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와 기쁨06: 한 몸처럼 행진하는 교회(1)(빌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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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와 기쁨06: 한 몸처럼 행진하는 교회(1)(빌 2:1-4)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는 권면(paraklesis)
빌립보서
2장 1절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에서 “권면”은 헬라어 ‘파라클레시스’(paraklesis)를 번역한 말이다.
이 말은 신약성서에 총
29회 사용되었는데,
‘위로’(consolation)의 뜻으로 14회,
‘권고’(exhortation)의 뜻으로 8회,
‘위안’(comfort)의 뜻으로 6회,
‘간청’(entreaty)의 뜻으로 1회 번역되었다.
사도 요한은 ‘파라클레시스’와 어원이 같은 ‘파라클레토스’(parakletos)란 단어를 총 다섯 번(요 14:16, 26, 15:26, 16:7, 요일 2:1) 썼는데, 한글성경에서는 ‘보혜사’(개역개정, 표준새번역), ‘협조자’(공동번역), ‘보호자’(가톨릭성경), ‘대언자’(개역개정), ‘변호자’(바른)로, 영어성경에서는 ‘위로자’(KJV), ‘상담자’(NIV), ‘돕는 자’(NKJV, NASB), ‘옹호자’(TNIV, NRSV) 등으로 번역되었다. ‘권면’으로 번역된 ‘파라클레시스’와 ‘보혜사’로 번역된 ‘파라클레토스’(parakletos)는 모두 동사 ‘권면하다’와 ‘위로하다’로 번역되는 ‘파라칼레오’(parakaleo)에서 나온 명사들이다. ‘파라칼레오’는 문자적으로 ‘곁으로(para) 부르다(kaleo)’는 뜻이다. 누군가를 곁으로 부르는 사람은 부름 받은 사람으로부터 도움을 받으려는 인물이고, 누군가로부터 부름을 받은 사람은 자기를 부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려는 인물이다.
권면의 목적은 협조자, 보호자, 위로자, 상담자, 돕는 자, 옹호자 등이 도움을 받는 이에게 “알아듣도록 권(exhort)하고 격려(encourage)하여 힘쓰게(exert oneself for) 하고,” 충고가 섞인 위로의 말로 권위(勸慰)하여 안정을 찾도록 하는데 있다. 그리고 권면의 목표는 권면을 받는 사람이 구원을 받게 하는데 있다. 권면의 내용은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는 예언과 설교가 가장 대표적이다. 성경은 이 권면의 내용을 담고 있는 글로써 하나님의 백성에게 회개와 회복을 선포하고, 신실한 믿음과 인내를 촉구한다. 권면의 방법은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여한다. 올바른 권면은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보여준 본을 따라 자기 권리와 자유를 제한하고, 자기 낮춤과 동일시에서 행하는 권면, 헌신적이고 이타적인 권면, 세상을 살리고 생명을 살리며 사람을 살리는 권면, 어둠이 빛 되고 혼돈이 안정 되며 죽음이 생명 되게 하는 권면이다. 이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는 권면은 세상을 살리고 생명을 살리며 사람을 살려내 결과적으로 구원에 도달하게 한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베푸는 위로(paramythion)
“사랑의 무슨 위로나”에서 “위로”는 헬라어 ‘파라뮈디온’(paramythion)을 번역한 말이다.
‘파라뮈디온’은 헬라어 동사 ‘위로하다,’
‘권고하다,’
‘편안하게
하다’로 번역되는 ‘파라뮈데오마이’(paramytheomai)에서 나온 명사이다.
‘파라뮈데오마이’는 문자적으로 ‘곁에서(para)
말하다(mytheomai)’
또는
‘누군가에게 친근한 방식으로
말하다’는 뜻이다.
여기서 파생된 의미가
‘권고하다’(admonish)와 ‘위로하다’(console)이다.
여기서
‘권고하다’는 촉구하다,
격려하다,
설득하다,
납득시키다 등의
뉘앙스를 갖고 있다.
또
‘위로하다’는 응원하다,
기운 나게
하다,
누그러뜨리다,
해결하다,
진정시키다,
만족시키다,
보상하다 등의 뉘앙스를
갖고 있다.
‘권면’으로 번역된 ‘파라클레시스’와 “위로”로 번역된 ‘파라뮈디온’이 모두 권고와 위로의 뜻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에 차이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본문에서 ‘권면’이 ‘위로’보다 먼저 언급된 것에서 보듯이, 동사 자체로만 보면, ‘권고하다’와 ‘위로하다’로 번역되는 ‘파라뮈데오마이’가 ‘권면하다’와 ‘위로하다’로 번역되는 ‘파라칼레오’의 보조적인 동사이다. 게다가 ‘권면하다’와 ‘위로하다’로 번역되는 ‘파라칼레오’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위로나 종말론적이고 궁극적인 구원에서 오는 위로에 쓰인 반면에 ‘권고하다’와 ‘위로하다’로 번역되는 ‘파라뮈데오마이’는 언제나 이 세상에서 이뤄지는 사랑의 위로나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으로 나누는 위로에 쓰였다. 이런 몇 가지 차이점들을 감안해볼 때, 개정개역성경에서 ‘권면’으로 번역된 ‘파라클레시스’(paraklesis)가 ‘위로’로 번역된 ‘파라뮈디온’보다는 훨씬 더 중요한 명사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본문에서 “사랑의 무슨 위로”라고 말한 것은 세상이 주는 것보다 월등하게 뛰어난 위로, 곧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으로 나누는 위로(comfort from his love, NIV)를 뜻한 것이다.
성령의 교제(koinonia)와 긍휼(sphlangchnon)과 자비(oiktirmos)
“성령의 무슨 교제”에서 ‘교제’로 번역된 헬라어 ‘코이노니아’(koinonia)는 ‘~를 공유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교제가
소유격으로 성령님에게 묶일 때는 성령님이 주도하여 그리스도인들이 나누는 교제를 뜻하거나 그리스도인들이 주도적으로 성령님 안에서 나누는 교제를
뜻한다.
바울에게 있어서 성령님의 예표는 구름기둥에 있다. 바울은 히브리인들이 이집트에서 벗어나 홍해를 건넌 후 광야생활에 접어들었을 때부터 그들을 가나안 땅에로 인도하여 드린 구름기둥을 성령님의 모형과 그림자로 보았다. 히브리인들은 구름기둥이 움직이거나 정지하는 행동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같은 마음과 같은 행동을 취하였고, 구름기둥이 정지하는 곳에서 행진을 멈추고 텐트를 쳤으며, 구름기둥이 움직이면 텐트를 정리한 후 행진에 나섰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도 예수님을 믿고 죄를 회개하고 신앙을 고백하고 침례를 받은 후 교회생활에 들어선 때로부터 그들을 하늘 가나안땅에로 인도하여 드릴 성령님을 선물로 받는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다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신”(고전 12:13) 한 몸 그리스도의 지체들로써 각자의 역할을 일사분란하게 수행하면서 하늘 가나안땅에로 행진하는 행위를 일컬어 성령님의 교제라고 말하였다.
“긍휼과 자비”에서 ‘긍휼’로 번역된 헬라어 ‘스플랑크논’(sphlangchn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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