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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수고03: 데살로니가인들의 영적 상태(3)(살전 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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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3,809 2017.01.12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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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수고03: 데살로니가인들의 영적 상태(3)(살전 1:5-7)

예루살렘교회의 구성원과 성격 및 변화

baptismofpaul_cappellapalatina.jpg 바울이 그리스도의 교회에 개종한 것은 주후 34년경이었다. 그리스도의 교회가 주후 30528일 오순절 날에 예루살렘성전 솔로몬행각에서 시작되었지만, 안디옥 사람 니골라처럼 유대교에 개종했던(6:5) 헬라인들 한 두 사람 빼고는 모두 유대인들이었다. 당시 유대인들은 6백여 년째 그리스도의 출현을 희망하고 있었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부활승천하신 예수님 혹은 예슈아님이 바로 그들이 그토록 고대했던 이스라엘의 희망, 그리스도 혹은 메시아라고 믿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동족인 유대인들이 그 같은 사실을 알고 믿어야한다는 점에서는 전도에 적극적이었지만, 그 같은 사실을 이방인들도 알고 믿어야한다는 점에서는 소극적이었다. 유대교에서 분리되기 이전까지 초기 그리스도의 교회는 단지 유대교의 한 분파, 나사렛파에 불과하였고, 유대인들은 그들을 노쯔림’(Notzrim)이라고 불렀다. 오늘날 이들은 스스로를 일컬어 메시아닉 쥬혹은 메시아닉 유대교라고 부른다. 이들은 이스라엘에서 극우 유대교인들로부터 많은 고초를 겪고 있다. 하지만 메시아닉 쥬혹은 메시아닉 유대교는 온전한 신약성서기독교는 아니다. 그들은 유대교와 기독교의 경계선상에 있다. 유대교와 기독교를 반반씩 섞어놓은 혼합종교 형태이다.

주전 586년 예루살렘이 멸망한 이후 타의든 자의든 외국에 나가 사는 유대인들의 숫자가 본토에서 사는 유대인들보다 몇 배나 더 많았다. 이들을 디아스포라’(흩어진, 유배된) 유대인들 혹은 헬라파 유대인들이라고 부른다. 바울, 바나바, 마가, 스데반, 빌립, 실라(로마식으로 실루아노) 등이 헬라파에 속한다. 하나님은 이들을 불러 이방인들을 위한 선교사로 삼으셨다. 그렇다고 모든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이방인선교에 중요성을 깨달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바울의 선교팀이 이방지역에 세운 그리스도의 교회들을 심하게 탄압한 사실에서 보듯이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히브리파든 헬라파든 그리스도의 교회들에 적대감을 갖고 훼방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헬라파 또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 중에서 이방인들을 위한 선교사들이 나왔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바로 바울, 바나바, 마가, 실라 등이고, 교회로서는 안디옥교회를 꼽을 수 있다. 안디옥교회는 대표적인 이방인교회로서 그곳의 교인들이 최초로 그리스도인으로 불렸다. 이로써 신약성서교회는 그리스도의 교회’(Church of Christ) 또는 그리스도인의 교회’(Christian Church)로 불리게 되었다.

바울의 선교방법과 적대세력

paul_preaching_at_synagogue.jpg 이방인선교를 위해 최초로 선교팀이 꾸려진 곳은 안디옥교회였고, 그때가 바로 주후 40년대 후반이었다. 그때 파송된 선교사들은 바울, 바나바, 마가였다. 이들은 키프로스와 터키 중남부지역에 거주하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과 회당기도회에 참석하는 헬라인 하나님 경외자들을 중심으로 복음을 전파하였고, 소수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과 다수의 유력한 헬라인 하나님 경외자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였다. 바울은 이들을 통해서 곳곳에 그리스도의 교회들을 세웠고, 장로들을 뽑아 안수하여 목회자로 세웠다.바울과 초기 신약성서기독교의 적대세력은 당대의 철학이나 이교문화가 아니라 유대교와 메시아닉 유대교 및 영지주의 기독교였다.

첫째, 바울과 초기 그리스도인들을 심하게 탄압한 이들은 유대교인들이었다. 디스아스포라 유대교인들 가운데 상당수가 할 수만 있다면 바울을 제거하려고 했다. 그들은 주후 70년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인해서 위세가 크게 꺾이자 회당에 잔류한 노쯔림들을 몰아내고, 성전제사를 대신해서 하루 세 번 기도시간에 바치던 18개의 기도문(쉐모네 에스레이)이단을 공격함이란 제목의 새로운 기도문을 12번째에 첨가시킴으로써 기독교로부터 유대교를 보호하고 미쉬나와 같은 울타리법들을 발전시키는데 온 힘을 기우렸다.

둘째, 메시아닉 쥬 또는 메시아닉 유대교인들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토라의 권위를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이들은 안디옥교회, 갈라디아교회, 고린도교회 등에 숨어든 바울의 적대자들로서 바울이 선포한 복음을 심대하게 훼손하였고, 교회를 바울로부터 격리시키려고 하였다. 그들은 주후 70년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인해서 위세가 크게 꺾었다. 사도들은 각자의 선교지역을 결정하여 떠났고, 예루살렘교회의 교인들은 대부분 유대-로마전쟁직전에 요단강 동편지역의 펠라나 페트라로 피난하였다.

셋째, 영지주의 기독교인들은 헬라철학에 영향을 받은 자들로서 눈에 보이는 것들을 죄악에 물든 유한한 현상으로 여겼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무한하고 신령한 본질로 여겼다. 이로 인해서 세상과 육체를 죄악시하였고, 그것들이 영적이고 참된 본질을 가두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의 천지창조와 성육신사상을 부정하였다. 그들은 각 지역교회들에 침투한 떠돌이 거짓 교사들 또는 떠돌이 거짓 선지자들로서 바울이 선포한 복음을 심대하게 훼손하였고, 교회를 바울로부터 격리시키려고 하였다. 영지주의자들의 영향은 주후 3세기경까지 지속되었다.

바울의 선교위기와 기회

troas_vision.jpg 신약성서에는 이들 적대세력들에 대한 경고와 권면들이 많이 담겨 있다. 데살로니가 전서와 후서는 가장 이른 시기에 쓰인 글이기 때문에 영지주의자들의 침투에 대한 경고나 권면은 나타나있지 않으나 동족들곧 기독교를 적대시하는 데살로니가 사람들로부터 당한 환난의 심각성이 잘 나타나 있다(살전 1:6, 2:14, 3:3-7, 살후 1:4-7).데살로니가교회의 창립자는 세 사람이다. 바울, 실라, 디모데가 그들이다. 바울의 제2차 선교여행에 동참한 실라와 디모데는 앞서 언급한 디아스포라 유대교와 메시아닉 유대교의 탄압에 관련 있다.

바울은 제1차 선교여행 때 남 갈라디아지방 루스드라에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로부터 실신할 때까지 돌로 몰매를 맞은 적이 있다. 그곳에 로이스’(Lois)와 그녀의 딸 유니게’(Eunice)라는 유대인여성이 살았는데, 유니게는 헬라인 남편에게서 디모데라는 아들을 두고 있었다(딤후 1:5). 그들은 모두 바울의 제1차 선교여행 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였고, 바울이 실라와 함께 다시 방문하였을 때 매우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어 있었다. 험난하고 위험한 길인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유니게 가족은 연소한 디모데가 선교팀에 합류하는 일에 있어서 적극적이었다.

바울과 바나바가 제1차 선교여행을 마친 직후 안디옥교회에서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메시아닉 유대교인들과 안디옥 신약교회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격하게 논쟁이 벌어졌다. 메시아닉 유대교인들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주장하였고, 바울과 바나바는 할례가 구원에 필요치 않다고 반박하였다. 결국 그들은 판결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맡기기로 하였고, 안디옥교회는 바울과 바나바를 다른 몇 사람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보냈다(15).

바나바는 본래 예루살렘교회 출신으로서 안디옥에 파송된 전도자였다. 예루살렘교회의 사도와 장로들은 바울과 바나바의 선교보고에 매우 고무되었다. 논의 끝에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유대교의 손님, 곧 문의 개종자, 하나님 경외자, 노아의 자녀 차원에서 수용하고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기로 결정하고 증인으로 유다와 실라를 안디옥교회에 파견하였다. 이 사건이 마무리된 후에 로마시민권자였던 실라는 바울과 함께 선교여행에 나섰다. 결과적으로 바울은 위기를 통해서 기회를 얻었다. 사랑의 수고를 통해서 믿을만한 두 젊은 일군 실라와 디모데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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