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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수고20: 인내와 믿음(3)(살후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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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2,882 2017.02.22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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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수고20: 인내와 믿음(3)(살후 1:6-12)

하나님의 공의의 성격

Langenzenn_Stadtkirche.jpg 공의에는 보복(사법)정의와 분배(복지)정의가 있다. 본문에서의 공의는 보복정의에 관한 내용이다. 성서에서 하나님의 공의는 하나님의 사랑과 다르지 않다. 하나님의 공의는 피도 눈물도 없는 잔인한 징벌이 아니고 사랑에 기초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성서가 하나님의 언약백성에 관한 글이고, 구약에 기초한 유대인이든 신약에 기초한 그리스도인이든 하나님과의 관계는 부모자식관계이거나 신랑신부관계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자에게 내리는 징계는 잘못을 뉘우치고 돌이키게 하려는데 목적이 있지, 멸망시키거나 천벌을 내리는데 있지 않다. 그러므로 성서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가장 잘 설명한 것이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이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 그 어느 것도 희생됨 없이 절묘하게 교차(cross)하기 때문이다. 정의도 실현되고 사랑도 실현된 정의로운 사랑이 가장 잘 표현된 상징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반면에 하나님을 적대하고 그분의 자녀를 핍박하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는 그리스로마시대의 정의개념과 다르지 않다. 고대 그리스로마인들은 정의의 여신 디케’(Dike)유스티치아’(Justicia)를 오른손에 양날 검을, 왼손에 천칭 저울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하였다. 영어 ‘justice’는 라틴어 유스티치아’(Justicia)에서 유래되었다. 반면에 응보의 여신 네메시스’(Nemesis)의 손에는 저울대신에 검과 채찍이 들려있기도 하다. 이런 정황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주는 것으로 설명하였다.

하나님의 공의는 회개하지 않는 적대자들에게 재앙으로 응징하신다.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시는 가장 큰 목적은 적대자들의 손아귀에서 당신의 자녀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것이다. 이 재앙은 내세는 물론이고 현세에서도 주어진다.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공의

holy_trinity_estyorkshire.jpg 이 같은 맥락에서 바울은 6-10절에서 너희로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그 날에 그가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받으시고 모든 믿는 자들에게서 놀랍게 여김을 얻으시리니 이는 (우리의 증거가 너희에게 믿어졌음이라)”고 하였다.

성서가 하나님과 맺은 언약서인 관계로 그 내용은 하나님의 언약백성에게 믿음과 인내를 권면하는 글일 수밖에 없다. 히브리서 1026-39절이 대표적이다. 내용은 이렇다. 진리의 지식을 얻은 뒤에 일부러 죄를 지으면, 그 때에는 속죄 제사가 남아 있지 않다. 믿음과 인내를 보이지 못하고 배신했을 때, 남은 것은 무서운 심판과 그들을 삼킬 맹렬한 불뿐이다. 하나님을 처음 믿고, 구원의 빛을 받은 뒤에 그 숫한 고난의 싸움을 견디고 이긴 첫 사랑의 때를 회고해 보라. 그 시절에 모욕과 환난을 당하여 구경거리가 되고, 동일한 처지에 놓인 교우들의 동반자가 되며, 신앙 때문에 감옥에 갇힌 사람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고, 재산몰수를 당하고도 그보다 더 좋고 더 영구한 재산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런 일을 기쁨으로 당하던 시절을 생각해 보라. 인내는 쓰지만, 그 열매는 달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에 불안에 떠는 것은 믿음이 없는 행동이다. 믿음이 있는 행동은 한번 약속한 것을 반드시 지키시는 하나님을 믿고 확신을 가지고 참고 인내하며 용기 있게 전진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나서, 약속하신 큰 상을 받으려면, 인내가 필요하다. 수고를 마치고 인내의 결실을 맺을 때가 멀지 않다. 다시 오겠다고 약속하신 주님께서 오실 날이 멀지 않다. 그분은 결코 지체치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잠시 잠간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10:35-37). 성도들이 붙들고 놓지 아니한 그 희망과 믿음의 끈이 하나님의 공의로 인하여 성도들을 인생의 미로에서 끄집어내 하나님의 나라에로 인도하여 영원한 안식을 얻게 할 것이다.

멸망을 위한 하나님의 공의

angel-with-Trumpet.jpg 이 같은 맥락에서 바울은 11-12절에서 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은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다.

성서가 하나님과 맺은 언약서인 관계로 그 내용은 하나님의 언약백성에게 믿음과 인내를 권면하는 글일 수밖에 없다. 계시록 139-10절이 대표적이다. 내용은 이렇다.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 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고 하였다. 성도에게 인내와 믿음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가? 적대자들이 하나님과 그분의 자녀들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적대자들이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피조물은 결단코 창조주가 될 수 없고, 그분을 이길 수 없다.

둘째, 적대자들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그들 스스로의 것을 가질 수 없다. 그들의 가르침은 언제나 거짓되고, 구원에 미치지 못한다. 세상권세는 권세자 자신의 것이 아닌 하나님의 위임권세로써 잠시 맡겨진 잠정적이고 일시적인 것이며,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시간이 차면, 수명이 다한 기계처럼 그들의 권세는 고철신세가 되고 만다.

셋째, 적대자들의 운명은 이미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시기와 때가 질병과 사망 혹은 쇠퇴와 몰락으로 찾아온다. 게다가 사후와 주의 재림의 때에는 유황과 불과 연기로 타는 불 못에서 영벌을 받게 되어 있다.

계시록의 특징은 죽으면 그만이다가 아니라, 죽은 후에도 그 고난이 세세토록 이어진다는 데 있다. 그리스신화에 묘사된 타르타로스처럼, 지옥에서는 영원토록 안식을 얻지 못하고 고통스런 일들을 끝없이 반복하게 된다.

이 같은 사실을 마음에 새긴 바울은 성도들을 위해서 끊임없이 기도하였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인정받기를 원했고, 하나님은 그들이 믿음으로 세우고 실천하는 모든 선한 목적과 행동에 성공주시기를 간구하였다. 그로 인해서 하나님과 예수님은 성도들로부터 영광을 받으시게 되고, 성도들은 예수님 안에서 영광을 받게 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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