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생명교회 주일설교

KCCS Digital Archive의 자료와 게시판을 분류별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설교자료 빛과생명교회 주일설교 KCCS Digital Archive

감사와 기쁨11: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교회(2)(빌 3:10-16)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조동호
댓글 0 조회 13,572 2017.05.03 08:21

본문

감사와 기쁨11: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교회(2)(3:10-16)

가장 고상한 지식(2)

runningman_Miletos.jpg 바울은 빌립보서 33-9절에서 율법과 믿음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하늘 가나안땅에 들어갈 합당한 의는 율법의 행위로써얻는 인간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얻는 하나님의 의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율법의 행위 곧 육체의 것들을 신뢰함으로써는 하늘 가나안땅으로 인도해줄 가장 고상한 지식을 얻을 수 없다고 하였다. 8절에서 언급된 가장 고상한이란 말은 헬라어 휘페레콘’(hyperecon)을 번역한 말로써 탁월함혹은 능가함이란 뜻으로써 아는 것이 힘이다는 말이 있듯이, 예수님을 아는 것의 위대함을 말한다.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신뢰하는 믿음의 위대함을 말한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가 우리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지혜가 되는 것의 위대함을 말한다. 예수님이 하늘 가나안땅에로 가는 길과 진리와 생명이라는 것을 아는 것의 위대함을 말한다. 예수님이 하나님께로 가는 길과 진리와 생명이라는 것을 아는 것의 위대함을 말한다. 바울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위대함을 발견했기 때문에 이전에 자신이 신뢰했던 것들, 또 자신에게 유익했던 것들, 곧 율법의 행위들과 육체의 것들을 해()로 여기고, 배설물로 여길 수 있었다. “배설물이란 말은 헬라어 스퀴발라’(skybala)를 번역한 말로써 ,’ ‘음식찌꺼기,’ ‘쓰레기등을 의미한다. 바울이 이렇게 이전에 자신이 신뢰했던 것들, 또 자신에게 유익했던 것들을 버린 것은 구원의 능력과 지혜가 되는 그리스도를 얻고자신이 그분 안에, 주님 안에 머물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주님 안에서 승리자들이 누리는 기쁨보다 더 넘치는 기쁨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바울은 10-11절에서 "나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부활의 능력과 그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을 알고자 하여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고자 한다."고 피력하였다.

이미아직사이의 긴장

hoplitodromos.jpg 12-14,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고 한 말씀은 216,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고 강조한 말씀을 보충한 것이다.

바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이미아직사이의 긴장 곧 환난과 역경을 극복하면서 하늘 가나안땅을 향해서 달려가는 삶이다. “푯대를 향하여하늘 가나안땅을 향하여그리스도의 나라의 성취를 향해서라는 뜻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죄를 회개하고, 신앙을 고백하고, 침례를 받아 영적으로 이미’(already)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이 되고, 하나님나라의 시민권자가 되었지만, 그것은 마치 히브리인들이 이스라엘 나라의 성취를 향해서 죄의 노예상태를 상징하는 이집트를 탈출하여 침례를 의미하는 홍해를 건넌 것에 불과하다. 마치 히브리인들이 구름기둥의 인도를 받으며 이스라엘 나라가 세워질 가나안땅을 향해서 고난의 행군을 하였듯이, 그리스도인들은 침례를 통해 홍해를 건넌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약속으로 받은 하늘 가나안땅을 향해서 또 그리스도의 나라의 성취를 향해서 하나님께서 구원의 선물로 주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면서 고난의 행군을 시작한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212-16절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생명의 말씀을 밝히라고 당부하였다. 게다가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늘 가나안땅을 향해서 또 그리스도의 나라의 성취를 향해서 터벅터벅 걷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상을 받기위해서 전력 질주하는 육상선수처럼 달려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리스도인의 자기부정

runningman_finishline.jpg 15-16,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에서 온전히 이룬 자들은 헬라어 텔레이오이’(teleioi)를 번역한 말로써 더 이상 율법의 행위나 육체의 것들을 신뢰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아는 고상한 지식을 가지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신뢰하는 성숙함을 향해서 달려가기를 쉬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을 말한다.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는 바울의 인생관이 제대로 밴 말씀이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924-27절에서 이미 이렇게 강조한바가 있다.

[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26]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의 연구>에서 자기를 부정할 줄 모르고, 자기가 이룬 쪼그만 것에 만족하고, 자기도취에 빠지게 되면, 창조성의 가장 큰 적인 자기우상에 빠져서 결국은 쇠퇴와 해체의 길을 걷게 된다고 경고하였다. 자기부정은 자기긍정을 만들고, 자기긍정은 자기부정을 만든다. 자기긍정은 이미 이루었다는 자긍심을 주고, 자기부정은 아직 이루지 못했다는 좌절감을 주지만, 결국 자긍의 힘은 자기부정의 좌절에서 나온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능력은 자기긍정과 자기부정의 사이, 이미아직사이의 긴장과 갈등에서 나온다. ‘’(yes)만 있고, ‘아니오’(no)가 없다면 토인비가 지적한 것처럼 자기우상에 빠지기 쉽고, ‘아니오’(no)만 있고, ‘’(yes)가 없다면 좌절에 빠지기 쉽다. 이 같은 맥락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에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고난에도 참여코자 하였고, “어떻게 해서든지 ... 부활에 이르고자힘썼다. 또 바울은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간다.”고 하였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간다.”고 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