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생명교회 주일설교

KCCS Digital Archive의 자료와 게시판을 분류별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설교자료 빛과생명교회 주일설교 KCCS Digital Archive

1세기 교회질서10: 믿음의 선한 싸움(10)(딤전 3:8-13)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조동호
댓글 0 조회 11,404 2019.09.22 04:37

본문

1세기 교회질서10: 믿음의 선한 싸움(10)(딤전 3:8-13)

“여자들도 이와 같이 정숙하고 모함하지 아니하며”

phoebe_Cenchreae.jpg11절의 “여자들”은 문맥상 집사들의 아내라는 주장도 있고(NIV, KJV),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한다.”는 구절로 봐서 여자 집사라는 주장도 있다. 또 집사들의 아내와 여자 집사 모두를 의미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헬라어 ‘디아코노스’(diakonos)는 종종 ‘집사’로 번역되기도 한다. 그래서 겐그레아 교회의 뵈뵈가 집사로 오해되고 있다. 그러나 뵈뵈가 겐그레아 교회의 집사였는지는 확실치 않다. 바울은 로마서 16장 1절에서 뵈뵈를 “겐그레아 교회의 디아코노스”(a diakonos of the church in Cenchrea)라고 썼는데, 디아코노스는 봉사자, 일꾼, 집사, 장관 등 다양한 의미로 쓰였다. 심지어 사도들과 예수님도 디아코노스였다. 이 때문에 영어성경 KJV과 NIV는 로마서 16장 1절의 디아코노스를 ‘종’(servant)으로 번역하였다. 단 NIV는 각주에서 “뵈뵈는 바울의 동료 신자로서 바울의 편지를 로마로 가져갔을 것이다. ‘종’이란 어떤 방법으로든 섬기거나(serve) 봉사하는 자(minister)를 말한다. 로마서 16:1-2에서처럼 디아코노스가 교회와 연관될 때는 그것이 특정한 직책 곧 여자 집사를 말하는 것일 수 있다.”는 해설을 달았다. 반대로 NRSV는 ‘집사’(deacon)로 번역하고, 각주에 ‘봉사자’(minister)라는 해설을 달았다.  

뵈뵈가 디아코노스였다고 해서 여자 집사가 아닌 것은 사도로 번역된 ‘아포스톨로스’(apostolos)가 항상 사도를 뜻한 것이 아닌 것과 같다. 아포스톨로스는 ‘보냄을 받은 자’란 뜻으로써 바나바(행 14:14), 아볼로(고전 4:9), 실루아노와 디모데(살전 2:7)에게도 쓰였고, “사도들”이라고 칭하였으나 직제로써의 ‘사도’는 12제자와 바울에게 국한된다. 같은 맥락에서 디모데전서 3장에 쓰인 ‘감독’(bishop)도 마찬가지이다. 감독은 장로를 지칭한 것일 뿐 오늘날의 사제계급으로써의 감독을 의미한 것은 아니다.

안식일교회 신학자 낸시(Nancy Vyhmeister) 박사는 ‘역사로 본 여자 집사의 사역’(The Ministry of the Deaconess through History)이란 글에서 초대 교회에 안수 받은 여자 집사가 존재했었다고 보았다. 낸시는 여자 집사들이 여성들이 침례 받을 때 조력하는 자들이었고, 사람들을 돌보는 자들이었으나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고 했다.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지니라”

Lydia_church_leader.jpg여성들이 침례 받을 때 여성 집사들의 조력이 필요했던 것은 두 가지 점에서 사실이다. 첫째, 고대 그리스도교 침례는 벌거벗은 몸으로 물속에 들어가 세 번 침수를 했다. 이 때문에 감독(장로)이 벌거벗은 여성에게 침례를 베풀기가 난감했을 것이다. 같은 이유로 개종자가 벌거벗은 몸으로 물속에 들어가 개종침례를 받아야하는 유대교에서는 개종자가 여성인 경우에는 3명의 여성 조력자들이 랍비를 대신해서 침례를 베풀어왔다. 이 때 랍비는 문밖이나 차단막 밖에서 의식을 집전한다. 둘째, 그리스도교가 국교가 되고 조직과 제도가 정비되기 전까지는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침례를 베풀 수 있었다. 초기 그리스도교에서는 침례가 주로 강에서 새벽이나 밤에 베풀어졌지만, 신체접촉은 여전히 난감한 문제였을 것이다. 이 같은 이유 때문에 여성 조력자들 곧 안수 받은 여자 집사들이 필요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앞서 말한 그리스도교가 국교가 되고 조직과 제도가 정비된 이후에는, 특히 예배가 성체(빵)를 하나님께 바치는 제사(Mass)로 발전된 이후에는 여자 집사의 역할이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되었다. 게다가 수녀회가 조직되고 침례 대신에 약식세례를 시행한 중세기에는 더더욱 여자 집사란 제도가 필요치 않게 되었다. 다만 오늘날의 가톨릭교회는 사제의 말단계급인 ‘부제’(‘보제’)라 불리는 집사와는 별도로 ‘봉사자’ 개념의 평신도 사역자를 인정하는 추세에 있다. 이들을 가톨릭에서는 ‘minister’라 부른다.

참고로 유대교에서 행하는 침례의식(Tevilat Keilim)은 반복적인 정결례로써 그리스도교에서 행하는 단회적인 침례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성서시대 때부터 유대교인들은 정결례를 위한 침례탕을 구비해놓고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최근에는 예루살렘 근교인 세례 요한의 고향인 에인 케렘에서 2천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의식용 침례탕이 발견되었고, 2019년 3월에는 서울 남산 인근에 유대교인들의 정결침례와 이방인들의 개종침례를 위한 의식용 침례탕(Mikvah)이 설치된바가 있다.

유대교에서의 침례는 미슈나 구전이 정한 정결례(Tohoroth)이지 회개나 죄 사함을 받기 위한 침례가 아니다. 유대인들은 출산이나 월경, 배우자와의 잠자리 뒤에도 침례탕에 들어가 부정(treyf)을 정(kosher)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회당기도회에 참석할 수 있다. 또 새로 구입한 부정한 식기를 침례탕(Mikvah)이나 자연수(강, 호수, 바다 등)에 담갔다가 꺼냄으로써 정(kosher)하게 해야 사용할 수 있다. 유대교 개종자에게 요구되는 침례도 마찬가지 의미라 볼 수 있다. 유대교 침례의식은 반복적이지만, 단 개종 침례만은 단회로 그친다고 볼 수 있다.

“집사들은 ...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일지니”

priscilla_corinth.jpg뵈뵈를 여자 집사로 봤던 교부들이 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155-220), 오리겐(185-254), 크리소스톰(347-407), 데오도렛(393-460)이 그들이다. 비두니아 총독이었던 소 플리니도 트라야누스 황제에게 보낸 서신에서 두 명의 “ministrae”를 언급하였는데, 이 단어는 ‘여자 집사들’ 혹은 ‘여자 일꾼들’로 번역될 수 있다.

감람산 인근 굴무덤에서 “소피아 곧 그리스도의 종과 신부, 집사, 제2의 뵈뵈 여기에 눕다.”라고 새긴 4세기 후반의 석비가 발굴되었고, 카파도키아에서도 “마리아 집사”라고 새긴 6세기경 석비가 발굴된바 있다.

451년에 개최된 칼케돈 공의회 문서에는 “40세 이하의 여자를 집사로 안수해서는 안 된다.”고 적시하고 있고, <교부들의 삶>(Liber Patrum)은 “여자 집사들은 정숙하고 점잖아야하며 60세 이상이어야 한다. 그들은 여성들에게 침례를 베푼다. 사제들이 벌거벗은 여성들의 몸을 보는 것이 절절치 않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4세기 후반의 <사도헌법>(The Apostolic Constitutions)은 감독에게 남녀 교회지도자들의 안수에 관해 지시하고 있고, 감독이 여성에게 안수할 때 드리는 기도문까지 적었다.

이처럼 현존하는 자료들로 볼 때 1세기 교회시대이후 곧 2세기부터 13세기까지에는 일반적이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안수 받은 여자 집사들이 교회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세기 교회시대의 통념으로 볼 때, 교회직제로써의 여성 장로(감독)나 여성 집사가 있었다고 보기는 여전히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리더십을 발휘할 능력을 지닌 여성들이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직제로써가 아니더라도 일꾼으로서의 디아코노스는 그 의미가 무엇이든지 간에 있었을 것이 확실하다. 그런 측면에서 1세기 교회질서에 일반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드물게 여성이 리더십을 발휘한 교회들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1세기 교회질서에 여자 집사 장립이 일반적이지 않았다는 증거가 디모데전서 3장 8-13절이다. 특히 12절,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일지니”가 그것을 입증한다. 아무튼 바울은 집사의 자격을 “정중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히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한다”(8-9절)고 했고, “책망할 것이 없는”(10절) 사람이어야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13절에서는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는다.”고 하였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