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와 기쁨05: 빌립보 교회(3)(빌 1: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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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와 기쁨05: 빌립보 교회(3)(빌 1:12-30)
위기는 곧 기회
바울이
3차 선교를 마친 후 예루살렘교회를 돕기 위해
거금을 가지고 고린도를 출발하여 예루살렘에 도착한 주후 58년 오순절 무렵에 성전에 있다가 유대인들의
모함으로 로마군에 체포되어 유대총독부에 2년간이나 미결수로 수감되어
있었다.
로마시민권자였던 바울은
로마총독이 자신을 처형시켜달라는 유대당국자들의 강력한 요구를 마냥 무시할 수 없고,
게다가 로마총독이
자신을 풀어줄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고,
네로황제에게 상소하여
로마로 이송되어 재판이 열릴 때까지 또 다시 2년 가까운 기간을 미결수로서 셋집에 갇히게 된
상황을 빌립보인들은 크게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어떤 이들은
바울이 ‘주와 그리스도’로 선포한 예수님이 “주와 하나님”(Dominus
et Deus)으로
선포한 카이사르보다 못한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까지 품었다.
이에 바울은 진정한
만유의 주 예수 그리스도님의 사도인 자신이 “주와 하나님”으로 자칭하는 로마황제의 병사들에 의해
수감되어 있지만 그것은 패배가 아니라 오히려 승리를 위한 발판임을 빌립보인들에게 알리고자 하였다.
또 바울은 자신의 오랜
수감생활이 복음전파에 심대한 타격을 입히게 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서 자신의 수감생활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복음에 진전이 있었음을 알리고자
하였다.
12절,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가 바로 그런 뜻이다. 여기서 바울이 “당한 일”은 옥에 갇힌 것을 뜻하며, 그 일이 복음전파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성도들의 우려와는 달리 “도리어 복음전파에 진전을” 가져왔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진전’은 공병대가 길을 개척함으로써 군대가 원활히 전진하는 것을 묘사하는 말로써 바울은 자신의 수감생활이 그 같은 결과를 가져왔음을 확신하였다. 로마제국은 바울을 가둘 수는 있었지만, 그가 전한 복음까지 그와 함께 가두지 못하였다. 그것이 인간의 한계이다. 하나님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인간에게 묶이지 않으시며 실패와 오류가 없으시다.
바울은 유대인들의 시기로 인해서 수감된 것이지, 그 어떤 범법행위 때문에 수감된 것이 아니었다. 바울은 13절에서 그 같은 사실, 곧 바울이 “그리스도 때문에 갇혀 있다는 사실이 온 경비대와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다.”고 밝혔다. 게다가 14절, “형제 중 다수가” 바울의 수감생활에 위축되지 아니하고 오히려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상이한 상황인식과 판단
바울은 주후 57년 말 58년 초 겨울에 ‘복음의 진수’를 담은 로마서를 작성하여 인편으로
보냈다.
그로부터
2년 후에 바울이 로마로 이송되어 셋집에
수감되었기 때문에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로마서 회람을 끝낸 상황이었다.
그들이 로마서를 어떻게
이해했는가에 따라서 바울에 대한 태도가 달랐을 것이다.
로마에는 유대인들이
많았고,
로마교회를 시작한
사람들도 유대인들이었다.
그들은 바울이
58년 초여름부터 수감생활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에게
위해(危害)를 가한 사람들이 다름 아닌 유대인들이란
사실도 알고 있었다.
만일 그들이 로마서를
읽고,
그 뜻을 충분히
이해했다면,
바울의 수감생활이 매우
억울하고 부당할 뿐 아니라,
그로인해서 벌써 수년째
바울이 선교활동에 제약을 받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을 것이다.
바울이 전파한 복음에
공감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바울의 공백을 메우겠다는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한”(15절)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바울이
“복음을 변증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16절)
복음을 전파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공개재판을 통한
바울의 변증이 기독교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줄 것이라고 믿었다.
따라서 이들은 바울의
편에 서서 복음을 힘써 전파하였다.
반면에 “투기와 분쟁으로”(15절) 복음을 전파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도 있었다. 이들은 바울의 수감생활과 공개재판이 가져올지도 모를 부정적 영향에 촉각을 세운 사람들이었다. 당대에 유대교는 합법종교였지만, 기독교는 불법종교였다. 지난 30여 년간 기독교는 합법종교였던 유대교에 편승하여 세력을 펼쳐나가고 있었고, 실제로도 많은 유대인들이 기독교를 유대교의 한 분파로 믿고 있었다. 그러나 바울이 전파하는 복음으로 인해서 이 안전장치가 자칫 사라질 판이었다. 만일 이 우려가 현실로 드러나게 된다면, 기독교는 큰 위험에 빠지게 된다. 따라서 이들은 바울의 반대편에 서서 바울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였다”(17절).
상이한 상황인식과 판단에 대한 바울의 태도
이처럼 상이한
상황인식과 판단에 대한 바울의 태도는 매우 긍정적이었다.
착한 마음으로 하든지
투기와 분쟁으로 하든지,
사랑으로 하든지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하든지,
겉치레로 하든지 참으로
하든지,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18절)고 하였다.
이어서 바울은
19절 이하에서 자신이 왜 기뻐하고
있고,
앞으로도 기뻐할
것인지를 설명하고 있다.
첫째,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한” 자나 “투기와 분쟁으로” 복음을 전파한 자들 모두가 복음을 이롭게 하려는 자들이었고, 기독교를 변호하고 그리스도를 전파한다는 점에서 같았기 때문에 기뻐할 수 있었다.
둘째, 하나님께서 욥을 부당한 곤경에서 구원하시고 그의 의로움을 입증하셨듯이, 바울은 자신을 곤경에서 구원하여 주시고 자신의 정당성과 복음의 타당성을 입증해 보여주실 것을 확신하였기 때문에 기뻐할 수 있었다. 바울은 욥기 13장 15-16절(바른), “주께서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분을 소망하니, 그 분 앞에 내 행위를 변호할 것이다. 이것이 나에게 구원이 될 것이다”에 근거하여 자신의 기대와 소망을 하나님께만 두었다. 따라서 바울은 19절에서 “이것이 너희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안다”고 말하며, 중보기도를 요청하였다.
셋째, 바울은 세상을 살리고 생명을 살리는 데 요긴한 깨끗한 복음의 걸레, 이를 위해서 생사를 주님께 맡겨버리는 굳건한 믿음의 버팀목, 이 일에 본을 보이시려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뜨거운 심장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기뻐할 수 있었다. 바울의 신념은 확고하였다. 바울은 “살든지 죽든지” 자신이 거둘 열매는 오로지 자신의 “몸에서 그리스도께서 존귀하게 되는 것”(20절)이고, 성도들의 “믿음의 진보와 기쁨”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자랑할 거리가 풍성하여 지는 것”(25-26절)이라고 믿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빌립보인들에게 자신처럼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27-30절)고 권면하였다. 그리스도인들은 일치된 마음으로 복음의 내용을 사수하고 대적하는 자들에게 겁먹지 말라고 하였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님께로부터 특권을 받은 자들인데, 이것은 그리스도의 나라의 시민권자가 되는 특권일 뿐 아니라, 그 나라를 목숨 바쳐 지켜야하는 특권이라고 하였다(2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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