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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수고02: 데살로니가인들의 영적 상태(2)(살전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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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3,463 2017.01.12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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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수고02: 데살로니가인들의 영적 상태(2)(살전 1:2-4)

데살로니가 시()

thessaloniki_klaudius_1.jpg 데살로니가는 주전 315년 마케도니아 왕 카산드로스가 건설하였고, 도시명은 왕후이자 알렉산더 대왕의 이복누이였던 데살로니가에서 따왔다. 주전 168년에는 로마제국의 속주가 되었다. 주전 44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되고, 그로 인해서 카이사르의 조카 옥타비아누스와 카이사르의 심복부하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군대가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암살한 마르쿠스 브루투스와 브루투스의 매제이자 주동자였던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의 군대를 추격하여 주전 42년 빌립보 평원에서 무찔렸다. 이때 데살로니가는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를 지원하였고, 전쟁에서 승리하자 자치권을 얻게 되었다. 따라서 데살로니가에는 로마군이 주둔하지 않았고, 시민들은 읍장들’(17:8)로 번역된 관리들(politach)을 직접 뽑을 수 있었으며, 주화도 발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자치권은 주전 42년 빌립보전투 직후에 로마시민권을 받았을 안토니우스의 퇴역군인들과 주전 31년 악티움해전 직후에 아우구스투스의 퇴역군인들이 정착했던 빌립보 보다는 낮은 단계의 특권이었다. 아우구스투스는 빌립보에 이우스 이탈리쿰’(jus italicum) 이탈리아의 권리’(이탈리아에 적용되는 동등한 권리)라는 특권을 부여하였고, 자신의 딸을 기념하여 아우구스타 율리아의 정착지 빌립보’(Colonia Augusta Julia Philippensis)로 이름을 바꿨다.

데살로니가는 마케도니아 지방의 항구도시로써 교통과 무역의 중심지였다. 알바니아의 아드리아해변에서 비잔티움까지 연결되는 군사도로(Via Egnatia, 860KM, 146-120BC 건설)가 데살로니가를 통과하였다. 바울, 실라, 디모데는 이 도로를 이용하여 빌립보를 떠나 데살로니가에 당도하였다.

주후 49년에 로마황제 클라우디우스가 로마에서 유대인들을 추방한 사실이 있었다.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인들을 상대로 소요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황제의 칙령은 이탈리아의 권리를 가진 빌립보에도 그대로 적용되었고, 그런 연유로 바울 일행은 빌립보에서 유대인들과 그들의 회당을 찾을 수 없었다. 반면에 데살로니가에는 유대인들이 많았고, 그들의 회당에 하나님 경외자들인 헬라인들의 큰 무리들과 귀부인들이 출석하고 있었다. 바울은 출입을 저지당할 때까지 세 차례나 안식일에 회당기도회에 참석하여 성경을 강론하며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였고”(17:2-3), 자신이 전하는 예수님이 바로 유대인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기다려온 그리스도이시라고 전파하였는데, 헬라인 하나님 경외자들의 상당수가 마음을 열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였다.

데살로니가 전서

thessaloniki_nero_1.jpg 바울은 자기를 따르는 자들을 따로 모아 유대인 야손의 집에서 그리스도의 교회를 개척하였다. ‘야손이란 이름은 치료자란 의미를 갖고 있으며, ‘예슈아예호슈아의 헬라식 호칭이었다. 그는 바울일행을 맞아들여 후대하였고, 그것 때문에 유대인들로부터 심한 박해를 받았다(17:5-9).

바울 서신은 신약성서 가운데서 가장 먼저 기록된 책들이다. 그리고 바울 서신들은 쓰인 순서대로 배열되지 않고, 크기의 순서대로 배열되었다. 로마서가 가장 길고 빌레몬서가 가장 짧기 때문에 로마서가 가장 앞에 나오고 빌레몬서가 가장 나중에 나온다. 신약성서에 실린 바울의 글 가운데 데살로니가전후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로마서가 주후 50년대에 기록되었고, 옥중서신으로 불리는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가 60년대 초반에 기록되었으며, 목회서신으로 불리는 디모데전후서, 디도서가 60년대 후반에 기록되었다.

데살로니가전서는 주후 52년경에 고린도에서 기록되었다. 신약성서 27권 가운데 가장 먼저 기록된 글이다. 바울 일행이 데살로니가에 교회를 세운 것은 주후 50년경이었다. 그러나 일행 중 바울과 실라는 데살로니가에 오래 머물지 못하였다. 유대인들의 박해가 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헬라인이었던 디모데만 데살로니가에 남겨놓고 바울과 실라는 베뢰아로 이동하였고, 베뢰아에서도 바울과 실라는 유대교 회당의 안식일 기도회에 참석하여 말씀을 전파하였다. 그러나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이 바울이 하나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을 알고 거기도 가서 무리를 움직여 소동케 함으로”(17:13) 바울은 실라를 베뢰아에 남겨두고, 아테네를 거쳐서 고린도에 내려가 그곳에서 천막사업자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만나 16개월간 정착하였다. 데살로니가서는 바로 이곳 고린도에서 디모데의 선교보고가 있고난 직후에 기록되었다.

디모데가 보고한 내용은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극심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잘 견디고 있다.
둘째, 교인들 중에 바울의 권위와 진실성을 훼손하려는 자들이 있다.
셋째, 교인들 중에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죽은 자들이 어떻게 되는지를 몰라 근심하는 자들이 있다.

데살로니가 전서의 기록 목적과 내용

thessaloniki_nero_2.jpg 데살로니가서의 기록 목적은 시련 중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격려하고, 경건하고 성결한 삶을 살며, 일상생활에 소홀하지 말도록 권면하고, 주의 재림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가르치기 위함이었다. 데살로니가서의 내용을 볼 때, 초기 선교지에서의 바울의 설교주제는 임박한 주의 재림이었다.

데살로니가전서를 보면, 데살로니가교회를 다녀온 디모데의 보고는 바울에게 큰 기쁨과 힘을 주는 것이었다. 재림을 기대하면서 일도 하지 않고 무의 도식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여전히 부도덕한 생활을 하는 신자가 있었으며, 재림이 오기 전에 죽은 자들에 대한 염려도 있었지만, 성도들은 바울을 사모하였고, 가르침대로 잘 지키고 있었으며, 고난 중에서도 기쁨을 잃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의 믿음의 역사사랑의 수고소망의 인내를 높이 평가하면서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라고 극찬하였다. 데살로니가교회가 바울의 영광과 기쁨이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데살로니가교회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 때문이었다(1:3). ‘믿음의 역사란 믿음으로 행한 일, 믿음에서 나온 헌신을 말한다. ‘사랑의 수고는 사랑으로 행한 일, 봉사를 위해서 흘린 땀을 말한다. ‘소망의 인내는 극한 고난에도 불구하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아니한 것을 말한다. 바울은 성도들이 믿음과 사랑과 소망 가운데 흘린 땀과 수고와 인내에 감격하였고, 그것을 자신의 영광과 기쁨으로 생각하였다.

둘째, 환난 중에도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고, 바울일행과 주님을 본받았으며, 예루살렘교회가 유대인들로부터 고난을 받고도 믿음 위에 굳게 섰던 것처럼, 데살로니가교회가 동족들로부터 박해를 받고서도 예루살렘교회를 본받아 믿음 위에 굳게 섰다(1:6, 2:14).

셋째, 바울일행으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다(2:13).
넷째, 궁핍과 환난 중에서도 성도들이 보여준 믿음과 사랑은 바울일행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3:7-9, 4:9).

이런 이유들 때문에 바울은 39절에서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로 하나님께 보답할까라며 감격하였다.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의 신실한 믿음생활이 자신이 뿌린 수고의 결실이었으므로 이것을 영광과 기쁨으로 삼았고, 이것을 어떻게 하나님께 보답할지를 놓고 행복한 고민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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