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품과 명품[딤후2:20-21]
본문
KBS 2TV 주일 오후 5시 프로그램 가운데 {TV쇼 진품 명품}이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골동품의 진위여부와 감정가를 결정해주는 것인데 흥미를 돋우기 위해서 먼저 골동품을 가지고 나온 소장자가 소장하게된 경위를 설명하고 원하는 가격을 메깁니다. 그 다음에 비전문가인 연예인 팀이 골동품을 자세히 살펴보고 나서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서 합의된 감정가를 메깁니다. 이 때 소장자와 연예인 팀이 메긴 가격에 상당한 차이가 생기면서 희비가 교차됩니다. 비록 비전문가들이긴 하지만 그들에 의해서 소장자가 메긴 가격보다 높게 매겨지면 소장자는 내심 좋아서 흥분하게 됩니다. 그 반대로 소장자가 매긴 가격보다 낮게 메겨지면 내심 실망을 금치 못하면서 전문가들의 감정가에 기대를 걸어 봅니다. 그리고 나면 전문가 팀이 나와서 출품된 골동품의 진위여부와 감정가격을 메깁니다. 이 때 골동품을 소장한 사람이나 출연한 비전문가 연예인 팀이나 시청자들은 전문가들이 메긴 감정가격이 자신들이 메긴 감정가격과 크게 달랐을 때와 그 이유를 듣게 되었을 때 실소를 금치 못하게 됩니다.
이 프로그램은 1백 회를 넘겨 장수할 만큼 시청자들이 즐겨 보는 프로그램입니다. 그런데 시청자들이 이 프로그램을 즐겨보는 가장 큰 이유는 문화재에 대한 관심 때문이 아니라 출품된 문화재의 값이 얼마로 매겨질까 에 대한 궁금증과 흥미 때문이란 것입니다. 집안에 아끼는 골동품 한 점이라도 지녔다면 그 가치는 물론 그걸 내다 팔면 값이 얼마나 나갈지 알고 싶은 게 인지상정입니다. 하물며 소장품이 골동서화류 같은 문화재라면 그 궁금증은 더할 것입니다. 이 프로그램이 호응을 얻는 이유는 시청자들의 이런 기대심리를 반영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TV쇼 진품 명품}을 놓고 학계와 사회단체의 비판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이 단편적이나마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안목을 넓혀준 점은 인정되지만 회를 거듭하면서 문화재가 지닌 가치보다는 '얼마짜리냐'는 잣대로 시청자들의 흥미를 유발하고있어 문화재의 가치가 마치 가격에 있는 것처럼 시청자를 오도하기 쉽고, 매장문화재를 마구잡이로 파헤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초기 삼국시대의 토기를 들고 나와 1천 5백여 년 동안 대대손손 소중히 내려온 물건이라고 말하는가하면, 매장문화재를 취득한 후 이를 국가에 신고하지 않고 개인 소장하고 있다가 가격을 알아보려고 출품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TV쇼 진품 명품}이 방영되기 이전에는 사람들이 '밭갈 다가 발견했다'며 유물 취득을 신고했는데, 요즘은 '집에서 내려오는 물건인데 얼마짜리냐'고 묻는다고 합니다. 또 TV프로에 출연했던 소장자가 물건을 팔려고 내 놓았다가 '왜 TV쇼 보다 헐값에 사려느냐'고 항의한다고 합니다.
이런 부작용 때문에도 {TV쇼 진품 명품}은 너무 값 매기기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출품 문화재의 예술적 가치와 감상법 등을 보다 충실하게 해설함으로써 작품에 대한 감식안과 이해를 높이는 쪽으로 제작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 모든 인간은 모두 진품으로 세상에 나옵니다. 진품이 아닌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신 것을 보아도 알 수 있고,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딤전 4:4)는 말씀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또 "그러나 주님, 주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님은 우리를 빚으신 분이십니다. 우리 모두가, 주님이 손수 지으신 피조물입니다." 라는 말씀이 있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이사야 64장 8절에 실린 이 말씀은 하나님을 토기장이로, 우리 인간을 토기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만들지 아니한 그릇은 세상에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 인간은 모두 하나님이 직접 빚어 만든 진품들입니다. 가짜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모두가 같은 종류의 같은 그릇들은 아닙니다. 디모데후서 2장 20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큰집에는 금그릇과 은그릇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무그릇과 질그릇도 있어서, 어떤 것은 귀하게 쓰이고 어떤 것은 천하게 쓰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귀한 그릇'과 '천한 그릇'에 관해서 매우 분명한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것은 토기가 토기장이에게 불평을 말할 수 없듯이, 인간은 하나님에게 쓰임의 용도에 대해서 불평을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불평을 말하는 자는 동정을 받기보다는 오히려 화를 당하게 될 것이라고 성경은 다음과 같이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무엇이기에 하나님께 감히 말대답을 합니까? 만들어진 것이 만드신 분에게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하고 말할 수 있습니까? 토기장이에게는 흙덩이 하나를 둘로 나누어서 하나는 귀한 데 쓸 그릇을 만들고 하나는 천한 데 쓸 그릇을 만들 권리가 있지 않습니까?"(롬 9:20-21). 또 "질그릇 가운데서도 작은 한 조각에 지나지 않으면서, 자기를 지은이와 다투는 자에게는 화가 닥칠 것이다. 진흙이 토기장이에게 '너는 도대체 무엇을 만들고 있는 거냐?' 하고 말할 수 있겠으며, 네가 만든 것이 너에게 '그에게는 손이 있으나마나다!' 하고 말할 수 있겠느냐? 아버지에게 말하기를 '나를 자식이라고 낳았습니까?' 하는 자와 자기 어머니에게 '무슨 해산의 고통을 했다는 겁니까?' 하고 말하는 자식에게 화가 닥칠 것이다"(사 45:9-10).
둘째, 모든 인간은 자기 죄로 인해서 모두 땅 속에 묻혔거나 먼지에 덮여 빛을 보지 못한 자들입니다. 이 가운데는 깨어진 토기 그릇, 녹슨 쇠붙이, 빛 바랜 금은 장식과 같이 대부분 처음 하나님이 빚어 만드신 그대로 원형을 유지하지 못한 채 죄악 가운데서 깨지고 녹슨 채 방치되어 있던 자들입니다. 버림받았던 유물이라고 해야 할지, 혹은 땅 속에 묻혀 있었던 보물이라고 해야 할지 뭐 그런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죄로 인해서 하나님에게 발견이 되어 진품으로 확인되기까지는 아무 쓸모 없게 된 자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제조자로서 자신이 정성 들여 만든 그릇들이 제 구실을 못하고 깨지고 녹슨 채 흙 속에 묻혀 버린 그릇들을 찾아 발견하기 위해서 각 시대마다 선지자들을 보내어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자기 그릇을 찾으시다가 그것도 마땅치 않아서 아들까지 세상에 파견하셨습니다(히 1:1-2). 세상에 오신 아들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목숨까지 바치며 일하셨고, 주의 종들이 전보다 훨씬 많은 그릇들을 찾을 수 있도록 은혜와 믿음의 길을 열어 놓으시고, 하나님 곁으로 올라가신 아들은 다시 종들을 보내어 잊혀지고 묻힌 그릇들을 지속적으로 찾도록 하셨습니다.
셋째,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와 그가 파송한 전도자들에게 발굴되어 옛 모습을 회복한 사람들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가게인 교회를 채우는 골동품들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라고 고린도후서 5장 17절이 말씀하고 있듯이, 그리스도인들은 한 때 죄로 인해서 깨지고 녹슬고 버려졌던 자들이었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종들에게 발굴되어 옛 모습을 회복한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새로운 피조물로서 더럽혀진 곳이 씻기고, 깨진 곳이 수리되고, 녹슬었던 곳이 깨끗하게 닦여 반짝 반짝 빛나는 유일한 진품들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이런 변화된 모습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혹은 잊어버리고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난 자신의 상태를 잘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마치 자신이 이미 소유하고 있는 어떤 도자기를 찾아 수년간 헤매다가 그것을 자기 창고에서 발견한 사람과 같습니다.
골동품 수집이 취미인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수집벽은 유난해서 좀 오래된 물건이 있다 싶으면 어디든 달려가 당장 사와야 직성이 풀리곤 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한 여행가로부터 유럽의 왕실에서만 썼다는 옛 도자기 얘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마음이 들뜬 수집가가 도자기 있는 곳을 알아내 곧 유럽으로 날아간 것은 물론이었습니다. 그러나 있다는 곳에 도착하고 보니 도자기는 이미 다른 데로 옮겨가고 난 뒤였습니다. 어떻게 하든 도자기를 갖고 싶었던 수집가는 도자기의 자취를 더듬어 몇 년 동안이나 유럽 전역을 헤매고 다녔습니다. 그러던 끝에 수집가는 도자기가 바로 자기가 사는 나라의 어느 사업가에게 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그는 곧 제나라로 돌아와 사업가를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도자기는 이미 사업가의 손을 떠난지도 오래였습니다. 다시 수소문을 거듭해 맨 나중 까지 도자기를 갖고 있었다는 이와 전화로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또 마지막으로 도자기를 넘겨주었다는 사람의 이름을 듣는 순간 수집가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갑자기 멍해졌습니다. 그것은 수집가 바로 자신의 이름이었기 때문입니다. 수집가는 즉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골동품을 보관해 두는 지하 창고의 문을 열고 불을 켰습니다. 수집가가 그토록 찾아 헤매고 돌아다녔던 도자기는 바로 그의 집 창고의 진열장 안 한 쪽에서 은은히 빛을 내고 있었습니다. 욕심에 어두웠던 수집가는 보물을 바로 지척에 두고도 몇 년이나 온 유럽을 헤매고 다녔던 것입니다.
넷째, 진품으로 확인된 모든 그리스도인이 다 명품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감정가가 수 억 원에 이르는 명품이 있는가 하면, 수 만원에 불과한 골동품이 있듯이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른 사람이라 해서 모두가 명품은 아닙니다. 교회 안에 진열된 그리스도인 골동품들 가운데 사탄이 만들어낸 모조품들이 적지 아니 많다고 하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으로 된 진품들인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진품이라고 해서 반드시 명품인 것은 아닙니다. 디모데후서 2장 20-21절에서 하나님의 "큰집에는 금그릇과 은그릇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무그릇과 질그릇도 있어서, 어떤 것은 귀하게 쓰이고 어떤 것은 천하게 쓰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내가 말한 이러한 것들로부터 자신을 깨끗하게 하면, 그는 주인이 온갖 좋은 일에 요긴하게 쓰는, 귀하고 성별된 그릇이 될 것입니다." 라고 했고, 또 고린도후서 4장 7절에서는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습니다." 라고 했듯이 성별된 그릇, 보배를 지닌 그릇이 명품이 되는 것입니다.
다섯째, 명품에 관한 감정은 최종적으로 하나님이 하십니다. 세상에서는 사람들에 의해서 명품여부가 결정될지 모르지만, 마지막 날에는 그 진실 여부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그대로 드러날 것입니다(고후 5:10; 계 20:12). 그 때에 하나님은 알곡과 쭉정이를(마 3:12) 구별하실 것이고, 감추인 것과 숨은 것을 찾아내실 것입니다(마 10:26). 그 때에는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히 4:13; 벧후 3:10). 그 때에 많은 사람들이 경악을 금치 못하게 될 것입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진품과 명품으로 감정평가를 받았었는데 알고 보니까 가짜였다든지, 진품인 것은 확실한데 형편없는 값어치에 불과했다든지, 어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명품 같지 않았는데 알고 보니까 명품중의 명품이었다든지 하면서 희비가 교차되기도 하고 경악을 금치 못하는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역대기하 15장 7절은 "그런즉 너희는 강하게 하라 손이 약하지 않게 하라. 너희 행위에는 상급이 있음이니라." 고 했고, 또 야고보서 2장 14절은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올바른 신앙인이 되어 높은 감정가를 받는 명품이 되도록 다같이 노력합시다.
이 프로그램은 1백 회를 넘겨 장수할 만큼 시청자들이 즐겨 보는 프로그램입니다. 그런데 시청자들이 이 프로그램을 즐겨보는 가장 큰 이유는 문화재에 대한 관심 때문이 아니라 출품된 문화재의 값이 얼마로 매겨질까 에 대한 궁금증과 흥미 때문이란 것입니다. 집안에 아끼는 골동품 한 점이라도 지녔다면 그 가치는 물론 그걸 내다 팔면 값이 얼마나 나갈지 알고 싶은 게 인지상정입니다. 하물며 소장품이 골동서화류 같은 문화재라면 그 궁금증은 더할 것입니다. 이 프로그램이 호응을 얻는 이유는 시청자들의 이런 기대심리를 반영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TV쇼 진품 명품}을 놓고 학계와 사회단체의 비판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이 단편적이나마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안목을 넓혀준 점은 인정되지만 회를 거듭하면서 문화재가 지닌 가치보다는 '얼마짜리냐'는 잣대로 시청자들의 흥미를 유발하고있어 문화재의 가치가 마치 가격에 있는 것처럼 시청자를 오도하기 쉽고, 매장문화재를 마구잡이로 파헤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초기 삼국시대의 토기를 들고 나와 1천 5백여 년 동안 대대손손 소중히 내려온 물건이라고 말하는가하면, 매장문화재를 취득한 후 이를 국가에 신고하지 않고 개인 소장하고 있다가 가격을 알아보려고 출품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TV쇼 진품 명품}이 방영되기 이전에는 사람들이 '밭갈 다가 발견했다'며 유물 취득을 신고했는데, 요즘은 '집에서 내려오는 물건인데 얼마짜리냐'고 묻는다고 합니다. 또 TV프로에 출연했던 소장자가 물건을 팔려고 내 놓았다가 '왜 TV쇼 보다 헐값에 사려느냐'고 항의한다고 합니다.
이런 부작용 때문에도 {TV쇼 진품 명품}은 너무 값 매기기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출품 문화재의 예술적 가치와 감상법 등을 보다 충실하게 해설함으로써 작품에 대한 감식안과 이해를 높이는 쪽으로 제작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 모든 인간은 모두 진품으로 세상에 나옵니다. 진품이 아닌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신 것을 보아도 알 수 있고,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딤전 4:4)는 말씀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또 "그러나 주님, 주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님은 우리를 빚으신 분이십니다. 우리 모두가, 주님이 손수 지으신 피조물입니다." 라는 말씀이 있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이사야 64장 8절에 실린 이 말씀은 하나님을 토기장이로, 우리 인간을 토기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만들지 아니한 그릇은 세상에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 인간은 모두 하나님이 직접 빚어 만든 진품들입니다. 가짜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모두가 같은 종류의 같은 그릇들은 아닙니다. 디모데후서 2장 20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큰집에는 금그릇과 은그릇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무그릇과 질그릇도 있어서, 어떤 것은 귀하게 쓰이고 어떤 것은 천하게 쓰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귀한 그릇'과 '천한 그릇'에 관해서 매우 분명한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것은 토기가 토기장이에게 불평을 말할 수 없듯이, 인간은 하나님에게 쓰임의 용도에 대해서 불평을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불평을 말하는 자는 동정을 받기보다는 오히려 화를 당하게 될 것이라고 성경은 다음과 같이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무엇이기에 하나님께 감히 말대답을 합니까? 만들어진 것이 만드신 분에게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하고 말할 수 있습니까? 토기장이에게는 흙덩이 하나를 둘로 나누어서 하나는 귀한 데 쓸 그릇을 만들고 하나는 천한 데 쓸 그릇을 만들 권리가 있지 않습니까?"(롬 9:20-21). 또 "질그릇 가운데서도 작은 한 조각에 지나지 않으면서, 자기를 지은이와 다투는 자에게는 화가 닥칠 것이다. 진흙이 토기장이에게 '너는 도대체 무엇을 만들고 있는 거냐?' 하고 말할 수 있겠으며, 네가 만든 것이 너에게 '그에게는 손이 있으나마나다!' 하고 말할 수 있겠느냐? 아버지에게 말하기를 '나를 자식이라고 낳았습니까?' 하는 자와 자기 어머니에게 '무슨 해산의 고통을 했다는 겁니까?' 하고 말하는 자식에게 화가 닥칠 것이다"(사 45:9-10).
둘째, 모든 인간은 자기 죄로 인해서 모두 땅 속에 묻혔거나 먼지에 덮여 빛을 보지 못한 자들입니다. 이 가운데는 깨어진 토기 그릇, 녹슨 쇠붙이, 빛 바랜 금은 장식과 같이 대부분 처음 하나님이 빚어 만드신 그대로 원형을 유지하지 못한 채 죄악 가운데서 깨지고 녹슨 채 방치되어 있던 자들입니다. 버림받았던 유물이라고 해야 할지, 혹은 땅 속에 묻혀 있었던 보물이라고 해야 할지 뭐 그런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죄로 인해서 하나님에게 발견이 되어 진품으로 확인되기까지는 아무 쓸모 없게 된 자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제조자로서 자신이 정성 들여 만든 그릇들이 제 구실을 못하고 깨지고 녹슨 채 흙 속에 묻혀 버린 그릇들을 찾아 발견하기 위해서 각 시대마다 선지자들을 보내어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자기 그릇을 찾으시다가 그것도 마땅치 않아서 아들까지 세상에 파견하셨습니다(히 1:1-2). 세상에 오신 아들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목숨까지 바치며 일하셨고, 주의 종들이 전보다 훨씬 많은 그릇들을 찾을 수 있도록 은혜와 믿음의 길을 열어 놓으시고, 하나님 곁으로 올라가신 아들은 다시 종들을 보내어 잊혀지고 묻힌 그릇들을 지속적으로 찾도록 하셨습니다.
셋째,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와 그가 파송한 전도자들에게 발굴되어 옛 모습을 회복한 사람들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가게인 교회를 채우는 골동품들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라고 고린도후서 5장 17절이 말씀하고 있듯이, 그리스도인들은 한 때 죄로 인해서 깨지고 녹슬고 버려졌던 자들이었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종들에게 발굴되어 옛 모습을 회복한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새로운 피조물로서 더럽혀진 곳이 씻기고, 깨진 곳이 수리되고, 녹슬었던 곳이 깨끗하게 닦여 반짝 반짝 빛나는 유일한 진품들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이런 변화된 모습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혹은 잊어버리고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난 자신의 상태를 잘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마치 자신이 이미 소유하고 있는 어떤 도자기를 찾아 수년간 헤매다가 그것을 자기 창고에서 발견한 사람과 같습니다.
골동품 수집이 취미인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수집벽은 유난해서 좀 오래된 물건이 있다 싶으면 어디든 달려가 당장 사와야 직성이 풀리곤 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한 여행가로부터 유럽의 왕실에서만 썼다는 옛 도자기 얘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마음이 들뜬 수집가가 도자기 있는 곳을 알아내 곧 유럽으로 날아간 것은 물론이었습니다. 그러나 있다는 곳에 도착하고 보니 도자기는 이미 다른 데로 옮겨가고 난 뒤였습니다. 어떻게 하든 도자기를 갖고 싶었던 수집가는 도자기의 자취를 더듬어 몇 년 동안이나 유럽 전역을 헤매고 다녔습니다. 그러던 끝에 수집가는 도자기가 바로 자기가 사는 나라의 어느 사업가에게 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그는 곧 제나라로 돌아와 사업가를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도자기는 이미 사업가의 손을 떠난지도 오래였습니다. 다시 수소문을 거듭해 맨 나중 까지 도자기를 갖고 있었다는 이와 전화로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또 마지막으로 도자기를 넘겨주었다는 사람의 이름을 듣는 순간 수집가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갑자기 멍해졌습니다. 그것은 수집가 바로 자신의 이름이었기 때문입니다. 수집가는 즉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골동품을 보관해 두는 지하 창고의 문을 열고 불을 켰습니다. 수집가가 그토록 찾아 헤매고 돌아다녔던 도자기는 바로 그의 집 창고의 진열장 안 한 쪽에서 은은히 빛을 내고 있었습니다. 욕심에 어두웠던 수집가는 보물을 바로 지척에 두고도 몇 년이나 온 유럽을 헤매고 다녔던 것입니다.
넷째, 진품으로 확인된 모든 그리스도인이 다 명품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감정가가 수 억 원에 이르는 명품이 있는가 하면, 수 만원에 불과한 골동품이 있듯이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른 사람이라 해서 모두가 명품은 아닙니다. 교회 안에 진열된 그리스도인 골동품들 가운데 사탄이 만들어낸 모조품들이 적지 아니 많다고 하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으로 된 진품들인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진품이라고 해서 반드시 명품인 것은 아닙니다. 디모데후서 2장 20-21절에서 하나님의 "큰집에는 금그릇과 은그릇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무그릇과 질그릇도 있어서, 어떤 것은 귀하게 쓰이고 어떤 것은 천하게 쓰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내가 말한 이러한 것들로부터 자신을 깨끗하게 하면, 그는 주인이 온갖 좋은 일에 요긴하게 쓰는, 귀하고 성별된 그릇이 될 것입니다." 라고 했고, 또 고린도후서 4장 7절에서는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습니다." 라고 했듯이 성별된 그릇, 보배를 지닌 그릇이 명품이 되는 것입니다.
다섯째, 명품에 관한 감정은 최종적으로 하나님이 하십니다. 세상에서는 사람들에 의해서 명품여부가 결정될지 모르지만, 마지막 날에는 그 진실 여부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그대로 드러날 것입니다(고후 5:10; 계 20:12). 그 때에 하나님은 알곡과 쭉정이를(마 3:12) 구별하실 것이고, 감추인 것과 숨은 것을 찾아내실 것입니다(마 10:26). 그 때에는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히 4:13; 벧후 3:10). 그 때에 많은 사람들이 경악을 금치 못하게 될 것입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진품과 명품으로 감정평가를 받았었는데 알고 보니까 가짜였다든지, 진품인 것은 확실한데 형편없는 값어치에 불과했다든지, 어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명품 같지 않았는데 알고 보니까 명품중의 명품이었다든지 하면서 희비가 교차되기도 하고 경악을 금치 못하는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역대기하 15장 7절은 "그런즉 너희는 강하게 하라 손이 약하지 않게 하라. 너희 행위에는 상급이 있음이니라." 고 했고, 또 야고보서 2장 14절은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올바른 신앙인이 되어 높은 감정가를 받는 명품이 되도록 다같이 노력합시다.
- 이전글 잃어버린 역할[눅15:11-32] 02.09.15
- 다음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요20:15-18] 02.09.15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