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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대로 된다[마9:2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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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6,836 2002.09.14 17:10

본문

믿음에는 네 가지 단계가 있다. 제 1단계는 유년기의 아이들이 부모를 맹목적으로 의지하듯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단계이다. 제 2단계는 믿음의 내용을 알고 인정하는 지식의 단계이다. 제 3단계는 알고 믿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순종의 단계이다. 마지막으로 제 4단계는 믿음으로 자신 있게 살아가는 확신의 단계이다. 그래서 믿음은 단순히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고 그 분에 관한 설명을 듣고 인정하는 지식에서 끝나지 않고,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하며 확신에 찬 태도로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이 있다고는 하지만 신뢰와 지식의 단계에 머물려 있지, 순종과 확신의 단계에까지 올라서 있지는 못한 것 같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또 하나님을 바로 알기도 어렵지만, 하나님이 없는 것 같은 현실 때문에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또 확신 속에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일본의 기독교인 작가 엔도우 슈우사쿠는 {예수 지하철을 타다}란 책에서 말하기를, "신앙은 99%의 의심과 1%의 희망이다."라고 했다. 그만큼 그리스도인들이 확실한 믿음 속에서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99%의 의심을 박차고 일어나 1%의 희망을 달성하는 사람들이다.
믿음의 법칙을 잘 이해하고 아는 것은 지식의 믿음이다. 그런데 지식의 믿음만으로는 믿음이 가진 큰 능력을 우리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없다. 그러나 알고 있는 것을 한 가지라도 행동으로 옮기는 믿음, 작지만 삶 속에서 묻어나는 믿음이 있으면, 그 믿음이 비록 아주 작은 겨자씨와 같다할지라도 나중에 그것이 크게 자라 열매를 맺고 또 새가 날아들어 집을 짓고 새끼를 칠 정도가 된다는 것이 예수의 말씀이다.
올바른 믿음과 생각만큼 인간의 삶에 중요한 것은 없다. 어떤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사람의 운명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미국 방송의 다이어트 광고 가운데 "You are what you eat."이란 문구가 있다. 이 말은 "당신의 몸매는 당신이 먹는 음식에 따라 결정된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You are what you believe." 즉 "당신이란 존재는 당신이 무엇을 믿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창조주 하나님을 믿으면, 믿음의 법칙에 따라 창조적이고 긍정적이고 개방적이고 능동적인 사람이 될 것이고, 세상을 믿으면 자연의 법칙에 따라 파괴적이고 부정적이고 폐쇄적이고 수동적인 사람이 될 것이고, 주먹을 믿으면, 감옥을 안방으로 삼게 될 것이고, 무신론과 진화론을 믿으면,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원리에 따라 살게 될 것이다.
인간을 생각하는 동물이라고 말한다. 생각은 행동을 지배한다. 그래서 바르고 건전한 생각이 중요하다. 그런데 믿음과 생각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차이가 있다. 생각은 두뇌 활동에 국한되지만, 믿음은 두뇌뿐 아니라, 마음과 속 사람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같은 생각이라도 세상적인 생각이 있고, 믿음의 생각이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코펜하겐의 한 동물원에서는 원숭이와 고릴라 등이 전시된 건물에 사람을 짐승처럼 철창에 가두어 놓고 관람객을 받고 있다고 한다. 안전 망에 붙은 안내판에는 "사람, 호모사피엔스, 영장목(靈長目), 사람과(科), 분포 전세계"라고 적혀 있다고 한다. 그렇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인간도 동물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 동물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인간에게 이성이 있고, 인간은 생각한다는 것이다.
프랑스 출신의 수학자이며 철학자인 파스칼은 {팡세}에서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했다. 인간은 비록 갈대처럼 나약하지만 생각하기 때문에 위대한 것이다. 그래서 파스칼은 "생각하지 않는 인간을 상상할 수 없다. 만일에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돌이거나 짐승일 것이다."고 했다.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도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고 했다. 이와 같이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의 생각은 어둡고 불확실한 현실 때문에 부정적이고 폐쇄적일 수밖에 없지만, 신앙인들의 생각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인정과 순종과 확신 때문에 어둡고 불확실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이고 개방적일 수 있다.
일체유심조(一體唯心造)란 말이 있듯이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학창시절에 불렀던 노래 가운데 '팔도강산'이 있었다. 이 노래는 영화로도 만들어져 인기를 얻었는데, 노래 가사에 "잘살고 못사는 것 마음먹기 달렸더라."는 소절이 있어서 가난했던 시절 사람들에게 큰 용기를 주는 노래였다. 이 노래 가사대로 우리 국민은 마음먹고 노력한 결과 오늘의 경제 부국을 일구게 된 것이다.
크레멘트스톤이란 사람은 말하기를 "마음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인격이 바뀌고, 인격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고 하였다. 생각이나 믿음이 운명을 결정한다는 말이다.
1492년 독일에서 {뉴렌베르그 연대기}(Nurenberg Chronicle)라는 책이 발간되었다. 몇 년 전 이장림이 발간해서 큰 사회적 혼란을 야기했던 책, {다가오는 미래를 준비하라}에서와 같이 {뉴렌베르그 연대기}도 성경 구절을 예로 들고 역사적인 사례들을 열거하면서 일년 안에 지구에 종말이 온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 책은 독일뿐만 아니라, 유럽 각지에서 상당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이 책이 출판되고 나서 넉 달이 지난 어느 날 스페인 리스본에서는 항구를 떠나는 작은 범선이 있었다. 이 배는 지구에 종말이 온다는 당시의 절망적인 사회적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밝은 희망을 품고 대서양의 파도와 싸우며 서쪽으로 서쪽으로 미지의 세계를 향하여 전진해 나갔다. 파도를 가르는 뱃머리에는 한 사나이가 서서 수평선을 지켜보고 있었다. 곧 종말이 온다고 모두가 절망과 공포에 쌓여 있을 그 때에 또 바다 끝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절벽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던 그 때에 이 사람은 바다 끝 멀리에는 절벽이 아니라 반드시 새로운 세계가 있고 더 살기 좋은 땅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출항한지 한 달 후에 그는 정말 새 땅을 발견하였다. 1492년 10월 12일이었다. 이 사람이 바로 저 유명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이다. 그가 처음 본 새 땅은 쿠바 동북부에 있는 바하마 열도였다. 그는 이 섬 이름을 '산 살바도르'(San Salvador) 곧 '구세주'라고 지었다. 그 이유는 "예수께서 나에게 소망을 주시고, 비전을 주시고, 용기를 주셨기 때문에 내가 여기에 도달할 수 있었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당시 유럽은 뉴렌베르그의 연대기로 인하여 모든 사람들이 다 절망감에 빠져 있었던 때였다. 일년만 있으면 모든 세계의 역사가 끝난다는 극단적인 상황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콜럼버스는 그러한 극단적이고 세상적인 생각과는 달리 믿음의 생각을 가졌던 것이다. 그로 인하여 그는 일년만 있으면 망한다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 빠져 있던 유럽인들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 주었고 희망을 주었다. 콜럼버스는 99%의 의심을 박차고 일어나 1%의 희망을 달성했던 것이다.
사람의 생각이나 믿음이 인간의 행동을 지배한다는 것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 얼마 전 미국에서 UFO(미확인 비행 물체)가 인도하는 다른 세상으로 간다며 물의를 일으켰던 '천국의 문'(Heaven's Gate) 신도들의 집단 자살 소동일 것이다.
서기 2000년을 앞두고 지금 세계는 세기말적인 증상들을 보이고 있다. 97년 여름 미국의 유명 방송사들은 외계인의 침공과 지구의 종말 등을 다룬 공상 과학 소설이나 영화를, 한국은 귀신 관련 프로그램들을 주말 황금 시간대에 앞다투어 방영하였다. 한편 출판계는 '환생의 라이라,' '내부로부터의 방문자,' '샘 야제 이야기,' 'X-파일' 등 환생과 외계인과 UFO를 다룬 책들의 판매가 늘고 있다. 사람들이 미래에 대해서 매우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불안한 생각이나 잘못된 믿음이 사람들에게 집단 자살과 같은 엉뚱한 행동을 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무엇을 믿고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사람의 행동은 크게 달라진다.
하버드 대학의 한 교수는 '학생들과 쥐'를 상대로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다. 이 교수는 학생들을 세 개의 연구그룹으로 나눈 후에 첫째 그룹의 학생들에게 몇 마리의 쥐들을 주면서 말했다. "이제 여러분은 천재적인 쥐들을 다루게 될 행운을 얻었습니다. 그런 만큼 최고 수준의 연구 결과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잘해 보기 바랍니다." 둘째 그룹의 학생들에게도 몇 마리의 쥐들을 주면서 말했다. "여러분에게 나누어 준 쥐들은 보통의 쥐들입니다. 그런 만큼 보통 수준의 연구 결과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셋째 그룹의 학생들에게도 몇 마리의 쥐들을 주면서 말했다. "여러분에게 나누어 준 쥐들은 바보들이라 할만큼 수준 이하의 쥐들입니다. 그런 만큼 큰 기대를 걸고 있지 않습니다. 아무튼 잘해 보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서 6주 동안 실험 연구가 진행되었다. 실험 결과 천재로 소개된 쥐들은 정말 뛰어난 행동을 보였고, 보통의 쥐로 소개된 쥐들은 보통의 행동을 보였으며, 바보로 소개된 쥐들은 정말로 형편없는 행동을 보였다고 한다. 사실 교수가 학생들에게 나누어 준 쥐들은 모두 보통의 쥐들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쥐에 대한 학생들의 믿음과 생각이 보통의 쥐들을 천재 쥐 또는 바보 쥐로 만들었던 것이다. 자기 그룹의 쥐들이 천재라고 믿었던 학생들의 신뢰가 보통의 쥐들에게 전달되어서 천재성을 나타내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자기 그룹의 쥐들이 바보들이라고 믿었던 학생들의 불신이 보통의 쥐들에게 전달되어서 바보 쥐들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처럼 사람의 생각과 믿음의 결과는 크게 달라진다. 사람의 존재는 사람이 무엇을 믿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므로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무엇을 믿고,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신중히 결정해야 할 것이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할 수 있는 것이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고 생각하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이고, '나 혼자 뿐이다'고 생각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셔도 자기 혼자 뿐인 것이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과 함께 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버려두면 망가지는 자연의 법칙대로 살게되면, 좋음이 변하여 나쁨이 된다. 천재성이 변하여 바보가 된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법칙대로 살면, bad가 변하여 good이 된다. 바보가 변하여 천재가 된다. 이와 같이 사람의 존재는 사람이 무엇을 믿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그리스 신화에 피그말리온이란 키프러스 섬의 왕이 등장한다. 피그말리온은 조각에 뛰어난 사람이었는데 자신이 만든 상아 여인상에 반해서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에게 조각상을 인간으로 만들어 달라고 간청하였다. 여신이 그의 소원을 받아들여 조각상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자 그는 그 여인과 결혼하여 딸까지 낳았다는 이야기이다. 이 신화에 근거해서 나온 것이 '피그말리온 효과'란 것인데 부모나 교사가 학생에 대해 긍정적인 기대를 가지면 학생은 실제로 부모나 교사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되며, 인정과 기대를 높이 할 수록 더 훌륭하게 된다는 이론이다. 이 피그말리온 효과는 나이가 어릴 수록 또 부모나 교사의 기대와 본인의 소원이 일치될 때에 더욱 효과적이다.
마태복음 8-9장에는 예수께서 행하신 10개의 기적이 소개되고 있다. 여기에 소개된 기적들을 보면, 한 문둥병자가 낳기를 소원할 때에 예수께서도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고 하셨고, 하인의 중풍병을 고치기 위해서 예수께 찾아온 백부장에게 예수는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하셨다. 또 12년 동안 혈루증으로 고생한 여인에게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하였으며, 눈 먼 소경에게는 "너희 믿음대로 되라."고 하셨다. 여기서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자기 믿음대로 된다'는 것이고, 둘째는 '하나님은 믿음이 있는 자를 돕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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