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수고19: 인내와 믿음(2)(살후 1:5)
본문
사랑의 수고19: 인내와 믿음(2)(살후 1:5)
데살로니가교회가 받은 박해와 환난의 성격
데살로니가교회는,
1장
4절에 의하면,
박해와 환난을 견디고
있었고,
그들이 보인 인내와
믿음은 다른 교회들이 본받아야할 만큼 자랑스러운 것이었다.
헬라인들은 각 가정마다 수호신을 모셨지만, 다양한 신들을 다함께 믿는 다신(多神) 사회였다. 도시마다 올림포스의 주신들을 모신 웅장한 신전들이 있었고, 여타의 신들, 심지어 알지 못하는 신들에게 바쳐진 사당까지 있었으며, 아고라(광장)에는 다양한 신상들이 세워져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헬라인들이 데살로니가교회를 조직적으로 탄압했을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한편 유대인들은 로마당국으로부터 동족에 한해서 거주지에 상관없이 유대교법으로 치리할 권한을 부여받고 있었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바울에게 위해(危害)를 가할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하지만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의 숫자는 아주 작은 숫자에 불과하였다. 게다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아무리 분하고 억울해도 드러내놓고 헬라인들에게 위해를 가할 처지가 아니었다. 오히려 유대인들은 남의 나라에 얹혀사는 처지여서 헬라인들의 탄압을 걱정해야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살로니가교회가 동족으로부터 박해를 받고 환난을 겪었던 이유는 유대인들이 헬라인들을 선동했거나 불량배들을 동원했기 때문이었다. 데살로니가의 유대교인들이 바울과 교회에 위해를 가하려고 아고라(시장)의 불량배들을 동원하여 큰 소동을 일으킨 사례가 있었고(행 17:1-9), 그로부터 5년쯤 후인 주후 57년경에도 에베소에서 “은으로 아데미의 신상 모형을 만들어”(행 19:24) 돈벌이를 하는 상공인들이 데메드리오의 주동으로 바울과 그리스도인들에게 반발하여 폭동을 일으켰을 때, 유대인들이 동족인 알렉산더를 폭도들 앞에 내세워 헬라인들의 분노를 더욱 격발시켜 바울과 교회에 위해를 가하려다가 미수에 그친 사건이 있었다(행 19:23-41). 바울은 이 사건이 터진 직후에 에베소에서의 2년 3개월의 선교를 정리하고 마케도니아로 건너갔다.
믿음과 인내가 필요한 이유
그리스도인들이 환난을 겪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은 구원이 완성이 아니라 약속이기 때문이다. 의롭다하심(칭의)과 거듭남(중생)은 영혼구원이자 육체구원에 대한 약속이다. 따라서 육체는 여전히 자연법칙에, 세상은 어둠의 권세에 지배를 받는다.
둘째, 신앙생활은 히브리인들의 광야생활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성령님이 내주동거하시고 약속의 확실성을 인치시고 보증하시며 선취하도록 도우시지만, 신앙생활은 모든 난관을 헤치며 하늘 가나안땅을 향해서 걷는 순례자의 길이다.
셋째, 육체구원은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이뤄질 것으로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에게 요구되는 것은 믿음과 인내이다.
성도들에게 믿음과 인내가 요구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므로 그분과 싸워서 이길 자가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모든 싸움에서 반드시 이기실 것이므로 그분의 자녀들이 궁극적인 승리를 쟁취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둘째, 하나님만이 유일한 구원자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실패나 오류가 없으시므로 그분의 자녀들이 최종적으로 구원받는 것은 필연적이다.
셋째, 시련은 짧고 그 영광은 길기 때문이다. 바울은 로마서 8장 17-18절에서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고 하였고, 고린도후서 4장 17-18절에서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 하였다. 계시록은 그리스도인들의 시련기를 짧은 3년 6개월로 언급한 반면에 영광기를 긴 일천년으로 언급하였다.
인내는 고난당하는 자가 수동적인 자세로 체념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영웅처럼 시련을 견디는 것을 말한다. 믿음은 하나님과 맺은 약속을 죽음을 무릅쓰고 지키는 신실함을 말한다. 이를 영어로 faithfulness라고 한다. 문자적인 뜻은 ‘충만한 믿음’(faith+fullness)이다. 계시록 2장 10절,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고한 말씀에서 “충성”은 ‘신실함’이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
데살로니가후서
1장 5절은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고 하였다.
여기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란 말에는 두 가지 역설이 담겨
있다.
첫째, 데살로니가인들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믿고 믿음과 인내로써 신앙의 본을 보였다. 신자들은 심하게 휘둘리고, 불신자들은 오히려 휘두르는 아이러니, 곧 신자보다 불신자들이 세상에서 득세하고 훨씬 잘 풀리는, 그래서 불신자들이 금권과 권력을 휘두르는 아이러니 속에서조차 믿음과 인내로써 신앙의 본을 보였던 것은 반드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시행될 것이라는 증표였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없었다면, 그들이 믿음과 인내로써 신앙의 본을 보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믿음 때문에 당하는 핍박과 환난이야말로 반드시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것이고,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도 있을 것이라는 확실한 증거이다.
둘째, 믿음과 인내는 그 근거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에 있고, 그 결과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얻게 하는 것이다. 데살로니가교회가 모든 환난을 믿음으로 잘 견디고 있다는 사실은 장차 있을 심판에서 그들이 받을 상이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였다. 하나님은 그들의 믿음과 인내를 신원하시고 반드시 예비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실 것이다.
성도들의 믿음과 인내는 불신자들에게 반드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있을 것을 전하는 간접 전도가 된다. 성도들의 강한 믿음과 인내는 박해자들로 하여금 마음속으로 두려움에 떨게 만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그 나라를 위해서 기꺼이 고난에 동참해야 한다. 만일 성도들이 죄 때문에 고난을 받는다면 부끄러운 일이겠지만(벧전 2:20), 그리스도와 그 나라를 위하여 받는 고난이라면 그것은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다”(벧전 1:7).
- 이전글 사랑의 수고20: 인내와 믿음(3)(살후 1:6-12) 17.02.22
- 다음글 사랑의 수고18: 인내와 믿음(1)(살후 1:1-4) 17.02.15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