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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딤전 3: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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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0,448 2002.08.31 01:54

본문

고린도전서 4장 1-2절에서 사도 바울은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에서 세 가지 교훈을 찾아 볼 수 있는 데, 그것들은 첫째 직무를 가진 자는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둘째 말씀을 가르치고 전도하는 자요, 셋째 맡은바 직무에 충성되어야 할 것을 말합니다. 일군이란 말은 헬라어로 섬긴다는 뜻을 가진 말에서 왔습니다. 이 말을 '디아코노스'라 하는 데, 집사 또는 목사란 의미로 번역이 되기도 하고, 일군, 종, 종업원, 섬기는 자란 뜻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직책을 가진 자는 집사이든지, 권사이든지, 장로이든지, 목사이든지, 모두가 다 그리스도의 일군입니다. 일군이란 남을 섬기는 자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에는 섬기는 자만 있지, 섬김을 받는 자가 있을 수 없는 곳입니다. 물론 성서는 일군들을 특히 가르치는 자들을 존경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기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가라사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 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마 20:25-28)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일군은 그러나 막일꾼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일군은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란 하나님의 말씀인 구원의 계획을 가르치고 전도하는 자란 뜻일 것입니다. 전도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해야될 지상명령입니다. 목자는 양을 치지만, 양이 젖을 내고, 새끼를 친다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그러므로, 일군 된 자는 하나님의 말씀 보는 것과 가르치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충성된 자가 되어야 할 것을 성서는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일군의 자격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디모데전서 3장 8-12절과 사도행전 6장 3절을 종합해 보면 일군의 자격을 어느 정도 짐작해 볼 수가 있습니다. 이들 성구가 말하는 일군은 성령이 충만한 사람, 지혜가 충만한 사람, 칭찬 듣는 사람, 단정한 사람, 일구이언하지 않는 사람, 술에 인 박이지 아니한 사람,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 하는 사람,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사람, 남을 헐뜯고 비방하지 아니 하는 사람, 모든 일에 절제하며 충성된 사람, 가정의 장으로서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사람입니다.

사랑도 하지 않는 한 남자와 결혼한 어느 여인이 있었습니다. 남편은 이 부인에게 자기가 정한 엄격한 집안규칙을 지키도록 하였습니다. 새벽 5시 기상해서 6시 정각에 아침상을 차리도록 했습니다. 남편은 매사에 이런 식으로 부인을 억압하였기 때문에 이 여인의 삶은 그다지 행복한 것이 못됐습니다. 그러다가 남편은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 이 여인은 재혼을 했습니다. 다행히 이번에는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혼인을 치렀습니다. 이 여인은 어느 날 집안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옛 남편이 자신에게 엄격하게 적용시켰던 집안규칙을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그것들은 매우 엄격한 규칙과 규율들 이였습니다. 그녀는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녀는 습관에 따라 전 남편이 그녀에게 시켰던 대로 새 남편을 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전혀 강제에 의한 것이 아니라, 새 남편에 대한 뜨거운 사랑 때문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말한 일군의 자격은 이것저것 금하기도 하고 명령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이러한 하나님의 요구가 결코 부담스럽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일군은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합니다(11-12절). 충성의 정도는 양의 크고 적음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예수는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작은 일에 충성된 자가 큰 일에도 충성한다고 하셨습니다.

다윗은 베들레헴에서 자기 아버지를 위해서 양을 칠 때, 충성된 목자였습니다. 그 후에 그는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고, 충성된 백성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요셉은 보디바의 집에 충성된 종이였습니다. 그 후에 그는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고, 충성된 백성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예수의 달란트 비유에서 우리는 주인이 그 종들에게 재능의 크고 작음이나 일의 경중을 묻지 아니 하고, 맡은 일에 대한 충성여부를 묻고 칭찬도 하고 책망도 한 것을 보게 됩니다.

주인이 외국에 갈 때에, 한 종에게 금 170Kg을 주고, 또 한 사람에게는 금 68Kg을, 또 한 사람에게는 금 34Kg을 그 재능대로 맡기고 떠났습니다. 그러자 170Kg의 금을 받은 종은 그 돈으로 열심히 일을 해서 배 장사를 했습니다. 금 68Kg을 받은 종도 나가서 그 돈을 밑천으로 열심히 일해서 순 이익으로 금 68Kg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34Kg의 금을 맡은 종은 게으르고 무익하여 그 돈으로 장사나 일하지 아니 하고, 땅속에 묻어 두고 말았습니다.

일년 후 주인이 고국으로 돌아와 세 종과 함께 회계 계산을 하였습니다. 금 170Kg이나 68Kg을 남긴 종에게 주인은 꼭 같은 말로서,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며,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라고 칭찬하였습니다. 그러나 34Kg의 금을 활용하지 아니 하고 땅속에 묻어 두어 아무 이익도 남기지 아니한 종에게 주인은 그의 불충성에 대한 책망과 저주로 말하기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며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만약 이 무익한 종이 다른 두 착한 종들과 마찬가지로 같은 노력으로 최선을 다했다면, 그도 역시 꼭 같은 칭찬을 주인에게 들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이 시간을 통해서 한번 반성해 봅시다. 성서는 말하기를,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고 하였습니다.

충성은 시종일관 변함이 없어야 하며, 평생을 통한 봉사가 되어야 합니다.스코틀랜드의 애딘바라고 부르는 어떤 교회 묘지에는 개의 무덤이 있다고 합니다. 그 개의 무덤 앞에는 충성된 개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개를 키우다가 죽었습니다. 사람들이 죽은 개 주인을 묘지에 장사하고 다 집으로 돌아갔지만, 그 개는 주인의 무덤을 좀처럼 떠날 줄을 몰랐습니다. 사람들은 그 개를 주인의 묘지 곁에서 끌어오려고 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는 수 없어 개밥을 무덤으로 날라다 주었습니다. 그러기를 14년, 이 개는 죽을 때까지 주인의 무덤을 떠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요즈음 외국에서는 자기가 키우던 개에게 상속을 물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Mrs. Jones라는 81세 된 여인도 키우던 세 마리의 개에게 약 6천만원 정도의 재산을 남겼습니다. 만일 개가 모두 죽는다면, 그 나머지 돈은 그녀가 다녔던 교회에 헌납되도록 유언을 남겼습니다. 때때로 우리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가 이와 같이 개와 인간과의 관계만 못한 때가 많습니다. 우리의 충성이 미물보다 못하지 않도록 분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1974년에 실린 신문기사에 의하면, Leo Fortier라는 사람은 자기가 섬기는 교회에 52년간 매 주일 종치기를 빼놓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바치는 충성은 시종일관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와 같이 하나님의 일군으로서, 주의 종의 동역자로서, Leo Fortier 종치기와 같이 영육간의 모든 것을 변함없이 나눌 수 있는 종들이 모두 됩시다.

충성은 환경을 초월한 것이어야 합니다. 어렵다고 뿌리치고, 시간 없다고 핑계하고, 부족하다고 빼고, 돈 없다고 사리고, 학벌 없다고 나서지 못해서도 안됩니다. 주를 위한 봉사는 어떠한 환경, 어떠한 역경에도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기독교 역사상 수많은 순교자들이 주를 위해 목숨을 초개같이 버렸습니다. 신앙의 절개,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절실하게 요구됩니다.

서머나의 폴리캅 감독은 박해를 피해 숨었다가 발각되어 처형당했습니다. 폴리캅이 한 시간 정도 기도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기도를 드렸을 때, 그의 기도를 들은 간수들이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지만, 신앙의 정절을 굳게 지킨 폴리캅은 결국 화형에 처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저주하고 배교 하면 살려주겠다는 지방장관의 질문에 폴리캅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86년간 나는 그리스도를 섬겼으나, 한번도 그는 나에게 해롭게 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어떻게 내가 나를 구원하신 나의 왕을 모독하겠소?"

셋째, 하나님의 일군은 일의 우선순위를 알아서 먼저 할 일을 먼저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주의 일 한다고, 가정을 등한시한다든지, 자신의 일을 소홀히 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서는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라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군들은 삼박자가 잘 맞아야 합니다. 첫째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적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헌신과 봉사를 요구하시기에 앞서서 우리의 마음을 요구하십니다. 우리의 마음이 떠난 헌신봉사는 결국 문제를 동반합니다. 둘째 자신의 열매를 모든 사람이 함께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일 때문에 가정 일에 소홀해서도 안됩니다. 가정일 때문에 교회 일을 소홀히 해서도 안됩니다. 교회에만 매달리는 사람은 자신은 구원을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자녀들과 소원해지므로 서 결국 타락한 자녀들을 지옥으로 보내는 꼴이 되고 마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자기 일에 바빠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사람은 교회 일을 등한시하는 것은 물론 하나님과의 사이도 멀어지고 결국 교회를 등지게 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대게 성공을 위해서 일에 집착하는 사람들일 수록 성공한 후에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내나 남편을 돌보지 않음으로서 이혼이나 간통사고가 생기고 자녀들은 타락하며 심지어는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아 얻게 되는 질병이나 과로로 쓰러지는 경우를 너무도 많이 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열매를 먹지 못할 뿐 아니라, 남과 함께 나누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내가 거둘 열매가 모두 함께 나눌 수 있는 결실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일의 우선순위를 가릴 줄 알아야 합니다. 가능하다면 하나님의 일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사는 일군들이 됩시다. 봉사나 헌신에 앞서서 내 마음이 하나님께 드려졌는지를 살펴봅시다. 가족을 포함하여 모든 믿음의 식구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일인지를 생각해 봅시다. 이러한 일군들에게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의 큰 담력을 주신다고(13절) 약속하셨습니다. 죽도록 충성합시다.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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