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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나쁜 것[민 14: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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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6,770 2002.08.31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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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나쁜 것(민 14:4-10)

오스트리아 빈대학 의과대학이 50개국 국민들의 평균 IQ를 비교한 결과, 국민들의 IQ가 가장 높은 나라는 홍콩(107)이었으며, 그 다음이 한국(106)이었다고 영국의 선데이타임스가 2003년 12월 21일 보도했습니다. 이런 높은 지능에도 불구하고, 한국 기업들은 90년대 이후 10여 년 동안 생산성이 정체되면서 미국의 50퍼센트, 영국, 프랑스, 싱가포르, 홍콩의 60퍼센트, 일본의 66퍼센트 수준에서 계속 머무르고 있어서 선진국 진입이 불투명하다는 한국은행의 보고가 있었습니다. 선진기술을 모방하는 데 급급하고, 불투명한 회계와 기업지배구조 및 생산성향상보다 규모 확대에 치중하는 기업전략 등을 원인으로 꼽았습니다. ‘기술입국’만이 한국이 이 험난한 세상을 헤쳐 나갈 유일한 길이라고도 하였습니다.
한편 우리나라 가계부채가 가구당 3천138만원에 달하고 있고,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상환능력도 크게 떨어진다고 합니다. 여기에다 올해 4년제 대학 졸업생중 군 입대나 대학원 진학 등을 제외한 순수 취업률은 53.8퍼센트인데 비해서 제조업체들에서는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해서 문을 닫는 사례가 속출하는 기현상을 겪고 있습니다. 취업을 못한 젊은이들이 늘어나면서 결혼연령이 크게 늦춰지고 있고, 따라서 결혼 적령기 젊은이들이 새해에 가장 듣고 싶은 말이 "결혼 축하해"라고 합니다. 한편 대전 롯데백화점이 직원 742명을 대상으로 새해 소망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2퍼센트가 로또복권에 당첨되기를 바라는 등 응답자의 67.1퍼센트가 일확천금을 바라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나이가 젊을수록 대박의 꿈을 원했습니다.
이런 일련의 현상들은 이건희 회장이 “현 상황은... 1997년 외환위기에 버금가는 위기상황”이라고 한 말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 역술인들조차 내년 갑신년(甲申年)의 운세를 ‘격변의 해, 혼돈의 해’로 보고 있습니다. 국가상황이 비관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아마 여러분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전쟁이나 죽음, 에이즈나 암과 같은 것들을 말하고 싶을지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그와 같은 것들은 우리 인간들에게 아주 나쁜 것들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낳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것, 원수와 함께 사는 것, 구해도 얻지 못하는 것, 몸과 마음으로 짓는 악한 것들을 우리 인간에게 고통을 가져다주는 아주 나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이보다 더 나쁜 것 하나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수년전에 KBS스페셜을 통해서 서진규라는 한 중년 여성의 삶의 이야기를 듣고 볼 수 있었고, 그분의 자서전도 읽었습니다. 같은 시기에 아브라함과 요셉과 모세에 관한 영화들을 각각 TV를 통해서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이 네 분의 이야기를 통해서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부여된 삶은 그야말로 견디기 힘든 역경과 고난의 연속이었다는 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한결같이 그와 같은 역경과 시련을 딛고 크게 성공을 거뒀다는 점이었습니다.
서진규씨는 1948년 경상남도의 작은 어촌 월내라는 곳에서 가난한 엿장수의 “씰 잘데 없는 가시나”로 태어나, 초등학교 1~2학년 때엔 이름도 못쓰고, 공부는 꼴찌에서 뱅뱅 도는 “참말로 한심한 멍텅구리”였습니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철도청에 말단으로 취직이 되면서 충북 제천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그렇지만 집안 살림이 너무 어려워 어머니가 술장사로 나서야 했고, 언니는 속아서 불구에게 시집을 갔으며, 막내 동생은 저능아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린 진규는 대부분의 집안 살림을 떠맡아야 했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밥 짓는 일을 했습니다. 당시에는 수도도 없었고, 세탁기도 없었기 때문에 어린 나이로써 이와 같은 일이 여간 고되고 힘든 노동이 아니었습니다. 추운 겨울날에도 일요일마다 냇가로 나가 빨래를 해야 했기 때문에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5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손금을 봐주면서 진규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장담하지만, 진규 너는 언젠가 크게 될 사람이야.” 이 말을 듣고 난 다음부터 진규의 마음속에 희망의 등불이 밝혀지기 시작했고, 그 숱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진규는 우수한 성적으로 초등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서진규씨는 중학교를 마칠 때까지 제천에서 보냈던 시절을 “절망적이었던 사년간”이라고 했고, 그 절망이 오히려 희망의 토대가 되기도 했다고 회고했습니다.
고등학교만은 기어코 서울로 가겠다고 우겨서 풍문여고에 들어갔습니다. 집에서는 쌀만 갖다 먹기로 하고, 학교는 작은 아버지 집에서 다녔습니다. 생활자체가 워낙 어려웠던 진규는 동급생들에게 영어시사 잡지도 팔고, 가정교사를 하면서 고등학교를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였습니다. 하지만 집안은 여전히 가난했고, 장학금을 받을 만큼 뛰어난 성적도 아니어서 대학엘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인문계 졸업생이라 기술도 없어서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마냥 놀고 있다가, 사촌언니의 도움으로 1967년 열아홉 살의 나이로 가발공장에 취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골프장 구내식당 종업원으로 옮겼고, 여행사의 경리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이 때부터 학원에 다니며 영어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 때 마침 미국에서 식모를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지원하여 미국이민수속을 밟게 되었습니다.
수속한지 무려 이년이나 걸려서 여권과 비자를 받고, 1971년 3월 9일 미국에 도착해보니, 식모를 구한다던 집에서는 진규를 기다리는 기간이 너무 길어서 이미 다른 사람을 쓰고 있었고, 덕분에 진규는 자유롭게 다른 일을 찾아 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처음 얻은 일이 접시닦이였고, 그 다음은 레스토랑 종업원이었습니다. 한국식당으로 옮겨 일하면서부터는 대학에 들어가 주간에 공부하고, 야간에 식당에 나가 일하면서 집에다 돈도 부칠 수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대학공부를 그녀는 무려 다섯 학교를 돌면서 14년만인 1987년에 마쳤습니다.
만 스물다섯 살에 뉴욕에서 로스앤젤레스로 옮겨 생활하던 중에 키 180센티미터에 몸무게 100킬로그램의 거구에다 합기도가 7단이나 되는 멋진 남자를 만나 스물여섯에 결혼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결혼생활은 한마디로 비참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남편은 생활능력이 없는데다가 영어도 못했고, 딸을 키우며 대학공부에다 직장까지 다니는 부인의 집안일을 전혀 돕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철저하게 억압하고 때리면서 하녀 부리듯이 했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서진규는 28살에 남편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미국군대에 지원을 합니다. 1972년 9월에 회계학과에 입학해서 4년 동안 다녔지만, 아직 대학 2학년 과정도 못 마친 상태였기 때문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대시험에 합격해놓고도 장교가 되지 못하고 일등병을 달고 입대하였습니다. 이후로 서진규는 혼자서 아이를 키우며 낳고 하면서 20여 년간 여군의 길을 걸었습니다.
보병훈련 때 서진규는 최우수 훈련병으로 졸업하는 영예를 안았고, 보급주특기 훈련 때는 5주 동안에 15개 과목을 통과하도록 되어 있는 것을 불과 11일 만에 전 과목을 만점으로 통과하는 기록을 세우며 최고 우등생으로 졸업하였습니다. 배치된 부대에서는 표창장을 받고 병장으로 특진되기도 했습니다. 이후 서진규는 장교가 되기로 결심하고 간부후보생에 지원하여 14주 동안 고된 훈련을 받고 만 서른세 살에 미 육군 장교가 되었습니다. 그간에 아들도 낳았습니다. 이후 소령으로 진급하였고, 마흔 둘의 나이에 하버드대학교 석사과정에 입학하여 졸업하였습니다. 이어서 박사과정에 합격하였습니다. 이후 서진규씨는 군인으로 남는다면 중령 진급이 확실시되는 시점에서 중령진급보다는 하버드대학교 박사과정을 마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되어서 소령으로 제대하였고, 현재는 박사학위를 받고 활동 중입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야 공부에 눈이 떠져서 졸업식 때 대통령상을 수상한바있는 딸 성아도 하버드 대학교에 편입하여 어머니 서진규씨처럼 하버드대학교를 마친 미여군 장교가 되었습니다.
이 서진규씨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나쁜 것은 기회와 희망이 없이 산다는 것입니다.” 서진규 씨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입니다. 아브라함처럼, 야곱처럼, 요셉처럼, 모세처럼, 여호수아처럼 서진규씨는 믿음으로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녀는 “꿈은,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꿈꾸는 사람을 가혹하게 다룬다. 꿈을 꾼다는 것은, 죽을 각오를 한다는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의 이 말이 옳다는 것을 아브라함과 야곱과 요셉과 모세와 여호수아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나쁜 것은 전쟁이나 죽음이나 에이즈나 암이 아니라, 꿈 없이 사는 것입니다. 꿈이 없다는 것은 믿음이 없는 것이요, 믿음이 없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손에 쥔 현실이 아니라, 단지 마음에 새긴 꿈과 희망에 불과했습니다. 메마른 광야에 불과한 요단강 동편에서 내려다 본 강 서편지역, 특히 여리고 지역은 실로 오아시스라 할 만큼 사람살기에 적합한 곳이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팔레스타인의 대부분지역은 척박하고, 삭막하고, 메마른 곳이었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차지한 대부분의 땅 또한 이러한 중부산악지역이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다름 아닌 그들의 믿음이자 꿈이었던 것입니다. 먼 옛날 조상들이 꾸었던 이 꿈이 수천 년이 흐른 지금에야 이뤄져가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꿈의 사나이였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큰 민족을 이루어 국가를 세우겠다는 누가 들어도 실현될 것 같지 않은 원대한 꿈을 품고 그의 앞에 열린 미지의 세계를 향해서 단지 개척정신과 야훼신앙만을 가지고 떠돌이생활을 시작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떠돌이생활은 결과적으로 위대한 결단이요 믿음의 행동이요 하나님의 뜻을 겸허하게 받아드린 순종의 행위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꿈을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께서”(롬 4:17) 보여주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바닷가의 은빛 모래와 밤하늘의 찬란한 별들을 보며,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겠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다”(창 12:2-3) 라고, 마음속에 속삭이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야곱도 꿈의 사나이였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승부사의 근성을 가진 집념의 사나이요, 운명의 개척자요, 또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운명에 맡겨 살지 아니하고 운명을 바꿔 자신의 꿈을 실현하여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한 위대한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의 이런 끈질긴 승부사 기질이 아니고는 황량하고 메마른 팔레스타인에서 살아갈 수 없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야곱의 후손들은 결코 척박한 환경을 탓하거나 운명을 탓하거나 주변국들에게 지배받는 것을 순순히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했더라면, 오늘날 이스라엘은 이 지구상에서 영원히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출애굽 후 가나안 땅을 정복한 후에도 오랫동안 주변국들로부터 침략을 받았으며, 주전 605년 이후 740년간을 주권을 빼앗긴 채 바벨론 제국, 페르시아 제국, 헬라제국, 로마제국의 지배를 차례로 받았으며, 주후 70년부터는 이스라엘이란 나라가 지구상에서 아예 사라져 버리는 비극을 겪어야했고, 나라 없는 설음 속에서 무려 1,200백만 명의 유대인들이 학살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지 않고 1948년에 나라를 재건하는 저력을 보였으며, 아랍연맹국들과 전쟁을 치르면서도 갈릴리 호수의 물을 끌어들이고, 지하수를 퍼 올려 사막을 개간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만들어 놓고 말았습니다.
꿈이 있는 사람에게는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용기가 생깁니다. 꿈이 있는 사람에게는 소원을 이루고자하는 집념이 생깁니다. 만일에 꿈이 있고 신앙이 있다면 그 꿈은 이루어질 확률이 훨씬 높아집니다. 야곱의 147년간의 험악한 고난은 이스라엘 민족의 고난이었고, 야곱의 성공은 이스라엘 민족의 성공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유대인들의 민족성은 야곱을 닮아 있습니다.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환도뼈를 꺾이면서까지 밤새도록 하나님의 사람을 붙잡고 놓아주지 아니하면서,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않겠습니다”(창 32:26)고 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이스라엘’이란 새로운 이름을 얻었고, 야곱은 그곳을 ‘브니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뜻은 ‘하나님의 얼굴’입니다. 인간이 감히 하나님의 얼굴을 보았다는 뜻이요,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도 살아남았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대가로 다리를 절게 되었습니다. 다리를 절게 되었다는 것은 고난과 역경이 그만큼 컸다는 것을 말하고, 하나님의 얼굴을 보았다는 것은 그의 꿈이 성취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서진규씨가 말한 것처럼, 꿈은 성취되기 전까지 꿈꾸는 사람을 가혹하게 다룹니다. 그래서 꿈을 꾼다는 것은 죽을 각오를 한다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요셉이 꿈꾸는 자였다는 것은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누구나 아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꿈꾸는 요셉에게 얼마나 많은 시련이 닥쳐왔습니까? 꿈 때문에 형들로부터 마른 우물에 갇히기도 하고, 대상에게 팔려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믿음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은 꿈을 버리지 않았다는 뜻도 됩니다. 그리고 결국 요셉은 꿈 때문에 성공하게 됩니다.
모세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존경하는 사람이 모세입니다. 모세는 먹을 것도 없고, 마실 물도 없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40년간이나 이끌었습니다. 생전에 본적도 없고 가보지도 않았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 시련이 얼마나 가혹했던가는 구약성경에 자세하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수많은 반대에 부딪혔고, 생명의 위협도 받았습니다. 매우 지루하고 고통스런 여행이었습니다. 도저히 꿈이 없이는 해낼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꿈의 확실성을 붙잡기 위해서 문제가 발생될 때마다 언제나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을 보십시오. 꿈이 있는 사람과 꿈이 없는 사람의 차이가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꿈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있는 사람이란 점이 들어 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꿈이 없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도저히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고 볼 수 없지 않습니까? 그들은 꿈에도 그리던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나서 자신들을 메뚜기에 비교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꿈과 믿음으로 무장했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들을 “우리의 밥”이라고 했습니다. 꿈과 믿음의 크기에 따라서 정복해야할 목표가 너무 커 보여서 마치 자신이 메뚜기처럼 작아 보이는 경우가 있고, 그 반대로 정복해야할 목표가 자신의 밥으로 보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를 탈출해서 광야에서 40년을 배회하며 고생하다가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광야에서 죽고 광야에 묻히게 된 것은 순전히 그들에게 꿈이 없었고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서진규씨의 말대로 세상에서 가장 나쁜 것은 전쟁이나 죽음도 아니고, 에이즈나 암도 아니고, 꿈 없이 사는 것, 희망 없이 사는 것이 가장 나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003년을 보내고 2004년 새해를 맞이하면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에 근거한 꿈을 꾸도록 합시다. 꿈이 있는 한 여러분에게 넘지 못할 장벽은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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