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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기 교회질서08: 믿음의 선한 싸움(8)(딤전 2: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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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1,159 2019.09.18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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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기 교회질서08: 믿음의 선한 싸움(8)(딤전 2:8-15)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라”

hermonax_amphora.jpg바울은 1장 18절에서 디모데에게 “선한 싸움 싸우라”고 말하면서 19절에서 그 무기로써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고 했고, 선한 싸움의 다른 무기로써 2장 1-2절에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했다. 믿음과 착한 양심과 모든 사람을 위한 기도로 무장하라고 권면한 바울은 2장 8-15절에서도 선한 싸움의 무기들에 대한 언급을 이어갔다.

먼저 바울은 8절에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고 했다. 또 9절에서는 “여자들도 단정하게 옷을 입으며 소박함과 정절로써 자기를 단장하라.”고 했다.

성서시대 유대인 여성들은 아버지 또는 남편의 소유물로서 그들의 지배아래 있었다. 여성은 태어날 때부터 남성과 차별되었다. 유대인 여성이 아들을 출산하면 40일만 부정하지만, 딸을 출산하면 80일간이나 부정하였다. 딸인 경우 안식일 날에 이름을 공표하지만, 아들인 경우 제8일째 날에 거행하는 할례의식 때 공표한다. 할례의식은 남자아이의 외피를 베어내는 절차로써 유대인들은 이 의식을 통해서 자기들이 하나님의 언약백성 곧 선민공동체임을 거듭 확인한다. 그러나 여자 아이는 할례를 받지 않는다. 당연히 언약백성의 일원이 아닌 게 된다. 남자아이는 13세가 되면 계명의 아들이 된다. 율법과 규례를 지켜야할 의무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여자아이에게는 그 같은 요구를 하지 않는다. 다만 1922년부터는 남녀동등차원에서 재건주의(급진주의)자들과 개혁주의(진보주의)자들이 12세가 된 여성들에게도 성인식을 거행하고 있다. 여자아이들을 계명의 딸이 되게 하는 것이다. 또 1980년대부터는 보수주의자들, 개혁주의자들, 재건주의자들이 여성을 랍비로 안수하고 있다.











 

“여자들도 단정하게 옷을 입으며 소박함과 정절로써”

caryatid_Erechtheion.jpg유대인 여성들은 회당장 곧 장로나 공회원이 될 수 없었다. 정통주의에서는 지금도 모든 여성과 13세 이하 사내아이들은 본당 곧 성소에 들어가 남성들과 함께 기도할 수 없고, 별도의 공간에서 기도해야한다. 이런 차별 속에서도 유대인들은 매월 첫날을 여성들의 날(Rosh Chodesh)로 정하고 있다. 이날 유대인 여성들에게는 일을 멈추고 하루 동안 쉴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다. 또 각 가정에서 안식일이 시작되기 직전 촛불을 밝히는 일을 여성들에게 담당시키고 있다. 예루살렘 멸망이후 언제부턴가는 부계혈통보다 모계혈통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성서시대에는 아버지가 유대인이어야 유대인이었지만, 지금은 어머니가 유대인이어야 유대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성서시대 여성들은 유대인이든, 로마인이든, 헬라인이든 법적으로 사람이 아니었다. 노예가 주인에게 예속되듯이, 자녀들은 아버지에게, 부인은 남편에게 예속되었다. 여성에게 임신과 집안 일 말고는 법적 지위란 것이 없었다. 여자는 투표권도 없었고, 교육도 받지 못했다. 이혼이 흔했지만 여성에게 불리한 것이었다. 폭력은 자연스런 일상이었다. 가장은 부인과 어린 딸을 매춘부로 내몰기까지 했다. 폭력적인 남편에게 아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지참금을 되돌려 받고 이혼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이혼녀가 생계를 꾸릴 수 있는 직업은 거의 없었다. 가난은 여성들을 합법을 이유로 매춘부의 길로 내몰았다. 당대의 그리스 로마인들은 윤리나 도덕개념이 약해 성적으로 문란했고, 우상숭배나 난잡한 바쿠스축제 등에도 참석하였다. 이런 정황에서도 많은 수의 여신들이 있었고, 존경과 흠숭을 받는 여신들도 있었으며, 비록 대다수가 성창이었지만, 여성사제들이 아주 많았다. 여성의 인권이나 참정권이 없던 시절이라고 해서 여성들이 늘 당하고만 산 것은 아니었다. 여성들에게는 남성들을 조종할만한 탁월한 재능이 있기 때문이다.

바울이 디모데전서에서 선한 싸움의 한 가지로 여성들에게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11-12절)고 한 것은 앞서 언급한 당대의 문란한 사회적 상황 특히 악명 높았던 바쿠스축제와 그 축제를 주도한 여성 사제들의 광기 때문이었을 수 있다. 바울시대에 바쿠스(디오니소스) 여성 사제들은 솔방울과 리본으로 장식한 디오니소스 지팡이(thyrsos)를 손에 들고 술에 취해 머리를 앞뒤로 심하게 흔들며 광적이고 음란한 춤을 추었다. 바울이 여성들에게 “단정하게 옷을 입으며 소박함과 정절로써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한다.”(9-10절)고 권면한 이유를 이런 배경에서 찾을 수 있다.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Parthenon_relief.jpg1세기 교회질서에서 여성들이 누릴 수 없었던 것은 리더십이었다. 당대 교회들에는 유대교 회당의 3명의 장로들(회당장과 공회원들)에 해당되는 3명의 장로들(목양자와 감독자들)이 있었다. 이 리더십에 여성이 있었다는 증거는 없다. 이 상황은 20세기에 와서야 비로소 바뀌기 시작했다.

교회의 장로들은 4세기경부터 사제(priest)로 바꿔 계급화 되었으며, 칼뱅과 녹스에 의해서 평신도 장로대의제가 도입되면서 그리스도교에서는 사제가 목사(pastor)로 바뀌게 되었다. 그러나 1세기 교회질서로 볼 때, 장로들이 반드시 설교자였던 것은 아니다. 미국의 많은 교회들은 교회의 리더십인 장로들과 목회자를 별개로 본다. 목회자가 장로를 겸할 때의 직책이 pastor이고, 그렇지 않을 때에는 설교자와 전도자이다. 이들 교회들에서는 목양과 감독권이 장로들에게 있고, 목회자조차도 장로들의 감독을 받아야한다.

그렇다고 1세기 교회질서에 여성 지도자들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구약시대에 여성 왕과 사사와 선지자들이 있었듯이, 신약시대에서도 빌립의 네 딸들은 선지자들이었고, 브리스길라, 루디아, 뵈뵈, 유오디아, 순두게, <바울행전>에 나오는 테클라(Thecla) 등은 여성 지도자들이었다. 이런 정황으로 볼 때, 11-12절,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한다.”는 앞서 말한 장로 리더십을 금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여성들이 예언 곧 권면조차 못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14장 26-40절에서 여성들에게 교회에서 잠잠하고 복종하라고 명령한 것도 공적 예배질서를 말한 것이다. 바울은 26절에서 공적 예배순서의 목적을 세움(살림)에 두라고 했고, 31절에서 예언과 방언의 목적을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려는 데”에 두되, 40절에서 순차에 따라서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고 권했다. 고린도교회에는 “자기를 선지자나 혹은 신령한 자로 생각하는”(37절) 자들이 남녀무론하고 많았고, 성도들 앞에 나서고자 하는 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디모데전서 9-15절의 말씀도 같은 맥락에서 읽힐 수 있다. 바울은 여성들에게 단정함과 소박함과 정절과 검소함과 선행과 순종함과 겸손한 배움을 선한 싸움의 무기로 삼으라고 했고, 이브가 뱀에게 속아 죄에 빠졌기 때문에 여성들이 해산의 고통을 감내하지만, 해산으로 새 생명이 탄생되듯이, “여자들이 만일 정숙함으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한다면” 설사 그것이 해산의 고통과 같을지라도, 그것은 생명을 살리는 값진 일이요 구원을 얻는 일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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