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수고04: 사랑의 수고(1)(살전 1:1-3)
본문
사랑의 수고04: 사랑의 수고(1)(살전 1:1-3)
바울의 인사말
데살로니가서는
신약성서 가운데서 가장 먼저 기록된 글이다.
그런 점에서
데살로니가서는 여러 면에서 신학자들의 관심의 대상이었다.
1절,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는 몇 가지 주목해서 봐야할 점들이 있다.
첫째, 이 짧은 인사말 속에 팀원들에 대한 바울의 배려가 녹아있다. 군림과 지배가 아닌 섬김과 동일시(연대의식)를 엿볼 수 있다. 바울은 경험이 풍부한 선교팀장이었지만, 자신을 신입팀원들과 동일시하였다.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이라고 표현한 인사말에서 그것을 알 수 있고, ‘사도’나 ‘하나님의 일군’이라는 직분을 생략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바울은 자신의 위상을 실라와 디모데보다 높이지 않았다.
둘째, 본래 ‘아버지’는 군주적이고 지배적인 개념이었다. 그런데 바울은 이 짧은 인사말에서 이 사회적 통념을 깨버리고 있다. “하나님 아버지”란 표현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단순히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 주인과 노예의 관계, 지배자와 복종자의 관계가 아닌 가족관계, 부자지간의 관계임을 설명해준다. 이 표현 속에는 하나님 아버지의 자애가 녹아 있다. 자녀의 배반을 받아주시는 아버지, 배반하고 떠난 자녀를 기다려 주시는 아버지, 배반하고 떠난 자녀가 회개하고 돌아왔을 때 반가이 맞아 주시는 아버지, 자녀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시는 아버지, 인정이 많으신 아버지, 사랑과 애정을 쏟아 부으시는 아버지, 자신의 모든 것, 심지어 자신의 목숨까지도 내어 주시는 아버지의 사랑이 느껴지는 표현이다.
셋째,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는 특별한 관계는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신앙으로써만 가능하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20장 17절에서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이란 표현을 쓰셨는데, 이 말씀은 요한복음 1장 12-13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고 한 말씀에 근거한다. 바울도 로마서 8장 15-16절에서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abba)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신다”고 하였다.
바울의 축복문구
넷째,
바울은 데살로니가의
교회를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공동체라고
하였다.
바울은 하나님을
아버지,
예수님을 주님과
그리스도라 칭하였다.
당대의
그리스-로마세계에서 아버지는 가족 구성원들의
주인이었다.
그러므로 아버지와
주님은 동격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주님이신 것처럼,
예수님도 우리의
주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과 예수님은 동질이다.
그리고 데살로니가교회가
아버지와 주님이신 하나님과 예수님 안에 있으니 얼마나 복된 일인가?
바울은 수년 후
빈부귀천 민족색깔 남녀노소에 상관없이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죄를 회개하고 신앙을 고백하고 침례를 받음으로써 누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하나님의 경륜을 일컬어 만세 전부터 감추어졌던 하나님의 비밀 또는 그리스도의 비밀이란 말로
표현하였다(고전 2:7,
엡
3:9,
골
1:26).
다섯째, 데살로니가의 성도들에게 은혜와 평강을 간구하였다. 만일 그리스도인들에게 은혜와 평강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었다면, 바울은 분명코 그것들을 간구하였을 것이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에게 물질이나 건강의 복을 기원하지 않고 은혜와 평강을 기원한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간구해야할 우선순위가 무엇인가를 잘 말해준다. 예수님께서도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고 하셨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는 축복문구는 당대의 유대교문헌과 헬레니즘문헌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반면에 히브리서를 뺀 모든 바울서신과 베드로서신과 계시록에서만 볼 수 있다.
2절,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에서 바울이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마다 데살로니가교회와 성도들을 기억하고 중보기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3절,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에 근거한다.
좋은 경험과 좋은 기억
기억은 뇌 속에
있는 해마와 대뇌피질이 담당한다.
해마는 새로운 정보를
학습하고 기억하는 뇌기관이다.
해마는 뇌로 들어온
감각 정보를 단기간 저장하고 있다가 대뇌피질로 보내 장기 기억으로 저장하거나 삭제한다.
대뇌피질이 기억을
보관하는 장소라면,
해마는 정보를
저장하거나 저장된 정보를 꺼내주는 기능을 한다.
대뇌피질에는 약 100억에서 1000억 개의 신경세포(neuron)가 있고, 각각의 뇌신경세포마다 또 다른 세포들을 연결해 주는 수천에서 수만 개의 시냅스(synapse)라 불리는 것이 있는데, 시냅스는 세포와 세포사이에 있는 틈(간격)을 말한다. 각각의 신경세포는 전기화학신호를 통해서 신경전달물질을 주고받는데, 정보를 전달하는 신경세포는 시냅스에서 신경전달물질이란 열쇠를 정보를 수용하는 신경세포의 구멍에 결함시켜 신경세포막의 문을 열고 정보를 전달한다. 이 시냅스에 축적된 정보가 바로 기억이다. 그리고 뇌가 뇌신경세포와 연결된 시냅스들을 더 만들거나 삭제하는 능력을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이라고 부른다. 뇌는 찰흙처럼 성형성과 적응성을 갖고 있어서 경험과 활동에 따라 변화하는데, 이는 뇌가 기억하는 정보를 늘릴 수도 있고 삭제할 수도 있으며 바꿀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 뇌가소성 때문에 인간은 기억력을 증대시킬 수가 있고, 불행한 감정을 행복한 감정으로 바꿀 수가 있으며, 나쁜 습관을 좋은 습관으로 고칠 수도 있다.
바울의 일생은 험난한 가시밭길이었고 십자가의 길이었다. 수없이 많은 환난과 핍박을 당하였지만, 항상 기뻐했고 쉬지 않고 기도했으며 범사에 감사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바울이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회상하는 기도 때문이었다. 바울은 기도할 때마다 좋은 기억들을 회상하였다. 나쁜 경험이 많았던 만큼 하나님께 입은 은혜가 많았다. 한없이 고마우신 하나님의 은혜들, 사랑하는 일군들과 성도들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들을 기도할 때마다 반복적으로 회상했다. 반복적으로 불려나온 좋은 기억들은 다시 저장되기 때문에 뇌가 좋은 경험들에 길들여진다. 뇌는 무슨 경험이든 그 경험을 기억했다가 전과 동일한 경험을 하게 되면 과거의 기억을 불러내 과거와 동일한 반응을 함으로써 습관을 만든다. 그러므로 기도를 통해서 반복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회상하고, 성령님의 위로와 격려를 받으며, 감사하고 찬양하면, 뇌는 그것을 습관으로 기억하게 되고, 그 때마다 뇌내(腦內) 모르핀의 하나인 베타 엔돌핀을 분비시켜 기분을 좋게 만들고 자신감을 갖게 한다.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하는 습관이 그래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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