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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수고11: 믿음의 역사(1)(살전 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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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2,225 2017.01.25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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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수고11: 믿음의 역사(1)(살전 3:1-4)

바울의 마케도니아 선교 상황

jewish_extremists.jpg 데살로니가전서 21-3절의 말씀, “이러므로 우리가 참다못하여 우리만 아덴에 머물기를 좋게 생각하고, 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일꾼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이는 너희를 굳건하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아무도 이 여러 환난 중에 흔들리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한 말씀은 본 서신이 데살로니가교회가 창립된 지 2-3개월 이내에 기록되었음을 보여준다. 사도행전 17장을 보면, 데살로니가에서 유대교회당을 출입하던 다수의 헬라인 하나님 경외자들과 귀부인들, 심지어 소수의 유대인들까지 바울에게 빼앗기자 분노한 유대인들이 시장(아고라, 광장)의 불량배들을 동원하여 바울일행을 잡으려고 집회소였던 야손(제이슨=‘예슈아혹은 여호수아의 헬라식 이름)의 집에 쳐들어갔으나 잡지 못하자 소동을 일으켰다. 이때 야손과 몇몇 그리스도인들이 시관리들 앞에 끌려갔는데, 끌려간 이들은 모두 유대인들이었다. 그들은 바울일행을 다시는 집안에 드리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다. 그날 밤에 바울일행은 데살로니가에서 남서쪽으로 80킬로미터 떨어진 베뢰아로 무사히 피난하였다.

바울일행은 베뢰아에서도 전도하여 소수의 유대인들, 다수의 헬라인 하나님 경외자들, 귀부인들 및 남자들을 그리스도의 교회로 개종시켰다. 이 소문이 데살로니가유대인들에게 전해졌고, 분노한 유대인들이 먼 길을 마다않고 달려와 바울을 잡으려고 또 소란을 피웠다. 다시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의 호위를 받으며 아테네로 피난하였다. 바울은 이 아테네에서 실라와 디모데가 합류할 때까지 기다렸다. 바울이 떠난 후 실라와 디모데는 데살로니가와 베뢰아에서 전개된 상황들을 취합하여 바울에게 가져왔다. 그 소식은 기쁨과 우려를 동반한 것이었다. 바울은 한달음에 달려 마케도니아로 돌아가 교회들이 정착하는 것을 돕고 싶었지만, 바울에 대한 유대인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대신에 바울은 본 서신과 함께 디모데를 데살로니가에 보냈다. 바울은 실라도 마케도니아로 되돌려 보냈는데 장소는 아마 베뢰아였을 것이다(18:5). 빌립보는 드로아에 거주한 누가가 순회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20:6). 바울이 이들 하나님의 일꾼들을 파송한 목적은 성도를 견고하게 하고,” “믿음을 격려하여,” “환난 가운데서 흔들리지 않게 하려는것이었다(2-3).

데살로니가교회에 실재했던 박해 상황

judaism_moshiach1.jpg 데살로니가전서 14,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장차 받을 환난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는데 과연 그렇게 된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는 말씀은 데살로니가교회에 박해가 실제로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러면 이 박해는 누가 누구에게 행한 것인가?

데살로니가교회의 창립멤버들은 다수의 헬라인 하나님의 경외자들과 소수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었을 것이다. 당대에 로마당국은 전 로마제국에 거주하는 모든 유대인들로부터 성전세를 받고 율법으로 제재할 수 있도록 예루살렘당국에 특권을 부여하였다. 이 특권 때문에 타종교에 개종한 유대인들을 이단자로 처형할 수가 있었다. 바울이 기독교로 개종하기 직전까지 대제사장의 위임장을 지참하고,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기 위해 이웃 나라의 수도인 다메섹으로 달려간 것은 바로 이런 권한 때문이었다. 이런 점에서 데살로니가유대인들로부터 탄압을 받았던 그리스도인들은 개종한 유대인들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유대교인들이 교회건물의 벽에 페인트 낙서를 해놓거나 집회시간에 예배실로 난입하거나 밖에 운집하여 크게 소란을 피워 공포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예배를 방해한다.

하지만 데살로니가유대인들이 헬라인그리스도인들을 탄압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헬라인들의 땅에 얹혀사는 이민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신약성서에 유대인들이 유대인그리스도인들을 탄압한 사례는 많지만, 헬라인그리스도인들을 탄압한 사례는 없다. 이런 점에서 유대인이었던 바울과 실라는, 비록 그들이 로마시민권을 가진 자들이었지만, 분노에 찬 유대인들이 날을 세우고 있는 데살로니가에 되돌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반면에 헬라인이었던 디모데에게는 문제될 것이 하등에 없었다. 바울이 몇 번이고 가기를 원했던 데살로니가에 친히 가지 못하고, 디모데를 보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고 헬라인들이 가족종교를 버리고 기독교에 개종한 식구들을 탄압하지 않았다고 보기 어렵다. 오늘날까지도 지중해연안의 나라들에서는 가족종교를 버리고 타 종교에 개종한 식구들의 신체를 훼손하거나 목숨을 빼앗는 일이 자주 일어나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재림에 관한 신앙은 헬라인들에게도 있었으므로 그리스도의 재림신앙에는 거부감이 없었을 것이다.

유대교인들이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이유

judaism_moshiach2.jpg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쉽사리 메시아로 믿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의 메시아관() 때문이다.

첫째,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메시아는 죄를 사하는 구세주도 아니고, 죄가 없으신 삼위일체의 신()도 아니다. 유대인들에게 메시아는 병을 고치고 죄를 사하는 신성(神性)도 아니다. 하나님을 유대민족의 유일신으로 믿기 때문에 또 다른 신이 있을 수가 없고, 사람의 몸에서 난 자가 신일 수 없다고 믿기 때문에 성육신사상을 믿지 못한다.

둘째, 유대인들에게 가나안땅은 한 맺힌 희망(Ha-Tikvah)이다.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으로부터 오늘날까지 4천년 역사 가운데 땅을 소유했던 기간은 1천년이 채 안 된다. 소유했던 때보다 빼앗겼던 때의 기간이 3배나 더 길다. 4천년 민족사 가운데 3천년이 떠돌이와 노예의 세월이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땅은 문자적으로 안식과 자유의 상징이다. 그러므로 메시아는 이 빼앗긴 가나안땅을 되찾아줄 제2모세 또는 제2다윗과 같은 정치군사적 영웅으로서 따름과 실천의 대상이지, 예배와 섬김과 믿음의 대상이 아니다. 또 땅은 유대인들에게 지상 가나안땅이지 하늘 가나안땅이 아니다. 반면에 그리스도인들에게 참 안식과 참 자유가 있는 땅은 하늘 가나안땅이지 지상 가나안땅이 아니다.

셋째, 유대인들에게 메시아는 오실 그이이다. ‘오실 그이는 유대인들의 희망(Ha-Tikvah)이자, 동시에 그리스도인들의 희망이기도 하다. 유대인들에게 오실 그이는 아직 한 번도 오시지 않은 모쉬아크(Moshiach)이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미 2천 년 전에 한번 오셨고, 또 다시 오실 재림주이시다. ‘오실 그이가 회복시킬 안식의 나라가 유대인들에게는 그들 민족만을 위한 나라이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나라와 민족에 상관없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나라이다.

넷째, 기독교의 수난자 메시아사상, 곧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사상은 대다수 유대교인들에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바울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가 표적을 구하던 유대인들에게는 몹시 싫은 것이고, 지혜를 구하던 헬라인들에게는 어리석게 생각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가 생명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며, 빛을 주고 생명을 주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로 믿어지는 무한한 가치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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