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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수고07: 사랑의 수고(4)(살전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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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2,922 2017.01.12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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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수고07: 사랑의 수고(4)(살전 2:1-12)

바울의 믿음농사

ancient_roman_forum_thessaloniki3.jpg 데살로니가교회는 신생교회였다. 게다가 그들은 유대교인들로부터 훼방을 받고 있었고, 그들의 훼방이 더욱 거세질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 같은 상황은 모든 지역에서 다 마찬가지였다. 유대인들이 지중해연안세계에 흩어져 산지가 650년이 넘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바울의 발걸음이 닿는 곳곳마다 있었고, 바울과 그가 전하는 신약성서복음에 심하게 대적하였다. 이 때문에 바울은 모든 면에서 모범을 보여야 할 필요를 강하게 느꼈다.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솔선수범해야 신자들을 믿음과 사랑과 소망 가운데 굳건히 세울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그리고 그 같은 노력 덕분에 바울은 자신감과 권위를 가질 수가 있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들어가 복음을 전한 일이 헛되지”(1) 않았다고 한 것은 자신의 선교가 성공적이었고 믿음농사에 수확이 있었다는 표현이다. 바울이 성공적일 수 있었던 이유는 매사에 솔선수범하였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었기 때문이다. 사람을 기쁘게 하거나 사람에게서 영광을 얻으려하지 않았고,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광을 돌렸기 때문이다.

첫째, 바울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고”(2, 16-17), 데살로니가에서도 많은 장애물이 앞길을 막아섰지만,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복음을 전파하였고, 많은 싸움에서 이겼다.

둘째, 이로 인해서 바울은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그분으로부터 위탁받은 신약교회복음을 전파할 때,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하지 않고 선한 청지기답게 진솔하게 섬기려고 하였다. 따라서 바울은 간사함과 부정과 속임수로 하지 않았고(3),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하지 않았으며, 오직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하였다(4).

셋째, 바울은 각종 시험과 연단을 통과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옳다 여기심을 받았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아무 때에도 아첨하는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받았다(5).

넷째, 바울은 사람들을 이용하려하거나 사람에게서는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였다”(6). 바울은 하나님 몫의 영광을 결코 가로채려고 하지 않았다.

바울의 사랑농사: 모성애

thessaloniki_galerius_arch%20.jpg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들어가 복음을 전한 일이 헛되지”(1) 않았다고 한 것은 자신의 선교가 성공적이었고 사랑농사에 수확이 있었다는 표현이다.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펼친 선교가 성공적일 수 있었던 이유는 매사에 사랑으로 섬겼기 때문이다. 유모처럼 교회를 돌보았고, 맑고 순수했으며, 목숨도 아끼지 않았다. 바울은 권위 있는 그리스도님의 사도이지만, 바꿔서 말하자면, 남의 자녀를 맡아 기르는 유모와 같지만, 사도로서의 자유와 권한을 내려놓고 자기 자녀를 기르는 자애로운 어머니처럼 지극정성으로 성도들을 돌보았다(7). 유모는 남의 자녀를 돌보는 동안 주인이나 타인의 눈치를 보거나 아첨의 말로 그들을 기쁘게 하거나 좋은 점수를 받아 일자리를 뺏기지 않으려하거나 자기 유익을 꾀하려는 때가 가끔 있을 수 있지만, 어머니라면 남들에게 잘 보여 칭찬을 받으려하거나 아첨의 말로 그들을 기쁘게 하려하거나 자기 이익과 변명을 꾀하려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모성애가 큰 어머니가 자녀에게 하듯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애틋하게 생각하였고 생명의 양식은 물론이고 목숨도 함께 나눌 수 있을 만큼 사랑하였다(8). 바울은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친히 수고하고 애쓰면서 복음을 전파하였다(9).

진실로 바울은, 세상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일을 함에 있어서, 마음의 걸레가 깨끗하였고, 믿음의 버팀목이 튼튼하였으며, 사랑의 밑불이 강렬하였다.

레오 톨스토이는 <대자>라는 글에서, 불에 타다 꺼져 죽은 숯검정이 같은 살인강도일지라도, 강도의 더러움을 닦아낼 깨끗한 걸레가 있다면, 곧 순수하고 맑은 깨끗한 마음이 내 안에 있다면, 강도의 더러움을 닦아낼 수 있다고 하였다. 또 톨스토이는, 그 살인강도의 고집불통을 꺾을 만한 튼튼한 버팀목이 있다면, 곧 의식주와 생사문제를 완전히 하나님께 맡길 만큼 강한 믿음이 내 안에 있다면, 강도의 고집불통을 꺾을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톨스토이는, 그 살인강도의 죄와 허물을 불태워버릴 강한 밑불이 있다면, 곧 물에 흠뻑 젖은 통나무라도 불태워버릴 강한 사랑이 내 안에 있다면, 강도의 죄와 허물도 불태워버릴 수 있다고 하였다. 톨스토이의 글에서 대자는 30년을 공들인 끝에 불에 타다 꺼져 죽은 숯검정이 같은 살인강도를 회개시켜 자신의 자리를 잇게 하였는데, 대자가 30년간 지은 믿음농사, 사랑농사, 소망농사를 통해서 남긴 가장 값진 유산이었다.

바울의 사랑농사: 부성애

thessaloniki-byzantine-walls.jpg 그리스 로마시대의 아버지는 자녀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었다. 아버지 살아생전에 자녀들은 노예와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소유물에 지나지 않았다. 아버지는 식구들을 엄하게 지도할 권세와 성적 지배권을 갖고 있었다. 만일 아들이 폭동을 일으켰거나 딸이 음행을 했다면 처형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 대신에 아버지는 노예를 포함한 모든 식구들을 부양할 책무가 있었고, 해방노예들에게는 급여를 지급했다. 그리스 로마인들의 아버지의 근본은 제우스였는데, 제우스는 부도덕한 호색한이요 독재자였다.

반면에 유대인들에게 아버지는 식구들의 제사장이요 랍비였으며 하나님의 계명(토라)을 실천하는 신앙인이었다. 유대인의 가정은 하나님의 성전이요, 식탁은 제단이며, 아버지는 제사장이요, 교사이다. 그런 점에서 아버지와 아들은 스승과 제자의 관계이다. 유대인들은 친부가 아니더라도 자신을 가르치는 스승을 아버지라고 불렀다. 엘리사는 엘리야를 아버지라고 불렀고, 바울도 디모데, 디도, 오네시모를 아들”(딤전 1:18), “신실한 아들”(고전 4:17), “사랑하는 아들”(딤후 1:2), “참 아들”(딤전 1:2, 1:4), “나의 아들”(1:10)로 불렀다. 베드로도 마가를 나의 아들이라고 불렀다(벧전 5:13).

유대인들의 아버지의 근본은 야훼이신데, 하나님은 좋으신(토브) 아버지, 인자(헤세드)하신 아버지, 의로우신 아버지, 거룩하신 아버지이시다. 이 하나님이 유대인에게뿐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하나님 아버지개념이다.

바울은 7-9절에서 데살로니가교인들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모성애에 비유한 후에 10-12절에서는 부성애에 비유하였다. 바울은 데살로니가교인들을 생명의 양식으로 양육할 때는 자애롭고 유순한 어머니처럼 대하였지만, 그들을 신앙으로 바로잡을 때는 의롭고 거룩한 아버지처럼 대하였다.

바울은 믿음의 아버지의 역할을 수행함에 있어서 모든 사람들의 모범이 되었다. 하나님조차 인정하실 만큼 성도들 앞에서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동하였다”(10). 또 바울은 하나님께서 택정하시고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신(8:30) 성도들에게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함으로써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하였다”(11-12). 결과적으로 바울이 데살로니가교회라는 밭에서 지은 믿음농사, 사랑농사, 소망농사는 풍작으로 보상되었고, 교인들도 믿음농사, 사랑농사, 소망농사로 화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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