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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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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3,479 2003.07.02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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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1-33)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을 버려두고 곧 떠나실 것이란 말을 듣고 한편으로는 섭섭하고 실망스럽고, 다른 한편으로는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자신들이 믿고 따랐던 예수님이 이단자로 몰리고 십자가에 못 박힌다면, 이는 자신들이 설자리를 잃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들이 믿지 아니하는 가족이나 친지들 또는 친구들에게 당할 처지를 염려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14:1).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16:33).
요한복음 16장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크고 깊은가를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위기의 순간을 만난 제자들이 믿음이 약해 흔들리거나 넘어지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하셨습니다. 제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은 죽음을 코앞에 둔 순간에까지 지속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사후(死後)의 문제에까지 관심을 갖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2절에서 말씀하시기를,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을 믿는 이들에게 닥칠 시련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바울을 위시한 많은 유대인들에 의해서 실제로 이루어졌습니다. 사도행전 26장 1-11절에 의하면, 바울은 개심이전에 예수님을 메시아와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지 못하고 대제사장들에게서 권세를 얻어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고 또 죽일 때에 당연하게 생각하였고,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하고 저희를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까지도 가서 핍박하였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3절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을 정확히 알지 못한데서 비롯된 비극이었습니다.
회당제도는 바벨론 포로기(주전 586년 이후)에 시작되었는데 성전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유대인들을 하나로 엮어주는 아주 중요한 기관이었습니다. 회당은 안식일 날(금요일 해질 때부터 토요일 해질 때까지) 드리는 공적인 예배장소요,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교였으며, 종교재판이 열리는 유대인시설이었습니다. 이 회당에서 출회를 당한다는 것은 곧 가족과 친지와 공동체로부터 매장당한다는 것을 뜻하였습니다. 회당에서의 출회는 지역사회로부터 단지 매장 당한데서 끝나지 않고, 심하면 목숨을 빼앗기는 아주 무서운 이지매(집단 따돌림)였습니다.
이런 곤경에 처할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보혜사 성령님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예수님을 대신해서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하실 성령 하나님으로써 진리의 영이십니다. 이 성령님이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주시고 또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생각나게 하실 분이셨습니다. 이 분의 도움에 힘입어서 제자들은 신약성경을 기록하여 남겼으며, 곳곳에 교회들을 세웠습니다.
7절로부터 15절에서는 또 다른 보혜사 성령님의 사역을 말씀해 주셨는데, 성령님께서 오시면 죄와 의와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꾸짖어 바로잡아 주시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곧 죄란 사실을 말씀해 주실 것이며,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시고 제자들이 예수님을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는 것임을 가르쳐 주실 것이며, 세상의 통치자가 이미 심판을 받았기 때문에 심판 받을 자가 누구인가를 말씀해 주실 것이라 하였습니다. 또 성령님은 진리의 영으로써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터인데, 자의로 가르치지 아니하시고, 오직 듣고 배운 것만을 일러 주실 것이라 하였습니다.
성령님이 오셔서 판단하시는 기준은 오로지 사람들의 믿음뿐입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과 구원자로 믿음으로써 죄없다함을 인정받고,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의롭다함을 인정받으며,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심판받지 아니합니다.  앞으로의 모든 하나님의 심판의 기준은 예수님을 믿었느냐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의미심장한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예수님은 16절에서 “조금 있으면 너희는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볼 것이다.”고 하셨습니다. 처음에 제자들은 이 말씀의 뜻을 잘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또 깨닫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 제자들을 향해서 20-23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울며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근심에 쌓여도 그 근심이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여인이 해산할 때에는 근심한다. 때가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사람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 때문에 그 고통을 잊어버린다. 이와 같이, 지금 너희는 슬픔에 싸여 있지만, 내가 다시 너희를 볼 때에는 너희의 마음이 기쁠 것이요, 그 기쁨이 너희에게서 빼앗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 날에는 너희가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을 것이다.”
근심이 평안이 되고, 슬픔이 기쁨이 되고, 고난이 영광이 되고, 죽음이 영생이 되는 것, 이것이 기독교신앙의 힘입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죽었다가 다시 사는 부활이 없다면, 하늘 보좌방의 하나님의 면전에서 성도들이 다시 만날 기약이 없다면, 우리가 이 순간에도 근심해야 할 것입니다. 슬퍼해야 할 것입니다. 탄식해야할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 미래가 보장되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의 근심과 슬픔과 고통은 부활과 영생이란 옥동자를 낳기 위한 수고에 불과하다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우리가 자연의 법칙에 지배를 받습니다. 자연의 법칙은 모든 것이 썩어짐과 죽음을 향해서 달려가는 엔트로피법칙(열역학2법칙)입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은 이 자연의 법칙을 믿음으로 거슬러 살아갈 뿐이지 여전히 자연의 법칙에 매어 삽니다. 그러나 죽음을 이기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그 때에 죽은 자를 살리신 하나님이 새 하늘과 새 땅을 마련하실 그 때에 우리 믿는 성도들만이, 믿음으로 자연의 법칙을 거슬러 살았던 사람들만이 새로운 대자연의 법칙아래서 하나님과 함께 그리스도님 안에서 성령님과 더불어 영원토록 살 것이기에 22절의 말씀대로 지금은 우리가 근심하며 슬퍼하고 고난을 당하지만, 그 때에는 우리의 마음이 기쁠 것이며, 아무도 그 기쁨을 빼앗지 못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두 가지를 당부하셨습니다. 한 가지는 무엇이든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라는 것입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의 기쁨이 충만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 무엇을 구하는 것은 예수님과 그를 보내신 하나님을 믿는 행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필요한 것들을 간구해야 할줄 압니다.
다른 한 가지 말씀은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담대하고 용기를 잃지 말아야할 이유는 예수님께서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죽은 예수님이 세상을 이겼다는 믿음, 이 믿음이 바로 기독교인의 믿음입니다. 신자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야말로 우리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란 사실을 깨닫고 인식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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