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수고09: 사랑의 수고(6)(살전 2:10-13)
본문
사랑의 수고09: 사랑의 수고(6)(살전 2:10-13)
가치관과 관점
가치관이란 값을 매기는 관점을
말한다.
그런데 이 값을 매기는
관점이란 것이 일정치 않아서 마치 색안경과 같다.
어떤 색깔의 안경을
쓰느냐에 따라서 보이는 색깔이 달라지는 것과 같다.
관점에 차이가 생기는 이유는 기준이 달라서 그렇다. 어떤 사람에게는 어떤 기준이 있는가하면, 다른 사람에게는 아예 기준이 없기도 하다. 기준이 있으면 객관성이 높아지고, 기준이 없으면 주관성이 높아진다. 그런데 그 기준이란 것이 종류가 다양해서 과연 무엇이 믿고 따를만한 것인가를 알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지 않다. 아무튼 사람들은 제각기 나름의 기준에 따라 관점을 갖고 있고, 그것에 따라서 가치에 대한 판단을 다르게 하고 있다. 그렇다면 각기 다른 기준을 하나로 통일시킬 방법은 없을까? 통일된 기준, 통일된 관점, 통일된 가치관을 갖는 것이 가능한가?
유대인들은 수천 년 전부터 토라(율법)를 문자적으로 수용하고 있어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민족적 통일성과 연대감을 갖는다. 유대인의 경우에서처럼 경전은 절대적인 규범을 제공한다. 경전에 대한 해석의 차이를 인정한다 해도 그것이 판단의 엄격한 기준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같은 종교인끼리는 상당한 통일성을 갖는다. 그러나 경전들 사이에도 질적 차이를 피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이 공공선, 공동체의 행복, 사람들의 미덕에 끼치는 영향이 어떤가에 따라서 그 가치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필자는 세상을 살리고 생명을 살리는 신약성서가 모든 경전들의 백미(白眉)임을 확신한다.
경전은 규범을 제공함으로 경전을 기준으로 삼을 경우 절대주의가 되지만, 진화론과 무신론에 기초한 공리주의, 실용주의, 자유지상주의 등은 사실상 규범이 없으므로 유용성(principle of utility)이나 실용성과 같은 결과가 기준이 된다. 예를 들어,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이자 실험심리학자, 뇌신경과학자, 철학자인 조슈아 그린(Joshua D. Greene)은 지난 2013년에 출간한 <도덕적 부족들>(Moral Tribes: Emotion, Reason, and the Gap Between Us and Them)이란 저서에서 현대를 "신의 뜻을 알 수도 없고, 논리적으로 도덕적인 진리를 연역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실용적인 공리주의로 갈등을 풀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세속적 가치기준
세상이 아무리
선진화되고,
도덕적 가치를 중시하게
된다할지라도 그것이 성경적 가치 또는 기독교적 가치와 일치하는지의 여부를 분별하지 못하면 세속적 가치에 휘말리게 된다.
민주사회일수록 정부는
충돌하는 가치에 대해 중립원칙을 지키게 되고,
상반된 의견을 가진
진보보수 좌파우파 사이에는 가치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게 된다.
예를 들어서
세속인본주의자들은 생명을 인간이 만든 창조물로 여기면서 인간의 의도에 따라 자율적으로 삶을 살거나 죽음을 택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는다.
그들은 생명이 하나님의
선물이 아니라,
그 생명을 가진 개인의
소유물이라고 믿는다.
그러므로 낙태나 자살이
개인의 선택사항 즉 개인의 권리라고 강조한다.
반면에 그리스도인들은
생명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인간은 의무감을 갖고 그 생명을 기키는 청지기라고 믿는다.
그리스도인들은 존재하는
모든 것의 소유권이 창조주께 있다고 믿기 때문에 내 몸의 결정권조차 내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다고 믿는다.
나의
삶,
나의
노동,
나의
가족,
나의
소유,
이 모든 것이 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것이고,
나의 것이
아니며,
나는 이 땅에 사는
동안 잠시 맡아서 관리하는 청지기에 불과하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내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고 하나님의 뜻,
즉 성경적 가치에
따라야 한다고 믿는다.
또 인간은 수단으로
이용되어서는 안 될 신성한 선물이므로 낙태,
자살,
안락사 등을 함부로 할
수 없다고 믿는다.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할지 여부를 스스로 선택할 권리가 인간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세속인문주의자들은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사생활보호권,
자율권,
자기결정권 등을 강하게
요구한다.
이런 요구 속에는
인권이란 이름으로 동성혼과 같은 성소수자(GLBT)의 권리도 포함된다.
현대사회에서 도덕적
가치나 윤리의식은 갈수록 그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기술 의술 등 모든 분야가 도덕적 가치의 기반에서 출발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이런 추세에 힘입어
우리나라도 제반 분야에 윤리위원회를 설치하고 활동하게 하고 있다.
이럴수록 그리스도인들이
인식해야할 것은 도덕적 가치기준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기준이 잘못되면 모든
것이 잘못될 수 있다.
그것은 마치 치수를
속인 잣대나 용량을 속인 됫박과 같아서 한번 기준치수가 잘못되면 언제나 잘못될 수밖에 없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아무리
그럴싸한 논리로 옳음과 그름,
정의와 불의를
말하고,
윤리(도덕)와 비윤리(비도덕)를 말한다할지라도 바른
기준(규범)을 갖지 못하면 기만하고 기만당하는 것에
불과하다.
성경적 가치기준 또는
기독교적 가치기준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스도인의 가치기준
규범의 중요성은 신경심리학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신경심리학이란 뇌와
마음의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원초아(id)와 리비도(libido)는 본능적인 생체 에너지로써 뇌의 시상하부가
관장한다.
이 영역은
도덕,
선악,
논리적 사고가 존재하지
않는 DNA에 담긴 생존본능의 영역으로써 생존에는
절대적이지만,
정신에서는 최하위의
영역이다.
시상하부는 입천장의
위쪽에 위치한 아몬드 크기의 조직으로써 자율신경계와 내분비계를 통제하고,
생존과 관련된
식욕,
성욕,
자기방어기제의 본능적
행동들을 유발시킨다.
그러나 만일 인간에게
본능만 있고 그것을 통제할 이성이 없다면,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일
수 없고,
동물에 불과하게
된다.
여기서 이성 곧 생각과
마음에 관련된 영역은 후천적인 경험과 학습으로 형성되는 자아(ego)와 초자아(superego)이다.
자아는 대신(對神) 대인관계에 관여하는 ‘나’(self)를 말한다. ‘나“를 만드는 생각(마음)과 감정은 기억으로 인해서 형성된다. 이 기억은 뇌의 해마, 편도 및 대뇌피질에서 관장한다. 해마는 단기 기억에, 대뇌피질은 장기 기억에, 편도는 본능적 공포기억에 관장한다. 자아의 원천은 생각이고 생각의 원천은 기억이다. 생각과 기억이 자아를 만든다. 그리고 자아는 의식을 지배한다.
그러나 ‘나’를 도덕적이고 이성적으로 만드는 일은 초자아가 맡아한다. 초자아에 해당되는 뇌는 전전두엽이다. 전전두엽은 이마 가장자리 부분에 있는 대뇌피질을 말하며, 판단력, 추리력, 분별력, 상상력, 분석력 등이 도출되는 이성이 지배하는 부위이다. 그리고 이들 초자아와 전전두엽은 양심과 이성에 관여하며, 관습, 전통, 규범 등에 의해서 형성된다. 초자아가 원초아와 자아를 통제한다면, 이성의 뇌인 전전두엽은 본능의 뇌인 시상하부를 통제한다. 동물은 시상하부가 발달된 반면에 전전두엽이 발달되지 못해서 본능제어에 한계가 있지만, 만일 사람이 충동과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다면, 전전두엽이 학습을 받지 못해서이다.
시상하부는 길들여지지 않지만, 전전두엽은 길들어진다. 전전두엽이 학습을 받지 못하거나 잘못된 학습을 받게 되면, 시상하부의 노예로 살게 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도덕적 가치기준으로써 성서와 절대규범의 가치는 숙고되어야 한다. 유용성이나 실용성과 같은 결과를 기준으로 삼는 무신론과 진화론에 기초한 공리주의, 실용주의, 자유지상주의로는 인간의 본능적인 권력(權力)에의 의지를 제어할 수 없고, 불의, 불평등, 갈등 같은 악행을 막을 길이 없다. 그러나 신약성서는 인간의 욕망을 제어하고, 정의, 평등, 사랑 같은 선행에 있어서 절대규범이 되기에 완벽한 하나님의 말씀임을 그리스도인들은 체험으로써 깊이 깨닫고 있다.
- 이전글 사랑의 수고24: 사도전통대로(1)(살후 3:1-5) 17.03.08
- 다음글 사랑의 수고23: 그리스도의 강림(3)(살후 2:13-17) 17.03.02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