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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기 교회질서09: 믿음의 선한 싸움(9)(딤전 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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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1,501 2019.09.20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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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기 교회질서09: 믿음의 선한 싸움(9)(딤전 3:1-7)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라”

bishops_1c_churches.jpg3장 1절, “미쁘다 이 말이여, 곧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함은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라 함이로다.”는 “만일 어떤 사람이 감독직분을 맡고 싶어 한다면, 그 사람은 정말 훌륭한 직무를 희망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이 과연 옳다”는 뜻이다. 그만큼 감독직분은 훌륭한 일이란 것이다. 여기서 감독은 장로의 다른 말로써 개 교회마다 3명씩 뽑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대교 회당의 3명의 장로들이 회당장이자 공회원과 율법판사였던 것처럼, 장로들은 개교회의 당회장이자 목양자와 감독자였다(행 20:28).

바울은 디모데전서 첫머리부터 ‘믿음의 선한 싸움’(the good fight of the faith)과 그 무기들에 대해서 언급하였는데, 3장 1-13절에서는 이 선한 싸움의 지휘관급인 감독과 집사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이들은 개 교회의 장로들과 봉사자들이었다.

바울은 여성들에게 선한 싸움의 무기로써 선행을 하라고 했다. 이 선행에서 리더십을 뺀 나머지 단정함, 소박함, 정절, 검소함, 순종함 및 겸손함과 배움을 강조하였고,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한다.”(2:11-12)고 했다. 바울의 이 말씀은 교회의 리더십은 남성들에게 맡기고, 여성들은 그들에게 순종함으로 봉사하는 일꾼으로 섬기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이 말씀은 여성들이 교회에서 입 닥치고 벙어리처럼 지내라는 것이 아니다. 여성들은 예나 지금이나 교회조직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구성원들이며, 뛰어난 봉사자들이요 일꾼들이다. 다만 목양과 감독과 권면(설교)과 같은 리더십은 남성에게 맡기라. 남성들에게 장로직분(감독직)을 맡기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직무는 사모할만한 훌륭한 것이긴 하지만, 어그러진 말 곧 다른 예수와 다른 복음으로 교회질서를 어지럽히는 사나운 이리들로부터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고 양떼를 지키고 보호할 선한 싸움을 싸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 직무를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써,”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 함으로써, 자기와 동행들의 쓸 것을 자기 손으로 해결함으로써,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함으로써, 범사에 모범을 보임으로써 수행하였다(행 20:28-35).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ignatius_antioch_cesare.jpg1세기 교회질서에서 장로(감독)들은, 예루살렘교회의 사례 곧 성도들이 일곱 사람들을 뽑고 사도들이 안수한 것에서 보듯이, 임명직이 아니라 회중에 의해서 뽑힌 후 안수를 받고 목양권과 감독권을 가졌던 붙박이 목회자들이었다(행 6:3, 20:28, 딤전 5:17, 약 5:14). 선교지역에 세워진 개척교회들에서 그들을 장로(감독)로 장립한 이들은 바울, 바나바, 디도, 디모데와 같은 떠돌이 전도자들이었다(행 14:23, 딛 1:5). 떠돌이 전도자들은 교회를 개척하고 장로들을 세웠으나, 대체로 한 곳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따라서 지역교회들은 장로들의 리더십아래 놓여 있었다. 그러나 당대에는 교회들이 새로 조직되던 때였으므로 그 새로 조직되는 교회들에는 당연히 장로들이나 장로회가 없었다. 그러나 루스드라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의 제1차 선교 때 세워진 교회였으므로, 장로회가 조직되어 있었다. 그래서 디모데는 바울의 제2차 선교여행에 동행하기 위해서 장로회로부터 안수를 받았다(딤전 4:14. 행 13:3).

디모데전서 3장 1-13절은 교회가 감독 곧 장로를 뽑을 때 유의해야할 점들을 교훈한 말씀이다. 예루살렘교회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들”과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들”(행 6:3,5)을 뽑았다. 믿음과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고 칭찬 받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는가? 그들이 바로 바울이 디모데전서 3장 1-13절에서 언급하고 있는 인물들이다. 특히 감독(장로)은 2-7절,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딛 1:6), 절제하며, 신중하며, 단정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며,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공손함으로 복종하게 하는 자라야 할지며....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라고 하였다. 또 사도행전 20장 28-35절에서는 어그러진 말 곧 다른 예수와 다른 복음으로 교회질서를 어지럽히는 사나운 이리들로부터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고 양떼를 지키고 보호할 선한 싸움을 싸울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 바울처럼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써,”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 함으로써, 자기와 동행들의 쓸 것을 자기 손으로 해결함으로써,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함으로써, 범사에 모범을 보이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하였다.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clement_roma_bishop.jpg지역교회가 각자의 장로(감독)들의 사목을 전적으로 받기 시작한 것은 사도들과 선지자들과 같은 떠돌이 복음전도자 시대가 끝난 1세기말부터였다. 그러다가 그리스도교가 392년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고, 성체신학(Mass)의 발전으로 장로들을 사제(제사장)로 호칭하게 되었고, 사제(장로) 밑에 부제(집사), 사제위에 주교(감독), 주교위에 대주교, 그 위에 가톨릭에서는 추기경(Cardinal)과 교황(Pope)의 직제가 생겼으며, 정교회에서는 총대주교(總大主敎, Patriarchs)가 생겼다. 따라서 목사라는 호칭은 가톨릭교회, 정교회, 성공회, 미국 감리교 등에는 없는 직책이다. 당연히 초기 그리스도교 역사에도 없었던 직책이다. 이들 전통교회들에서는 개인에게 신앙의 자유가 없었고, 특히 가톨릭교회에서는 1400여 년간 라틴어 성경과 라틴어 미사만 허용되었으므로 라틴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신자들 때문에 설교자는 물론 대표기도자도 없었다.

16세기에 이르러 가톨릭교회 사제들이었던 마르틴 루터, 울리히 츠빙글리, 장 칼뱅, 마르틴 부쳐가 사제(priest)라는 호칭을 버리고 대신에 목사(pastor)라는 호칭을 사용했고, 장 칼뱅과 존 녹스가 평신도 장로 대의제도를 개혁주의 교회들에 도입함으로써 생긴 것이 1년 임기의 선출직 장로들이었다. 이때부터 개신교에서는 목사와 장로가 나뉘게 되었고, 목사가 장로인가 혹은 목사는 장로가 아닌가라는 논쟁이 불거졌다. 종교개혁으로 생긴 그리스도교 역시 개인에게 신앙의 자유를 허락지 아니한 시의회교회 또는 국가교회체제였다.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고, 개인에게 신앙의 자유를 허락한 나라는 미국이며, 1791년 12월 15일 채택된 미국 수정 헌법 제1조에서였다.

바울은 디모데전서 5장 17절에서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다”고 하였다. 장로는 교회를 관리감독하고 치리하는 자로서(행 20:28, 롬 12:7-8, 고전 12:28, 딤전 5:17) 집사보다는 높으나 사도, 선지자, 교사보다는 낮았다(고전 12:28, 딤전 5:17). 사도, 선지자, 교사의 업무는 가르치는 일과 권면하는 일이었다(갈 6:6, 딤전 4:13).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 28절에서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 다음이 “다스리는 것”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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