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생명교회 주일설교

KCCS Digital Archive의 자료와 게시판을 분류별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설교자료 빛과생명교회 주일설교 KCCS Digital Archive

사랑의 수고24: 사도전통대로(1)(살후 3:1-5)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조동호
댓글 0 조회 13,490 2017.03.08 08:56

본문

사랑의 수고24: 사도전통대로(1)(살후 3:1-5)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선포한 콘스탄티누스 대제

constantine_the_great_coin_337.jpg 데살로니가후서 31-5절의 바울의 기도는 4세기에 모두 성취되었다. 1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퍼져 나가 영광스럽게 되고2우리를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시옵소서3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건하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한 기도가 역사적으로 성취되었다.

바울의 기도대로 주의 말씀은 로마제국 전역으로 퍼져나가 영광스럽게 되었고, 그리스도가 주시는 샬롬의 평화가 넘쳐나게 되었다. 기나긴 박해시대의 종결은 3132월 콘스탄티누스1(272-337)와 리키니우스(Licinius)가 밀라노에서 회담하고 6월에 발표한 칙령으로 이뤄졌다. 이 밀라노칙령으로 인해서 모든 종교인의 집회와 결사의 자유가 허락되었고, 몰수당한 교회의 재산들이 반환되었으며, 기독교탄압을 위한 법안들도 모두 폐지되었다.

밀라노칙령이 발표되기 8개월 전인 3121028일 콘스탄티누스와 막센티우스가 로마 근교의 밀비우스 다리에서 전투를 치른 일이 있었다. 이 전투에서 콘스탄티누스가 대승을 거둠으로써 사두정치체제를 끝내고 단독 황제가 되는 발판이 마련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밀비우스 다리 전투 직전에 콘스탄티누스는 환상을 보았고, 즉각 군기(labarum)와 군인들의 방패에 그리스도(XPISTOS)의 첫 두 글자 -’(XP=CHR)를 겹쳐 새기게 하였더니 대승을 거두게 되었다고 한다. 동시대의 인물로서 가이사랴의 주교이자 최초로 교회사를 저술한 유세비우스(Eusebius)는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이 환상을 본 직후부터 -가 새겨진 투구를 즐겨 썼다고 기술하였다.

유세비우스의 진술을 입증할만한 은화가 315년에 이태리 북부 티키눔(Ticinum)에서 발행된바 있다. 이 은화는 증정용으로 만들어져 널리 통용되지는 않았지만 이 은화의 가치가 큰 이유는 312년에 콘스탄티누스가 그리스도의 환상을 보고 -를 군기와 방패에 새기게 한지 불과 3년 이내에 주조된 것이기 때문이다. 또 이 은화에 새겨진 황제의 투구벼슬에서 -가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환상을 본지 25년 후인 337년에 발행된 주화 앞면에 월계관을 쓴 옆얼굴 둘레에 콘스탄티누스 대제 아우구스투스”(CONSTANTINVS MAX AVG)라고 썼고, 뒷면에 뱀을 찍어 누른 군기사이에 대중의 희망 콘스탄티노폴리스”(SPES PUBLICA CONS)라고 쓴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군기 상단에는 콘스탄티누스가 환상에서 본 그리스도(XPISTOS)의 첫 두 글자 -’(XP)를 겹쳐서 썼다. 이후 -는 교회와 비잔틴제국의 황제들이 즐겨 사용한 그리스도의 상징이 되었다.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한 테오도시우스 대제

theodosius_the_great_coin.jpg 박해시대를 종결지은 밀라노칙령이 발표된 지 80년 만에 기독교는 로마제국의 국교로 승격되었다.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한 인물은 테오도시우스1세였다. 테오도시우스는 원래 동로마제국의 황제였으나 4개월에 불과했지만 서로마제국까지 다스렸던 마지막 황제였다. 그 후 로마제국은 동서로 분리되어 다시는 통일되지 못하였다.

379년경 테오도시우스가 통치하던 동로마 제국 내에는 삼위일체론(니케아신조)을 옹호하는 그리스도인들과 단일신론을 주장하는 아리우스파 사이에 적대관계가 고조되면서 복잡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테오도시우스는 심한 병에서 회복된 뒤 380년에 침례를 받았고,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주선으로 325년에 만들어진 최초의 신앙고백서이자 삼위일체신앙을 강조한 니케아신조를 신봉하게 되었다. 테오도시우스는 그 누구의 자문을 구하지도 않고 380228일에 모든 시민이 니케아신조를 고백하라는 칙령을 발표하였다. 이때부터 삼위일체론을 믿는 신자들만 보편적(catholic) 그리스도인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가톨릭이라는 호칭이 문서에 등장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이뿐 아니라, <미사경본>의 성만찬 기도문 제1양식과 암브로시우스 예전과 같은 예배의식이 발전되기 시작한 것도 이 때였다. 무엇보다도 이 시기는 불세출의 인물들인 밀라노의 주교 암브로시우스와 히포 레기우스의 주교 아우구스티누스(어거스틴)가 교회를 빛내던 시기였다.

테오도시우스는 381년에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를 개최케 하여 주교 150명이 아리우스파를 이단으로 확정케 하였으며, 콘스탄티노폴리스 교구가 로마 교구와 버금가는 명예와 권위를 갖게 하였다.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385년부터 동물제사를 엄격히 금지시켰고, 391년에 로마와 이집트에서 이교숭배를 금지시켰으며, 392년에는 공적이든 사적이든 모든 형태의 이교숭배를 제국의 전역에서 불법으로 규정하였다. 이후 로마제국에서는 비기독교 신앙이 완전히 단절되었고, 그 어떤 비기독교 신앙도 출현하지 못하였다. 이뿐 아니라, 테오도시우스는 올림픽경기를 금지시켰고, 주화에 십자가를 새겨 통용시킨 테오도시우스의 손자인 테오도시우스2세 때에는 제우스 신전을 비롯한 많은 신전들이 훼손되기에 이르렀다. 이로써 한때 신화에 바탕을 두고 3만이 넘는 우상들을 섬겼던 이탈리아는 서방교회 또는 가톨릭교회라는 이름으로, 그리스는 동방정교회라는 이름으로 오늘날까지도 기독교를 국교로 삼고 있다.

만왕의 왕, 승리자 예수 그리스도

byzantine_coins.jpg아몬-제우스, 제우스(유피테르)의 현현, 아폴론 혹은 태양신 헬리오스, “()과 주()”라고 주장하며 제물과 분향과 관제의 부음을 받던 황제들은 모두 죽었고, 기독교를 심하게 탄압했던 대다수 황제들의 끝은 매우 불행하였다. 반면에 그리스도를 뜻하는 헬라어문자 -’(XP)를 군기와 방패에 그려 전투에 임한 콘스탄티누스는 승리를 거둔 후 황제의 반열에 올랐고, 그로써 기나긴 박해시대의 대단원의 막을 내렸으며, 비로소 기독교는 313년에 합법적인 종교가 될 수 있었다. 그로부터 80여년이 지난 392년에 테오도시우스 대제는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국교로 선포하였고, 이후 그리스도를 뜻하는 헬라어문자 -’(XP)와 십자가 형상은 비잔틴제국이 기독교국임을 나타내는 핵심 기호가 되었다. 복음서를 가슴에 앉고 계신 그리스도와 헬라어문자 만왕의 왕,’ ‘승리자가 주화에 새겨져 온 제국에 선포되었다. 역사는 성삼위 하나님을 대항하여 이길 자가 없다는 것,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성령님은 반드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입증하였다. 성삼위 하나님은 결코 실패를 모르신다.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고, 혼돈이 질서를 이길 수 없으며, 죽음이 생명을 이길 수 없는 이유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짐을 받고”(2)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5) 되며, 끝내는 영광의 승리자가 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