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와 기쁨13: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교회(4)(빌 3:20-21)
본문
감사와 기쁨13: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교회(4)(빌 3:20-21)
그리스도인들의 시민권(1)
빌립보서
3장 20-21절에서 언급된 하늘 가나안땅의 시민권을 소유한
그리스도인들은 18-19절에서 문제를 삼았던 “배”(물욕)를 신(神)으로 삼고,
“부끄러움”(정욕)을 영광으로 삼으며,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들”과 상반된 대구(對句)이다.
하늘에 시민권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자유지상주의 또는 쾌락주의에 경도된 영지주의자들처럼 “모든 것이 가하다”(고전 6:12)며 육체를 남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설사 눈에 보이는 것들이 죄악에 물든 유한한 현상에 불과하다할지라도, 그리스도인들의 최후는 “배”(물욕)를 신(神)으로 삼고, “부끄러움”(정욕)을 영광으로 삼으며,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들”의 최후처럼 “멸망”으로 끝나버리지 않는다. 그 이유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으나 부활 승천하시어 하늘 가나안땅 지성소의 우편보좌에 앉아계시다가 “그곳으로부터 오실 구원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기” 때문이다. 그분께서 재림하시면, “만물을 자신에게 복종시키실 수 있는 능력으로 우리의 비천한 몸을 그분의 영광스런 몸과 같은 형상으로 변화시키실 것이기”(20-21절) 때문이라고 하였다.
이 같은 맥락에서 빌립보서 3장 17-21절은 로마서 8장 1-25절의 말씀에 잇대어져 있다.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19]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20]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그리스도인들의 시민권(2)
20-21절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시민권은 하늘 가나안땅에
있고,
그들은 재림하실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으며,
그때가 되면
“우리의 비천한 몸을 그분의 영광스런 몸과 같은
형상으로 변화시키실 것이다”는 구절에는 기독교 세계관이 함축되어
있다.
이 세상은 선수선발전이 열리는 운동장과 같다. 이 세상은 다가올 세상을 준비하는 싸움터에 불과하다. 이 세상이 다가올 세상에 들어갈 사람들을 뽑는 운동장이라면, 운동장에서는 치열한 싸움이 펼쳐지고 있을 것이다. 이 싸움은 창조론과 진화론, 무신론과 유신론, 유물론과 관념론과 같은 서로 다른 세계관의 싸움이다. 창조론을 믿는 것은 어떤 모양으로든 신의 존재를 믿는 것이고, 신의 존재를 믿는 것은 어떤 모양으로든 신의 개입을 믿는 것이며, 신의 개입을 믿는 것은 이 우주와 내가 존재하는 이유, 목적, 사명, 방향, 미래를 믿는 것이지만, 진화론을 믿는 것은 어떤 모양으로든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고,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어떤 모양으로든 신의 개입을 부정하는 것이며, 신의 개입을 부정하는 것은 이 우주와 내가 존재하는 이유, 목적, 사명, 방향, 미래를 부정하는 것이다.
무신론과 진화론이 태동된 19세기에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1821-1881)는 <죄와 벌>(1866)과 <카라마조프가(家)의 형제들>(1880)을 통해서, 만일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마치 신(神)이나 된 듯이 살인을 비롯한 모든 일을 하려고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이 위험한 발상은 결국 이 세상이 안전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의 반증이 아닌가라는 물음을 던졌다. 이런 관점에서 <죄와 벌>에서 라스콜리니코프는 노파를 죽인 자신의 살인을 정당화했고, <카라마조프가(家)의 형제들>에서 스메르자코프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이반의 말에 속아 증오의 대상이었던 아버지 표도르를 살해하였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의 경계를 뛰어넘어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이 같은 행동들을 죄라고 불렀다(겔 28장, 사 14장).
그리스도인들의 시민권(3)
속주민으로서 로마시민권을 얻는 방법들 가운데
한 가지가 로마군단에 입대하여 장기간 복무하는 것이었다.
제대증서는 소지자가
로마군대를 영예롭게 제대하였고,
황제로부터 로마시민권을
포상 받았다는 내용을 새긴 동판이었다.
제대증은 황제가
영예롭게 제대한 베테랑들의 이름을 발표한 칙령을 공증한 복사본이었다.
제대증은 두 개의
동판을 경첩으로 붙여 접을 수 있게 만들어졌으며 4면에 글을 새겼다.
제1표면에 발행자인 황제의 이름과
전문(全文)을,
제2표면에는 일곱 증인들의 이름을
새겼다.
증인들의 인장은
금속리본으로 보호되었다.
제1,2이면(裏面)에는 제1표면에 새긴 전문(全文)을 정확히 다시 새겼다.
그리고 동판을 접어서
인봉하였는데,
인봉을 손상시키지
않고서도 제1표면만으로 전문을 볼 수 있게
하였다.
이면에 새긴 전문은
로마에서 발행된 칙령을 복사하고 공증한 것으로써 위조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
제대자가 살고자 하는
지역관청에 인봉된 제대증서를 제출하면 수장고의 책임자는 인봉을 뜯고 안팎의 내용이 일치하는지를 확인한 후에 소지자의 성명을 로마시민으로 등재시켜
주었다.
바울과 실라 및 빌립보인들은 로마시민권을 보유한 자들이었다.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이 얼마나 큰 특권으로 인식되었을지는 당대의 로마시민권이 갖는 특권이 얼마나 컸는지, 특히 시민권을 갖지 못한 수많은 노예들과 점령지 주민들에게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힘의 상징이었는지를 알면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로마제국의 전체인구가 6천만 명이었는데, 그중 15퍼센트를 차지한 노예 9백만 명보다 시민권자의 수가 더 적었다. 그만큼 희소가치가 높고 특권도 많았다. 권위의 상징인 긴 토가를 걸칠 수 있었고,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있었으며, 상업에 제약이 없었다. 시민권자와 결혼할 수 있었고, 고문과 구금을 함부로 당하지 않았으며, 재판의 권리가 있었다. 또 노역과 세금을 면제받았고, 오락행사의 무료관람과 무료배급도 받곤 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율법준수나 혈통이나 돈이나 능력에 상관없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으로 값없이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가 될 수 있다고 선포하였다. 오랜 기간 복무하거나 비싼 돈을 주고 사는 시민권이 아니라, 값없이 은혜로 받는 하나님나라의 시민권을 획득할 수 있다고 선포하였다. 이것이 복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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