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수고15: 소망의 인내(2)(살전 5:1-11)
본문
사랑의 수고15: 소망의 인내(2)(살전 5:1-11)
재림의 때와 시기
데살로니가전서
5장 1절의 “때와 시기”에서 ‘때’(크로노스)는 주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기다리는 기간을
말하고,
‘시기’(카이로스)는 재림이 실제로 있을 일시를
말한다.
따라서
‘때’는 “얼마나 기다려야하지?”에 해당되고,
‘시기’는 “언제 오시지?”에 해당된다.
2절에서 “주의 날”은 본래 하나님이 결정해 놓으신 심판의 날로써 본문에서는 예수님의 재림 곧 최후심판의 날을 말한다. 이 “주의 날”은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오랜 희망이 성취되는 구원의 날이고, 악인들에게는 그들의 오랜 악행을 심판받는 날이다. 따라서 종말의 날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원이 궁극적으로 완성되거나 성취되는 지복의 날이다.
2절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다”는 말씀은 데살로니가인들이 주의 재림의 때와 시기를 대충 알 수 있다는 인식을 사도들과 공유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밤이 깊고, 방비가 허술하다는 사실만으로도 집에 도둑이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과 같다. 물론 정확한 날짜와 시간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정확한 날짜와 시간을 모르기 때문에 항상 도둑이 들어올 것을 대비해야한다.
3절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할 것이다”는 말씀은, 만일 여성이 임신을 했다면, 반드시 출산할 날이 닥칠 것이고, 그 즈음에 산통이 시작될 것이므로 대비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산달이 다되어가는데도 ‘별일 없을 거야, 안전할거야’라며 격렬한 운동을 하거나 해외 여행길에 나섰다가 또는 무심코 지내다가 갑자기 난감한 일을 겪는 임산부들이 종종 있다. 비록 정확한 날짜와 시간은 모르지만, 대비해야할 일들이 많다는 것쯤은 대부분 알고 있다. 질병, 사망, 화재, 홍수, 폭설, 지진, 전쟁, 도둑, 강도, 교통사고 등의 재해는, 비록 발생될 날짜와 시간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충분히 예상되는 문제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일 없을 거야, 안전할거야’라며 거짓 평화와 거짓 안전에 빠져 대비하지 않는다면, 이들 문제들이 실제로 들이닥칠 때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영적으로 깨어있지 않고, 준비하고 있지 않으면, 갑작스럽게 주의 재림을 맞게 될 것이고, 결국 파멸에 이르게 될 것이다.
낮과 빛의 자녀들
데살로니가전서 5장 4절의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한다”는 말씀은 데살로니가인들이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잘 갖추고 있음을 뜻한다.
방비상태를 낮이나 빛에
비유하였고,
무방비상태를 밤에
비유하였다.
도둑으로 비유된
사건사고가 무방비상태인 한밤중에 발생된다면,
그 피해가 얼마나
크겠는가?
반면에 방비상태가
철저하다면,
그것은,
마치 잠들어 있는
한밤중이 아니라 깨어서 활동하는 대낮과 같아서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성서에서 현세와 내세는 ‘이 세대’와 ‘다가올 세대’(올람 하바)로 구별된다. 현세는 어둠의 권세에 사로잡힌 깊은 밤과 같아서, 하나님의 백성은 ‘이 세대’와 ‘다가올 세대’ 사이에 ‘낀 세대’로서 ‘다가올 세대’가 성취되기까지 환난을 겪는다.
성서는 이들 낀 세대를 그리스도인들, 하나님의 자녀들 혹은 낮에 속한 빛의 자녀들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이미’ 이 세대를 벗어났으나 ‘아직’ 다가올 세대에 도달하지 못한 채, 마치 이집트를 탈출한 히브리인들이 홍해를 건넜지만, 가나안땅에 도달하지 못한 채 40년간 광야 길을 순례하였듯이, 다가올 세대를 향해서 순례하는 과정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일컬어 낮에 속한 빛의 자녀들이라고 칭하는 이유는 그들이 이미 어둠의 권세의 족쇄에서 벗어나 빛을 향해서 성큼성큼 다가가고 있기 때문이고, 성령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받고 있기 때문이며, 다가올 세대를 맛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히브리서 6장 4-5절은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았다”고 하였고, 베드로전서 2장 9절은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바울은 5-6절에서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려야한다”고 권면하였다.
소망의 인내
바울은,
마치 밤에 잠을
자듯이,
또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에서 어둠의 세계에 갇힌 족쇄에 묶인 죄수들에서 보듯이,
이 세대에 속한 자들을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7절)이라고 하였고,
족쇄를 풀고 다가올
세대 곧 빛의 세계를 향해서 성큼성큼 다가가는 자들을 향해서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다”(5절)라고 하면서 7-8절에서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고 권면하였다.
바울은 여기서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자세를 가나안땅 정복에 나선 군인들의 완전무장에 비유하였다. 8절에서 “믿음과 사랑”은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갈 5:6)을 의미하고, “호심경”은 하나님의 전신갑주(엡 6:11-18)를 대표한다. “구원의 소망”은 가나안땅에서 영원한 안식을 취할 그날을 바라보는 것을 말한다. 이 말씀은 또 이사야 59장 17-18절 “공의를 갑옷으로 삼으시며, 구원을 자기의 머리에 써서 투구로 삼으시며, 보복을 속옷으로 삼으시며, 열심을 입어 겉옷으로 삼으시고, 그들의 행위대로 갚으시되, 그 원수에게 분노하시며, 그 원수에게 보응하시며, 섬들에게 보복하실 것이라”는 말씀에 근거를 둔다. 그리고 이들 말씀들은 모두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재림에 기대를 건 오랜 희망의 성취와 승리를 의미한다.
일부 데살로니가인들은 주의 재림이 자신들의 살아생전에 이뤄지기를 기대하면서 생업을 태만히 하였고, “언제까지 기다려야하지? 언제 오시지?”라며 조급해 했다. 또 어떤 이들은 이미 죽은 성도들이 어떻게 될지를 염려하기도 했다. 그래서 바울은 주의 재림 때 죽은 자들이 부활하여 먼저 주님을 맞이할 것이고, 그 후에 살아남은 성도들이 신령한 몸으로 변형되어 공중으로 주님을 마중 나갈 것이라고 위로하였다. 비록 그 때와 기한이 알려진 것은 아니지만, 그 날이 머지않다는 것만큼은 다 알 수 있으니, 전신갑주를 입고 전쟁에 나가는 군인처럼 그 날을 대비하라고 권면하였다. 게다가 주의 재림은 성도들의 오랜 구원의 희망을 성취시키는 거사이다. 그러므로 이미 하고 있는 그대로 서로 격려하면서 살리는 일, 세우는 일, 빛의 일을 계속하라고 권면하였다(1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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