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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수고23: 그리스도의 강림(3)(살후 2: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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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2,630 2017.03.02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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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수고23: 그리스도의 강림(3)(살후 2:13-17)

박해자 데키우스

libellus_decius.jpg 역사적으로 볼 때, 불법한 자 곧 적그리스도가 나타난 것으로 여겨진 때는 250년부터 309년까지 반세기동안 세 차례에 걸쳐서 시행된 대환난 때였다. 데키우스 때 16개월 정도, 발레리아누스 때 3여년 남짓, 정제(아우구스투스황제)였던 디오클레티아누스 때 3여년 남짓, 그리고 부제(카이사르황제)였던 갈레리우스(Galerius)305년에 퇴임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뒤를 이어 정제가 된 때로부터 309년까지 4여년 남짓 박해를 이어갔는데 그것이 기독교가 로마제국으로부터 겪었던 마지막 대환난이었다.

데키우스가 249년에 황제에 오른 때는 로마건국(주전 753) 일천주년에서 겨우 2년 경과한 즈음이었다. 이 시기에 로마는 정치나 경제적으로 상황이 어려웠던 데다가 국경 너머에 사는 민족들이 수시로 제국을 위협하던 때였다. 카라칼라(186-217) 황제는 212년에 선포한 안토니누스 칙령을 통해서 로마시민권을 모든 속주민들에게 나눠줌으로써 자원 입대자를 얻기가 어려워졌고, 독립을 원하는 속주들의 반란과 폭동도 골칫거리였다. 데키우스는 로마가 약화된 원인이 로마가 전통적인 신들을 배신했기 때문에 신들도 로마를 저버린데 있다고 믿었다. 시민들이 신들을 극진하게 섬겼을 때에는 신들이 로마를 보호해주고 도와주었기 때문에 로마가 번영과 영광을 누릴 수 있었지만, 시민들이 신들을 배반하고 섬기지 않게 되자 신들이 진노하여 로마를 돌보지 않기 때문에 로마에 위기가 닥쳐왔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이로 인해서 유일신 야훼를 믿었던 그리스도인들과 유대인들은 무신론자로 단죄를 받게 되었고, 로마를 약화시킨 원흉으로 지목을 받게 되었다.

데키우스는 칙령을 선포하여 모든 시민들에게 로마의 신들 앞에 나가서 그들 앞에 제물을 바치고 황제의 신상에게 분향을 한 후에 짐승의 표인 증서(libellus)를 받으라고 명령하였다. 알렉산더 대왕이 생전에 아몬-제우스(Ammon, 산양)로 숭배된 것에서 보듯이 계시록에서 말한 짐승(아몬)과 뿔은 황제를, “짐승의 표는 황제의 증서를 말한다.

박해자 발레리아누스와 디오클레티아누스

Domitian_denarius_son.jpg 257년에 황제에 오른 발레리아누스는 데키우스의 종교정책을 이어나갔다. 발레리아누스는 질병과 흉년이 든 책임이 기독교 때문이라고 믿었다. 기독교가 로마의 전통적인 신들을 섬기지 않기 때문에 신들이 진노하여 생긴 일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로마의 전통적인 신들은 자신들에게 충실했던 데키우스와 발레리아누스를 보호하고 지켜주지 않았다. 데키우스는 자신의 아들과 함께 고트족과 펼친 늪지대 육박전에서 전사한 후 시체도 찾지 못하였고, 발레리아누스는 페르시아군대에 나포되어 노예취급을 당하였다.

동방지역의 정제(아우구스투스)였던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자신의 휘하에서 부제(카이사르)를 지냈던 갈레리우스의 간언을 받아드려 그리스도인들을 탄압하기 시작하였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처음엔 기독교에 대해서 우호적이었다. 황후 프리스카(Prisca)와 공주 발레리아(Valeria)가 그리스도인이었고, 신하들 가운데도 그리스도인들이 다수 있었기 때문이다.

로마군대가 강할 수 있었던 원인들 가운데 하나는 양질의 보조병들을 속주민들 가운데서 뽑아 15-25년간 장기 복무시킨 후에 그 보상으로 시민권을 수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212년에 선포된 안토니누스 칙령이후 속주민들 가운데 보조병으로 자원입대하려는 자들이 줄어들게 되자 자구책으로 군인 자녀들에게 세습제를 적용하여 강제로 입대시켰다. 강제입대당한 군인들 가운데는 그리스도인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박해가 시작된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입대를 기피하거나 입대한 후에도 탈영하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한명이 <순교자 행전>(Acta Martyrum)에 실린 막시밀리아누스였다. 그는 295년에 북아프리카 누미디아 속주도시인 테베스테에 거주하는 세무공무원이었다. 병사였던 아버지를 두었기 때문에 신장이 150센티미터밖에 되지 않은 22세의 청년 막시밀리아누스는 입대를 했어야했지만, 두 분의 ()과 주()’ 즉 그리스도와 카이사르를 동시에 섬길 수 없다며 끝까지 입대를 거부했고, 즉결처형을 당했다. 이미 입대한 그리스도인 병사들도 배교를 거부하거나 탈영을 시도함으로써 사태를 키웠다. 갈레리우스는 303년에 이르러 로마제국내의 모든 관직에서 그리스도인들을 축출하게 해달라는 건의서를 디오클레티아누스에게 올렸고,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이를 재가하였다.

박해자 갈레리우스

Hadrian_visit_Judea.jpg 황제의 칙령에 따라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관직에서 파면되었고, 예배당과 기독교문서들은 모두 압수되거나 소각되었다. 이에 그리스도인들은 강하게 반발하였고, 이를 진압하려는 칼바람이 전역을 휩쓸었다. 이 박해는 305년 디오클레티아누스를 대신해서 정제에 오른 갈레리우스가 309년 급병으로 쓰러지기까지 지속되었다.

갈레리우스는 외음부에서 시작된 화농증이 창자로 퍼졌고, 상처에는 벌레가 들끓고 악취가 진동하게 되었는데, 한 측근이 말하기를 황제의 고통이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하나님의 응보 때문이므로 하루속히 탄압을 멈춰야한다고 충언하였다. 결국 갈레리우스는 주후 311430일 기독교탄압을 중지하라는 칙령을 선포하였고, 그로부터 5일 후에 유명을 달리하였다. 그로부터 2년 후인 313년에 콘스탄티누스가 선포한 밀라노칙령에 의해서 그리스도인들은 드디어 신앙과 결사에 대한 완전한 자유를 보장받게 되었고, 몰수당한 재산들을 환수 받았으며, 피해보상도 받게 되었다.

13-15절,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이를 위하여 우리의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는 말씀에서 보듯이,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결단코 버려두지 않으시고 끝내 구원에 이르게 하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뿐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지만,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 하나님의 우편보좌에 앉으시고 영광을 받으시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그분을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약속하시기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계 3:21)고 하셨고,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고 하셨다. 그러므로 바울도 15-17절에서 데살로니가인들에게 축복하기를, “형제들아 굳건하게 서서 말로나 우리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전통을 지키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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