한 자이며, 복음과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목숨을 바칠 수 없는 자입니다.
- 이전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요 21:1-25) 03.07.02
- 다음글 새 시대를 위한 해원병(요 6:41-71) 03.07.13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