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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수고10: 사랑의 수고(7)(살전 2: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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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2,245 2017.01.21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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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수고10: 사랑의 수고(7)(살전 2:13-20)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

israel-plus_Mda_sign.jpg 데살로니가전서 2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에서 세 가지 물음을 물을 수 있다. 왜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인가? 왜 그리스도인들은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가? 왜 설교가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 역사하는가?

첫째,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인 이유는 세 가지이다. 첫 번째로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와 성령님의 영감으로 쓰였기 때문이고, 그 말씀을 풀어 전하는 설교에도 성령님이 개입하시기 때문이다. 바울은 자신이 전한 복음이 사람들에게 전수받거나 배운 것이 아니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1:12) 알게 된 것이며, 하나님께서 계시로 그 비밀을 알게 하신 것”(3:3, 16:25)이라고 하였다. 두 번째로 설교가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것이고, 그 뜻은 오래전에 이미 큰 능력과 기사와 표적들을 통해서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 설교가 세상을 살리고 생명을 살리며 사람을 살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둘째, 그리스도인들이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 이유는 세 가지이다. 첫 번째로 설교가 사람을 기쁘게 하거나 사람에게서 영광을 얻으려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광을 돌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설교가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하지 않고, 오히려 섬기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 아무 때에도 아첨하는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않기때문이다(2:5). 바울은 설교할 때 간사함과 부정과 속임수로 하지 않았고(2:3),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하지 않았으며, 오직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하였다(2:4).

셋째, 설교가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이유는 세 가지이다. 첫 번째로 설교가 믿음농사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설교가 사랑농사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 설교가 소망농사이기 때문이다. 농사일에 보상이 따르듯이 믿음농사 사랑농사 소망농사에도 반드시 보상이 따른다.

성도의 본을 받음

israel_telaviv.JPG데살로니가전서 214-16절은 설교가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 역사한 결과에 관한 말씀이다. 본문은 두 가지를 말해준다. 첫 번째로 그리스도인들이 성도의 신앙을 본받았다는 것이고, 두 번째로 박해자들의 탄압을 잘 참아냈다는 것이다.

첫째, 그리스도인들은 성도의 신앙을 본받는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은 잇대어 진 것이지 돌연변이가 아니다. 심지어 신약성서교회조차도 구약성서교회에 잇대어진 것이다. 빛과 생명의 일을 하시는 하나님에 잇대어, 하나님의 존재방식에 잇대어, 영원에 잇대어, 언약에 잇대어, 이스라엘에 잇대어, 출애굽사건에 잇대어, 가나안땅 정복에 잇대어, 성전에 잇대어, 예언자들의 회개운동과 회복운동에 잇대어져 있다. 부활하신 예수님에 잇대어, 예수님의 삶에 잇대어, 살림의 일을 하시는 성령님에 잇대어, 예수님의 가르침에 잇대어, 예수님의 기도습관에 잇대어, 사도들의 가르침에 잇대어, 사도들의 기도습관에 잇대어, 사도들의 예배전통에 잇대어, 성도들의 신앙에 잇대어,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성경말씀에 잇대어져 있다.

둘째로 그리스도인들은 탄압을 잘 견뎌왔고, 끝내는 이기고 승리하였다. 바울은 14-16절에서 유대인들의 박해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바울은 16절에서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다고 데살로니가인들을 칭찬하였다. 214-16절에서 형제들아,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은 자 되었으니,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너희도 너희 동족에게서 동일한 고난을 받았느니라. 유대인은 주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우리를 쫓아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어, 우리가 이방인에게 말하여 구원받게 함을 그들이 금하여 자기 죄를 항상 채우매 노하심이 끝까지 그들에게 임하였느니라고 데살로니가인들을 칭찬하였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예나지금이나 동족으로부터 유대민족과 유대교의 배신자요 변절자란 취급과 함께 온갖 훼방과 박해를 견뎌야했다. 데살로니가의 그리스도인들도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박해를 당하였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이전에 행하였던 이방문화와 거짓 신들을 섬기던 관습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고자 했기 때문이다.

전도의 열매는 전도자의 영광과 기쁨

israel_timeline.jpgKBSSBS에서 방송작가로 활동하였던 김종철 감독이 2010년에 개봉한 다큐 영화 <회복>과 동년에 발행한 책 <이스라엘에는 예수가 없다>를 보면, 유대인들이 예수님과 기독교인들을 얼마나 싫어하는지를 알 수 있다.

이스라엘의 극우 정통파 유대교인들은 예수(예슈아)님을 메시아(모쉬아크)로 믿는 세대주의적 유대인 그리스도인(Messianic Jews)의 가정에 폭발물이 장치된 초콜릿 선물을 배달하여 끔찍한 부상을 입게 하고, 예배당에 불을 지르고, 예배당 벽에 험한 말로 페인트 낙서를 남기고, 집회소에 몰려가 고성방가로 예배를 방해하고, 집기를 집어던지는 등의 위협적인 행동으로 예배를 드릴 수 없도록 만든다. 가장 점잔은 훼방방법이 집회소 출입구에 의자를 갖다놓고 두 세 사람이 진을 치고 앉거나 서서 예배드리러 오는 사람들을 회유하거나 협박한다. 이런 불법적이고 일방적인 기독교박해가 일상적인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당국은 손을 쓰지 않고 있다.

유대인들은 십자가에 알레르기 반응을 심하게 보인다. 모슬렘국가들과 이스라엘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들이 긴급구호의 표시로써 앰뷸런스 차량 등에 적십자 마크를 사용한다. 이스라엘에서는 긴급구호 차량들에 적십자 표시 대신에 적색 다윗의 별을 사용한다. 적십자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또 덧셈에 사용하는 더하기(+) 기호를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에 를 사용한다. 또 이스라엘의 도로에는 십자교차로를 보기 힘들다고 한다. 대부분의 교차로가 로터리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또 이스라엘에서는 주전(BC: before Christ)이나 주후(AD: Anno Domini)를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에 기원전(BCE: before the common era)나 서기(CE: common era)를 사용한다. 이처럼 심하게 유대인들은 기독교를 싫어하고 십자가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은 성도의 신앙을 본받아 천성을 향해서 고난의 길을 걸었다. 바울이 디모데후서 3장 12절에서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고 한 말씀처럼, 믿음이 전파되고 그 믿음이 수십 년 또는 수백 년 걸려 그 지역과 사회와 민족의 문화로 안착되기까지는 동족의 극심한 반발과 적대적 핍박은 믿음이 치러야할 대가였다. 바울은 이 시련을 끝까지 잘 견딘 데살로니가인들을 향해서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2:19-20)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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