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수고13: 믿음의 역사(3)(살전 4:1-12)
본문
사랑의 수고13: 믿음의 역사(3)(살전 4:1-12)
하나님을 기쁘시게
바울은 데살로니가인들에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방법을 가르쳤고,
데살로니가인들은 이를
실천하고 있었다.
이에 바울은
1절에서 “더욱 많이 힘쓰라”고 권면하였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은 하나님의 마음을 얻는 일이다.
대신관계이든,
대인관계이든 상대방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것만큼 큰 손해가 없고,
상대방의 마음을 얻는
것만큼 큰 이득이 없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을 말하는데,
바울은
3-8절에서 하나님의 뜻을 네 가지로
정리하였다.
첫째, 음란을 버리고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3절).
둘째, 이방인들이 행하는 것처럼 자기의 몸을 혹은 자기의 아내나 여성들을 음란과 색욕의 대상이나 수단으로 삼지 않고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대하는 것이다(4,5절).
셋째, 분수를 넘어섬으로써 형제를 해롭게 하지 않는 것이다(6절).
넷째, 사람에게 행하는 것이 하나님께 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행한 대로 보응을 받는다(6-8절). 사도들의 가르침이나 자기의 몸, 아내, 남편, 형제나 자매에게 함부로 행하거나 해하는 것은 하나님께 함부로 행하거나 해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이다”(8절).
유대인들에게 거룩함의 의미는 부정(不淨)한 것을 멀리하고 정(淨)한 것을 가까이 하여 정한 것만 먹고 정한 것만 사용하고 율법과 규례대로 행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성생활도 정한 방법(kosher sex)으로 해야 한다. 유대인들에게 성생활은 부끄럽거나 악하거나 불결한 것이 아니며, 필요한 악도 아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욕구분출이 적절한 시간과 장소와 방법으로 제한돼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적절한 시간과 장소와 방법이 충족된 부부생활은 하나님의 뜻에 부합된다. 물론 이것은 부부에게 한정되며, 부부생활에는 만족감과 행복감뿐 아니라, 헌신과 책임감과 연대감이 동반되어야 한다고 본다.
여기에 더해서 바울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자기 제한’과 ‘동일시’로 나타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랑을 가장 신령한 것이고, 타인을 수단으로 삼지 않고 목적으로 삼는 것이며, 자신의 자유와 권한까지도 제한하는 것이라고 고린도전서에서 기술한바 있다. 이는 거룩한 부부행위란 사랑함이고, 사랑함은 착취나 강요나 폭력이 아닌 헌신과 책임감과 연대감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의미한 것이다.
하나님을 본받아
로마시대의 아버지는 자녀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었다.
아버지 살아생전에
자녀들은 노예와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소유물에 지나지 않았다.
아버지는 식구들을
엄하게 지도할 권세와 성적 지배권을 갖고 있었다.
그리스인들의 아버지의
근본은 제우스였는데,
제우스는 부도덕한
호색한이요 독재자였다.
반면에 유대인들의
아버지의 근본은 야훼이신데,
하나님은
좋으신(토브)
아버지,
인자(헤세드)하신 아버지,
의로우신
아버지,
거룩하신
아버지이시다.
이 하나님이
유대인에게뿐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아빠 하나님’
개념이다.
남편과 아버지로서
아내와 자녀들을 착취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존귀하게 사랑할 자로 대하는 것이 믿음농사,
사랑농사,
소망농사를 잘 짓는
방법이다.
온갖 신들을 믿었던 큰 무리의 헬라인들과 다수의 귀부인들이 유대교에 관심을 보였다가 재차 그리스도의 교회에 개종한 이유가 무엇이었는가?
첫째, 헌신적인 공동체의식 때문이었다. 일체감이 강한 그리스도인공동체에 가입하게 되면 의식주면에서도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게다가 남녀노소빈부귀천민족색깔의 차별을 두지 않았던 평등사상, 하나님 앞에서 만민이 동등하며, 모두가 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라는 것 때문이었다.
둘째, 높은 윤리성과 도덕성 때문이었다. 그리스도인들은 깨끗하고 금욕적인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3만이 넘는 신들을 믿었던 헬라인들은 참신에 대한 갈망이 컸다. 헬라의 신들은 능력을 행하고 죽지 않는다는 것 빼고는 상당수가 인간들보다 훨씬 더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이었다. 이로 인해서 헬라인들의 상당수가 이 헛된 신들과 공허한 철학에 환멸을 느꼈고, 유대교의 윤리도덕적인 유일신에 큰 반응을 보였다. 큰 무리의 헬라인들과 귀부인들조차 ‘하나님 경외자’의 신분으로 유대교회당에서 하루 세 번씩 갖는 기도회에 참석하였다. 게다가 바울이 전한 기독교 복음은 디오니소스 제전이 제공한 본능적 원시적 성적 에너지의 발산과 쾌락이 채워주지 못했던, 카비루스신앙과 황제숭배신앙이 채워주지 못했던, 심지어 유대교조차 채워주지 못했던 헬라인들의 영적인 목마름을 해소시켰다.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아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그리스도의 교회는
헌신적인 공동체였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므로 형제애가 강했고,
남녀노소빈부귀천민족색깔의 차별을 두지 않았던
박애와 평등사상이 강했다.
데살로니가인들도
마찬가지였다.
9-10절에서 바울은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들 자신이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고 하였고,
그들의 형제애가
데살로니가뿐 아니라 온 마케도니아에까지 미쳤으니 더욱 분발하라고 권면할 정도였다.
11-12절은 형제를
사랑하는 실제적인 방법에 대한 권면이다.
첫째, 조용히 하라는 것이다. 여기서 “조용히”는 본래 휴식(헤쉬카제인, hesychazein)을 뜻하는 말로써 입을 쉬게 하라, 수다를 떨지 마라, 행동으로 보이라는 뜻이다.
둘째, 자기 일에 힘쓰라는 것이다. 자기 일로 남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도록 하라는 뜻이다.
셋째, 자기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는 것이다. 바울은 친히 데살로니가에서 자신의 손으로 일하는 모범을 보였다. 2장 9절,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
넷째, 타인에게 단정히 하라는 것이다. 여기서 “단정히”는 ‘보기 좋은,’ ‘존경할 만한’(유스케모노스, euschemonos)이란 뜻으로써 남에게 덕을 끼치라는 뜻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 곧 조용히 하고, 자기 일에 힘쓰며, 자기 손으로 일하기를 힘써야하는 이유는, 첫째는 자신의 궁핍을 물리치기 위함이요, 둘째는 이방인들에게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함이요, 셋째는 남에게 덕을 끼치려함이다. 이로써 전도의 문이 열리게 되고, 종국에는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된다. 데살로니가에 전도를 받고 그리스도의 교회로 개종한 자들 가운데 하나님을 경외하는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들”(행 17:4)이 있었던 것이나 베뢰아에 전도를 받고 그리스도의 교회로 개종한 자들 가운데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않았던”(행 17:12)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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